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88화 다시 북경으로 (1)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초롱초롱한 눈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시후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얘가 왜 밖을 나돌아다닐까.’
아무리 북경이 다른 곳과 비교해서 치안이 좋다고 해도.
팽가가 제아무리 호탕하다고 해도, 이 시국에 홀로 돌아다니는 건 아주 위험한 짓이었다.
오죽하면 검후도 비령을 맡겼겠는가.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그러는 너는······ 뒤!”
시후가 급히 철우의 뒤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끼이익, 쿵!
달랑거리던 경첩이 불안해 보였던 문이 기어코 떨어져 나갔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다들 철우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더 보고 있다간 자기도 이상해질 것 같았기에, 시후는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별 미친 곳을 다 보겠군.”
“동감이야.”
시후의 혼잣말에 비령이 동조했다.
이 순간만큼 둘의 의견이 일치했고, 이내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사이에 철우는 자리에 앉더니, 탁자 세 번을 두들기곤 다섯 손가락을 모두 펼쳤다.
“그보다 소림에 계시다고 들었는데 언제 창주까지 오셨습니까? 아니,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철우는 주문을 마치자마자,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연이어 물었다.
“황제를 뵈러. 그러는 넌 왜 북경에 안 있고 여기에 있어?”
“아. 형님들을 따라서, 조사할 게 있어 왔습니다.”
철우의 말에 입구를 바라봤지만, 점소이 둘이서 끙끙거리며 문을 고치고 있을 뿐, 들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후의 시선에 철우는 씩 웃으며 한쪽 벽을 가리켰다.
“형님들은 지금 빈민촌 쪽을 조사하고 있을 겁니다.”
“넌 왜 같이 조사하지 않고 여기에 있는 건데?”
“형님들이 이곳 맛이 변했나 안 변했나 먼저 조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역시나 팽가다.
이번엔 세 사람이 다 같은 마음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보다, 황제를 뵈러 가신다니 말씀드리는 건데······ 저번 일에 연루되어 목이 달아난 숫자만 해도 물경 이만 명에 달합니다.”
“그렇게나 많이?”
“명진제께서 위에 오르기 전 최대한······ 여러 가지 추측이 나돌고 있습니다.”
철우는 중간 말을 죄다 생략했다.
그러나 의미는 전달되었다.
게다가, 아무리 안 보이는 곳에선 나라님도 욕한다고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함부로 떠들다간 어찌 될지 몰랐으니까.
잠시 침묵에 잦아드는 사이에 음식이 나왔다.
“어?”
제갈려가 자신만만했던 것처럼, 음식은 끝내줬다.
정주에서 먹었던 일미각의 음식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부끄러움을 감내할 만한 맛이었다.
“확실히 맛은 있네.”
“다음에 다시 올 의향은?”
“······ 없진 않아.”
시후도 맛에 굴복했다.
제갈려가 히죽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분위기가 썩 나쁘지는 않았다.
이 어처구니없는 객잔은 실없는 웃음을 터트리기에 충분했다.
다만, 철우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많이 늦는데······.”
철우는 연신 입구를 흘겨봤다.
그가 객잔으로 들어온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올 시간은 진즉에 지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철우가 얼마나 걱정하는지는 그의 젓가락과 그릇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음식이 절반 이상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임무도 주어지지 않았고, 하북에서 뭔가 일어날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시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가 보자.”
* * *
빈민촌은 어디에든 있었다.
가장 작은 현만 하더라도 빈부격차가 대단한데, 사람이 가득한 창주는 오죽하겠는가.
주변에는 쓰러져 가는 집들이 즐비했다.
아니, 사실 집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다.
나무를 세워 진흙을 바른 수준의 집들도 있었다.
게다가 빈민촌은 어두웠다.
불 켜진 집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여깁니다.”
철우가 형님들과 헤어졌던 위치에 데려왔지만, 싸움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함께 주변을 맴돌며 살폈으나, 딱히 추적술을 익힌 것도 아니었기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산길이라면 발자국이라도 남아 있을 테지만, 워낙 사람들이 밟고 다녔던 터라 눈은 죄다 녹아 있었으니까.
“어디로 갔을지 짐작 가는 곳이라도 있어?”
“일단은······ 이쪽으로 가 보시죠.”
제갈려의 물음에 철우는 확신 없는 걸음으로 앞장섰다.
달빛에 의존한 채 어두운 골목 사이로 들어갔다.
빈민촌 골목길은 복잡했다.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사이로 나 있는 길이 전부였다.
다르게 말하면, 길은 수십 수백 갈래나 되었다.
결국, 그들은 무의미한 걸음을 멈추었다.
“사람이라도 다니면 물어볼 텐데······. 문을 두들겨 물어볼까요?”
철우의 물음에 제갈려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한밤중에 문을 두들겨 나와 봤더니 눈앞에 무기를 찬 낯선 사람이 있으면, 대화가 잘도 통하겠다. 알아도 모른 척할 거야.”
“차라리 개방을 찾는 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긴 한데, 개방에서도 여력이 없어서 팽가에 조사를 요청한 거 아냐?”
비령의 제안에도 부정적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게다가 철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개방의 도움을 바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시켜 주었다.
여간 골치 아픈 상황이 아니었다.
뽀드득.
눈 밟는 소리.
비령은 이미 소리가 들려온 골목으로 몸을 날렸다.
뒤이어 세 사람이 도착했을 때, 비령의 검은 이미 아이의 목에 닿아 있었다.
아이는 뭐라 말하고 싶은지 입술을 달싹였지만, 목에 닿아 있는 비령의 검 때문에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시후는 비령의 손을 잡아당겨 검을 거두게 했다.
그리곤 제갈려의 등을 앞으로 떠밀었다.
아무래도 날붙이가 없는 제갈려가 아이에게도 편할 테니까.
제갈려는 억지로 앞으로 떠밀렸지만, 당황한 기색도 없이 활짝 웃으며 아이를 안심시켜 주었다.
“무림인들을 몰래 지켜보는 건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란다. 아무리 가까이서 보고 싶더라도 앞으로 주의하렴.”
아이는 목이 빠질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려가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 주는 사이, 비령이 시후에게 다가왔다.
“은 한 냥만.”
이 상황에서 돈을 요구하는 게 황당했지만, 한 냥을 주는 게 어렵진 않았기에 꺼내 주었다.
비령은 돈을 받아들곤 제갈려의 품에 반쯤 안긴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제갈려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누비옷 하나라도 사 입을 수 있을 거다.”
비령은 제갈려의 품에 숨어든 아이의 손에 은 한 냥을 억지로 쥐여주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이의 옷은 군데군데 해져 있었다.
집이 있어 보이는 아이가 아니었다.
아이의 몸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비령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적선한 것이었다.
아이는 멍하니 비령을 올려보더니, 곧 손에 쥐어진 돈을 바라봤다.
아이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땅에 내팽개치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값싼 동정이라 여긴다면 아직 배가 덜 고픈 것이겠고, 추위가 견딜 만한 것이겠지.”
내려오던 아이의 팔이 멈췄다.
“아직 자존심을 바닥에 버리기 싫다면, 바닥에 내팽개치거라. 네 알량한 자존심이 한 줌의 쌀만큼이나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비령의 말에 아이는 손을 펼쳐 은 한 냥을 바라봤다.
“네 자존심이 내 동정보다 비싸다면 버려라. 네 자존심이 목숨보다 귀하다면 버려라. 그리고 땅과 함께 얼어붙어라.”
아이는 손에 놓인 돈을 꽉 움켜쥐며 웅크렸다.
평소 비령의 가벼운 언행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낯선 중후한 말들이었다.
날 선 독설을 날려 준 비령은 주저앉은 아이를 향해 다가갔다.
“스승님이 내게 해 준 말이다. 아직 어려서 돈을 벌 수 없을 테니, 구걸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라.”
아이는 비령을 올려다봤다.
비령은 나름 온화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는 너무나도 어색했다.
그 미소가 무서웠는지 아이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칼 든 모습보다 웃는 게 더 무섭나 보네.”
시후가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거들자, 비령이 매섭게 노려봤다.
아이는 뒤로 후다닥 뛰어가더니 골목길로 들어갔다.
비령은 아이가 사라진 골목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아이의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을 투영해 보는 듯했다.
“일단, 가장 외곽을 둘러보면서······.”
“그 아저씨들! 북쪽으로 갔어요!”
골목길로 사라졌던 아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소리쳤다.
급히 돌아봤지만, 아이는 이미 골목길로 모습을 감춘 뒤였다.
철우는 아이를 뒤쫓으려 했지만, 시후는 그 팔을 붙잡았다.
“저 아이가 흉수일 리는 없으니 일단 북쪽으로 가자.”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철우는 곧장 북쪽을 향해 발을 옮겼다.
* * *
빈민촌의 밤은 사람들이 거의 안 움직인다지만, 그 말은 빈민촌을 벗어나면 사람이 제법 돌아다닌다는 소리와 같았다.
게다가, 아직 밤은 깊어지지 않았다.
얼큰히 취한 채 돌아다니는 주당들과 그들의 주머니를 야금야금 갉아 먹는 주루를 찾아가 캐물었다.
“누군갈 쫓아가는 걸 보긴 했소만.”
“어이쿠, 소인은 무림인들이 지나가면 바로 눈을 돌려서 잘 모르겠소이다.”
“못 봤소!”
다들 아이에게 속은 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생길 무렵, 철우는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는 마구종에게 다가갔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구종은 곧 객잔 뒤편에 있는 우물을 가리켰다.
“예, 예. 기억납니다. 총 세 분이셨는데, 저 우물 옆에 뭔가 적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철우는 급히 우물로 다가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 가서 우물을 쌓아 올린 돌 가장 아랫부분에 알 수 없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팽가에서 쓰는 암호문입니다만······.”
철우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암호문을 알아볼 수 없던 시후에겐 답답함만 가득했다.
하지만, 암호문으로 적었다는 건 밖에 알리면 곤란한 내용일 테니 묻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다만, 비령에게 예의를 바라는 건 철우에게 단식을 바라는 것과 같았다.
“뭐라고 적혀 있는데?”
“령아.”
제갈려가 비령을 불렀다.
하지만, 철우는 괜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괜찮습니다. 별로 대단한 게 적힌 게 아니라, 단순히 도둑을 쫓겠다고 적어 놓으셨거든요.”
“도둑? 소매치기라도 당한 건가?”
“하하, 그럴 리 있겠습니까. 일단······ 자, 받으십시오!”
철우는 마구종을 향해 금 한 냥을 던져 주었다.
고작 말 몇 마디를 하고 엄청난 돈을 받은 마구종은 넋이 나간 듯했다.
“너무 많이 준 거 아냐?”
“저분이 아니었으면 신호탄이라도 쏘아 올려야 했을 테니, 그 값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싸게 먹힌 겁니다.”
“은 한 냥만 줘도 충분했겠는데······.”
비령은 은 한 냥도 받아서 써야 하는 처지였기에 짧게 구시렁거렸다.
“돌아가시죠.”
“안 쫓고?”
“전 혹시라도 배교 놈들이 습격한 게 아닐까 싶어서 전전긍긍한 거지, 도둑 따위는 신경도 안 씁니다.”
믿음이 대단했다.
다소 어정쩡한 기분이 들었지만, 철우의 뒤를 따라 다시 미미객잔으로 돌아왔다.
“소제(小弟)를 생각하여 이렇게 애를 써 주셨는데, 헛걸음만 하게 만든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저녁은 제가 사겠습니다.”
철우는 미처 다 못 먹은 저녁 식사를 다시 주문하였다.
근심이 사라진 철우는 식사를 즐기며 싱글벙글 웃었다.
비령은 아까 먹었던 것으로 충분히 배가 불렀는지, 젓가락을 깨작깨작 움직이다가 결국 놓았다.
“그보다 도대체 어떤 도둑이길래 지금 일을 내팽개치고 쫓는 거람?”
“내팽개친 게 아니라, 놓치면 잡기 힘드니 급히 쫓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그렇지. 배교 놈들보다 더 급한 도둑이라······. 생각나는 건 없어?”
“음, 도둑이라······.”
비령의 질문에 철우도 분주히 움직이던 젓가락이 멈췄다.
뭔가 기억의 저편에서 튀어나오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시후가 그만 되었다고 말하려는 찰나, 뭔가 생각이 났는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그, 그······. 아!”
철우는 주위의 눈치를 보더니 몸을 앞으로 숙였다.
주변에 알리기엔 다소 껄끄러운 이야기인 듯했다.
그 탓에 나머지 세 사람도 자연스레 탁자에 팔꿈치를 기댔다.
“최근 세가에서 신경 쓰는 도둑이라면, 아무래도 주창왕 도굴 사건의 용의자일 겁니다.”
“쿨럭쿨럭!”
제갈려가 계란국을 들이켜다가 사레가 들렸는지, 연신 기침을 해 댔다.
비령이 제갈려의 등을 두들겨 주는 사이, 철우는 더욱 상체를 숙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형님들은 아무래도 무영묘적을 쫓는 것 같습니다.”
- 8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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