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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03화 (85/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03화 귀인 (1)

“여기 골목을 꺾으면······. 아, 저기 있네.”

시후는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로 집 한 채를 가리켰다.

가까이 다가가자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필시 혜아가 집에 있는 게 분명했다.

쌍괴만 있다면 저렇게 웃지 않을 테니깐.

시후가 말에서 내려 문을 두들겼다.

“영감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조그맣게 들리는 걸음 소리를 듣자 하니, 짤막짤막한 보폭임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서괴였다.

시후의 얼굴을 확인한 그가 뒤에 있는 인원을 훑어보더니 눈빛이 게슴츠레 변했다.

“저기 제갈 아이는 일전에 봤지만, 그 외는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이구나.”

“들어가서 소개해 드릴게요.”

“음······.”

서괴는 그들을 안으로 들이는 게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시후가 여태껏 해를 끼친 적은 없었기에 옆으로 비켜섰다.

시후는 입구 근처에 말을 묶어 둔 뒤,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방을 가리켰다.

“다 저기 있나요?”

“그렇긴 한데, 손님이 한 분 있다.”

“손님? 누구요?”

“종 대인이 소개해 주신 철요라는 분인데, 이분이 요즘 혜아를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지셔서 우리 집에 머무르다시피 하고 있지.”

그 말에 시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혜아가 귀인을 만났다.

귀인(貴人)이 아니라 귀인(鬼人)이었지만.

서괴의 뒤를 따라서 조그만 연못을 지나 단아하게 지어진 전각에 다다랐다.

안에선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흘러나왔다.

“혜아야, 차 소협이 왔단다.”

서괴의 말에 전각 안에 정적이 찾아왔다.

곧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짧은 정적이 깨어지며 문이 벌컥 열렸다.

혜아는 시후의 얼굴을 확인하고 환하게 웃으며 나오다가, 뒤에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을 확인하자 걸음이 느려졌다.

“어서 오게. 그보다 새로운 얼굴이 많은데, 소개해 줄 수 있겠나?”

후괴가 혜아의 어깨를 토닥이며 물었다.

긴장을 풀 수 있도록 내공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이다.

아무리 시후가 생명의 은인이라고 한들, 병장기를 찬 사람들이 우르르 찾아온다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시후는 가장 좌측에 있는 제갈려를 가리켰다.

“쟤는 일전에 봤죠? 그 옆에는 남궁세가의 남궁미라고 하고, 옆에는 삼남 남궁천······.”

제갈세가와 남궁세가, 그리고 검후의 제자까지.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과 비교하면 반고는 딱히 소개할 게 없었다.

시후가 잠시 주춤거리자, 반고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난주 강가장의 강반고라고 합니다.”

그 소개에 서괴와 후괴는 묘한 표정으로 반고를 바라봤다.

두 사람이 반고의 경지를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원래 유명했던 남궁천과 검후의 제자인 비령의 경지는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강가장은 정말 이름조차 생소한 곳이었다.

“난주의 강가장이라······. 기억해 둬야겠군.”

후괴가 짧게 중얼거리자 반고의 뺨이 붉어졌다.

시후는 발을 뻗어 서괴의 발을 살짝 건드렸다.

“소개를 받았으면 그쪽에서도 이야기해야죠.”

“이 나이에 소개는 무슨······ 부끄럽게.”

“그럼 영감님이라고 부를까요?”

“나는 추 장주님이라고 부르고, 저기 철가 놈은 철 영감이라고 부르면 되지 않겠느냐?”

서괴가 뜬금없이 후괴를 도발했다.

그의 도발에 참고 있을 후괴가 아니었다.

“허허, 올해는 왜 조용히 넘어가나 했지. 추가 이놈아, 손님들 있는 데서 푸닥거리하고 싶은 게냐? 매년 헛소리가 느는구나.”

“우리가 하나로 묶여 불릴 때 내가 앞에 오는 이유는 내가 인덕이 높아서 그런 법이지.”

“개소리가 참신하구나. 그러고 보니 서로 묶여서 불린지 어언 30년째인데, 이제는 슬슬 누가 위인지 각인시켜 줘야겠군.”

서로 목소리를 내리깔며 으르렁거렸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주고받을 듯한 분위기였지만, 어차피 이 둘에겐 일상이었다.

시후는 소개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둘을 대신했다.

“저기 사이좋은 두 분은 쌍괴로 불리는 분들.”

누가 서괴고, 누가 후괴인지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서후쌍괴의 특징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으니깐.

시후는 다음으로 낑낑거리면서 후괴의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있는 혜아를 가리켰다.

“요 귀여운 애가 혜아야. 나랑 닮은 구석은 없지?”

시후의 소개에 남궁미를 제외하곤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영문을 모르는 쌍괴와 혜아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남궁미의 귓불은 녹아내릴 듯 달아올랐다.

그 웃음소리 때문일까.

열린 문 사이로 누군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가장 먼저 정갈한 수염에 날카로운 눈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새하얀 심의(深衣)를 입고 있었는데, 신의 이후로 백의가 가장 잘 어울렸다.

그가 바로, 귀선생 철요였다.

그는 문고리를 잡은 채 짧은 묵례를 하더니 슬쩍 문을 닫았다.

불쾌하다면 불쾌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남궁천이 살짝 인상을 썼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다들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서괴는 당황했는지 연신 헛기침을 하며 핑곗거리를 찾았다.

그의 시선이 후괴를 향했다.

“커흠, 철요 선생께서 몸도 안 좋으신데 문을 열어 둔 채로 나오다니!”

“끄응······. 그래 내 잘못이다.”

서괴의 말은 억지에 가까웠지만, 후괴는 아무런 트집도 잡지 않으며 사과했다.

두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우리의 잘못이니 넘어가 달라.’

두 사람이 그렇게 나오자, 객 된 처지에서 주인을 탓하긴 어려웠다.

그렇기에 남궁천은 말을 삼켰다.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덕분에 시후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더욱 편해졌다.

“여기서 신세 좀 져도 되죠?”

“어? 신세?”

“당분간 낙양에 머무르려고 하는데, 굳이 객잔 잡을 필요 없이 여기엔 빈방이 많잖아요.”

“그야 그렇긴 하지만······.”

하오문에서 쌍괴에게 내준 이 집은 반고의 집보다 조금 작은 정도였다.

그 말은 여섯이 들어온다고 해도 방은 남다 못해 넘칠 것이다.

하지만, 쌍괴는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제갈려조차도 스치듯 본 것에 불과하고 나머지 넷은 오늘 처음 봤다.

게다가 그들은 혜아를 만나기 전까진 수십 년을 둘이서 생활했다.

그런 폐쇄적인 두 사람이 꺼리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시후는 혜아의 생명의 은인이다.

그 말은 두 사람이 한발 물러설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쌍괴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며칠만이라면······.”

* * *

혜아는 귀를 쫑긋거리며 남궁천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별다른 이야기는 아니었다.

단순히 포양호는 어떻고 동정호는 어떻다는 경험담에 불과했다.

그를 지켜보던 후괴는 조용히 시후를 밖으로 불러냈다.

“언제까지 머무를 건가?”

시후네가 머무른 지 어느덧 닷새째다.

‘며칠’이라는 기준은 보통 엿새가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는 주 단위로 넘어가니 말이다.

하지만, 시후는 도통 떠날 기색이 없어 보였다.

되려 뚱한 표정을 지었다.

“나가라는 건 아니죠?”

“그건 아니지만······ 언제까지 머무를 건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거지. 자네는 바쁜 사람 아니던가?”

“당분간은 한가할 거예요.”

“그, 그렇나?”

후괴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적잖이 당황한 듯한 반응이었다.

시후는 피식 웃으며 방을 가리켰다.

“혜아를 뺏긴 기분이라 그렇죠?”

후괴는 말이 없었다.

최근 혜아는 공부를 마치면 남궁천에게 꼭 붙어 있었다.

주로 자신들의 무공을 완성하기 위해 천하를 떠돌던 쌍괴와 달리, 남궁천은 수려한 경관을 즐기며 다녔다.

쌍괴는 태산을 이야기할 때 단순히 ‘높았다’라고만 설명했다.

그러나 남궁천은 ‘천주봉 허리춤에 걸린 구름이 하늘과 땅을 갈라 구분 지으니, 오송정에 서 있노라면 나를 잊을 수 있다’라고 하며 여러 묘사를 곁들였다.

혜아는 쌍괴의 단순한 이야기보다는 남궁천의 다채로운 설명이 더 마음에 든 것이다.

“생각해 봐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뭐가 제일 필요해요?”

“······ 돈?”

“돈도 중요하지만, 인맥도 그만큼 중요하죠.”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사실이 그래요. 만약에 남궁세가에서 천양초 뿌리를 구하려 했다면, 여기저기서 나서서 구해다 줬겠죠. 남궁세가와 관계를 맺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 이 테니깐요. 그에 반해······ 말할 사람 없었죠?”

“그건······.”

후괴가 뭐라 반박하려 했지만, 할 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후괴의 표정을 보니 조금 선을 넘었다 싶었다.

살짝 달래 줄 때였다.

“사실 그 정도 위치에 있는 남궁세가가 대단한 거죠. 당장에 검후랑 남궁세가랑 비교해도 남궁세가의 손을 들어줄걸요?”

“크흠, 그건 그렇지.”

“그런 남궁세가와 연이 닿는 건 혜아의 앞길에도 크나큰 도움이 될 테고요.”

“그 부분에 관해선 인정하네. 하지만, 혜아는 무림에······.”

“어허, 남궁세가가 영향력을 끼치는 상단이 몇 개인 줄은 모르죠? 무림에 발을 디디지 않는다고 해도 알아 둬서 해가 될 건 없죠. 그리고 제가 설마 혜아에게 도움도 안 되는 일을 권하겠어요?”

시후는 쌍괴에게 신의를 소개해 줌으로써 구명의 은혜를 준 것과 다름없었다.

게다가 낙양에 자리 잡도록 도와주면서 배움에 눈을 뜨게 만들어준 것도 시후였다.

말을 들어서 좋으면 좋았지 나쁜 일은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후괴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내 자네 말이라면 콩으로 팥을 쓴다고 해도 믿지.”

“······ 딴지 걸고 싶지만 넘어가죠. 그보다 저 어디 좀 다녀올 거예요.”

“많이 늦는 겐가?”

“빠르게 와도 자정? 까딱하면 내일 들어올 수도 있고요.”

“알겠네.”

이것으로 당분간 언제 가느냐며 닦달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한 달이 다 되면 또다시 묻겠지만.

시후는 후괴를 뒤로한 채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다기가 놓여 있던 탁자에는 어느새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혜아가 지도를 짚으면 남궁천이 그곳은 어떻고, 어디 풍광이 뛰어났느니 같은 뜬구름같은 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볼일 좀 보고 올게요.”

“아, 조심해서 다녀오게.”

“따라가도 돼요?”

“안돼.”

남궁천의 인사와 달라붙으려는 남궁미를 떼어놓고 방을 다시 나섰다.

문을 닫으려 했으나, 자연스럽게 뒤 따라 나오는 제갈려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방을 나서자, 제갈려가 문을 닫으며 그 뒤를 따라 나왔다.

옆으로 살짝 비켜났지만, 제갈려는 지나치지 않았다.

시후는 비집고 나오는 한숨을 억지로 삼켰다.

“넌 왜?”

“뭐가 낌새가 느껴져.”

“무슨 낌새가?”

제갈려는 눈을 가늘게 뜨곤 시후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곧 얼굴을 들이밀고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았다.

기겁해서 뒤로 밀쳐냈다.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

“헛소리 작작 해라.”

“아, 집에만 있으려니깐 심심해서 그래. 같이 가면 안 되는 거야?”

“어.”

시후의 칼 같은 대답에 제갈려는 자리에 가만히 선 채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시후가 대문을 나서기 직전, 재빨리 달려와서 어깨를 살포시 두들겼다.

시후는 묻기도 귀찮아 또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물었다.

순간, 시후는 제갈려의 눈빛에서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뭐 하는 거냐 물으려는 찰나, 제갈려가 먼저 입을 뗐다.

“미아한테는 네가 홍등가 가는 건 절대 아니라고 잘 이야기해 놓을게!”

시후는 제 할 말만 하고 달아나는 제갈려를 보며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썅.

- 104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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