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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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측천무후의 황릉 (1)
시후는 비령의 문 앞에서 짧은 헛기침을 했다.
“그럼 다녀온다?”
비령의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대답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집중에 집중을 이어나가는 중이라 몇 날 며칠을 비워도 찾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시후는 제갈려와 함께 문을 나서기 전 시비를 찾았다.
“분타주께 이걸 전해 주세요.”
“이게 뭔가요?”
시비는 손에 들린 주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루에 금 한 냥 맞죠? 열흘만 더 빌릴게요. 아, 그쪽도 마찬가지로 기간 연장. 여기 받아요.”
시후는 시비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금 한 냥을 손끝으로 튕겨 주었다.
시비가 돈을 받자, 시후는 바로 말에 올라탔다.
“쟤는 당분간 방에서 안 나올 테니 밥만 문 앞에 가져다주고 건드리지 말아요. 밥 안 먹는다고 문을 두드리거나 하지 말고, 청소 같은 것도 하지 말아요. 그러다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와서 이것저것 요구하면 그때 챙겨 주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후는 다시금 금 한 냥을 손끝으로 튕겨 주었다.
고작 열흘의 봉사로 금 두 냥.
터무니없이 큰 비용이었다.
하지만, 지금 비령의 상태를 열흘 동안 잘 돌봐 준다면, 금 한 냥이 아니라 그 열 배라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시기가 비령에겐 대단히 중요한 시기가 될 테니까.
“일이 생각보다 잘 풀리면 갔다 와서 그 두 배는 더 줄 테니까, 말해 준 거 잘 지켜요.”
시후의 말에 시비의 머리가 땅에 닿을 듯 허리를 숙였다.
열흘에 금 두 냥이면 어지간한 표국의 총 표두보다 나을 것이다.
일개 봉사의 대가가 아니다.
시비도 눈치챘을 것이다.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라는 것을.
“호위를 고용할까요?”
“신경만 거슬릴 테니 됐어요.”
무인을 고용했다가 비령의 청정(淸靜)이 깨어지는 것이 최악의 결과였다.
시비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후와 제갈려는 곧바로 말의 머리를 돌린 뒤 옆구리를 걷어찼다.
서안성을 빠져나오자마자 제갈려가 말을 옆으로 붙였다.
“그런데 왜 저녁에 안 가고 지금 가는 거야?”
“저녁에 성을 나가면 시선이 쏠리잖아. 그리고 말도 맡겨야 하니깐, 도착하면 얼추 밤일 거야.”
“그럴 거면 도대체 왜 말을 끌고 나왔어?”
“멀리 다녀온다고 했는데 말도 안 끌고 나가는 게 말이 되냐?”
“아······. 맞네.”
어제 초오 대사와 대화를 나눌 때는 놀랄 정도로 총명하더니, 아침에 그가 떠나자마자 제갈려는 다시 맹하게 바뀌어 있었다.
제갈려도 따로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녀도 비령과 마찬가지로 초오 대사와의 대화를 통해, 진법의 극에 한걸음 가까워졌을 테니.
하지만, 황릉이 먼저였다.
북쪽 마장에 말을 맡긴 뒤 서둘러 건릉(乾陵)으로 향했다.
부지런히 달려야 했다.
달리지 않고서 180리에 달하는 거리를 줄일 방법은 없으니 말이다.
* * *
추나행은 사흘에 1,500리를 달렸고, 후괴는 시후를 업고 이틀 만에 1,400리를 주파했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180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갈려는 후괴도, 하물며 추나행도 아니었다.
그녀가 반나절 만에 180리를 달린 건 기적에 가까웠다.
“차라리 날 죽여라······.”
제갈려는 건릉 바로 근처까지 왔지만, 건릉 입구를 알리는 무자비(無字碑)에는 도착하지 못하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시후 또한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제갈려보다는 힘이 남았기에 억지로 몸을 잡아 일으켰다.
“아윽, 뭘 먹고 이렇게 무거워? 어휴, 백 근은 나가겠다.”
“헛소리하지마······.”
이 와중에 반박할 정신은 있었는지, 제갈려는 시후의 말을 부정했다.
시후는 거의 끌다시피 그녀를 데려갔다.
도무지 제 발로 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슬슬 열이 뻗쳤지만, 황릉을 돌파할 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제갈려였다.
제갈려 또한 그 사실을 인지했기에 이렇게 뻗대는 게 분명했다.
시후는 악을 쓰며 신도(神道)를 따라갔다.
신도를 쭉 따라가니, 길 양쪽으로 화표(華表)가 세워져 있었다.
익마(翼馬), 타조(駝鳥), 석마(石馬)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금 더 지나자 문인석(文人石)과 무인석(武人石)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 멀리 주작문(朱雀門)이 어스름한 달빛에 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왔다.’
시후는 막바지 힘을 내 무자비 앞까지 간신히 제갈려를 끌고 왔다.
“후······. 이제부턴 네가 걸어.”
“응.”
연신 허리를 두들기는 시후의 목소리에 스산한 살기마저 맴돌았기 때문일까.
제갈려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무자비를 올려다보았다.
2장이 훌쩍 넘는 높이를 자랑하며, 너비 또한 7척에 달했다.
비면 상단에 조각된 용과 리(螭)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시후는 품에서 측천파흑선을 꺼내었다.
[측천파흑선과 무자비가 공명합니다.]
[무자비에 숨을 불어넣어 주십시오.]
시후는 손목을 가볍게 털어 측천파흑선을 펼친 뒤, 무자비를 향해 살랑살랑 바람을 보냈다.
제갈려는 뭐 하는 짓인지 의아한 시선으로 시후를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제갈려는 기운을 되찾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글자가 새겨지고 있었다.
괴이하기보다는 신묘했다.
제갈려는 비석을 살포시 쓰다듬었다.
“이제는 무자비가 아니네.”
글자가 새겨졌으니 더는 무자비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제갈려는 비석에 새겨진 글을 읽기 시작했다.
“평온무사(平穩無事)를 꿈꿨으나, 시대가 나를 가만두지 않았기에 제위에 올랐다. 월영즉식(月盈則食)이라 했음에도, 나를 이리도 모질게 끌어 내릴 줄은 몰랐다. 수락석출(水落石出)이라 하였으니, 후대에 나를 향한 평가는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드러나리라. 침선부부(沈船不浮)라 하니, 나는 이곳에서 가라앉으리.”
제갈려는 적힌 글귀를 다 읽은 뒤 입을 다물었다.
손이 시리 법도 한데 천천히 비석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은 여인의 몸으로 황제에 올랐지만, 강제로 황위를 이양한 뒤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던 측천무후를 보듬어 주는 듯했다.
그것도 잠시, 제갈려는 뒤로 물러나야 했다.
비석은 달빛을 흡수하듯 점점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까딱하다간 저 멀리 건현에서도 보일 정도로 밝아지겠다 싶었지만, 천만다행으로 최상급 야명주 수준으로 밝아지는 데 그쳤다.
“어? 어?”
이윽고 그 빛은 측천파흑선에 달린 선초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홍옥과 녹옥이 각기 밝은 빛을 뿜어냈다.
시후는 일전에 제갈려가 했던 것처럼 홍옥과 녹옥을 겹쳤다.
그러자 아귀 틈 사이로 청명한 빛이 흘러나왔다.
[측천파흑선이 측천무후 황릉의 입구를 가리킵니다.]
빛은 두 사람이 가야 할 곳을 알려 주었다.
방향은 건릉이 묻혀 있는 양산(梁山)의 정상.
시후와 제갈려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무자비가 새워진 곳에서부터 정상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이 쭉 펼쳐졌다.
잠시 쉬었다고 한들 이미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졌었기에, 제갈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올랐다.
“들어가자마자 쓰러지지 말고 천천히 가.”
시후의 말에 속도를 늦췄다.
“약간 옆이네.”
정상을 비춘다고 생각했던 빛은 미묘하게 빗겨나가 있었다.
빛을 따라 길을 벗어났다.
중간중간 자라난 나무들을 지나다 보니, 흙무더기를 비집고 나온 듯한 커다란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빛은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덤이 바로 눈앞에 보이자 시후는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제갈려도 다르지 않았는지, 두 사람은 바위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바위 앞에 다다르자, 홍옥과 녹옥이 암석에 빛을 나눠 주기 시작했다.
쌍옥의 빛이 옅어지는 만큼 바위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다만, 바위에는 부채꼴 모양으로 빛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딱 맞겠네.”
제갈려는 어서 올려놓으라는 듯 재촉하는 눈빛을 보냈다.
시후가 바위에 가까이 갈수록 측천파흑선이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시후는 바위 위에 천천히 측천파흑선을 내려놓았다.
바위가 땅속으로 잠기기 시작했다.
집채만 한 바위가 땅속으로 잠기고 있었지만, 제갈려는 놀라기보다는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배교와 비슷한 방식이네?”
물론, 그냥 보고만 있는 게 아니라 분석하고 있었다.
시후는 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진중한 눈빛으로 바위를 바라봤다.
계속해서 땅으로 꺼지던 바위가 멈췄다.
바위가 내려간 것 말고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제갈려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바위 위에 올라탔다.
멈췄던 바위가 다시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시후도 황급히 바위에 올라탔다.
“바로 알아챘네?”
“모든 것엔 이유가 있으니깐······. 그보다 넌 어떻게 이걸 알았어?”
“불문율 몰라? 어디 남의 밑천을 드러내려고 그래? 내가 네 기술 다 가르쳐 달라고 하면 알려 줄래?”
“그건 아니지만······.”
“선 넘지 말고 딱 여기까지.”
시후는 단호한 태도로 말을 끊었다.
제갈려는 아쉬워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각자의 비밀은 있는 법이니깐.
잡담을 나누는 사이, 아래에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구멍이었다.
아니, 구멍이라기엔 너무나도 크고 넓었다.
[‘측천무후의 황릉’을 발견하였습니다.]
[숨겨진 임무 ‘전설의 자취를 쫓아서’가 ‘애별증해(哀別憎偕)’로 변경됩니다.]
통로가 나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통로를 구경하고 있으니, 곧 바위는 바닥에 닿은 듯 멈추었다.
시후는 창으로 바닥을 두들긴 뒤 제갈려와 함께 아래로 내려섰다.
조금씩 주변을 살피는 가운데 바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려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제갈려도 인식했지만, 힐끔 바라보곤 관심을 거두었다.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태연했기에 시후는 당황해서 물었다.
“괜찮아?”
“어차피 나가는 방법은 있을 거야.”
확신에 찬 말투였다.
제갈려는 당찬 모습을 보이며 입구 주변부터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시후도 가만히 있을 순 없어 덩달아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찾는 시늉을 했다.
제갈려를 앞장세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마차 세 대도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던 통로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속도는 더욱 더뎌졌다.
하지만, 그 어떤 기문진식조차 없었다.
“이쯤 되면 나올 법도 한데······.”
“나왔다.”
하지만, 등장한 것은 통로를 틀어막고 있는 굳건한 문이었다.
예상외의 등장에 제갈려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한참을 살피던 제갈려는 안전하다고 판단했는지 가까이 다가가 손등으로 문을 두들겼다.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자 낯빛이 굳어졌다.
“통짜 쇠라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좁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마차 한 대는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너비였다.
높이 또한 그와 황금비율을 이뤘다.
문을 두들겼을 때 나는 소리를 볼 때, 아무리 못해도 문 두께가 세 치는 될 것이 분명했다.
단순히 계산해도 무게는 5천 관이 훌쩍 넘을 것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로 제작되었다.
“밀어 보자.”
제갈려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5천 관이 넘는 문을 밀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는 듯했다.
시후는 두 팔을 걷어붙였다.
최근 내공이 두 갑자를 돌파했다.
내공은 갑자를 기준으로 가지는 힘 자체가 확연히 달라진다.
시후의 몸이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천장에 가득히 박힌 야명주의 빛을 무색해질 정도였다.
시후는 두 손을 문에 가져다 댔다.
“흡!”
힘을 주자 주변으로 돌조각이 튀었다.
발을 디디고 있는 바닥이 깨어진 것이다.
온몸이 으스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가 부서지도록 꽉 깨물며 힘을 더했다.
시후는 촛불처럼 내공을 태웠다.
“크아아앗!”
시후가 성난 황소처럼 문을 밀어붙였다.
땀이 뺨을 타고 흘렀다.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뺨을 타고 흘렀던 땀방울이 코끝에 맺혀 떨어졌다.
순간 바닥을 보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악쓰는 얼굴이 보기 흉했을 테니깐.
다만, 시후가 죽을 둥 말 둥 힘을 썼음에도 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온몸을 휘감던 금빛 섬광이 약해질 무렵, 지켜보고 있던 제갈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끼긱.
조그만, 정말 아주 조그만 소리였다.
평소라면 듣기 싫은 쇳소리였겠지만, 지금은 세상 그 무엇보다 달콤한 소리였다.
녹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제갈려는 급히 고개를 돌려 시후를 응원했다.
“힘내! 조금만 더 밀면······.”
금빛 섬광이 사그라들었다.
시후는 내공이 다한 듯 바닥에 쓰러졌다.
제갈려의 시선은 시후에게서 문으로 옮겨갔다.
“아······.”
감탄이 아니라 탄식이었다.
그 반응에 시후는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오랜 기간 닫혀 있었던 탓인지, 기존에 문이 있었던 위치는 바닥에 잘 새겨져 있었다.
한 치.
팔을 뻗자 문은 딱 손가락 한 마디만큼 밀려나 있었다.
“썅.”
- 9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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