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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87화 (69/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87화 죄의 무게 (3)

진류에 관한 문제는 우습게 끝났다.

소림이 먼저 나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먹였고, 아미도 그에 살포시 동조했다.

검후까지 손을 드는 통에 화산과 청성은 나설 여지조차 없었다.

다만, 그를 불살동에 집어넣지 않을 뿐이었다.

간단한 심법조차 익히지 않은 채 예순이 넘은 그에게 족쇄를 채울 순 없었다.

하지만, 신의가 머무르는 자운당에서 일정 반경 이상을 허락 없이 벗어나면 추살(追殺)할 것이고, 혹여라도 놓친다면 그를 온전히 감시하지 못한 신의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진류는 고래고래 악썼지만, 신의는 그러겠노라 받아들였다.

시후가 생각한 최적의 결과였다.

단 하나의 변수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가셨어?”

시후의 물음에 비령은 대꾸하지 않았다.

하긴, 검후가 가지 않았다면 비령이 올 리도 없을 테니, 검후는 떠났을 것이다.

공진이 내려와 운허가 무당제일검에 올랐듯, 검후도 내려올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현월문의 전통 의식인 구천종주(九天縱走)를 치러야 했다.

비록 모용세가의 일로 늦춰지긴 했지만, 최대 걸림돌이었던 배교 총타를 처리했으니 수뇌부의 양해를 구하고 떠났다.

족히 한 달이 넘게 걸릴 일이었고, 그 시험을 치러야 하는 비령을 데리고는 움직일 수 없는 일이다.

용봉지회가 끝난 뒤 몰래 따라갔을 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스승의 명이었으나, 이번에는 문주의 권위를 빌려 비령에게 명했다.

아무리 비령이 막 나간다고 해도 이번에는 뒤쫓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잔뜩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시후 때문이었다.

검후는 시후를 좋게 봤었다.

모용세가에서 처음 봤을 때도 비령의 좋은 상대가 되리라 봤는데, 이후 배교 총타에서 자신을 뒤따라 가장 먼저 진으로 들어오지 않았던가.

게다가 추격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다른 욕심이 있어서지만, 신의를 위해 진류를 살리고자 이리저리 뛰어다닌 모습에 비령을 맡기기에 충분하다 느낀 것이 분명했다.

「령아, 네게 사형제가 없음에 또래 아이들과 잘 지내지 못함을 알고 있다.

배분 또한 큰 걸림돌이 되겠지.

그러기에 아미파 등에서 네가 힘들었음을 안다.

내 겪어본 바로는 시후라는 아이가 너와 비교해서 무공도 떨어지지 않고, 심성 또한 올곧으니 같이 있으면 배울 게 많을 것 같구나.

그 아이와 함께 있는 동안 사형이라 생각하고 지내거라.

다녀와서 그 아이에게 물었을 때, 천방지축으로 굴었다고 말한다면 크게 혼낼 것이다.」

물론, 다른 문파는 배교의 잔당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을 것을 염두에 뒀겠지만, 얼마나 좋게 봤으면 시후에게 맡겼을지 짐작이 갔다.

시후는 검후가 한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비령의 잔뜩 구겨진 얼굴을 보며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이유를 모르는 제갈려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 사이, 신의는 진류를 데리고 자운당으로 향했고, 시후도 그의 뒤를 쫓았다.

마음 같아선 둘이 대화할 시간을 주고 싶었지만, 어차피 그들은 함께할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시후는 지금 당장 신의에게 부탁할 것이 있었다.

“흠흠!”

신의는 막 자운당으로 들어서다 말고 시후의 헛기침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내 경황이 없어서 자네에게 감사의 인사도 제대로 못 전했네. 고맙네! 정말 고맙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어서 야속할 정도로 고맙네!”

신의는 시후의 팔을 붙잡은 채 당장이라도 팔을 뽑을 것처럼 흔들었다.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정진과 검후가 다 말해 주고 갔네. 정말 고마우이······.”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이 토끼 눈처럼 새빨개져서 올려다보자 시후는 부끄러우면서도 뿌듯했다.

옆에 있는 진류는 말을 섞기 싫은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사실 부탁드릴 게 있어서 찾아왔······.”

“그럼 그렇지! 바라는 게 있으니 환심을 사기 위해 일을 꾸몄구나!”

시후의 말에 진류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옆에서 신의가 말렸지만, 그는 멱살이라도 잡아야 성이 풀리겠는지 필사적이었다.

소란이 일어나서 좋을 게 없었기에 신의는 기막을 펼치며 진류의 몸을 붙잡았다.

혈을 점하면 편하겠지만, 늙은 나이에 혈을 짚는 건 혈액순환을 좋지 않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말하게.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주겠네.”

“놈!”

“소란을 피우면 이 늙은 스승도 같이 계율원(戒律院)에 갇혀야 할 테니, 이야기라도 들어줌이 어떻겠느냐?”

정정하기로 친다면, 제자인 진류보단 신의가 더 정정할 것이다.

하지만, 신의의 부탁은 진류의 마음을 흔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편지 한 통을 써 주실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 말인가?”

시후는 신의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속삭였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신의의 얼굴엔 웃음이 피어났다.

“옳지, 무슨 말인지 알겠네.”

“부탁드립니다,”

“부탁은 무슨! 이건 부탁으로 치지도 않겠네! 적어도 내 팔을 원한다는 정도의 부탁이 아니고서야, 이런 건 부탁으로도 생각지 않을 테니 마음껏 이야기하게나.”

[신의 당화준의 호감도가 백아절현(伯牙絶絃)(91)에 도달하였습니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호감도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원래라면 진류를 죽여야 했다.

죽지 않더라도, 이렇게 이어주는 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신의의 호감도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졌다.

가장 공들였던 남궁천보다 고작 1이 낮은 수치였다.

시후는 신의의 환대를 받으며, 짐을 싸기 위해 지객당으로 돌아갔다.

“환심을 사는 건 선수가 따로 없네.”

비령이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내뱉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제갈려가 설명해 달라는 듯 소매를 잡았다.

“모르고 지켜보는 것도 재밌을 거야.”

시후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자, 제갈려는 인상을 쓴 채로 한참 동안 비령과 시후의 방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 * *

신의가 전해준 편지는 한 통이 아니라 두 통이었다.

물론, 하나는 진류의 것이었다.

‘어쩐지 편지를 전해 받을 때 딴 곳을 쳐다보고 있더라니.’

시후는 오랜만에 보는 흑마의 콧잔등을 쓰다듬어주었다.

“넌 말이라서 좋겠다. 풀만 먹고도 살 수 있을 테니깐.”

소림의 식단은 건강했지만, 건강하다는 건 맛있다는 것과는 달랐다.

시후의 말에 흑마는 한차례 푸르릉거리며 투레질을 했다.

제갈려가 자신의 말에 올라타자, 시후도 곧 흑마 위에 올랐다.

비령은 자신의 말이 없었기에 제남에서 북경까지 갈 때, 시후의 말에 신세를 졌기에 자연스레 흑마에 오르려 했다.

문제는 시후가 말 옆구리를 살짝 걷어차며 피했다.

“뭐야, 말 태워 줘?”

물음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다.

어조가 비아냥댔기에 비령의 심기를 긁었을 뿐이었다.

“말이 없는 걸 보니 필요 없나 보네. 필요하면 말해.”

비령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제갈려에게 다가갔지만, 일전에 제남에서도 그랬듯 제갈려의 말은 두 사람을 태우기에 부적절했다.

“뛰어도 충분해. 어차피 낙양까지 가서 말을 사면······.”

살 수 없었다.

비령의 품에 두둑한 무게를 자랑했었던 전낭 주머니는 어제 검후가 떠나가면서 회수했다.

그 돈은 검후의 손을 거쳐서 시후에게 흘러 들어갔다.

“뭘 산다고?”

시후는 품에서 전낭을 꺼내어 던졌다 받기를 반복했다.

비령의 곧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제갈려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 * *

“정주에 들를 걸 그랬나?”

시후는 상동성 거의 최북단에 있는 악릉에 내렸다.

상식적으로, 낙양에서 배를 탔는데 고작 400리 떨어진 정주에 들를 이유는 없었다.

정주에 들르는 건, 홍설을 보러 가느냐의 여부를 담은 시후의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였다.

여린이 지날 때 들르라고 했지만, 억지로 시간을 만들어 내면서 들르라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일전에 들렸을 때를 생각한다면, 그다지 시일이 지나지도 않았다.

“창주까지 올라갈 거야?”

제갈려의 물음에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릉에서 쉰다면 내일 북경에 도착하려면 꼬박 700리 넘는 거리를 달려야 한다.

이 추위에 700리를 달린다는 건,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말에게도 못 할 짓이었다.

그렇기에,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말을 몰았다.

아무리 빨리 달린다고 한들, 떨어지는 태양보다 빠를 순 없었다.

창주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하늘엔 달이 휘영청 떠올라 있었다.

“어휴, 추워. 너희도 춥지? 얼른 가서 땀 좀 닦아 줄게.”

제갈려는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말들의 상태를 걱정했다.

해가 저물기 무섭게 기온이 떨어졌다.

제갈려는 익숙한 듯 가장 앞에서 말을 몰았다.

체력적으로 가장 약했지만, 길을 가장 잘 아는 것도 그녀였다.

“여기야.”

미미객잔.

이름만 들어선 뭔가 여성스러운 분위기였지만, 건물 외견은 투박하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렸다.

제갈려는 말에서 내리더니 문을 거칠게 발로 찼다.

쾅!

“손님 받아라!”

뒤따라오던 시후와 비령은 당최 무슨 짓을 벌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점소이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말들 땀 좀 닦아 주고. 감기에 안 걸리도록.”

제갈려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점소이에게 은 한 냥을 손끝으로 튕겨 주었다.

점소이는 허공에 떠오른 돈을 낚아채며 아무런 대꾸 없이 밖으로 나갔다.

“빈자리로 가면 돼.”

“여기 뭐 하는 곳이야?”

“8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객잔인데, 보다시피 이름이 워낙 여성스럽잖아? 하지만 선대에서 지은 이름을 바꿀 순 없으니, 이렇게 쓸데없이 남자답다고 여기는 짓을 강조하는 거지.”

제갈려의 설명에 시후는 혀를 찼다.

“꼭 여기로 데려와야 했냐?”

“여기가 창주에 대놓고 숨어 있는 맛집이야.”

“대놓고 숨어 있다는 건 무슨 말이야?”

“다들 아는 곳이니깐 대놓고 있고, 다들 부끄러워서 찾지 않으니 숨어 있는 곳이지.”

쓸데없는 지식이 늘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쓸데없는 건 주문하는 방식이었다.

쾅쾅쾅!

제갈려는 탁자에 세 차례 주먹을 내려치곤 손을 들어 올리더니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점소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부엌문을 세 번 두들겼다.

뭔가 이상했다.

‘혹시’ 싶었지만, 주변을 둘러보자 ‘역시’라는 확신으로 다가왔다.

시후는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게 아닌가 싶어 물었다.

“주문 끝난 거야? 설마 삼 인분?”

“역시 눈치가 빠르네.”

“아니, 우리가 뭘 먹을 줄 알고?”

시후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제갈려는 검지를 좌우로 까딱였다.

“남자는 음식 투정을 하지 않는다.”

제갈려의 말에 시후는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뻥긋거렸다.

그러기를 수초 후, 시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지극히 평범했다.

“······ 넌 여자잖아.”

“이곳 규칙이 그래. 일단 먹어보면 낯간지러워도 또 오고 싶을걸?”

“이런 곳을 또 찾는 머저리가 세상에 얼마나 있겠어?”

시후가 의문을 제기하기 무섭게 머저리가, 아니, 손님이 들어왔다.

콰앙!!

“손님 받아라!”

제갈려가 문을 걷어찬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남자의 목소리 또한 그에 뒤처지지 않았다.

덕분에 시후의 입에선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만, 두 사람은 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시후도 문으로 고개를 돌렸고, 곧 가슴에 새겨진 ‘팽’이라는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쏟아지는 시선 덕분에, 빈자리를 찾던 그의 시선도 자연스레 이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어? 형님, 누님들 왜 여기 계신 겁니까?”

철우.

북경에서 헤어졌던 팽철우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물었다.

- 88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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