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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44화 (126/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44화 역공 (2)

완연한 봄이 다가오고 있는지, 슬슬 밤이 늦게 찾아왔다.

초저녁이라 부르기엔 다소 어정쩡한 시간, 당가 내부를 가로지르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안내하는 자는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짙은 녹의를 입고 있는 것을 봐서 당가의 사람이지만, 뒤따르는 인물의 복장은 당가의 것이라 보기 어려웠다.

새하얀 백의와 허리춤에 덜렁거리는 검 한 자루.

너무나도 단출한 모습이지만, 그건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바로 검 한 자루만으로 천하를 종횡할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물론, 검후는 그런 자신감을 가지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가주실로 가는 건가?”

“예, 아무래도 휴심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 좋지 않겠습니까?”

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실로 가는 길 곳곳의 그림자 속엔 당가의 무인들이 숨어 있었다.

다만, 다소 과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아무리 당면한 현재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과도한 인원이 집중될 필요는 없었다.

이는 검후가 도움을 뿌리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포석이다.

“오셨소.”

검후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당모준은 가주실 밖에서 검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검후가 팔황의 위치에 있다고 하나, 당가의 가주라면 그에 모자람이 없었다.

하물며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당가에서 이런 대접은 아주 흔치 않았다.

실제로 소림 방장인 정진 대사가 당가를 찾았을 때도, 당모준은 가주실 문을 직접 열어 주는 것에 그쳤다는 이야기가 제법 유명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직접 초대한 손님이니 당연하지 않겠소? 자,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가주실 안으로 들어서자 검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 시선은 막 자리에 일어선 남궁천과 시후를 향해 있었다.

“안 끼이는 곳이 없구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네요.”

“어쩌다 보니라······.”

검후는 시후를 묘한 시선으로 훑어보더니 피식 웃으며 빈자리에 앉았다.

물론, 가장 상석은 당모준의 자리였다.

“구천종주도 이제 절반쯤 지나지 않았습니까?”

“형문산을 지나면 정확히 절반을 지나긴 하는데, 이미 탄력이 붙은 상태라서 이르면 한 달 내에 끝날지도 모르겠군요.”

“허허, 그 정도면 역대 최단기간 아닙니까?”

“글쎄요······. 그건 이번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검후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함인 듯 화제를 전환했다.

당모준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묻는 건, 당면한 문제를 처리한 뒤에 나눠도 충분했다.

“천중구릉이 워낙 넓어서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힘들지만, 최소 마흔은 숨어들었다고 보오.”

마흔.

당가를 노리기엔 턱없이 적은 숫자였다.

하지만, 당모준은 ‘최소’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는 건 ‘최대’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재차 말을 이었다.

“최근 사천에 들어온 자들 가운데 신원이 불명확한 자들이 제법 있었소. 여러 군상으로 위장했지만, 최근 일주일 사이 모습을 감춘 인원이 그것의 네 배에 달하오. 최대 이백에 달한다는 가정을 해야 할 것이외다.”

이백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론, 그 구성원이 삼류나 이류면 문제가 없겠지만, 당가는 독을 다룬다.

독을 대비하여 피독주(避毒珠)를 챙길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스며든 독을 다스리기 위해선 절정의 경지는 필수였다.

흑련회도 작정하고 준비를 했을 테니, 낮게 잡아도 절정의 무인 이백.

시후의 옆에 앉아 있던 남궁천의 몸이 굳어졌다.

검후 또한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최소로 가정해서 절정 수준의 고수가 이백이라······.”

손끝으로 탁자를 두들겼다.

규칙적인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당가의 기문진식과 독에 기댄다면, 못 막을 숫자는 아니다.

변수는 절정보다 윗줄의 고수.

그들의 비율에 따라 이번 싸움의 승패가 갈릴 것이다.

확인이 필요하다.

다들 입 밖으로 말은 안 꺼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당모준이 얕게 기침했다.

“크흠, 확인이 필요하지만, 행여라도 그들과 조우하면 몸을 내뺄 수 있을 정도의 고수는······.”

없진 않다.

하지만, 그만한 고수가 저쪽에도 없다고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행여라도 발목을 붙잡히게 된다면 개죽음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검후는 다르다.

붙잡으려 손을 내밀면 손이 잘려나갈 것이고, 발을 걸어 넘어트리려면 발이 부러질 것이다.

물론 검후라고 한들 그들 전부를 상대할 순 없었다.

하지만, 검후는 고개를 저었다.

“현실적으로 그 넓은 곳을 홀로 뒤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아실 텐데요?”

“남으로 내려가서 아미를 치거나 북으로 돌아서 청성을 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있을 법한 위치는 아마 이곳이 될 것이오.”

당모준은 검후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지도를 펼치며 한곳을 가리켰다.

“우리 당가의 눈이 실종된 지역도 이 근방이기도 하고, 특히나 이 주변은 나무가 자라지 않아서 시계(視界)가 좋소. 또한, 지대도 높아서 누군가 다가온다면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으니, 몰래 흩어져 포위하기에도 안성맞춤이오.”

듣다 보니 이상했다.

접근하면 무조건 들킬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검후가 인상을 찌푸리며 뭐라 말하려 했지만, 남궁천이 손가락을 튕기자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내일이 삭(朔)이군요.”

그의 말에 당모준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달이 뜨지 않는 밤이니, 눈에 불을 켜지 않은 이상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지 않겠느냐?”

“그도 그렇습니다.”

“제아무리 안력을 돋운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니, 대략 삼십 장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들키지 않겠지. 검후의 생각은 어떻소?”

검후는 찌푸린 인상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후는 등골을 타고 올라가는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한번 느껴지기 시작한 불안감이 시후의 온몸을 휘감았다.

시후는 이야기에 빠져나와 고개를 푹 숙인 뒤,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 대화는 쭉쭉 진척되었다.

당모준은 첫 번째 위치가 아닐 경우 두 번째, 세 번째의 위치까지 알려 주었다.

어떻게 접근하는 게 가장 좋을지에 관한 논의도 끝난 뒤, 출발 시각을 논할 때 시후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내일 술시 말에 출발해서······.”

“안됩니다!”

시후가 검후의 말을 자르며 나섰다.

갑작스러운 외침에 시선이 쏠렸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더니 고개를 저었다.

“내일입니다.”

“무슨 말인가?”

“달빛조차 없는 밤이라면 습격하기에 최적의 날이죠?”

다들 표정이 굳어졌다.

적들의 전력을 파악하고자는 생각에 집중한 탓에, 가장 우선시해야 할 놈들의 습격을 간과했다.

당모준이 시후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 인사를 보냈다.

“놈들이 어느 정도의 전력인지 알아내고자 하는 욕심에 내가 눈이 멀었군. 일깨워 줘서 고맙네.”

시후가 말해 주지 않았더라도, 누군가는 눈치챘을 가능성이 컸다.

물론, 검후가 떠난 뒤였다면 여간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었을 테지만.

잠잠해져 가던 가주실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내일 습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기문진식 증설 작업을 재개해야 할 것인지, 당가의 비전을 안전한 안가(安家)로 옮길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시후의 생각은 그들과 달랐다.

“여기서 거리가 어느 정도라고 했죠?”

“거리는 이야기한 적 없네만, 대략 팔십 리쯤 되네.”

충분하다.

시후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마주쳤다.

“차라리······ 오늘 밤 우리가 치는 건 어떨까요?”

* * *

하늘에 달이 떠 있긴 했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를 정도로 얇은 그믐달이었다.

그 얇은 몸뚱이는 넓은 대지를 비추기엔 한없이 부족했다.

그 드넓은 대지에 길게 줄지어 걸어가는 무리가 있었다.

“산(散).”

검후의 말에 다들 사방으로 흩어졌다.

앞에 언덕만 넘으면 제법 높다란 산이 하나 나온다.

그 산의 정상에서 누군가 내려다본다면, 줄지어 다가오는 무리를 놓칠 리 없다.

아무리 극도로 미약한 달빛이라고 한들, 무리 지어 이동하다간 눈에 띄기에 십상이었다.

각자 약속한 곳에서 지극히 천천히 움직일 것이다.

시후 또한 자신의 위치로 이동한 뒤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이거, 눈에 안 띌 수가 없네.”

낮은 구릉 지대의 한가운데에 분지가 있었지만, 그 분지 한가운데 제법 높다란 산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다.

누군가 접근한다면 눈에 띌 수밖에 없지만, 미약한 달빛에 기댄 채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놈들은 내일 있을 습격을 위해 푹 휴식을 취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물론,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엄청난 출혈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시후는 속으로 노래 다섯 곡을 부른 뒤 산으로 다가갔다.

안력을 돋아 먼 곳을 바라보자 꾸물대는 그림자가 여럿이 보였다.

물론, 의식했기에 보일 정도였기에 위에서 집중해서 바라보지 않는다면 들키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황무지를 지나 산기슭에 다다르자 앙상한 나무들이 미약하게나마 시야를 가려 줬다.

시후는 은밀히 실영보를 펼치며 산을 올랐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다.

창을 고쳐 맨 등도 축축하니 젖어 왔다.

산이 제법 높다고 한들, 주변 구릉 지대와 비교해서 높은 것이지, 그리 높지도 않았기에 순식간에 정상 부근에 다다랐다.

정상에 오른 시후는 더욱 조심히 한 걸음씩 옮겼다.

순간, 좌측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몸이 굳었다.

‘적인가?’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적이라면 확인하러 왔든지, 아니더라도 최소한 주변에 알렸을 것이다.

상대도 생각이 같았는지 시후 쪽으로 다가왔다.

‘그렇다면, 적은 아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낯선 얼굴과 익숙한 복장이 눈에 들어왔다.

당추열이라고 했던가.

종패와 같은 항렬에 있는 인물이었다.

과거 당가팔수로 활동했고, 지금은 구극전주를 맡고 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정상으로 나아갔다.

발끝으로 바닥을 차는 소리.

두 사람은 동시에 멈췄다.

소리는 앞에서 들려왔다.

그것도 제법 멀리서.

웅얼거리는 말소리도 들리는 것으로 봐서 확실히 우리 쪽은 아니었다.

조금 더 다가가자 말소리가 들렸다.

대화로 세 사람이라 짐작되었다.

“얼마나 남았지?”

“대충 이 각 정도.”

“시간 더럽게 안 가는군.”

“그보다, 왜 쓸데없이 당가를 치는 거야? 이해를 못 하겠다니깐. 어떻게 뚫으라는 건지, 원······.”

“내 말이 그 말이야. 이런 싸구려 피독주로 반 각이나 막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주변이나 잘 보고 있어. 초혼 대주에게 걸려서 뒤지기 싫으면 말이야.”

“오늘 뒤지나 내일 뒤지나, 그게 그거지 뭐.”

말관 달리 대화는 끊겼다.

당추열은 조심스럽게 바닥에 손을 짚더니 흙을 한 곱 쥐었다.

그리고 곧 손가락으로 흙을 문질렀다.

흙먼지는 좌측으로 향하다가 산 위로 올라갔다.

당추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품을 뒤지더니 시후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곤, 입으로 뭔가를 깨무는 시늉을 했다.

시후는 그의 행동을 알아채어, 품에서 피독주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달콤한 향기가 나길 바란 건 아니지만, 다소 고약한 냄새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후각은 금방 마비된다는 점이었다.

그 사이 당추열은 품에서 조그만 주머니를 꺼냈다.

얇은 수투를 낀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더니 백색 가루를 바람에 흘려보냈다.

‘용독(庸毒)이다.’

하지만, 산 정상까지의 거리가 제법 되기에 효과가 있을지는 몰랐다.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시간은 어느덧 이 각이 훌쩍 지났지만, 놈들은 교대하러 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당추열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후에게 뒤따라오라는 손짓을 보낸 후, 거의 기다시피 산을 올랐다.

곧 놈들이 있는 부근까지 다다른 당추열은 고개를 돌리더니 재차 손짓했다.

시후는 얼굴을 꽁꽁 싸맨 복면 아래로 그의 웃음이 보인 것만 같았다.

- 145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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