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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82화 (64/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82화 추격 (4)

사라진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조금 전 검후가 건너느라 뒤집혔던 바닥은 원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시후가 뒤를 돌아보자, 널브러져 있어야 할 화살들도 사라진 상태였다.

‘불안하다.’

1인 미궁에 들어오게 되며 NPC들과 떨어졌다.

시후는 여태껏 자신의 정체를 들켜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하지만, 덜컥 그 상황이 닥치자 걱정이 몰려왔다.

지금까지 쌓아 올렸던 관계가 어긋나지 않을까.

그로 인한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하지만, 그보다도 가장 시후의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건 다름 아닌, 그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을까 싶은 두려움이었다.

그러한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자, 시후는 자신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집중하자. 고작 게임이야.”

시후는 고작 게임이라는 말로 자신의 감정을 속이며 주변을 살폈다.

제갈려가 없으니 기문진식이 어디서 어떻게 발동할지 알 수가 없다.

자신의 힘만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시후는 기억을 더듬었다.

제갈려가 어떤 식으로 기문진식을 찾아냈는지.

‘어렵지 않아. 위화감이 들지 않은데 위화감이 들면 기문진식이 있다고 보면 돼.’

검후가 뛰어넘었던 바닥을 유심히 바라봤다.

자신이 서 있는 곳과 전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의심 어린 마음을 가졌기 때문인지 위화감이 들긴 했다.

창을 뻗어 바닥을 툭툭 건드렸다.

고작 이 정도로는 뒤집힐 리 없으니 한 발을 내디뎠다.

바닥은 견고했다.

그렇지만 시후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언제라도 벽을 박찰 준비를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1인 미궁에 들어오기 전과 다르다고 말하듯, 중간까지 바닥이 뒤집히는 일은 없었다.

천장이 무너졌을 뿐.

시후는 쏘아진 화살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돌무더기를 튕겨내지 않은 건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다.

바닥까지 폭삭 꺼졌으니 말이다.

“조질 뻔했네.”

시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나아갔다.

걸음이 조금 더 신중해졌다.

다고 구불거리던 통로가 곧아졌다.

뭔가 설치하기 좋은 장소다.

보이지 않는 위화감을 찾기 위해 부단히 눈과 손을 움직였다.

삼분지 일쯤 갔을 때 뭔가 손끝에 걸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극도로 얇은 실.

조금만 더 힘을 주었다간 끊어졌을 것이다.

이후, 나아가는 속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시간 없다고······.”

소모되는 시간만큼 안전은 확보되었지만, 속절없이 줄어드는 시간이 너무나도 야속했다.

‘준동-숨어드는 그림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볼 때, 시간은 시후의 편이 아니다.

긴 통로를 빠져나온 뒤부터 속도를 다시 올렸다.

적당히 화살을 쳐 냈고, 바닥이 꺼지거나 천장이 무너지는 위험을 감수했다.

꺼지는 바닥을 피해 벽을 좌우로 걷어차며 나아가는 찰나, 길이 크게 확장되었다.

“이거, 답도 없는데······.”

이 정도 너비의 땅이 꺼지면 꼼짝없이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패하게 만든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시후는 자기 생각으론 성큼성큼.

하지만, 누군가가 봤다면 엉금엉금 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속도로 나아갔다.

문제는 그 걸음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멈췄다는 점이다.

“하긴, 함정만 있으면 심심하겠지.”

청강시가 나타났다.

숫자는 총 다섯.

초식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주술로 강화된 청강시도 아닌지라, 몇 번 쓱쓱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고작 다섯으로 끝날 리 없다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열이 나타났다.

청강시가 스물까지 늘어난 다음에는 백령강시 다섯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청강시 스물보다야 백령강시 다섯이 더욱 강력했다.

“이거 제법 뒤에 등장해야 할 미궁 같은데······.”

오픈하고도 한참 뒤.

처음으로 발생할 가장 큰 사건 ‘끝나지 않은 위협’의 미궁이 아닌가 싶었다.

백령강시 스물을 처리하자 불안감이 성큼 다가왔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시후는 앞을 바라보며 어느 노랫말 가사를 고저 없이 중얼거렸다.

전방에서 뚜벅뚜벅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완벽에 가까운 속도로 걷지 않는 이상, 들려오는 발소리는 하나였다.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틀리지 않았다.

다만, 강시처럼 보이지 않았다.

“네놈은 누구냐.”

게다가 말을 걸어왔다.

다만, 시후가 노래를 중얼거렸을 때처럼 음정의 고저가 없었다.

지나치다가 들었다면 알아듣기 힘들었을 것이다.

생강시가 분명하다.

다만, 불완전한 녀석이다.

고저 없는 목소리와 무감정한 눈빛에서 알아차렸다.

“다시 한번 더 묻겠다. 네놈은 누구냐.”

“네 아빠다.”

* * *

시후는 가루로 흩어지는 생강시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아빠 맞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시후의 성별은 남자니깐, 굳이 분류하자면 아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먹힐 리가 있겠는가.

불완전한 생강시는 시후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고, 완전한 생강시도 아닌데 시후가 고전할 리 만무했다.

“책?”

생강시가 사라진 자리에는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보상이겠거니 싶어 책을 주워들었다.

[‘정혼대법(整魂大法)’을 획득했습니다.]

[‘정원대법’은 ‘일원신공’으로 인해 익힐 수 없습니다.]

[특정 NPC에게 전할 시 ‘끝나지 않은 위협’이 발동합니다.]

“아직 준동도 안 끝났는데 무슨······.”

배교의 재등장이 되는 ‘끝나지 않은 위협’은 발생해서도, 발생할 수도 없는 사건이기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시후가 정혼대법을 챙겨 넣자, 곧 바닥에 금이 쩍쩍 가기 시작했다.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금은 벽을 타고 천장까지 번졌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자마자 시후는 자리에 멈췄다.

굵직굵직한 금들은 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더는 나아갈 곳이 눈에 보이지 않자 사방이 부서져 내렸다.

[1인 미궁 ‘심처의 끝자락’을 성공적으로 돌파하셨습니다.]

눈앞에 뒤집힌 바닥이 보였다.

미궁으로 끌려가기 전 자신이 있던 곳이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혹시라도 다 넘어간 건가 싶어 걸음을 뗐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다.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듯했다.

사방이 막혀 있었다.

창을 조금 들어 올려보자, 이내 무언가에 닿은 듯 창이 나아가질 못했다.

고작 한 평 남짓한 공간에 갇힌 셈이었다.

시후는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해 보았다.

‘자력으로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가?’

대답은 금방 나왔다.

시후는 바닥에 주저앉아 보이지 않는 벽에 등을 기댔다.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억지로 달려들 필요가 없다.

기다리고 있으면 제갈려가 해결해 줄 것이다.

막연한 기대감이지만, 기대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추적을 통해 ‘준동-숨어드는 그림자’를 완료하십시오. 01:39:41]

다만, 시간이 줄어들수록 임무를 완료할 수 있다는 확신도 점점 줄어들었다.

[간불무로진이 사라집니다.]

“억!”

시야에 간불무로진이 해제되었다는 글자가 보임과 동시에 시후는 뒤통수를 땅에 찧었다.

마침 창을 손에 쥐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뒤편에 있는 사람이 크게 다칠 뻔했다.

땅에 드러누워 가슴을 쓸어내리는 찰나, 제갈려가 허리를 숙이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주 편하다?”

“편하긴 개뿔.”

“안방처럼 아주 편하게 드러누우셨는데 무슨 아닌 척을 해?”

제갈려는 간불무로진을 해제하는 데 적잖은 힘이 들었는지, 눈 밑이 퀭하게 변해 있었다.

곧 자리에서 일어난 시후는 제갈려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시후의 행동에 제갈려는 역시나 손을 쳐냈다.

이전에도 그렇고, 제갈려는 자기보다 어린 시후가 머리에 손을 올리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야,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내가 너보다······.”

“고생했어.”

시후의 칭찬이 낯설었는지, 제갈려는 잠시 웅얼거리더니 얼굴을 붉히며 몸을 돌렸다.

다분히 욕의 비중이 높았지만, 화가 나서 욕했다기보단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강했다.

모두가 좌우의 벽을 걷어차 가며 뒤집히는 바닥 구역을 통과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이 휙 꺾이더니 그 끝이 나타났다.

제법 큰 공동이었지만, 사방이 틀어막혀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나 수상쩍군.”

공동 한가운데는 모두의 이목을 잡아끄는 불상이 있었다.

일반적인 황동 불상이 아니었다.

마치 지옥에서나 볼법한 핏빛으로 물든 불상이었다.

매우 이질적이었다.

대놓고 ‘나 함정이오’라고 광고하듯 자리 잡았으니깐.

다들 의심 어린 눈빛을 교환하는 사이, 시후는 제갈려의 팔을 쿡쿡 찔렀다.

“저거 어떻게 작동해?”

“내가 보기만 하면 척하고 알아차리는 능력이라도 있는 줄 알아?”

“이미 알아냈으니깐 그렇게 여유롭게 있던 거잖아.”

시후가 단정 지으며 말하자, 제갈려는 잠시 우물쭈물했다.

시후가 잘못짚은 건 아니었는지, 곧 귓속말로 알려 주었다.

다들 불상을 제외하고 엉뚱한 벽면을 어루만지는 사이, 시후는 성큼성큼 핏빛 불상으로 다가갔다.

누군가 말릴 틈도 없었다.

불상 머리를 반쯤 뽑더니 뒤를 바라보게 돌렸다.

그 상태로 다시 꽂아 넣었다.

갑작스러운 시후의 행동에 다들 놀라기 무섭게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불상이 입을 벌리더니 입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벽에 닿았고 벽에는 통로가 생겨났다.

“······ 결과야 좋았지만, 앞으로는 그런 돌발적인 행동은 자제하게.”

추나행이 표정을 굳힌 채 시후를 나무랐다.

시간만 촉박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대놓고 이목을 끄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야 명성이 올라가겠지만, 그와 반대로 이런 돌발적인 행동은 내부에 적을 만드는 행동이니깐.

추나행도 그 점을 지적해 준 것이었다.

물론, 그와의 호감도가 조금 더 낮았다면 이런 행동은 감점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추나행이 나선 덕분에 몇몇 인원은 나서지 못하고 입맛만 다셨다.

시후는 불만 어린 표정을 짓는 얼굴들을 기억해 두었다.

정파라고 죄다 인성 좋고 성인군자들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 걸러야 할 놈들은 거르는 게 옳았다.

대표적으로 화산의 교초혼이 그러했으니깐.

“이런 술법을 사물에 펼칠 수 있다니······. 대체 누가······.”

그 사이, 운허가 벽에 생겨난 통로를 살펴보며 탄식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엄청난 수준의 고등 술법을 본 것에 관한 경이로움을 느끼는 한편, 하필이면 그게 배교의 비밀 통로에 있다는 것에 골머리를 앓는 듯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일단 설명부터 해 주게.”

“음······ 일단, 벽 뒤에 감춰진 통로를 드러내는 이 술법은 도무지 알 방법이 없으나, 저 안에 펼쳐진 술법은 우리가 겪어 봤던 것과 동일하네.”

“어디론가 이동한다는 말인가?”

“그렇네.”

추나행은 검후를 슬쩍 바라봤다.

혹시 모를 위험이 있을 때는 가장 최고수가 먼저 감내해 주는 게 좋았으니깐.

검후도 그런 추나행의 은근한 눈빛에 담긴 의미를 알아채곤 앞으로 나섰다.

“두 번 다시 이용하기 싫었는데 말이야······.”

남궁천이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시후가 앞장섰다.

수천 번을 경험한다고 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감각에 구토가 치밀어올랐다.

시후가 질끈 감았던 눈을 떠보자, 먼지가 한가득 쌓인 건물 안에 들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좌측에 문이 열려 있었다.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자, 끝없는 산이 펼쳐진 것이 보였다.

시후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앞서 왔던 추나행의 시선은 아래를 향한 채 올라올 기미가 없었다.

폐사당으로 짐작되는 건물 주변에는 수백 쌍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눈으로 뒤덮여 있었기에 놓치려야 놓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발자국은 수십 갈래로 흩어져 있었다.

- 83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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