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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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화 역공 (3)
당추열의 손짓에 위로 올라가자, 바닥에 엎어져 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좀 더 가까이서 살펴본 뒤에야 그들이 죽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시후는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 자운유성창을 찔러넣으려 했으나, 당추열이 팔을 붙잡았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피 냄새를 풍겨서 좋을 건 없네.”
시후는 조금 전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 바람은 위로 향했다.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 한들, 피 냄새를 맡으면 정신이 번쩍 들지 않겠는가.
시후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곤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당추열은 사과를 받고자 함은 아니었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돌연 한 아름 크기의 나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이면······.”
당추열은 마치 한 마리의 날다람쥐처럼 순식간에 나무 위로 사라졌다.
잠시 후, 나무 위에서 비수 하나가 다른 나무로 쏘아졌다.
힘없이 날아간 비수는 나무에 틀어박히지 못한 채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눈에 내공을 모으자 비수 끝자락에 매달린 실이 눈에 들어왔다.
당추열은 오른 나무에 실을 묶고는 비수가 매달린 나무로 올라, 실을 팽팽하게 당겨 묶더니 그 실에 뭔가를 매달았다.
그 후로 나무 이곳저곳을 오르며 같은 행동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당추열이 모든 작업을 끝마친 듯 시후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위로 향하려는 찰나, 갑자기 옆에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둘은 바닥에 쓰러져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다가 풀숲으로 황급히 숨었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가오는 인물은 검후였다.
“뭘 이렇게 꾸물거려?”
복면으로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를 통해서 제법 뿔이 났음을 알 수 있었다.
시후는 당추열을 힐끔 바라봤다.
“퇴로를 이쪽으로 잡으셔야 합니다.”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시후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검후는 왜 그래야 하는지 물어보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시간을 그리 많이 허비한 건 아니지만, 행여라도 발각된다면 위험을 감수하고 천중구릉으로 온 게 무의미해진다.
게다가 선공을 취하지 못한다면, 여기 온 인원 중 살아서 나갈 수 있는 인원은 한 손에 꼽을 테니깐.
검후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스물에 달하는 인원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당추열은 당가 사람들을 한데 모으더니, 나뭇가지로 바닥에 뭔가를 끄적였다.
잠시 후, 당추열을 제외한 그들은 주변으로 흩어졌다.
속으로 백을 헤아렸을 즈음, 당추열은 조심스럽게 주머니 하나를 꺼내었다.
검후와 남궁천은 그와 거리를 벌렸다.
아무리 피독주를 물고 있다고는 하지만, 독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순 없으니깐.
잠시 후, 그의 손에 들려진 붉은빛 가루는 바람을 타고 유영했다.
나아가는 방향은 정확했다.
순조로워 보였다.
막 천막에서 빠져나오는 한 녀석만 없었다면.
놈은 소피가 마려웠는지 바지춤을 붙잡은 채 뒤편 풀숲으로 다가갔다.
잠이 덜 깬 듯 비척거리며 걷던 놈은 돌연 자리에 멈춰 섰다.
고개를 하늘로 들어 올리더니 손을 허공으로 뻗어 휘저었다.
“일어나!!”
* * *
놈의 외침에 먼저 반응한 건 시후 쪽이었다.
검후를 비롯한 이십여 명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천막에 다다르기 전에 놈들이 뛰쳐나왔다.
손에 각자의 병장기를 움켜쥔 놈들은 바르게 사방을 훑었다.
이곳에 온 인원은 고작 스물.
그에 반해 놈들은 이백 가량이다.
“초혼 대주님! 독입니다! 놈들이 이미 독을 뿌렸습니다!”
“모두 피독주를 입에 물어라!”
최초에 일어났던 놈이 소리치자, 초혼 대주라는 자가 명령을 내렸다.
그에 이백에 달하는 인원이 일사불란하게 피독주를 물었다.
얼마나 높은 수준의 피독주를 준비했을지 모르지만, 저급의 피독주라 할지라도 독을 상쇄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엔 충분했다.
물론, 적은 양일 때나 가능한 일이지만.
“투(投)!”
당추열의 외침에 당가 무인들은 일제히 주머니를 던졌다.
뭔가 날아오자 병장기를 휘두르려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안전하게 받아내기 위해 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별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비(飛)!”
당가의 성명절기는 독과 암기다.
하물며 이 자리에 있는 당가의 무인은 한 명, 한 명이 당가의 축이었다.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주머니를 비도로 맞추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놈들의 앞으로 형형색색의 가루가 흩날렸다.
앞으로 달려들자니 자욱한 독분을 뚫고 달려야 하고, 가만히 있자니 점점 죄어오는 판국이었다.
그 사이, 당가 무인들의 손에서 재차 주머니가 날아들었다.
“흐아아아압!!”
초혼 대주라 불린 자의 무기는 거대한 부(斧)였다.
인간과 곰과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그가 부를 옆으로 휘두르자, 거짓말처럼 광풍이 몰아쳤다.
그 모습에 다들 검을 휘둘러 밀려드는 독분을 쫓아냈다.
물론, 전부 밀어낸 게 아닌지라 독분을 뒤집어쓴 놈들도 있었지만, 쏟아부은 독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양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던져야만 했다.
내공을 사용케 하면서 뒤를 점했던 인원들이 물러날 시간을 벌어야 했으니깐.
“태령과 계동부터!”
하나둘 사람이 빠지자, 주변을 감싸던 독분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놈들이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당장에라도 독분을 뚫고 달려들 듯한 기세였다.
“한 번은 막아서야 한다.”
검후의 말에 남궁천과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한가한 사람은 셋이 전부다.
물러나기 시작한 당가 인원들이 절반이 다다르자 검후는 신호를 보냈다.
검후의 검이 눈이 시릴 정도로 빛났다.
그에 맞서 시후의 자운유성창 또한 휘황찬란한 금빛을 뽐냈다.
남궁천이 쥐고 있는 간장검 또한 흉흉한 기세로 잘게 떨렸다.
검후의 왼발이 땅을 강하게 밟았다.
자욱이 일어나는 흙먼지.
검후의 검이 수평으로 휘둘러졌다.
단순한 횡 베기일 뿐이었다.
무엇하나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휘두름이었지만, 검에서 쏘아진 게 검기도 아니고 검강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주!!”
피해야 했다.
하지만, 몸을 피하고자 독분 속으로 뛰어든다면, 당장은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바로 운기조식을 취하지 않으면 죽은 목숨과 진배없었다.
‘그렇다면 막아야 한다.’
초혼 대주는 양손으로 도끼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의 몸에서 붉은빛 기운이 맴돌았다.
폭렬기공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도끼에도 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검후가 날려 보낸 검강과 비교하면 어설플지 몰라도, 강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게다가 먼 거리를 날아가는 검후의 검강과 달리, 도끼 위에 씌워진 부강이라면 막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시후가 쏘아 낸 붕악굴천이 그 뒤를 따랐고, 남궁천의 창천만해 또한 잇달아 날아갔다.
콰아아아아!!
“뛰어!”
검후의 외침에 다들 몸을 돌려 올라온 길을 뛰어 내려갔다.
놈들이 죽어 나가든 말든 확인하기보다는 거리를 벌리는 게 우선이었다.
초혼 대주라는 놈이 폭렬기공으로 강기를 사용할 정도의 고수라면, 아무리 못해도 초절정의 끝자락일 것이었다.
그 아랫놈들의 수준이 어떨지는 불 보듯 뻔했다.
처음에는 검후가 가장 앞서 달렸지만, 이내 후미로 자리를 옮겼다.
뒤를 막아 주기 위함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엎어진 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시후는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바라봤지만, 교묘하게 숨겨 둔 주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서라!”
뒤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대략 거리는 삼십여 장.
아무리 어두운 밤중이라도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였다.
당추열이 뛰는 속도를 늦추며 당가 사람 몇몇 어깨를 두들겼다.
입이 달싹이는 게 전음으로 위치를 말해 주는 듯했다.
자연스럽게 가장 후미에 다다른 뒤, 바닥에 엎어져 있는 세 사람의 목에 비수를 꽂았다.
놈들은 몸을 부르르 떨며 그대로 절명했다.
그 모습은 놈들도 똑똑히 봤다.
“놈!!”
가장 앞서 달려오던 초혼 대주가 소리를 질렀다.
그의 입가에는 피를 뿜어낸 흔적이 있었다.
내상이 있다는 뜻이지만, 씨근대며 달려오는 모습은 누가 봐도 멀쩡해 보였다.
당추열은 품에서 비수를 손가락 사이마다 모두 끼웠다.
그의 곁에 선 당가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동시에 손을 앞으로 뻗었다.
비도에 기를 싣는 건 어렵지 않았다.
허공에 검기를 쏘아내는 판국에 그건 일도 아니었다.
작지만 서늘한 빛을 뿜어내는 당가의 비도가 허공을 갈랐다.
“흥!!”
하지만, 비도에 실린 힘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놈들은 날아오는 비도를 가볍게 쳐 냈다.
비도는 그들의 속도조차 줄이지 못했다.
당추열의 양손이 품 안을 빠르게 오가며 비도를 미친 듯이 던졌다.
“이딴 걸로!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니.
비도를 던지는 정도로 못 막는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다.
열심히 비도를 날리던 당추열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손에서 기가 담기지 않은 비도가 하나 쏘아졌다.
* * *
독의 종류는 다양하다.
모든 독의 내성을 지니는 단계를 ‘만독불침’이라 부를 정도로 방대한 종류의 독이 존재한다.
물론, 모든 독이 생명을 앗아가진 않는다.
수많은 독 가운데 생명을 해치는 극독은 그리 많지 않다.
끽해야 삼백여 종.
하지만, 별 볼 일 없는 독이라 할지라도 배합에 따라 극독으로 변할 수 있었다.
당추열은 백오십 가지의 극독을 다룰 줄 알았고, 오백 가지의 배합법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당가 사람이 그만큼 알고 있는 건 아니다.
그는 구극전을 맡고 있는 만큼, 남들보다 좀 더 많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가 설치해 둔 독이 흔한 독일까?
“끄······ 끅······.”
주머니 바로 아래 있던 놈들은 그대로 독분을 뒤집어썼다.
몸에 독분이 닿은 놈들은 피독주를 입에 문 채로 짧은 신음을 흘리곤 숨을 거뒀다.
줄지어 달려오던 터라 그 숫자가 적지 않았다.
당장 쓰러져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숫자가 스물.
그리고 조금이라도 몸에 닿아 바로 운기조식에 들어간 놈들은 그 세배에 달했다.
게다가 가장 선두에 서 있던 초혼 대주는 피했지만, 그 뒤를 따르던 놈들이 대부분 쓰러졌다.
달려오는 순서로 강한 정도를 파악할 순 없지만, 경공과 무공은 어느 정도 비례하는 법이었다.
“이······ 이······.”
초혼 대주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번을 서던 놈들은 모두 처리했고 지금 여든에 가까운 인원이 쓰러졌으니, 전력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과 다름없었다.
그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홀로 남은 검후를 노려봤다.
“더 쫓아올 테면 쫓아와 봐라. 그것도 나름대로 재밌을 것 같으니 말이다.”
가벼운 도발.
하지만, 상대에겐 전혀 가볍지 않았다.
“죽여 주마!!”
초혼 대주는 개문을 사용하기 위함인지 혈을 몇 군데 두드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검후는 몸을 돌려 도망쳤다.
초혼 대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개문은 되돌릴 수 없다.
죽고 죽이겠다는 심정으로 사용했는데, 검후가 도망치면 개죽음에 불과했다.
“서라!! 남자답게 덤벼라!”
말에 틀린 부분이 있는 건 둘째치고, 서란다고 설 이유가 없었다.
검후가 개문에 관해서 모른다면 싸워 줄지도 모르지만, 시후는 이미 개문과 폭렬기공에 관해 말해 주었었다.
폭렬기공은 일정 시간만 버티면 힘이 쭉 빠지니 최대한 버티고, 개문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죽으니 그냥 냅다 도망치라 말했다.
검후 정도 경지에 다다른 인물은 승패에 연연할 이유도 없었으니, 실속을 챙기면 그만이었다.
“으아아아아!! 검후!! 검후!!”
천중구릉에 초혼 대주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경지가 경지인 지라 그의 목소리는 한 식경 가량 이어졌지만, 초절정의 경지로는 개문의 후유증을 버텨 낼 수 없었다.
연신 달아나던 검후는 자리에 멈춰서서 뒤를 돌아봤다.
시간은 자시를 지나 축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제 우리 차례인가?”
하지만, 저들은 아침을 보기 힘들 것이다.
- 14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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