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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31화 (113/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31화 조우 (3)

시후는 둘러대기 가장 좋은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진실 속에 거짓을 숨기는 것.

시후는 구주신협이 겪은 비사를 각색해서 말했다.

그의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한 것부터 시작해서, 관의 외면과 숙부라 부르던 자의 배신까지.

물론, 이야기 속에서 시후는 철저한 방관자였다.

“제가 소식을 들었을 때는 시간이 제법 많이 흐른 터라······. 게다가 조금 전에도 보셨다시피, 얼굴도 잘 모르는 사이라서······ 제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긴, 누구보다 안타까운 사람은 차 아우일 테지. 가깝지 않다고 하지만, 일면식이라도 있던 자가 저리 변했으니······.”

한계에 가까운 호감도 덕분에 남궁천은 급조한 변명조차 좋은 방향으로 해석했다.

시후는 곧바로 종유와 연위랑에게 다가가, 짧게나마 사정을 설명하며 사과했다.

“관에서 외면했다니······. 필시 뒷돈을 받은 탐관오리의 소행일 테지. 그 사건에 관해서 알려 준다면, 내 보고하여 그자를 일벌백계할 수 있도록 하겠네. 물론, 이 일을 먼저 처리하는 게 우선이겠지.”

종유은 미간을 찌푸리며 전방을 주시했다.

놈들은 생각보다 빨랐다.

아니, 이렇게 빠르면 안 됐다.

부상자를 두고 온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빨리 쫓아올 리가 없었으니깐.

“재차 돌격하는 건 몰살을 각오해야 하니 권하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싸우지 않고서 저들의 발을 묶어 둘 방법이 없으니, 차라리 길목을 틀어막는 게 어떻습니까?”

“오르는 길이 한두 곳이 아니오.”

“어차피 이 근방에서 오르는 길만 틀어막고 시간을 끌면 될 겁니다. 놈들이 다른 길로 돌아가려 한다면 그사이 본대가 뒤를 잡을 테니까요. 천응단에서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면, 필시 해가 뜨자마자 날려 보냈을 테니, 지금 본대와의 거리는 대략 사십 리 안쪽일 것입니다.”

남궁천은 천응단의 매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십 리.

대흥안령산맥까지는 그 절반도 남지 않았다.

넉넉잡아 이십 리 차이라고 가정한다면, 반 시진 거리.

게다가 남궁천의 말대로 저 멀리 돌아갈 게 아니라면, 이 근방에서 대흥안령산맥을 오를 수 있는 길은 단 두 곳.

“문제는 칠천으로 두 곳을 막아야 한다는 거군.”

종유는 고심하고 또 고심했지만, 답이 보이지 않는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저들이 부상자를 대부분 두고 왔다고 한들, 병력은 아직 일만이 넘을 것이다.

드높은 성곽에 기댄다면 모를까, 삼천오백으로 일만을 막으라는 건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시후는 대흥안령산맥의 두 길을 바라보다가 남궁천의 어깨를 건드렸다.

“좌측의 길이 더 좁아 보이죠?”

“음, 아무래도 그래 보이네. 그런데 그건 왜 묻나?”

“둘이서 나란히 서면, 충분히 틀어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둘이서 일만을 상대한다.

시후의 얼토당토않은 물음에도 남궁천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고개를 저었다.

“그 흑령이라는 자가 문제일세.”

“끼어들지 못할 방책이 있다면요?”

“가능할지도 모르지.”

“그럼 둘이서 해 보죠.”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이려 했지만, 그보다도 먼저 종유가 대경실색하며 끼어들었다.

“절대 허락할 수 없소. 두 사람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만이 넘는 병력을 상대할 수 있겠소?”

“길의 폭을 보면, 만이 아니라 끽해야 열 남짓이죠. 완전히 둘러싸인다고 해도 공격할 수 있는 숫자는 여섯에 불과할 것입니다.”

“불가하오! 두 사람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두 사람에게 모든 걸 맡길 순······.”

“모든 걸 맡긴다니요? 당연히 뒤를 쳐 줘야죠.”

시후의 퉁명스러운 말에 종유는 순간적으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종유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입술을 움직였지만, 그보다 시후의 말이 반 박자 정도 빨랐다.

“일단 한쪽을 틀어막아 주세요. 저쪽도 미치지 않고서야 그쪽을 뚫으려 하진 않겠죠. 일단, 일차적으로 저지선을 형성할 텐데······.”

시후의 설명에 종유는 주기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딱히 다른 대안은 없었다.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으니깐.

결국, 종유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가장 큰 변수는 자네가 말한 그 방책이 성공하느냐 안 되느냐겠군.”

“기도해 주시죠.”

마치 운에 맡긴다는 어조였지만, 시후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어려 있었다.

* * *

시후는 놈들이 산맥 초입에 다다르자 남궁천을 돌아봤다.

“운기조식하세요!”

남궁천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시후는 베어낸 나무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계속해서 아래를 주시했다.

놈들은 초입에 잠시 멈춰 섰다.

“그래, 고민하고, 고민해라. 제발 오래 좀 고민해라.”

한쪽은 칠천의 기병.

또 다른 한쪽은 단 두 사람.

비록 중간중간에 나무를 쌓아 올렸다고 하지만, 칠천과 둘로 나뉘어 막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일 것이다.

그리고 시후는 중턱에 있었기에 저 멀리 뿌옇게 일어나는 먼지구름이 보였다.

본대가 오고 있다.

도착 예상 시간은 약 한 식경.

생각보다 더 빠르다.

“제발 더······ 젠장!”

시후는 짧게 욕설을 내뱉으며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아무리 길을 틀어막았다고 한들, 칠천 명을 상대하는 것보다 두 명을 상대하는 게 쉬울 거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빨리!’

목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저들도 올라오면서 저 멀리서 피어나는 먼지구름을 봤을 테니, 조급하지 않을 수 없겠지.

일원신공의 내공 회복속도는 상상을 초월했기에 남궁천보다 늦게 앉았음에도 시후는 먼저 일어날 수 있었다.

시후는 마지막으로 쌓아 올린 통나무 더미 위에 우뚝 서서 그들을 기다렸다.

“바로 밑까지 왔군.”

어느새 남궁천 또한 운기조식을 끝냈는지, 시후의 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들리는 소리는 바로 아래였다.

손바닥에 조금씩 땀이 배어 나왔다.

바지에 쓱 문질러 닦는 사이, 길 아래서 머리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잘 부탁드릴게요. 진짜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튀는 거 알죠?”

“물론이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길을 비키면 놈들은 추격하지 않을 테니, 내공이고 체력이고 바닥을 보인다면 바로 달아나기로 약속했다.

시후는 통나무 더미에서 내려와 바닥에 놔뒀던 통나무 하나를 발로 툭 건드렸다.

경사가 완만하다고 한들, 동쪽과 비교했을 때 완만한 것이다.

처음에는 지극히 느렸지만, 통나무는 땅에 통통 튀기면서 그 속도를 붙였다.

“피해라!!”

개소리다.

길을 빼곡히 메운 놈들이 피하면 어디로 피할 것인가.

당연히 서로를 밀치다가 통나무에 부닥쳐 팔다리가 부러진 놈들이 속출했다.

“한 개 더 간다!”

“이쪽도 간다!”

시후와 남궁천은 번갈아 가며 통나무를 굴렸다.

하지만, 크게 재미를 보진 못했다.

“같잖은 짓을 하는군.”

구주신협이 앞으로 나서며 통나무를 베어 넘겼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쿠빌라이 부족의 정예들이 뒤따랐다.

“대놓고 개입하는군.”

“그럴 수밖에 없으니깐. 그보다······ 뭔가를 아는 것처럼 말하는군.”

“알지. 네가 흑련회 소속이라는 것과 흑련회에서 쿠빌라이 아들을 차기 칸으로 추대할 수 있도록 판을 짜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구주신협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도록 검병에 손을 얹은 채 시후를 바라봤다.

그 상태로 한 걸음씩 다가왔다.

“흥미롭군. 흑련회의 존재를 아는 자가 군에 있다니. 아, 일전에 자금성에서 일이 들통났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게 나야.”

“멍청이인 줄 알았는데, 멍청이가 아니었군?”

구주신협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되려 살기를 억누르는 듯한 시선에 시후는 등골이 오싹오싹해졌다.

“계속 멍청이라고 그러는데, 원수의 밑으로 기어들어 간 네가 멍청이가 아닐까?”

구주신협의 입가에 미소가 지워졌다고 생각하던 찰나.

그의 검이 휘둘러졌다.

쾅!!!

시후는 본래 서 있던 곳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예상하였기에 무난히 받아넘길 수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구주신협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웠지만, 그와 반대로 눈빛은 용암보다 뜨거웠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시후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어깨를 으쓱거렸다.

“멍청인데?”

“피를 봐야 입을 열 녀석이군.”

구주신협의 몸에서 내공이 뒤섞인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시후는 그 와중에도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되려 창을 슬쩍 아래로 내리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제아무리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해도 절대 입을 열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건, 너도 알지 않나?”

급격히 떨리는 동공.

구주신협의 눈은 초점을 잃은 듯 요동쳤다.

시후는 그의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보며 확신했다.

상처를 제대로 헤집어 놨다고.

하지만, 시후의 목적은 구주신협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지, 상처를 건드려 미쳐 날뛰게 하는 게 아니었다.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을 거 같은데, 놈들의 뒤를 닦아 줄 생각이 아니라면 한쪽에 빠져 있어. 우리를 도우면 더 좋고.”

구주신협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곧 앞뒤를 번갈아 바라봤다.

시후가 선택지를 던져줬으니 어느 한쪽이든 고를 것이다.

쿠빌라이 부족의 정예들의 눈빛이 거칠어졌다.

구주신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패인가.

시후의 표정이 굳어졌다.

“배가 아프군.”

구주신협은 배를 부여잡으며 길을 벗어났다.

시후는 웃었다.

애초에 이쪽을 도와주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빠져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자, 뒷간에 갈 사람은 더 없지?”

시후는 저 아래 뿌옇게 피어오르는 먼지구름을 보며 물었다.

버텨야 할 시간은 일각이 조금 넘었다.

하지만 구주신협이 없는 이상, 일각은커녕 한 식경이라도 충분히 버틸 자신이 있었다.

그와 반대로, 놈들은 뚫어낼 자신이 없는 듯 주춤거렸다.

그러나 물러날 수도 없다.

“쳐라! 놈들은 단 두 놈이다!”

“저 친구, 숫자는 잘 세는데요?”

남궁천은 시후의 태연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검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시후도 장난은 집어치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내공을 끌어 올렸다.

실영보를 이용해 땅에 바짝 붙은 채 앞으로 내달렸다.

놈들은 말 위에서 황급히 검을 질렀지만, 바닥에 붙어있다시피 한 시후에게 닿을 순 없었다.

시후는 안쪽으로 쭉 파고든 뒤, 자운유성창으로 땅을 찍었다.

“교천영신!”

땅을 찍으면서 얻은 추진력과 교천영신이 더해지자, 시후는 무려 오장 높이까지 치솟았다.

그 순간.

시후는 자운유성창을 어깨 뒤로 쫙 젖혔다.

“월광침애!!”

공중에서 날아가는 단 하나의 금빛 선.

놈들은 좌우로 갈라지며 피하려 했지만, 길 빼곡히 자리한 탓에 피할 곳은 없었다.

그 결과는 참혹한 죽음으로 이어졌다.

가장 처참한 자는 몸이 반으로 쪼개졌고, 그나마 나은 자들은 팔다리가 날아갔다.

놈들이 정신을 차릴 무렵, 시후가 땅에 내려섰다.

지옥도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시후는 손가락을 뻗으며 누군가를 가리키곤 웃었다.

그 손끝이 향하는 건 쿠빌라이의 아들.

“쟤만 넘겨주면 끝인 건 알지? 피 더 보기 싫으면 넘겨.”

혹시 마음을 꺾을 수 있을까 싶어 큰 공격을 선보였지만, 아무리 일수에 수십이 죽고 다쳤다고 한들, 일족의 구심점을 넘겨줄 리는 만무했다.

오히려 놈들은 쿠빌라이의 아들을 중심으로 더욱 촘촘히 뭉쳤다.

시후는 입맛을 다시며 뒤로 훌쩍 물러나서 남궁천과 나란히 섰다.

“싫으면 뚫어 보던가.”

시후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먼지구름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 132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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