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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30화 (112/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30화 조우 (2)

삐이이이익!!

높게 찢어지는 소리.

며칠간 들어서 이젠 제법 익숙해진 호각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이전이라면 이쯤에서 말머리를 돌렸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놈들의 심장을 꿰뚫어라!”

쩌렁쩌렁한 종유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더욱 속도를 높였다.

놈들은 기민하게 반응했지만, 이전과 달리 후퇴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놈들의 대처보다 한층 빨랐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맨눈으로도 막 게르에서 뛰쳐나온 놈의 얼굴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피곤이 잔뜩 묻어 있었지만, 아직 앳된 얼굴은 아직 약관을 넘기지도 못한 듯 보였다.

하지만, 전쟁에 나이는 상관이 없다.

죽이고 죽일 뿐.

“방패! 세울 것!!”

누군가 목청이 터질 듯 외쳤지만, 아쉽게도 준비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가장 최전방에 있는 시후와의 거리는 고작 삼십 장.

숨 한 번 내쉬면 좁혀질 거리였다.

가장 최전방에 있는 시후는 자운유성창을 뒤로 젖힌 뒤, 짧은 숨을 토해냄과 동시에 좌에서 우로 힘껏 그었다.

“차암월!!!”

금빛 섬광이 그려졌다.

단 일수.

콰콰광!!

비명은 없었다.

휩쓸린 놈들은 단말마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몸이 조각났으니깐.

그 숫자가 수십에 달했다.

시후는 재차 창을 끌어당겼다.

참월에 휩쓸리지 않은 녀석들은 아연실색하며 좌우로 찢어졌다.

기병들의 쐐기골형 돌격은 최전방에서 이끌어 주는 머리의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

그 말을 달리하면······.

“멈추지 말고 달려라! 놈들은 그대로 관통할 것이다!”

막지 못한 이상, 놈들은 쓸려 갈 일만 남았다는 것이었다.

사방에서 단말마 비명과 함께 피바람이 흩날렸다.

“좋네. 죽기 딱 좋아.”

시후가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 중얼거렸다.

조금 전 일격에 소모한 내공은 무려 절반.

만약 동이 튼 상태였다면 시후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남궁천은 시후를 힐끔 바라보더니 말의 옆구리를 걷어차며 앞으로 나섰다.

“누가 앞을 가로막는가!”

이미 시후가 사기를 끌어 올려 둔 마당에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남궁세가의 무공 또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주는 것을 중시했으니깐.

한 번의 휘두름에 하나의 목숨을 앗아 가며 무리를 뚫어냈다.

남궁천이 선두에 서자, 시후는 한결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곳곳에 지어진 게르 때문에 돌격 속도가 절반은커녕 그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게다가 놈들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것인지 에워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뚫어내기에 힘이 부족한 건 아니기에 더 헤집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목표한 바를 이룬다면 퇴각은 고민할 가치도 없을 것이었다.

“좌측! 사백 보!”

종유의 목소리에 시후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막 동이 트는 시점이기에 정확히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굳이 얼굴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오백이 훌쩍 넘는 인원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데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으니깐.

“쿠빌라이의 아들이 저기 있다!”

시후는 눈을 번뜩이며 말 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앞을 가로막고 있는 놈들은 쿠빌라이 부족의 정예 중의 정예.

창을 휘두르는 시늉만 해도 좌우로 물러나던 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니, 그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였다.

놈들은 뒤꿈치 뒤쪽으로 선을 그리며 웃었다.

죽어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각오.

그에 시후는 씩 웃으며 창을 앞으로 뻗었다.

“월광귀곡! 파월아!”

최초 돌파 시 날렸던 참월처럼 내공을 쏟아붓진 못했다.

저들과 달리 시후는 퇴각을 염두에 둬야 했으니깐.

하지만, 현격한 격차로 인해 가볍게 날린 공격도 그들에겐 위협적으로 변했다.

일수일살(一手一殺).

시후가 손을 한 번 휘두르면, 목이 하나씩 달아났다.

문제는 시후 혼자만 막아서 될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남궁천도 있고 그 뒤를 따른 기병도 있다.

“흑령(黑靈)!! 도와주시오!”

지학을 지나긴 했을까 싶을 정도로 앳된 목소리.

하지만, 시후가 관심을 기울인 건 목소리가 아니라 ‘흑령’이라는 두 글자였다.

아니나 다를까, 흑련회에서 쿠빌라이의 아들에게 접촉했다.

아마도 이번 북방 토벌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놓쳤을 공산이 다분했다.

그랬다면 쿠빌라이의 아들은 흑련회의 도움을 받아 뿔뿔이 흩어진 북원을 하나로 규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일어날 수도 있었던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다.

그를 죽여 가능성을 없앨 테니까.

시후는 흑령을 찾기 위해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저놈인가? 뒤에 슬그머니 접근하는 저 녀석도 의심스러운데?’

의심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수상하지 않은 녀석이 없었다.

이놈이 흑령 같고, 저놈도 흑령 같았다.

시후는 고민하는 대신 무작정 앞으로 뚫었다.

어차피 쿠빌라이의 아들을 죽이면 흑련회는 북원에 손을 대기 힘들어지니깐.

창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거리가 훅훅 좁혀졌다.

덩달아 쿠빌라이 아들의 얼굴도 새하얗게 질려갔다.

“흑령! 흑령!! 돕겠소!! 칸의 이름을 걸고······.”

울먹임이 뒤섞인 다급한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 상대는 게르 뒤편에서 나타났다.

시후는 그의 몰골을 보곤 피식 웃었다.

“죽립을 쓰는 놈들치고, 제대로 된 놈은 못 봤지.”

“차 아우, 검후께서도 죽립을 즐겨 쓰네만······.”

“물론, 전부 다 그렇다는 건 아니죠. 대다수가 그렇다는 거죠. 검후 같은 분은 극소수잖아요?”

시후는 혹시라도 검후의 귀에 말이 들어갈까 싶어 급히 변명했다.

그 어설픈 변명에 남궁천은 피식 웃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고 해야 할 일은 남아 있었으니깐.

시후는 남궁천과 눈을 마주친 뒤 턱으로 죽립인을 가리켰다.

“최소한 절정인 것 같은데 좀 맡아 주세요.”

“차라리 내가······.”

“내공이 달릴 거 같아서 그래요. 제가 아까 많이 썼잖아요.”

남궁천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후가 고집 피우는 이유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쿠빌라이의 아들은 아직 성인이 아니었다.

시후는 남궁천의 성정이 누구보다 여림을 안다.

쿠빌라이의 아들을 벨 수는 있겠지만, 그로 인해서 몇 날 며칠을 괴로워할 것이다.

시후가 말을 슬금슬금 옆으로 몰았다.

남궁천이 흑령을 붙들고 늘어질 때, 단번에 쿠빌라이 아들의 목을 날릴 생각이었다.

흑령 또한 시후의 의도를 읽은 듯, 몸을 시후가 있는 쪽으로 돌렸다.

그 순간, 남궁천이 흑령의 뒤를 점했다.

“천이 형님, 부탁······.”

흑령이 시후를 향해 죽립을 집어 던졌다.

단순히 시선 끌기에 불과한 무의미한 짓이었다.

시후가 죽립을 가볍게 잘랐다.

그 사이, 남궁천은 흑령이 한눈을 판 대가로 선공을 쥐었다.

가장 즐겨 쓰는 창천일로가 흑령의 심장을 노렸다.

그에 대응하는 흑령의 대처는 훌륭했다.

좌수로 장법을 펼쳐 남궁천의 검면을 때림과 동시에 몸을 비틀어 공격을 흘려보냈다.

그리곤 곧장 몸을 돌리며, 우수로 허리춤에 달린 검을 뽑아내곤 몸을 돌리며 막는 것과 동시에 휘둘렀다.

검이 튕겨 나간 반대 방향으로 들어오는 공격.

남궁천은 급히 검을 끌어당김과 동시에 천뢰지(天雷指)를 날려 흑령의 검면을 맞췄다.

똑같은 방식의 대응에 흑령의 입매가 굳어졌다.

따지고 보면 손해였다.

장법과 지법 중 어느 쪽이 내공 소모가 심한지는 불 보듯 뻔하니까.

남궁천은 다급한 와중에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남궁인가? 남궁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창천일로를 알아본 것인가? 아니면 천뢰지?”

“둘 다.”

흑령의 대답에 남궁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하게 대답했으니 알려 줘야지. 내 아우를 따라왔다.”

“그대의 아우라면 저 멍청이를 말하는 건가?”

다섯 살짜리 어린애도 안 넘어올 도발이었다.

남궁천은 피식 웃으며, 흑령을 향해 검을 겨눈 채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급한 쪽은 흑령이니깐.

하지만, 흑령은 도리어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있었다.

남궁천은 무슨 수작인지 싶어 유심히 관찰했다.

“허세군. 어차피 네가 지키려는······.”

남궁천을 말을 이어가다 말고 낯빛을 굳혔다.

어느 순간부터 시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깐.

남궁천은 신경을 흑령에게 곤두세운 채로 고개를 돌렸다.

“차 아우!”

그의 우려와 달리 시후는 멀쩡했다.

하지만, 멀쩡하지 않았다.

입을 반쯤 벌린 채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광경은 결코 정상이 아니었으니깐.

“차 아우!!”

이번에는 내공을 실어 외쳤다.

시후의 눈에 미약하게 빛이 돌았다.

“어서!”

남궁천이 재차 소리치자 시후의 눈빛이 돌아왔다.

급히 자운유성창을 움켜쥐며 달려드는 순간.

뿌우우우우! 뿌우우우우!

퇴각 신호.

뒤를 돌아보자, 놈들은 뚫렸던 외각을 메우며 차근차근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다.

서른 걸음.

딱 그 거리만 뚫어낸다면 목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빠져나오지는 못할 것이다.

죽음을 도외시할 게 아니라면 물러나야 했다.

시후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말 머리를 돌렸다.

“막아라! 붙들고 늘어져라!”

곱게 길을 터줄 리 만무했다.

안으로 파고든 이상, 놈들에겐 절호의 기회일 것이 분명했다.

“파월아! 폐월암천! 월광일주!”

시후는 길을 뚫기 위해 내공을 아끼지 않았다.

실패한 이상 도주만이 살길이었으니깐.

막으려는 자와 뚫으려는 자.

치열하게 이어진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 승자는 창이었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려라!!”

종유의 명령에 다들 미친 듯이 말을 몰았다.

시후는 그 와중에도 마음의 짐을 덜어내기 위해, 놈들이 화살을 쏘지 못하게 뒤에 남아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놈들도 그리 오래 쫓을 생각은 없는지 금방 되돌아갔다.

종유는 더 멀리 달아나는 대신 경계병을 세운 뒤, 부상이 심각한 병사들의 응급처치를 지시했다.

등에 화살이 박혀서 피거품을 물고 몸 어딘가가 허전한 이들이 즐비했다.

종유는 그 한가운데 서서 피가 덕지덕지 묻은 손으로 담뱃잎을 말아 피웠다.

연위랑은 종유가 담뱃잎을 다 태울 때쯤 곁으로 다가왔다.

“실종은 사망으로 합산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사망 326명 중상 22명 경상 762명입니다.”

“중상자 중에 사망자로 들어가지 않을 이는 몇 명이나 있는가?”

“다섯입니다.”

나머지 열일곱은 곧 죽을 목숨이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종유는 긴 침묵을 이어 가다가 담뱃잎을 바닥에 던졌다.

“혹, 원하는 자가 있거든 고통을 덜어 주게.”

연위랑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종유는 그런 연위랑과 숨을 껄떡이는 병사들을 번갈아 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차 천호장이 대화를 나눌 만큼 정신을 차리거든 내게 보내게.”

시후는 상황이 종료되자마자 다시 넋을 놓고 있었다.

종유도 연위랑도 묻고 싶은 게 많았을 테지만, 남궁천은 시간을 조금 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덕분에 시후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하······. 저 때문에 계획이 엉망이 됐네요.”

시후가 긴 한숨을 토해내며 입을 열자 남궁천이 어깨를 토닥이며 곁에 앉았다.

“아닐세. 애초에 성공 확률을 낮게 잡지 않았나? 게다가······ 그 흑령이라는 자가 튀어나온 것도 변수였지.”

남궁천은 조심스럽게 흑령을 거론했다.

당연하게도 시후의 표정을 굳히며 다시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 반응에 남궁천은 아직 혼자만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건지, 일어나려 엉덩이를 뗐다.

하지만, 시후는 그의 소매를 잡아당겨 자리에 앉혔다.

“사실 그 흑령이라는 사람······ 아는 사람이에요.”

“음······. 그런데 그자는 차 아우를 모르는 눈치로 보였는데, 혹시 내가 잘못 본 건가?”

남궁천의 물음에 시후는 실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밖에.

흑령은 시후를 모른다.

아니, 구주신협은 시후를 모른다.

- 131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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