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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49화 (131/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49화 안휘 (1)

제갈마혁의 반응은 생각보다 미지근했다.

화를 내지도, 묻지도 않았으니깐.

언뜻 보기에는 별반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으면 아무런 반응조차 못 하곤 하는데, 지금 제갈마혁의 상태가 그러하였다.

다소 이상함을 느꼈는지 제갈려가 불안한 눈빛으로 제갈마혁을 힐끔거렸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제갈려가 몇 번이나 불렀지만, 반응조차 없었다.

놀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갈마혁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제야 제갈마혁은 정신을 차린 듯 눈을 끔벅였다.

“······ 어찌 되었다고?”

“그게······.”

제갈려는 우물쭈물하며 말끝을 흐렸다.

이미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외면하는 듯한 제갈마혁의 태도에 재차 말을 꺼내기 꺼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제갈려는 다시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진은 부서졌어요.”

그 대답에 제갈마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 이야기를 잊었을 정도로 이 할아비의 기억이 나쁘다고 생각하느냐? 내 물음은 어찌하여 진이 부서졌냐, 이 말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노기가 어려 있었다.

제갈려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려다가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제갈마혁의 새하얀 눈썹이 크게 요동쳤다.

벌어진 입 사이로 꾸지람이 쏟아져 나올 듯했지만, 시후와 남궁천을 바라보곤 한차례 숨을 골랐다.

“나가 있거라.”

그의 단호한 어조에 남궁천은 난색을 보이며 시후를 흘겨봤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갈려가 진을 부순 이유는 진 속에서 사라진 시후를 꺼내기 위함이었으니깐.

물론, 시후는 억울했다.

그냥 내버려 두었더라도 진을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시후는 고민했다.

이 자리에서 건네줄 것인가.

아니면, 모른 척 자리를 뜬 뒤에 따로 제갈마혁에게 접근하여 건네줄 것인가.

전자의 경우는 팔진도해법을 ‘기부’하듯 줘야 한다.

물론, 팔진도해법을 주는 대가로 자운유성창을 달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궁천이 보는 앞에서 그러는 건, 그와 함께 다니며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가장 최악의 수였다.

그럴 바에는, 그냥 주고 기도하는 게 훨씬 낫다.

그와 반대로 후자의 경우는 팔진도해법을 토대로 ‘거래’를 할 수 있다.

제갈세가에 팔진도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니, 대가로 자운유성창을 받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또한 남궁천이 걸렸다.

시후는 울며 겨자 먹기로 품에서 팔진도해법을 꺼내 들었다.

앞에 적힌 글자를 보더니, 제갈마혁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필체가······.”

그는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팔진도해법을 집었다.

거미줄에 맺혀 있는 이슬을 어루만지듯, 매우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그의 손길은 속도를 더해갔다.

절반쯤 확인했을까.

재갈마혁은 돌연 팔진도해법을 덮었다.

“어디서 구했느냐?”

“그 진 속에서요.”

옆에서 무시무시한 눈빛이 느껴졌다.

필시 제갈려가 노려보고 있음이 분명했다.

“얻게 된 경위를 상세히 말해 줄 수 있겠느냐?”

“음······. 려가 시킨 데로 왼발에 숨을 들이켜고 오른발에 내뱉으며 밟은 곳을 그대로 따라갔는데, 어느 순간 눈앞의 풍경이 확 바뀌면서······.”

적당한 진실과.

“······ 그렇게 사당 안으로 들어간 뒤, 안을 살피려다가 무후께 예를 올리는 게 먼저라 생각하여 석상에 절을 올렸더니, 그게 앞에 나타나더군요.”

거짓을 섞어 주었다.

그에 제갈마혁은 크게 기뻐했다.

“암! 예를 표하는 게 먼저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니 이대로 넘어가는가 싶었지만, 그는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보다, 려의 말대로 움직였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 물음은 어떻게 려보다 먼저 사당에 도착했냐는 것으로 들렸다.

시후는 자운유성창을 툭툭 두들겼다.

“이 녀석이 매개체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그에 제갈마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시후의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제가 조가창식을 익히기도 했으니······.”

“조가창식? 그건 실전된······.”

“그 북방에서 세운 공 덕분에 무무궁에 출입할 수 있었고, 조가창식은 그때 얻었습니다.”

“실전된 줄 알았더니 황궁에 있었구나!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팔진도해법을 돌려받았기 때문일까.

제갈마혁의 얼굴은 이전에 본적 없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후 몇 마디를 더 주고받는 사이, 팔진도해법은 제갈마혁의 품속으로 쏙 들어갔다.

시후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자마자 자운유성창을 불쑥 앞으로 내밀었다.

“그간 잘 썼습니다.”

“아, 그렇지.”

제갈마혁은 자운유성창을 건네받다 말고 잠시 멈칫했다.

시후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왜 쓸데없이 조가창식을 거론했겠는가.

제갈마혁이 시후와 자운유성창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그렇군. 팔진도가 우리 제갈세가의 물건이듯, 이 또한 조가창식을 위해 사용함이 옳겠지.”

[‘제갈세가 차녀 생존기’에 ‘팔진도해법의 전달’이 더해져 보상으로 ‘자운유성창’이 지급됩니다.]

* * *

“이대로 가는 건 좀 그렇지 않겠나?”

남궁천의 말에 시후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삐진 건 시간이 지나면 풀어지기 마련이죠.”

“단순히 삐진 정도가 아닐 텐데······.”

결과적으로야 제갈세가에 팔진도를 돌려줬다지만, 제갈려가 그간 마음 졸였을 걸 생각한다면 뺨을 맞아도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어제부터 쭉 안 보이잖아요.”

시후도 제갈려에게 사과할 생각은 있었다.

어제만 해도 몇 차례 제갈려를 찾아가지 않았던가.

다만, 만나진 못했다.

시비에게 제갈려를 불러 달라고 부탁하면 매번 돌아오는 대답은 방에 없다는 말뿐이었다.

정말로 방에 없던 것인지 아니면 보기 싫어서 거짓을 말했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시후는 제갈려를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언젠가 볼일이 있겠죠.”

“음······.”

“자자, 안휘로 갑시다.”

시후가 말 안장을 두들기며 말하자, 남궁천은 못 이기는 척 말에 올라탔다.

“수고하십시오.”

“차 소협께서도 평안한 강호행 되시길 바랍니다.”

“그거 고맙습니다.”

정문을 지키는 위사에게 인사를 건넨 뒤 말을 출발시키려 했으나, 뒤에서 들려오는 불안한 말발굽 소리에 시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 막아!”

위사들이 놀라면서도 문 앞을 가로막았다.

거침없이 달려오던 말은 이내 속도를 줄였다.

말 위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인물이 앉아 있었다.

“둘째 아가씨, 못 보내드립니다.”

위사는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 제갈려의 앞을 가로막았다.

육 개월간의 자유분방한 강호행을 허락받았었지만, 그건 육 개월 전의 이야기였다.

기한은 끝났다.

지금 나가는 건 누구도 허락한 적 없었다.

하지만, 제갈려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왼손에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위사에게 건네주었다.

“읽어 봐요.”

위사는 제갈려의 손에서 고삐까지 건네받은 뒤 종이를 펼쳤다.

잠시 후, 그는 종이를 들고 시후에게 다가왔다.

“읽어 보셔야겠습니다.”

시후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며 종이를 건네받았다.

「새장에 갇힌 새는 하늘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법이니, 조금 더 넓은 하늘을 보여 주거라.

네 녀석의 말대로 경험이란 녀석은 돈을 주고도 못 구하지 않더냐?

그래도 죽음을 경험할 필요는 없으니 살려서 데려오거라.」

누가 썼는지 이름조차 적혀 있지 않았지만, 어제 이 대화를 나눌 때 있던 사람 중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인물은 제갈마혁밖에 없다.

위사의 반응은 시후가 짐작하는 인물이 옳다고 말하는 듯했기에,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이제 진법을 다시 가르쳐야 하는 시점 아닌가?

그보다,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지 않은가.

시후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가 보모도 아니고······.”

시후의 한탄에 남궁천이 짧게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 * *

시후는 낮에 받은 서찰을 화덕 안으로 던졌다.

서찰에 담긴 내용을 별거 없었다.

쌍괴가 혜아와 같이 소림으로 향하고 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당가의 이야기는 의외였다.

자신만만했던 만큼 금방 결과를 가져올 줄 알았는데, 아직 단 한 놈도 실토하지 않았다고 했다.

종이로 이뤄진 서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잿더미로 변했다.

시후는 불길이 다소 사그라들자 바닥에 놓인 나뭇가지를 화덕으로 휙휙 던져 넣었다.

“미안하네. 난데없이 노숙하게 될 줄은 몰랐네.”

“아뇨, 갑자기 문을 닫은 게 어디 천이 형님 때문인가요? 게다가 이 정도면 노숙이라 부르긴 어렵죠.”

남궁천이 자신만만하게 찾은 이곳은 합비와 회남의 사이에 있는 어느 조그만 산중 객잔이었다.

회남에 머무르기엔 어중간한 시간이었고, 합비로 들어가자니 까마득한 밤중에나 도착할 듯했기에 한 선택이었다.

문제는 이 객잔이 문을 닫았다는 데 있었다.

날아다니는 벌레와 사방에 드리운 거미줄은 흉가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하지만, 시후는 이 와중에 웃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운남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이건 천국이잖아요?”

“······ 그도 그렇군.”

시후의 말에 남궁천은 짧지만, 분명히 고개를 끄덕였다.

운남은 사람 사는 집이라고 한들 이보다 더 심했으니깐.

“그것보다 저 위에서나 여기나 거기서 거긴데, 뭣 하러 위에 올라가서 자겠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조금 더 깨끗하지 않겠는가.”

“뽀얀 먼지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텐데요?”

“일장일단(一長一短)일 테지.”

“장보다 단이 지나치게 큰데요?”

바닥의 흙이야 조심하면 그리 날리지 않겠지만, 먼지는 조그만 움직임에도 풀풀 날렸다.

마셔서 없앨 게 아니라면 차라리 문을 활짝 열어 환기한 이곳에서 잠을 청하는 게 현명했다.

“곧 내려올 테지.”

남궁천의 짐작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제갈려가 아래로 내려왔다.

“이불도 없이 자려니깐 조금 춥네.”

봄이다.

그것도 완연한 봄.

아무리 일류 수준이라고 하지만, 제갈려 또한 내공심법을 익힌 무림인이었다.

‘춥긴 얼어 죽을.’

시후는 콧방귀를 끼며 옆으로 조금 비켜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불침번이라도 설 거예요?”

“음······. 아무래도 그러는 게 좋지 않겠나? 일단 내가 먼저 서다가, 졸리면 깨우겠네.”

“밤새지 말고 꼭 깨우세요.”

“음······. 알겠네.”

대답에 뜸을 들인 걸 보니 신뢰가 가지 않았다.

시후가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자, 남궁천은 멋쩍게 웃더니 알겠다며 꼭 깨울 테니 어서 자라고 재촉했다.

시후는 의심 반 믿음 반의 마음으로 두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했다.

어디서 바람이 들어오는지 칼바람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속으로 세어가는 양의 숫자가 백을 넘겼을 무렵, 시후는 등을 통해 느껴지는 진동에 몸을 일으켰다.

남궁천 또한 바닥에 붙이고 있던 몸을 뗐다.

“이런! 선객이 있었군. 들어가도 되겠소?”

객잔 밖에서 칼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동시에 제갈려를 바라봤다.

어찌 되었든 제갈려의 의사가 가장 중요했으니깐.

하지만, 제갈려는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남궁천의 시선이 시후를 향했다.

“들어오시죠.”

시후 또한 상관없었다.

사람 좋은 남궁천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끼이이익.

녹슨 경첩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짤막한 키에 비해 기형적으로 긴 팔.

곤륜노(崑崙奴)라고 생각할 정도로 까무잡잡한 피부.

쉬이 볼 수 있는 생김새는 아니었다.

“허락해 주어서 고맙소이다.”

“별말씀을요. 애당초 주인 없는 폐가이지 않습니까? 그보다, 아까 여쭙는 걸 봐선 이미 이곳이 폐가가 되었음을 아시는 듯하던데······.”

“아, 한 석 달 되었소. 동파육을 참 잘하는 곳이었는데 아쉽게 되었소.”

“하하, 맞습니다. 동파육 하나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었지요.”

남궁천이 낯선 남자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제갈려가 시후의 팔을 쿡쿡 찔렀다.

왜 그런가 쳐다보자 제갈려는 시후의 등에 손가락으로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분서(鼢鼠).’

제갈려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후는 고개를 저었다.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제갈려는 인상을 구기며 재차 등에 몇 글자 더 적었다.

‘미미객잔’, ‘철우’.

두 단어가 더해지자, 시후는 저 구석에 묻혀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팽가가 무영묘적으로 오해하며 쫓았던 자가 이자였다.

- 150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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