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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14화 (96/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14화 북풍이 불어오는 곳 (1)

남궁미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아니, 많이 쓴다기보다는 정신을 반쯤 쏟아부을 정도로 주변 시선에 민감하다.

하물며 시후가 보고 있다면 그 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미친 듯이 달리는 말 위에서 체온을 보전키 위해선, 철저하게 몸을 가릴 필요가 있었다.

덕분에 남궁미는 북방의 여진족과 흡사한 옷차림을 하게 되었다.

제갈려 또한 그에 뒤처지지 않았다.

광동에선 눈을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하남은 관도조차 눈에 뒤덮여 있었다.

덕분에 말이 달리는 속도는 영 더뎠다.

“아, 보인다!”

남궁미의 외침에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하얗게 뒤덮인 관도 끝으로 정주가 보이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기 전에 다다르기 위해 조금 더 속도를 끌어올렸다.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몸을 숨기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정주에 들어섰다.

“정주에 왔으면 거기에 가야지.”

남궁천이 신이 난 얼굴로 앞장섰다.

눈에 익은 거리와 건물들을 지나자, 시후에겐 그다지 좋지 않은 추억이 담긴 가게가 나타났다.

시후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제갈려가 큭큭 대며 웃었다.

이유를 모르는 남궁 남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 고삐를 넘긴 뒤 들어간 일미각은 저녁을 먹긴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붐볐다.

네 사람은 점소이를 따라 가장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야 했다.

“삼 공자님, 자리가 이곳밖에 없어서 죄송합니다.”

“자리가 있는 게 어딘가.”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두 다섯 접시와 동파육, 마파두부, 추천 요리 한 접시씩.”

남궁천이 얼마나 자주 왔으면 점소이가 기억을 할까.

하지만, 짐작은 틀렸다.

점소이는 연신 입구로 눈을 돌리는 시후를 보곤 빙긋 웃었다.

“전 장로님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며칠 전 북경에 가셨거든요.”

점소이의 말에 시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전여린을 장로라고 부르는 걸 보니 하오문도가 분명했다.

“어? 정주에 없어요?”

“문주님께서 부르셔서 잠시 올라가셨습니다.”

“둘을 내버려 두고?”

“다른 분이 돌봐 주고 계십니다.”

시후의 표정이 한결 밝아지자, 점소이는 허리를 꾸벅 숙이며 자리를 떴다.

제갈려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이유를 모르는 남궁 남매는 무슨 이야긴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이걸 설명하자면 홍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말하기 곤란했다.

말할 수 없었다.

남궁미와 열심히 엮어 주려는 남궁천을 배신하는 행동이고, 남궁미의 질투심을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이니깐.

그렇기에 시후는 대충 둘러댔다.

“아, 그냥 하오문의 장로 한 분을 뵈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안 계시다네요.”

“아쉽다는 사람의 표정이 왜 이리도 밝을까?”

“가끔 얼굴 근육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법이니깐.”

“퍽이나.”

제갈려 또한 자세한 내막은 모르기에 적당히 딴지를 거는 것으로 끝맺었다.

남궁천은 금세 관심을 거뒀지만, 남궁미는 집요함이 느껴질 정도로 빤히 바라봤다.

“그보다 왜 부르는 걸까?”

“상을 내리려고?”

“미리 받았잖아?”

“아, 그도 그렇네. 그럼 또 뭔가 시키려나?”

“그럼 교지로 전했겠지. 광동성에서 북경까지 거리가 얼만데 부르겠어?”

화제 전환에 성공했다.

남궁미 또한 이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지 귀를 쫑긋거렸다.

“적룡 금 패를 반납하라고 부르는 걸 수도 있지 않은가?”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실 그럴 가능성은 작았다.

아직 ‘준동’이 끝나지도 않았으니깐.

짧은 잡담을 나누는 사이, 만두가 나왔다.

순간적으로, 남궁미를 제외한 세 사람의 눈이 번뜩이며 각자의 접시를 끌어당겼다.

남궁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한입 베어 물자 똑같이 행동했다.

음식이 나올수록 젓가락질이 점차 빨라졌다.

“북경으로 가는 길에 미미객잔에도 들리자.”

“살짝 돌아가야 하잖아? 그럼 날짜가 애매할 거 같은데?”

“하루 정도 늦으면 어때? 잘 생각해 봐. 창주를 지나면서, 미미객잔을 들리지 않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제갈려의 말에 시후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태도에 남궁천이 반응을 보였다.

“차 아우, 거기가 어딘데 그러나?”

“아, 조금 특이한 객잔인데, 설명해 드리자면······ 대놓고 숨어 있는 맛집?”

시후는 일전에 제갈려가 했던 말을 그대로 써먹었다.

수수께끼와 같은 대답에 남궁천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아, 젠장.”

시후가 입구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 떠났다더니, 정말 북경 땅만 밟고 돌아왔나 보다.

전여린은 시후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휙 돌리곤, 곧 성큼성큼 다가왔다.

“매번 여기서 보는 거 같은데?”

“매번 여기로 오시니깐 그렇죠.”

“뭐, 틀린 말은 아니네.”

다소 퉁명스러운 대꾸에도 여린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시후는 최소 정강이라도 까일 생각으로 말을 내뱉었기에 다소 당황했다.

그 사이 남궁천이 일어나 인사를 하려 했지만, 여린은 손을 내저으며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덕분에 남궁천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앉아야 했다.

“북경으로 가는 길이지?”

전여린은 확신하듯 물었다.

뭐, 근거는 충분했다.

교지를 받은 것과 빠르게 북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두 내용만으로도 짐작하긴 어렵지 않을 테니깐.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웬만하면 안 한다고 해.”

“무슨 이유로 불렀는지 짐작이라도 하시나요?”

바로 대답하진 않았다.

다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듯 침묵을 지켰고, 그 사이 점소이가 의자를 들고 다가왔다.

점소이는 시후에게 미안하다는 듯, 눈인사와 함께 의자를 내려놨다.

“빨리 나오는 거로.”

여린의 아리송한 주문에도 점소이는 익숙하다는 듯 물러났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소면과 만두가 전부였으니깐.

여린은 무공뿐만 아니라 식사도 경지에 올랐는지, 음식을 설렁설렁 해치우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말해 주긴 어려우니까, 집으로 따라와.”

난감했다.

보통 난감한 게 아니다.

홍설과 남궁미가 만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할까.

시후가 중간에 끼이면 곤란한 상황이 초래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보통 궁금증을 자아내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사전에 정보를 쥐여 주는 일은 흔치 않았다.

* * *

금 뜯는 소리가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들려왔다.

음 하나하나가 심장을 도려내는 듯 아렸다.

“며칠 사이에 더 발전했어.”

여린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후 또한 공감했다.

일전에 들어봤던 곡이다.

하지만, 전혀 달랐다.

그 당시에도 대단했지만, 지금은 상태 이상에 걸린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었으니깐.

특히 남궁미의 눈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그렁그렁했다.

“허, 대단하군요.”

남궁천의 순수한 감탄에 여린의 입꼬리는 더욱 올라갔다.

소복이 눈 내린 정원을 지날수록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지만, 아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연주는 끝을 맺었다.

“초설입니까?”

남궁천의 질문에 여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초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일전에 악양루에 오셨을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말에 여린은 살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건 초설이 아니라 홍설의 연주야.”

“이름이 비슷하군요.”

“자매니깐.”

여린이 별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문을 열었다.

덕분에 여린은 남궁천의 눈이 반짝이는 걸 보지 못했다.

안에는 홍설이 막 금을 정리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는데, 여린을 발견한 홍설이 밝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스승님.”

지극히 차분한 태도였다.

뒤이어 시후가 들어오기 전까진.

홍설은 시후를 보자마자 허둥지둥거리며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하지만, 일전에 본 적 있던 제갈려와 남궁천, 남궁미까지 들어오자 시후와 여린을 번갈아 바라봤다.

“초설은?”

“천로금나수를 배우러 갔는데, 곧 들어올 거 같아요.”

“며칠 사이에 많이 발전했구나.”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 했는데 잘 되었다. 내일부터 금선탄절(琴線彈絶)부터 배우자꾸나.”

칭찬을 들은 홍설의 얼굴이 밝아졌다.

여린은 그런 홍설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멀뚱멀뚱 서 있는 네 사람을 보곤 탁자를 가리켰다.

“알아서 앉을 것이지, 앉으라고 말할 때까지 서 있긴. 어찌 되었든 손님들이니, 설이는 차를 내오거라.”

“네!”

홍설이 시후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곤 후다닥 밖으로 달려나갔다.

곁에 있던 남궁미가 눈살을 찌푸리며 시후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뭘 물어볼지는 뻔했다.

그렇기에 시후는 여린을 재촉했다.

“그보다, 무슨 이유인지 이제는 말해 줘도 괜찮지 않습니까?”

“차 한잔 마시면서 느긋하게 들어.”

“느긋하게 해도 될 이야기면 거기서 이야기······.”

위기감이 시후의 정신을 깨웠다.

이다음에 몇 마디 더 내뱉었다간,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저 주먹이 휘둘러질 것이다.

그렇기에 시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옆에서 남궁미가 눈치 없이 옆구리를 계속 찔러 왔지만, 시후는 목석처럼 아무런 반응 없이 벽만 바라봤다.

기묘한 분위기 속에 홍설이 차를 내왔다.

살갑게 웃으며 차를 건네줬지만,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있었기에 홍설 또한 분위기에 편승했다.

이어지던 정적이 깨어진 건 모락모락 올라오던 김이 다 사그라들었을 때였다.

“초원의 바람이 심상치 않다.”

초원.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원나라가 지배할 때 한족이 받았던 핍박은 실로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 세기도 더 지난 일이지만, 과거의 기록은 잊히지 않는 법이다.

하물며 수 세기도 아닌 한 세기라면 아직 적의가 남아 있지 않겠는가.

남궁세가 또한 원나라의 지배 시절을 잊지 않았다.

남궁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기미가 보이는 겁니까?”

“쿠빌라이가 여섯 부락을 먹어 치웠다.”

“그게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절반의 지지를 끌어냈다는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지.”

여린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니, 이걸 웃는다고 표현해도 괜찮을까 싶은 웃음이었다.

하지만, 여린을 제외한 그 누구도 웃지 못했다.

다들 전쟁을 겪어 보진 못했지만, 만에 하나 전쟁이 일어날 때 어떤 상황을 초래할지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으니깐.

여린은 여전히 이를 드러내며 북쪽을 바라보았다.

“황제는 북방을 평정하고 싶어 하지.”

“이 기회에 전쟁을 치르려고 하겠군요.”

남궁천은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린은 고개를 저었다.

“황제가 노리는 건 쿠빌라이의 목이다.”

“그야, 전쟁을 일으키면 당연히······.”

남궁천이 말을 끊으며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났다.

덕분에 찻잔이 엎어졌지만, 진작에 다 비운 터라 쏟아지진 않았다.

하지만, 남궁천은 엎지른 찻잔에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일어선 남궁천의 눈빛에 불안감이 자리를 잡았다.

그에 여린이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짧게 까딱였다.

기막이 처져 있었지만, 남궁천은 극도로 목소리를 낮추면서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했다.

“암살을 원한다는 말입니까?”

“그래. 성공하면 구심점이 사라질 테니, 그때 완전히 북방을 쓸어 버릴 생각일 거다.”

[특수 임무 ‘초원의 바람’의 사전 정보를 얻었습니다.]

- 115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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