<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51화 안휘 (3)
남궁무가 죽은 이상 차기 가주가 될 기회는 남궁반과 남궁천, 두 사람에게 있었다.
물론, 남궁반이 차남인 만큼 조금 더 유리할지 몰라도, 그건 남궁천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뒤집힐 수 있는 사소한 차이였다.
하지만, 남궁천은 그 싸움을 회피했다.
아니, 포기했다.
남궁천은 가주 위를 두고 경쟁하기 싫었는지 몰라도, 세가를 떠나 시후를 따라 다녔으니깐.
“아버지는 뭐라고 대답하셨어요?”
“일단 물러가 있으라고 했다.”
“둘째 오라버니는요?”
“처음에는 당황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리며, 경쟁이 있어야 더욱 튼튼히 뿌리내릴 수 있을 거라며 좋아했지.”
“둘째 오라버니답네요······. 아버지는 어쩌실 생각이세요?”
남궁미의 물음에 남궁선유는 땅이 꺼질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긴 어쩌느냐? 천이가 기회를 달라고 하고, 반이도 달갑게 받아들이는데. 공평하게 지켜봐 줘야지.”
아무리 가주인 남궁선유의 발언이 가장 큰 결정권을 가진다고 하여도, 남궁세가의 몸집을 생각한다면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절대 굴러갈 수 없었다.
세가 내 핵심 인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허울뿐인 가주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세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 그들의 마음을 포섭해야 했다.
“천이 오라버니가 너무 불리하지 않을까요?”
남궁미의 걱정은 당연했다.
남궁천은 세가를 떠나 있는 동안, 남궁반은 차근차근 입지를 다지는 중이었다.
물론, 남궁무의 죽음이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었기에, 그리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게 남궁천의 입장에선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제가 경쟁하지 않기 위해서 나가 있었으니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보다, 관심도 없던 아이가 이러는 걸 보면, 밖을 돌아다니면서 심경의 변화가 있을 만한 일이 있었을 듯한데······.”
남궁선유는 남궁미와 동시에 시후를 바라봤다.
질문은 던지진 않았지 않았지만, 둘의 시선은 ‘연유를 아느냐?’라고 물어보는 것과 다름없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분명 어제 분서와 나눴던 대화가 제법 큰 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다만,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건 남궁천이 바라는 게 아닐 것이기에 시후는 말을 아꼈다.
* * *
두 사람만 모여도 남궁천의 이야기로 정신없었다.
자리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행동하더니, 몇 달 만에 돌아와서 소가주의 자리를 탐하고 있으니 논란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남궁천의 그간 행실이 매우 건실했다는 점이었다.
‘이유가 있겠지’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시후는 남궁선유가 어떻게 이 상황을 풀어나갈지, 남궁천은 어떤 방식으로 남궁반을 이겨 낼지 궁금했다.
다만, 그 궁금증을 해결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자, 차린 건 얼마 없지만, 부족하다 욕하지 말고 들어 주게.”
“아, 예.”
차린 게 얼마 없다니.
시후는 어디로 향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못 잡는 젓가락을 가장 가까운 곳으로 피신시켰다.
지금 자리에 앉은 사람은 여섯 명이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음식 가짓수는 족히 그 다섯 배를 넘었다.
접시가 아니라 가짓수다.
‘많다’라고 하기보단, ‘방대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정말이지 성대한 만찬이었다.
음식 또한 일품이었다.
남궁세가의 그 대단한 숙수가 작정하고 솜씨를 뽐낸 듯했다.
문제는 지금 상황이 음식에 도통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데 있었다.
그건 제갈려도 마찬가진 듯 연신 눈치를 살폈다.
남궁선유가 단순히 시후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을까?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남궁천과 남궁반을 같이 불렀을 리 없을 테니깐.
“천아.
“예, 아버지.”
남궁천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의 얼굴엔 긴장감을 뛰어넘어 비장감마저 맴돌고 있었다.
덩달아 지켜보는 시후까지 손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생각이 변하진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남궁천의 대답에 남궁선유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시후는 진즉에 밥을 먹을 분위기가 아니란 걸 파악했기에 이미 젓가락을 내려놓은 뒤였다.
남궁선유의 시선은 남궁반에게 옮겨갔다.
“어떤 남궁세가를 만들 것인지 말해 보거라.”
“반년 동안 강호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당장에 주린 배를 곪느라 먼 미래보단 그날 저녁을 걱정하는 안타까운 사정을 지닌 이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최소한 안휘에서 만큼은 그런 이들이 없게 하도록······.”
전형적인 남궁세가의 마음가짐이다.
남궁세가의 일원이라면 응당 그리 행하는 게 옳다고 배웠기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
남궁선유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반의 긴 이야기가 끝나자,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남궁천에게 향했다.
“소자가 추구하는 남궁세가의 모습은 형님과 조금 다릅니다.”
남궁천과 남궁선유의 얼굴에 미미한 균열이 생겼다.
지금 남궁반이 말한 건 남궁세가가 오랫동안 추구하던 그대로였다.
주변에 배를 곪는 이가 없도록 하고 부를 축적하지 말아라.
남궁세가가 벌어들이는 돈은 엄청나다.
천하제일의 상단이라 불리는 천룡 상단에 필적할 정도.
천룡 상단의 힘을 조금 빌린 것으로 서문세가가 다시 팔대세가로 올라섰으니,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남궁세가는 벌어들이는 돈 대부분을 사용했다.
불우한 이를 돕기 위해서.
단순히 돈만 주고 끝내지도 않는다.
그들이 성장해서 자립할 수 있도록 기반을 함께 닦아 주었다.
셈에 능하다면 태평 상단에서 일을 가르칠 것이고, 손재주가 좋다면 천류 목방에 넣어 기술을 가르친다.
그곳에서 계속 일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나와서 따로 상단과 목방을 차려도 제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남궁세가가 팔대세가 중 제일이라 칭송받는 이유였다.
“그럼 말해 보거라. 어떤 남궁세가를 만들 것이지 말이다.”
남궁선유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대답에 따라서는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였다.
다만, 마주 보는 남궁천의 눈빛도 그에 못지않았다.
“가난의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다고 했습니다.”
남궁천의 말에 남궁선유의 기도가 크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남궁천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럼에도 우리 남궁세가는 그걸 해냈습니다. 비록 나라는 아니지만, 안휘성에서 배를 곪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했죠. 익힌 무공으로 같이 밭을 개간하며 도왔다고 하니, 선조들의 노고가 얼마나 대단하셨는지 익히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잠시 말을 끊은 뒤 숨을 들이켰다.
마치, 진짜 할 말은 지금부터라는 것을.
“하지만, 그래선 안 되는 거였습니다.”
“천아.”
“그리하여선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남궁세가에서 했던 행동으로 인해 저들이 배를 곪지 않을 수 있었을지언정, 마음이 곪아감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더냐?”
남궁천의 눈에 슬픔이 담겼다.
“제가 마음을 바꾸게 된 이유는 아주 사소한 이유였습니다. 우리 남궁세가에서 운영 중인 한 가게에 외모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당한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억지로라도 예(例)와 의(義)를 가르치기 위해 오르려 했습니다.”
“그 말은, 지금은 그 이유가 달라졌다는 것으로 들리는구나.”
“맞습니다. 저는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남궁세가에 관해 아는 게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남궁세가가 보인 그간의 행적을 되짚어 봤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해마다 빈곤층에 대한 지출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야······.”
“안휘성의 인구가 줄어들어도 늘어났고, 늘어나면 더욱 늘어났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직후가 아니라 태평성대라 부르기 부족함이 없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 준다고 생각했던 행동이, 저들에게는 되려 차츰차츰 마음을 좀먹는 독이 되고 있었던 겁니다.”
남궁선유는 입을 꾹 닫았다.
“마음이 곪았으니 단순히 생김새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겁니다.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지, 일으켜 줘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남궁천은 고개를 반쯤 숙인 남궁선유를 바라보며, 최후의 한마디를 날렸다.
“어려운 자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눈이 멀어, 자립(自立)의 참뜻을 잊은 것 같습니다.”
* * *
만찬은 어중간한 분위기 속에 파하였다.
하지만 딱히 밥 먹을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다들 불만은 없었다.
시후는 얼른 방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에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소매를 잡아끄는 제갈려의 손길에 뒤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
“뭐가?”
“남궁세가 소가주 쟁탈전.”
“쟁탈전은 무슨······.”
시후는 피식 웃으며 걸으며 이야기하자고 눈짓을 보냈다.
그에 제갈려는 냉큼 나란히 걸었다.
“아마도 며칠은 고민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천이 형님을 밀어주겠지.”
“왜?”
“왜긴 왜야? 너도 이야기 다 들었잖아.”
“엄청난 반발이 따를 텐데, 남궁세가에서 곤란하지 않을까?”
제갈려의 말에 시후는 콧방귀를 뀌었다.
“제갈세가는 어떤데?”
“응?”
“제갈세가에서 베푸는 게 있냐고.”
“······ 무슨 의도로 묻는지는 알겠지만, 그렇게 말하니깐 엄청나게 기분 나쁜데?”
제갈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봤기에, 시후는 시선을 살짝 피했다.
“아무튼, 남궁세가에서 당장 지원을 줄이면 군소리가 나오긴 하겠지만, 완전히 외면하겠다는 것도 아닐 테니 별 상관없지 않겠어? 도리어 성을 낸다면 양심이 출타한 놈들이지.”
“흐응······. 넌 결과적으로 천이 오라버니가 소가주에 오를 거라고 생각하는가 보구나?”
“응.”
그리고, 시후의 예상은 정확했다.
다만, 과정은 틀려먹었다.
남궁천의 소가주 위치는 남궁선유의 지지가 아닌, 남궁반의 포기로 인해 얻어 냈으니깐.
문제는, 이것이 단 하룻밤 만에 내린 결정이라는 점이다.
“쟁탈전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네.”
남궁천은 유일무이한 경쟁자인 남궁반이 물러나자, 자연스럽게 소가주라 불리게 되었다.
덕분에 남궁천은 아침부터 여기저기 인사하러 다니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제갈려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시후를 돌아봤다.
“앞으로 같이 못 다니겠네?”
무슨 소린가 싶어 바라보자 제갈려는 두 손을 맞잡은 채 허공을 막 휘둘렀다.
어설프게나마 휘두르는 모습이 왠지 검을 휘두르는 듯했다.
덕분에 시후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제왕검형(帝王劍形).”
“천뢰제왕심공(天牢帝王心功)까지 익혀야겠지.”
정식 소가주로 인정받으려면 제왕검형의 후반부 삼 초식을 제외하고 모조리 익혀야 한다.
아무리 남궁천의 무재가 뛰어나다고 한들, 남궁세가를 대표하는 무공 두 개를 익히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반년은 필요할 것이다.
아니, 극히 짧게 잡는다면 삼 개월도 가능하겠지만, 그 이내에 익힌다는 건 NPC 특성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분간 남궁세가에 머무를까······.”
“편지는 잊었어?”
“무슨······.”
시후는 말을 꺼내다 말고 입을 닫았다.
제갈마혁의 편지가 떠오른 것이다.
죽음을 경험할 필요는 없으니 살려서 데려오라고 했던가.
그런데 남궁세가에서 시간을 죽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뭘 하고 있느냐고 부드럽게 물을까?
절대 아니올시다.
“며칠만 쉬자······.”
시후가 제대로 쉰 적이 있던가.
단언컨대, 단 하루도 없었다.
그 간절한 목소리에 제갈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할아버지는 여름이 오기 전에 다녀오실 거라고 했으니······.”
“아, 젠장!”
‘노인네 부지런하기도 하지!’
시후는 속으로 욕을 하며 다급히 다음 목적지를 머릿속에 그렸다.
문제는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애초에 남궁세가에서 며칠간 머무르면서 당가의 소식을 기다리려고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시후는 손가락을 튕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적지는 정하지 못했지만, 찾을 사람은 있었다.
“일단, 하오문 좀 들르자.”
- 152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