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46화 정비 (1)
검후는 사방으로 달아나는 놈들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영리하게도 다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났다.
그 숫자가 총 열.
작정하고 쫓는다면 최대 둘까지는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머지 놈들을 쫓을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검후는 재빨리 주변을 훑었다.
하지만, 이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정도가 아니라,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한 표정인 자들이 즐비했다.
결국, 검후는 추격을 포기했다.
“정리하지.”
검후의 말에 억지로 버티고 있던 몇몇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길지 않은 싸움이었지만, 피를 말리기엔 충분했다.
기본적으로 놈들의 무공 수위는 절정이었다.
그리고, 간간이 뒤섞여 있는 초절정 고수의 숫자 또한 적지 않았다.
물론 이쪽은 누구 하나 초절정이 아닌 사람이 없었지만, 상대는 너나 할 것 없이 폭렬기공을 사용했다.
게다가 최후의 순간에는 개문까지 열고 덤벼들었다.
덕분에 이쪽은 죽을힘을 다해 상대해야 했다.
검후의 도움이 없었다면, 바닥에 누워 있는 자들은 저들이 아니라 당가 쪽이었을 것이다.
당가 무인들은 각자 몸을 점검하기도 하고, 다친 동료의 응급처치를 돕기도 했다.
비교적 멀쩡한 당추열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나 시후는 당추열과 달리 ‘주저앉은 몇몇’에 속했다.
아니, 그들보다 조금 더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바닥에 누워 있었으니깐.
남궁천 또한 다르지 않았다.
“죽을 맛이로군.”
“그건 무슨 맛이죠?”
“······ 쇳가루와 흙이 뒤섞인 맛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군.”
남궁천은 그렇게 말하며 침을 뱉었다.
정확한 표현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격렬히 움직였고, 그로 인해 생긴 먼지를 한 움큼은 들이마셨으니깐.
“두 사람은 괜찮나?”
“다소 피곤하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남궁천은 조금 전까지 죽을 맛이니 어쩌고 하더니, 당추열이 다가와 묻자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답했다.
시후도 피식 웃으며 그를 따라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고맙네. 큰 도움이 되었어.”
“부족한 실력으로 인해 발목을 붙잡았음에도,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겸양이 아니었다.
당가의 진짜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속에서 시후와 남궁천의 활약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끼어 있다는 것 자체로 놀라운 일이었다.
두 사람을 제외하면, 여기에 있는 인물 중 가장 어린 자의 나이가 마흔 중턱이니깐.
“차기 팔황은 남궁세가에서 배출하겠군.”
“둘째 형님이라면 차기 팔황에 오를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은 남궁세가에서 차기 팔황 중 두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말인가?”
“아, 그 뜻이 아닙니다. 다만, 남궁세가에서 차기 팔황이 나온다면 둘째 형님께서······.”
“그냥 한 소리일세. 그보다, 피곤하더라도 돌아가서 쉬는 게 어떻겠나? 쉬기엔 썩 좋은 장소가 아니지 않은가?”
당추열의 말대로, 확실히 쉬기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이곳에는 조금 전까지 흑련회 무리와 싸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시후는 사방에 즐비한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시체 틈바구니에서 취하는 휴식은 정신건강에 이롭지 않았다.
* * *
“······ 사로잡은 놈들이 없다는 게 아쉽군.”
당모준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잔뜩 묻어 나왔다.
개문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몰아붙이면 모를까, 사용한 이상은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망친 놈들은 달랐다.
“추격은?”
“아쉽게도 태반은 놓쳤지만, 개방과 하오문의 노력 덕분에 다섯 명의 행적은 놓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막 사천을 빠져나갔다고 하지만, 배편을 이용하고 있다고 하니 무당의 도움으로 의창에서 붙잡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어떻게든 잡아야 하네.”
“알고 있습니다. 일단, 사천에 있는 놈들은 추혼대를 보내서 포획하도록 하겠습니다.”
“개방과 하오문의 협조를 얻어 계획을 단단히 세우라 말하게.”
당모준은 적심당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염려스러운 마음을 담아 한마디를 덧붙였다.
“알겠습니다.”
“자세한 계획을 세워 나중에 말하도록 하고······. 추열.”
“예, 가주.”
“이번에 소모한 독의 양이 어느 정돈가?”
당모준의 질문에 당추열은 다소 주저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대답을 피할 순 없기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흑갈독(黑蠍毒)과 홍학훼분(紅鶴喙粉)은 동이 났으며······.”
당추열의 말이 이어질수록, 내부에 앉아 있는 당가 인사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제법 많이 사용하긴 했다만, 동이에는 한 되는 물론이거니와 반 되도 남지 않은 독들이 허다했다.
“그 많은 독을······.”
당모준은 이마를 짚은 채 말끝을 흐렸다.
하룻밤 새 소비한 양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나 홍학훼분은 당가에서 매년 놈들의 개체 수를 확인하고 잡아야 했기에, 돈을 주고 구하려 든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다.
하지만, 당가가 멸문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낄 게 무엇이 있겠는가.
당모준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구하면 될 일 아닌가. 덕분에 이렇게 당가를 지키지 않았나? 추열, 어깨 펴게. 몇몇 독을 제외하면 다시 구할 수 있지 않은가? 추양은 운남의 채집꾼들에게 연락하여 채집량을 늘려 달라고 전해라.”
당모준의 말에 추양과 추열은 서로를 바라봤다.
부자지간 아니랄까 봐 우물쭈물하는 모양새가 똑 닮아 있었다.
곤란해하는 아들을 대신해서 추열이 입을 열었다.
“가주, 운남의 일은 아직 정리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웃돈을 얻어 준다고 한들, 채집꾼들이 나서진 않을 듯합니다.”
녀석이 찾아왔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정적’이라는 녀석 말이다.
이번에는 제법 오래 머물 생각인지, 도통 자리를 뜰 생각이 없어 보였다.
* * *
“어? 차 소협,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당패철은 자신의 방문 앞에 기다리는 시후를 발견하곤 물었다.
시후의 손에는 제법 커다란 자루 두 개가 들려 있었다.
“혹시, 그게 저에게 주는 선물은 아니겠지요?”
아니냐고 물으면서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건 당패철에게 줄 물건이 아니었기에 시후는 고개를 저었다.
“당추열 전주를 만나고 싶은데, 구극전에만 머물러 계시니 뵐 수가 없더라고요.”
“아, 숙질께 볼일이 있으셨다면 주변에 아무나 붙잡고 말씀하셨으면 되셨을 텐데요.”
“그게, 좀 몰래 뵀으면 하는지라······.”
시후가 말끝을 흐리자 당패철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바로 앞장서 걸었다.
그는 구극전이 아니라 어느 한적한 곳으로 시후를 데려간 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반 각 후, 당패철이 다시 나타났을 땐 당추열과 함께였다.
그는 시후를 보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당패철이 자리를 비켜 주자, 당추열의 얼굴이 한결 더 묘해졌다.
“갑자기 급한 볼일이 있다며 날 부른 패철이는 저리로 가 버리는 걸 보니, 내게 볼일이 있다는 건 차 소협인 건가?”
“이렇게 불러 달라는 건 아니었는데······. 볼일이 있는 건 맞습니다.”
“무슨 일이길래 이리 한적한 곳으로 날 불렀나?”
“이번에 소모한 게 제법 많지 않습니까?”
당추열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제 있었던 회의에서 부족한 독의 부재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관한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으니깐.
지금 시후의 말은 그의 상처를 후벼 파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시후는 그를 괴롭히기 위해 꺼낸 말이 아니었다.
“홍학훼분은 홍학의 개체 수가 한정돼 있어서 구하기 힘들다면서요?”
“그렇네.”
당추열의 낯빛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느냐는 듯한 태도였다.
그의 얼굴을 보며 시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곧 저 표정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았으니깐.
“제가 가지고 있는 물건중에 지금 당가에 도움이 될 물건이 있더라고요.”
시후는 손에 들려 있는 자루 중 하나를 앞으로 내밀었다.
제법 묵직하고 기다란 것이 들어 있는 듯, 담고 있는 자루가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당추열은 호기심이 동했는지, 슬쩍 손을 뻗어 자루를 받았다.
자루의 입구는 줄로 제법 꽁꽁 싸매져 있었기에 푸는 데 시간이 걸렸다.
곧 당추열의 손에서, 자루를 싸매고 있던 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홍학훼분보다 못한 물건은 아니죠?”
당추열은 말이 없었다.
중풍이 찾아온 노인네처럼 덜덜 떨리는 손을 자루를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은 뒤, 손을 안으로 집어넣으려다가 멈칫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시후를 바라봤다.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눈동자에서 한줄기 인내심이 보였다.
“이게 무엇인 줄 알고······. 아니, 무엇인 줄도 몰랐다면 이렇게 몰래 주지 않았겠지. 그럼 다시 묻지.”
당추열은 숨을 고르더니 재차 입을 열었다.
“이게 독각혈망의 독니가 맞는가?”
“단번에 알아보시네요.”
“모를 리 없지. 모를 수도 없고. 세상천지에 이런······. 터무니없는······.”
자루에 손을 집어넣는 대신, 자루 주둥이를 아래로 내렸다.
어린아이의 팔만 한 크기의 이빨이었다.
“독에 관해선 제법 아는가?”
“거의 모르는 편이죠.”
“그런데 어떻게 이 독니와 연결된 독낭(毒囊)까지 챙겼는가? 그것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아서 출렁이는 것 좀 보게. 이거라면 족히 천 명. 아니, 만 명이라도······.”
당추열은 누가 봐도 흉측한 독낭을 당장이라도 핥을 기세로 쳐다봤다.
맨손이라서 차마 쓰다듬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거면 홍학훼분이 없어도 당분간 문제없겠죠?”
“자네, 농이 지나치군. 홍학훼분이 아니라 청사혈독, 섬포, 흑각오공 진액 등등! 다 필요 없네! 이거 하나만 있어도 능히······.”
시후는 그가 흥분한 채로 떠들게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사람이 다가오는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깐.
당추열은 한참이나 팔을 붕붕 휘두르며 말을 내뱉은 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듯 떨어진 줄을 주워 자루 입구를 동여맸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내 이 사실을 가주에게 알려서······.”
“그보다 부탁 좀 드릴 게 있는데요.”
“말하게. 무조건 들어주겠네.”
나중에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이 정도면 당추열과의 호감도가 90을 넘겼다고 봐도 무방할 듯했다.
시후는 일단 손에 들린 나머지 자루를 건넸다.
자루를 받아든 당추열의 얼굴이 경악이 번졌다.
열어보지 않고도 무게만으로 알아차린 듯했다.
“이······ 이······.”
“맞아요.”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독각혈망의 가장 귀한 부위라고 한다면, 단언컨대 뿔이었다.
뿔이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현 당가의 입장에선 독니와 독망 또한 귀할 테지만, 뿔은 무가지보(無價之寶)나 다름없었다.
“잡았군! 잡았어. 잡지 않고서야 이 귀한 물건을 어찌 다 가지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시후는 그에 관한 대답을 해주는 대신 본론을 꺼냈다.
“뿔을 가져도 좋아요.”
“정말인가!! 거짓은 아니겠지!?”
“단, 뿔 위에서 세 치는 곱게 갈아서 절 주세요.”
“아······.”
당추열의 입에선 탄성이 흘러나왔다.
안 아쉽겠는가.
가장 귀한 부위의 뿔에서도 가장 값어치 있는 부분이 딱 세 치 까지다.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온 기운이 내단으로 만들어지지만, 그 영험한 기운의 절반은 이 뿔에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금세 아쉬운 마음을 털어냈다.
이것만 하더라도 당가는 시후에게 갚을 수 없는 보물을 받은 것이니깐.
“세 치를 거론한 것으로 봐서, 다소 시일이 걸리는 걸 모르진 않으리라 보네.”
“어느 정도 걸리죠?”
“다른 일을 다 내팽개치고 해 줄 테지만, 아무리 빨라도 닷새는 걸릴 걸세.”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보다 빨랐으니깐.
당추열은 양손에 자루 두 개를 들고 구극전으로 달려가려다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내단은 먹었나?”
그의 물음에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물론, 입가에 띈 미소는 대답한 것과 다른 것이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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