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34화 팔진도해법 (2)
“차라리 하오문이나 개방에 의뢰를 넣어 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오늘로 꼬박 나흘째.
제갈려는 북경에서 낙양으로 오는 내내 구시렁거렸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였기에, 시후가 입 좀 닥치라고 타박을 주지 않은 게 용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후는 제갈려에게 관심을 줄 여유가 없었다.
쌍괴가 여전히 낙양에 있었으니깐.
분명 서문주옥에게 혜아의 존재를 알렸다.
더불어 쌍괴의 존재까지도.
확인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접촉을 했을 것이니, 쌍괴는 정의맹의 그늘에 들어감이 옳았다.
설련의 앞에서 약속했으니 말이다.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했던 거짓 약속이 아니었기에 더욱 의문이었다.
“그보다, 세 분의 관계를 생각하면 하루가 멀다고 싸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데, 여전히 같이 지내고 있다니 의외로군.”
이 또한 의문이었다.
아무리 과거의 잘못은 인정하고 앞으로 다른 삶을 살 것이라고 말했지만, 해묵은 감정은 쉬이 털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돈이 없다면 모를까, 설련은 난주에서 재산을 정리하는데 며칠이 걸렸을 정도로 돈이 많았다.
이래저래 의문투성이였다.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선 당사자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게 가장 빠르기에 서둘러 말을 몰았다.
물론, 시내에서 속도를 낼 수 없으니 별반 빠르지도 않았지만, 쌍괴의 집은 선착장에서 그리 멀지도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다른 쌍괴의 집 대문 너머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시후네가 느꼈다면 반대도 마찬가지.
시후가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대문이 활짝 열렸다.
서괴가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듯한 얼굴로 반겨 주었다.
“이번 북벌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운이 좋았죠. 그보다, 사람 한 명은 안 왔어요?”
“사람이라니? 무슨 사람?”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다.
시후는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곤 천천히 입을 뗐다.
“하오문에 부탁한 거 있잖아요.”
서괴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오문에서 의뢰를 노출했거나, 그도 아니면 시후가 뒤를 캤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깐.
서괴의 날 선 반응에 시후는 급히 손을 저었다.
“오해하진 마세요. 제가 정보 제공자라서 알고 있는 거니깐.”
다소 표정이 풀어졌다.
시후는 얼른 본론으로 들어갔다.
“연락이 닿았을 텐데, 그쪽에서 아직 사람이 안 왔나요?”
벌어지는 입과 잘게 떨리는 동공.
두 가지 반응을 통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서문주옥은 아직 접근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후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순간적으로 서문주옥이 혜아의 아비라고 폭로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넋을 놓은 듯했던 서괴가 정신을 차리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었네. 수상쩍은 놈들이 주위를 맴돌긴 했지만······.”
“응?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근래 집 주위를 염탐하는 놈들이 있었네. 처음에는 하오문인가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와 허물없는 사이가 아니던가? 필시 나쁜 맘을 먹은 녀석이라 생각하고 흠씬 두들겨 쫓아 버렸네.”
시후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필시 서문주옥의 사람일 것이다.
“낙양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근래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연속으로 일어났지 뭔가? 아무래도······.”
“계속 여기에 세워 둘 건 아니죠?”
이야기가 길어질 조짐이 보여, 시후가 먼저 말을 끊었다.
그에 서괴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세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대문을 지나자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설련과 그의 아들 반고가 고개를 내밀었다.
“연 대협, 잘 지내셨습니까?”
“······ 짧은 사이에 경지가 올랐구나. 비령과 비슷하겠어.”
“소검후에 비하면 아무래도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 소협의 성취도 눈에 띄게 올랐군요. 대단합니다.”
초절정의 벽을 뛰어넘은 것도 아니지만, 자식 칭찬에 싫을 부모가 어딨겠는가.
설련은 고개를 픽 돌리며 콧방귀 뀌었으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남궁천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 시후는 서괴의 팔을 쿡쿡 찔렀다.
“두 사람은 어디 있어요?”
“날이 풀리지 않았나? 종요 선생이 오늘은 강변으로 나가 풍광을 보며 시문을 공부하겠다고 했네.”
두 사람만 보냈을 리 없으니 후괴 또한 따라갔을 것이다.
시후는 서괴의 팔을 잡아끌었다.
“앞으로 그 지켜보는 사람이 나타나면, 다짜고짜 두들겨 패지 말고 광동에서 왔냐고 물어보세요.”
“광동? 혹시, 혜아의······?”
“예, 두 번이나 두들겨 패서 쫓아 보냈으니 또 올지는 모르겠지만요.”
서괴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스쳤다.
혜아를 위해 했던 행동이 해로 돌아오게 생겼으니깐.
시후는 반쯤 넋이 나간 서괴의 팔을 재차 잡아당겼다.
“그보다 여쭤볼 게 있는데요.”
“다시 안 오면 어쩌나? 광동으로 직접 찾아가면 되겠는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자기가 부리는 사람을 두들겨 팼으니 좋게 보진 않을 텐데······.”
“아, 걱정하지 마세요. 삼세판이라는 말도 있으니 한 번은 더 올 거예요.”
“확신하는가? 그보다 왜 본인이 직접 오지 않고?”
서괴는 물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눈빛을 보냈다.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고 했다.
어차피 서문주옥이 보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알게 될 사실이니 시후는 솔직히 말했다.
“가정이 있어요.”
이미 어느 정도 짐작은 했는지, 서괴는 입술을 꽉 깨물 뿐 화를 내진 않았다.
“제 핏줄도 모른 척하겠다던가?”
“그건 아니고 금전적으로 지원은 해 주겠다고 하니······.”
“그게 할 말······.”
서괴가 언성을 높이다 말고, 다른 네 사람을 의식한 것인지 입을 닫았다.
이번에는 그가 시후의 팔을 잡아당겨 방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곧장 방 전체에 기막을 펼쳐, 소리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았다.
“누군가? 어차피 사람을 대신 보낸다고 하여도, 내 뒤쫓아 누군지 알아낼 것이니 알려 주게.”
“으음······.”
시후는 난색을 보이며 고민하는 척했다.
너무 쉽게 알려 줄 순 없었다.
시후 또한 부탁할 게 있었으니깐.
“마음 같아선 혜아의 아비라는 작자를 두들겨 패고 싶었지만, 자네의 얼굴을 봐서 그러진 않겠네. 다만, 훗날 혜아가 원한다면 먼발치에서 얼굴이라도 보여 주겠다는 게 큰 욕심은 아니지 않은가?”
“꼭 알아야겠습니까?”
“어차피 혜아가 보기 싫어한다면 알려 주지도 않을 걸세.”
“그럼 절대 발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말씀드리죠.”
“내 목숨을 걸고 약조하겠네.”
이미 기막이 펼쳐져 있지만, 시후는 상체를 앞으로 하여 낮게 속삭였다.
“서문주옥. 현 서문세가의 가주이며, 그의 배필은 천룡 상단의 하나뿐인 자식이죠.”
시후가 천룡 상단을 거론 한 건, 혹여라도 건드릴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서괴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 보답은 반드시 하겠네.”
“바로 갚으시는 건 어때요?”
“······ 무슨 말인가?”
“예전에 신의를 찾으러 사천에 간 적도 있죠?”
시후의 질문에 서괴는 피식 웃었다.
“사천만 갔겠는가. 중원 천지에 안 간 곳이 없을 지경이지.”
“혹시, 사천에서 무슨 이상한 일 겪은 적 없어요?”
“이상한 일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는가?”
“뭐, 사천의 지형이 워낙 험하니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절진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요.”
서괴는 시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알고 있네. 내 그곳에 신의가 숨어 있는 줄 알고 열흘을 기다렸으니, 기억을 못 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숨겨진 임무 ‘사라진 팔진도’가 발생합니다]
* * *
“덥다.”
사월 중순을 지나고 있는 시점에 덥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남쪽에 자리 잡은 사천은 지독하게 높은 습도를 자랑하여 계절 감각을 무색하게 했다.
“이런 데 사는 사람들은 여름을 어떻게 보낼까?”
“말조심하는 게 좋겠구나. 이런 데라고 말하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떻겠느냐?”
남궁천의 타박에 제갈려는 입을 닫았다.
곧 당가로 갈 것인데, 언행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으니깐.
세 사람이 사천당가를 찾는 이유는 간단했다.
말을 맡기기 위해서.
가야 할 곳은 천하에 둘도 없는 험지로, 말을 타고 가는 게 아니라 업고 가야 할 수준이니깐.
세 사람은 말을 몰아 성도 북쪽에 자리 잡은 당가로 향했다.
당가를 보고 느낀 점은 간단했다.
‘높고 크다.’
기본적으로, 당가의 비전은 쉬이 외부로 보여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담장은 높아야 했다.
좁디좁은 곳에는 독을 보관할 수 없었고, 암기 수련 또한 드넓은 땅은 필수였다.
섣불리 문을 두드리기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시후는 거리낌 없이 당가 대문으로 향했다.
“멈추십시오.”
녹의를 입은 삼십 대 초반의 사내가 시후를 가로막았다.
매서운 눈빛으로 일행의 위아래를 훑어보다가, 남궁천의 검병에 달린 수실을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궁세가?”
“남궁천이라 합니다.”
“안휘에서 예까지 무슨 일이오?”
남궁천이 앞으로 나서자 경계 어린 시선은 사라졌지만, 남궁세가와 당가의 교류가 그리 두터운 편은 아닌지라 문을 지키는 위사의 눈엔 의문이 가득했다.
“대설산을 오르려 하는데 타고 온 말을 위탁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것저것 준비하면 오늘 하루가 다 지날 듯하여······.”
남궁천이 멋쩍은 듯 말끝을 흐리자 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사는 일행에게 잠시 기다리라 말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반 각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위사는 한 사람을 대동한 채 나타났다.
“차 소협 아니시오?”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시후는 열심히 머릿속을 뒤진 결과, 정의맹에서 보았던 얼굴이란 걸 깨달았다.
문제는 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당패철이오.”
“아, 죄송합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소개한 적이 없으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지 않겠소? 자, 그보다 어서 들어오시오. 하루가 아니라 일 년이라도 편히 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소이다.”
예상외의 환대에 세 사람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위사에게 말 고삐를 넘긴 뒤, 패철의 뒤를 따랐다.
“우선 휴심각(休心閣)은 정리가 조금 필요하니 당가를 둘러보지 않겠소?”
“아, 예.”
제안하는데 거부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지라, 세 사람은 당패철의 뒤를 졸졸 쫓아다녀야 했다.
“이곳은 구극전(究極殿)이오. 우리 당가에서 독을 연구하는 곳이오. 그 옆에 있는 전전관(展轉關)은 만들어진 독을 시험하는 곳이오. 이 두 곳은 당가 내에서도 직계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니, 행여라도 발을 디뎌선 곤란한 곳이외다. 물론, 차 소협이 보고자 한다면 안 보여 줄 것도 없소.”
당패철의 눈빛에는 고마움이 가득했다.
시후는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신의.
바로 그 덕분이었다.
당가와 신의의 사이는 지극히 좋지 않았지만, 시후가 기초 금창약의 제조를 부탁하면서 관계는 급속도로 회복되었다.
게다가 신의는 남궁천 다음으로 호감도가 높았다.
그런 그가 소림에 머무르던 당패철에게 시후의 이야기를 오죽했겠는가.
당패철이 듣기에 시후는 당가의 은인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당가는 원한은 몇 배로 갚아 주지만, 은혜 또한 절대 잊는 법이 없었다.
“덕분에 편히 쉬겠네?”
제갈려가 팔을 쿡쿡 찌르며 히죽거렸다.
하지만, 시후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웃을 수 없었다.
이유 없는 호의는 없으니깐.
그 불안감은 휴심각에 도착하자 현실로 다가왔다.
“백부님.”
당패철은 당가의 직계였다.
그런 그가 백부라 부르는 자는 뻔했다.
당가의 수장.
당모준이 휴심각에서 시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 13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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