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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80화 (62/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80화 추격 (2)

“월광귀곡!”

시후는 창을 허리춤으로 들어 올린 뒤 허리를 숙였다.

왼팔을 잡아당겨 창을 끌어당김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창을 밀어내듯 돌렸다.

그 중심축은 창대가 맞닿은 허리.

덕분에 창은 반 바퀴 회전하였고, 시후는 그 회전력을 원동력 삼아 발을 땅에서 뗐다.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사람이라면 기세를 꺾는 데 도움이 됐겠지만, 상대가 강시인지라 별 의미는 없었다.

물론, 사방으로 쏘아진 창기는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주변을 에워싼 강시들은 복부를 크게 베이며 앞으로 고꾸라질 듯 상체를 숙였다.

그렇단 말은 머리가 앞으로 쏠렸다는 걸 의미했다.

“교천영신!”

땅에 발이 닿는 순간, 시후는 그대로 땅을 박차며 몸을 띄웠다.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창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시후의 창에 강시들의 머리는 으깬 두부처럼 박살이 났다.

그래봤자 셋.

시후는 창을 당기며 뒤에서 달려들던 강시의 안구에 창을 찔러 넣었다.

두개골 안쪽까지 파고든 창.

강시의 움직임은 그대로 멈췄지만, 시후는 찰나도 멈출 수 없다.

오른발을 뒤로 뻗어 걷어참과 동시에 앞으로 창을 찔러 넣었다.

“일섬!”

창을 생각보다 깊게 찔렀는지, 창대에 희끄무레한 물체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손바닥으로 가볍게 쓸어내리며 닦아냄과 동시에 창끝을 붙잡았다.

“파월아!”

창끝을 붙잡았기에 파월아의 반경이 배가되었다.

다만, 소모되는 내공 또한 그와 비례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강시들의 머리가 잘 익은 홍시처럼 떨어졌지만, 아직이었다.

“빌어먹을 끝이 없네, 구룡!”

내공은 이미 절반 이하로 떨어진 지 오래였기에, 시후는 십창을 적절히 섞어 사용했다.

곁눈질로 살펴보니, 운허와 준혁의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에 반해 남궁천은 여전히 쌩쌩했다.

검후야 말할 것도 없고.

그 순간, 옆구리를 찢어발길 듯 찔러 오는 손.

시후는 창대를 휘둘러 강시의 목을 후려쳐 분지른 다음, 가슴을 걷어찼다.

목뼈가 부서졌을 테지만, 강시는 그 정도로 죽지 않는다.

발에 내공을 실어 머리를 짓밟았다.

“징글징글하네.”

아직 남은 강시의 수는 약 이백.

소진된 내공을 생각하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수였다.

문제는 내공.

완전히 바닥나면 회복이 더디기에 불필요한 소모를 줄여야 했다.

다만, 놈들은 수백이 줄었음에도 여전히 미친 듯 달려들었다.

“참월! 월선일도!”

연이어 내공 소모가 심한 초식을 펼쳤다.

순간적으로 내공이 빠져나가자 단전이 허해졌지만, 그래도 순식간에 열을 해치웠다.

남은 내공은 삼 할 정도.

시후는 검후와 남궁천이 조금 더 힘내 주길 바라며 느긋하게 움직였다.

이미 두 사람이 베어 넘긴 강시의 수만 해도 칠백은 족히 될 것이다.

그래도 둘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막야와 간장, 두 검을 들고 있는 이상, 두 사람이 핵심이었으니깐.

“천뢰폭(天牢爆)!”

남궁천의 검 끝에서 검기가 튀어나왔지만, 그건 검기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거대하고 아름다웠다.

게다가 이름에 어울리는 엄청난 폭발력까지.

땅거죽이 뒤집히며, 그 위에 서 있는 강시는 모두 육편(肉片)으로 변하였다.

“죽이는군.”

시후가 금사박투를 손에 넣으며 남궁천과 얼추 비슷한 수준에 다다랐지만, 간장검을 손에 쥔 남궁천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해도 무방했다.

준혁은 말할 필요도 없고, 운허보다도 더욱 강력한 존재감을 뽐냈다.

남궁무의 죽음에 관한 애도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최소 셋의 목이 달아났다.

천뢰폭 같은 강력한 초식을 펼치면 열은 기본이었다.

남은 수는 백 남짓.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지만, 검후와 남궁천만으로도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내공을 아낄 겸 뒤로 물러났다.

곧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제갈려를 찾아 나섰다.

“이쯤인가?”

다소 눈에 익숙한 지형이었다.

걸음을 옮겨 골목으로 들어섰다.

“나와.”

시후의 말에 갑자기 허공이 갈라지며 제갈려가 모습을 드러냈다.

파리하게 질린 안색을 보면 당장에라도 쓰러져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무림에 몸을 담고 있다고 한들, 이 정도로 참혹한 광경은 평생 두 번을 보기 힘들 것이다.

온전한 강시는 찾을 수 없었다.

그야 당연했다.

머리가 박살 나거나 떨어져야 움직임을 멈추니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지금의 이곳은 지옥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제갈려를 데려오자 상황은 정리되어 있었다.

“후······.”

준혁도 제법 피로한 듯했지만, 서장에서 마적단 씨를 말리고 다녔던 그는 죽음에 익숙해 보였다.

곧 담담한 얼굴로 도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워낙에 많은 강시를 베었던 탓인지, 그도 아니면 강시들의 원통한 죽음 때문인지 몰라도, 진득하게 묻은 피는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강시의 옷에 도를 문질러 피를 닦더니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늦는군.”

준혁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싸움이 끝날 때까지 정의맹 본대는 도착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다.

“잠시만요.”

시후는 곧장 주위를 살피곤 마땅한 건물이 없자, 잠시 양해를 구하곤 성문으로 향했다.

성문 뒤편과 성벽 위에는 제압당한 배교도들이 여전히 누워 있었다.

‘이쪽엔 볼일이 없다.’

성루를 향해 다가갔다.

성루는 그리 크지도 높지도 않았지만, 제 역할을 하기엔 충분할 것이다.

시후는 품을 뒤적여 화섭자를 꺼내 들었다.

곧바로 성루에 불을 질렀다.

“빨리 와라······.”

불길은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이 정도라면 저 멀리서도 확인 가능할 것이다.

성벽을 내려가자, 다들 아래쪽에 와 있었다.

“저기는 있기가 좀 괴로워서······.”

제갈려가 바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천이 훌쩍 넘는 시체 속에 있는 건 정신적으로 고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위를 바라보자 성루는 부정한 것들을 모조리 집어삼키겠다는 듯, 제 몸을 불사르며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짝!

시후는 손뼉을 치며 주의를 끌었다.

불장난을 감상할 시간적 여유는 없다.

시간은 시후의 편이 아니다.

손가락을 뻗어 산봉우리 위에 자리 잡은 배교의 내당을 가리켰다.

부교주는 저곳으로 사라졌으니 가야 할 곳은 명확했다.

“호법을 서줄 테니 운기조식을 하게.”

검후의 말에 다소 피로한 준혁과 운허가 눈치를 살피더니 냉큼 바닥에 주저앉았다.

남궁천도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하다가 바닥에 앉았다.

하지만, 시후는 앉지 않았다.

“넌?”

“아, 제가 익힌 심법이 워낙 특이해서 행공으로도 충분해요.”

“아무리 행공이 가능하다고 한들, 좌공만 못할 텐데?”

검후가 괜한 자존심을 부리지 말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어차피 NPC들과는 회복하는 속도 자체가 다르다.

시후는 앉는 대신 화제를 돌리기 위해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놈은 왜 저쪽으로 향했을까요?”

검후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겪은 세월을 담은 듯 제법 깊은 주름이었다.

“쓸데없이 말을 돌리는구나.”

“말을 돌리는 게 아니라 그만큼 중요한 이야기라서요.”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면, 어디 네가 생각해 둔 이야기부터 꺼내 보아라.”

목을 가다듬으며 손가락으로 재차 배교의 내궁을 가리켰다.

“도망을 칠 거면 산 아래로 도망쳐야지 왜 위로 도망쳤을까요? 저곳을 수성하러 올라가진 않았을 텐데 말이죠.”

검후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그런 검후를 대신해 대답은 제갈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네 생각은 저기에도 우리가 지나왔던 것과 비슷한 게 있었을 거란 말이야?”

정답이다.

하지만, 정답이라 말해 줄 순 없었다.

어떻게 아느냐 묻는다면 할 말이 없으니깐.

시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지 않다면 미치지 않고서 저 위로 도망쳤을 리가 없잖아? 아마도 도망칠 구멍이 마련돼 있겠지.”

“그러면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당장 올라가서······.”

“어차피 놈이 달아난 지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 추격 전문가는 모셔야 하지 않겠어?”

“전문가?”

제갈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지만, 시후는 대답 대신 뒤돌아 성문을 향해 다가갔다.

힘을 주어 성문을 열자, 저 아래 씨근덕거리며 달려오는 본대와 가장 앞장선 한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문이 열리자 열심히 달려오던 추나행의 눈의 좁쌀만 한 눈이 콩알만 하게 커졌다.

“자기 눈보다 작은 흔적이라도 놓치지 않는 분이지.”

시후의 말에 제갈려와 검후는 웃음을 지었고, 영문을 모르는 추나행은 문 앞에 당도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 *

강시는 이미 죽었던 시체를 움직이기에, 재차 죽으면 부패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졌다.

그 탓에 내궁으로 향하는 길은 고약한 썩은 내로 인해 코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그 탓에 자연스레 달리게 되었다.

즐비한 시체를 지나자 한결 숨쉬기가 편해졌다.

“족히 천은 넘어 보이던데, 도무지 얼마나 높은 경지에 다다라야 저게 가능할지 궁금하군.”

“상흔을 못 보았는가? 현월문의 무공도 그렇지만, 남궁세가의 흔적도 적지 않았네.”

“그야 한 손 거들었을 테니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한 손 거든 정도가 아니었네. 족히 기백은 넘었을 정도로······.”

뒤편에서 두런두런 대화가 들려왔다.

간장검의 힘을 빌렸지만, 그 또한 남궁천의 능력이다.

시후가 곁눈질로 옆에 걷고 있는 남궁천을 바라봤다.

자신의 이야기에 귀가 쏠릴 법도 하지만, 그는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러는 사이 내성은 점차 가까워졌다.

추나행은 신중했다.

바닥을 샅샅이 훑고 주변에 자라난 나무 하나 허투루 보는 법이 없었다.

내성 문에 다다를 때까지 그의 신중함은 이어졌다.

하지만, 문에 다다를 때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추나행은 곁에 선 검후를 바라보았고, 검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추나행이 천천히 문을 밀었다.

“어?”

추나행이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열린 문 뒤편으로 잘 꾸며진 장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부는 고요했다.

하긴, 검후가 아무런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누군가 있다면 검후 이상의 고수일 테니 당연한 결과다.

“흩어져서 찾아보시죠.”

시후가 앞으로 나서며 의견을 피력했다.

더 시간을 지체했다간 정말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아직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면 저 밑에 강시들과 함께 싸웠을 것이고, 함정을 팠다면 문을 넘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테죠.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과감한 결단력으로, 놈들을 추적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강력한 의지를 담아 단숨에 말을 내뱉었다.

이미 한 시간이 지났다.

시후의 말에 추나행은 갈등하는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혹시라도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최소 2인 1조를 이루도록 했다.

시후는 곧바로 제갈려와 남궁천을 붙잡았다.

그에 남궁천은 난감한 표정으로 턱을 긁적였다.

“우리는······ 좀 그렇지 않은가?”

남궁천과 제갈려.

두 사람은 추적이나 뭔가를 찾는 것에 관한 재능은 없었다.

남궁천이 간장검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복수심에 간장검이 응한 것에 불과했다.

제갈려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고분들을 찾기야 했지만, 추적에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 고문서를 뒤적이고 확인해 가며 찾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남궁천의 의문도 틀리진 않았다.

하지만, 비밀 통로를 찾을 가능성이 가장 컸던 건 이 두 사람이다.

시후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을 이끌고 걸었다.

내궁 담벼락을 따라 쭉 걷다 보니, 주변과 비교하면 유달리 볼품없는 조그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로 다가가자 제갈려가 코를 킁킁거렸다.

“익숙한 냄새.”

제갈려의 말에 시후는 웃으며 문을 밀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오래 묵은 퀴퀴한 종이 냄새가 진동했다.

입구를 제외한 삼면이 책장으로 채워진 서고(書庫)였다.

시후는 곧장 책장으로 다가가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배교 놈들의 탈출 통로는 분명 이곳에 있었다.

- 81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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