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76화 배교 총타 (4)
사람이 죽고 나면 혼령이 빠져나오는 법이었다.
그 혼령이 명계로 간다면 아무 탈이 없으나, 원한을 품고 구천을 떠돌게 된다면 사령으로 변한다.
쉬이 생기기도 어려운 사령이 숲을 이룬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령배임은 정말 만들기 난해한 진법과 술법의 결합물이었다.
그렇기에 돌파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제가 조금씩 조금씩 사령들을 유인해서 가둘 수는 있긴 한데, 그러면 시간이 꼬박 하루는 소모될 것 같아요.”
시간과 싸움을 해야 하는데 하루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검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지나가면 저것들이 공격이라도 하는 건가?”
“아뇨, 실체가 없는 기실들이 어떻게 공격하겠어요.”
“그럼 그냥 지나쳐도 상관없지······.”
“절대 안 돼요.”
제갈려는 검후의 말을 단호히 끊었다.
그녀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당장에 우리를 해하지는 못하지만, 몸에 덕지덕지 붙을 거예요. 아무리 못해도 족히 수십 마리의 귀신을 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다닐 테죠. 기가 허약한 사람이라면 사흘 내로 피골이 상접한 채 죽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온갖 악재가 겹칠 테죠.”
“악재라면?”
“사소한 걸 예로 든다면 화장실 바닥이 무너져 똥통에 빠질 테고, 객잔에 시킨 음식에 죽은 생쥐가 빠져 있을 수도 있겠죠.”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이야기였다.
“사소하지 않다면?”
“급히 칼을 뽑아야 하는 상황인데 검병이 혁대에 엉켜서 안 뽑히거나,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쳐서 맞는 정도? 아무튼,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재앙을 다 몰고 다닐 거라고 보면 돼요.”
제갈려의 말에 다들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지나쳤다간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소리였으니깐.
“그럼 준비 좀 할게요.”
다들 침묵으로 동의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한 사람이 있었다.
시후는 몸을 일으키는 제갈려의 손목을 붙잡았다.
“왜?”
제갈려가 다소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물었지만, 시후는 웃으며 자운유성창을 툭툭 건드렸다.
한시가 바쁜 상황인지라 제갈려의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다.
“시간 없으니깐 빨리 말해.”
“이거면 그런 준비 과정 다 필요 없지 않아?”
그 말에 제갈려는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냐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그건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시후는 대답 대신 제갈려의 손을 끌어당겨 자운유성창으로 이끌었다.
“어?”
그녀가 놀란 눈으로 시후와 자운유성창을 번갈아 바라봤다.
제갈려가 자운유성창의 효과를 정확히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기운이 어려 있는지는 대략적으로는 알 것이다.
놀란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고.
그녀는 곧바로 돌려받았던 청홍검을 건네주었다.
“자, 이것도 가져가!”
일전에 청홍검과 공명을 일으킨다고 했던 말을 잊지 않은 걸 보니.
역시 기억력이 좋았다.
제갈려의 표정은 한껏 격양되어 있었기에 다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 남궁천도 이유를 알아차린 듯 손가락을 튕기며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 그 창이라면······ 가능하겠군.”
“그렇죠.”
시후는 남궁천과 눈을 마주치며 씩 웃었다.
자운유성창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다른 것들도 있겠지만, 시후가 생각하기엔 사특한 기운이 감히 침범하지 못한다는 게 가장 컸다.
상성에서 절대적 우위에 선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할 필요가 없었으니깐.
제갈려와 남궁천은 시후의 뒤에 바짝 붙어서 자운유성창을 붙잡았다.
그러곤 멀뚱멀뚱 서 있는 세 사람을 향해 어서 오라 손짓했다.
“어설프게 가두는 것보다는 이게 더 효과적이에요. 어서 이 창을 붙잡아요.”
“맞습니다. 속는 셈 치고 한번 잡아 보시죠.”
제갈려의 말에 다들 반신반의하며 자운유성창을 붙잡았다.
여섯 명이 창 하나를 붙잡은 채, 한 덩어리가 되어 앞으로 나아갔다.
숲에는 짙은 그늘이 져 있었다.
아무리 드높은 나무들이 자랐다지만, 그 점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어두웠다.
“중간중간 시꺼먼 게 보이시죠?”
제갈려의 말마따나 뭔가 진눈깨비처럼 허공을 노닐고 있었다.
수상쩍다기보다는 음습한 기운마저 맴돌았다.
검은 기운은 급속도로 다가오다가 급히 방향을 틀어 주변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멀리까지 도망치진 않고 주변을 맴돌았다.
점점 몰려드는 검은 기운들은 서로 뭉치며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함박눈 크기에서 어른 주먹만 한 크기로 변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검후는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르고 싶은 듯 검병에 손을 얻었다가 떼기를 반복했다.
“저게 사령이라는 놈들인가?”
“맞아요.”
“······ 벨 수 있는 건가?”
“현령문의 무공은 정심한 편이니 상처는 낼 수 있겠지만, 완전히 소멸시키거나 하는 건 힘들 거예요. 하지만, 이 창이라면 그냥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눈을 녹이듯 없앨 수 있죠.”
제갈려의 대답에 다들 시후의 자운유성창을 내려다봤다.
분명 대단한 창임을 과시하듯 멋들어지긴 했지만, 혼령마저 벨 수 있다는 말은 도무지 믿기 힘들 것이다.
“그보다 이것들과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은 아닌 것 같소만.”
준혁이 불안한 듯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매번 호탕한 남아의 기개를 보이는 그였지만, 사령이라는 미지의 존재에 관한 두려움은 떨칠 수 없었나 보다.
“얘들도 얼마 만에 보는 사람이겠어요? 소멸하지 않는 수준에서 접근하는 거겠죠. 조금 더 바짝 모여요. 재수 없게 붙들리면 골치 아플 테니까.”
사령들이 더욱 가까이 거리를 좁히자, 창을 일렬로 서서 잡아야 했다.
어깨를 나란히 하자 바깥쪽이 다소 위험했으니 말이다.
여섯 명은 몸을 밀착한 채로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 움직였다.
사령배임의 끝이 다가오는 건지, 검은 기운은 이전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곧 끝날 거예요.”
제갈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숲의 끝자락에는 밝은 빛이 비치고 있었으니깐.
숲을 빠져나오자 검은 기운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듯, 경계선을 이룬 채 발버둥 치고 있었다.
“두 번 다시 지나가기 싫군.”
“동감입니다.”
사람들이 진절머리를 떠는 가운데, 제갈려는 우울한 표정으로 숲을 바라봤다.
“배교는 정말 악질적이네요.”
“갑자기 왜 그러는가?”
“그들이 구주를 떠돌며 사령들을 직접 잡으러 다니진 않았겠죠. 혼을 운반하는 건 정말이지 고등 술법이니깐요.”
“그 말은 설마?”
“아마도 저기 있는 사령들은 아마 진을 만들 때······.”
제갈려는 말끝을 흐렸다.
뒷말은 하지 않아도 알아듣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혼은 진법에 가두고, 몸은 강시로 만들었겠군.”
제갈려의 뒷말을 이어받은 준혁의 말에 장내의 분위기는 숙연하게 변했다.
다들 숲을 돌아보며, 바둥거리는 검은 기운들을 향해 짧게 합장했다.
* * *
보이는 모든 것들이 허상이던 2구역과 오감의 존재를 지워버렸던 3구역은 각기 제갈려와 검후의 선전으로 쉽게 넘어올 수 있었다.
제갈려는 허상 속에서 단 하나의 길을 찾아내 인도했고, 검후는 오감을 대신해 압도적인 내공으로 모조리 밀면서 지나갔으니깐.
다만, 검후는 무식할 정도로 내공을 소진한 탓에, 한참이나 운기조식을 취해야 했다.
검후가 운기조식을 취하는 동안 제갈려는 천로수변 속에서 4구역을 분석했다.
“방법은 있어?”
사실 분석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번 4구역이 어떠한 진인지는 어린아이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했다.
시후의 질문에 제갈려는 침묵했다.
깊이 생각에 잠긴 듯 고뇌했다.
바로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닌지라 한참을 기다렸지만, 제갈려는 도통 눈을 뜰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다시금 재촉했다.
“생로(生路)라던가 생문(生門)이라던가 있을 거 아냐? 네가 누구보다도 진법에 관해 잘 아니깐······.”
꽈르릉!
제갈려의 미간이 찌푸려짐과 동시에 벼락이 내리쳤다.
운기조식에 빠진 검후를 제외한 다섯 사람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3구역을 지나 오감이 돌아왔을 때, 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하늘 가득 먹구름이었다.
단순히 먹구름만 끼였다면 상관이 없었겠지만, 무엇이 그리도 성이 났는지 하늘은 잔뜩 으르렁대고 있었다.
아닐 거라 현실을 부정했으나, 아니길 바라는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진법의 극의에 다다르면 술법 수준의 진법을 구사할 수도 있다곤 하지만, 호풍환우(呼風喚雨)도 아니고 벼락을 동원하는 진법의 등장에 다들 아연실색했다.
처음에는 다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꿈이길 바랐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으니깐.
하지만, 벼락은 끊임없이 떨어졌다.
간간이 떨어진다면 모를까, 숨 한번 내쉴 때마다 벼락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니 날붙이를 들고 지나가다간 목숨이 열 개라도 보존하기 힘들 것이었다.
그렇다고 무기를 놓고 지나가자니 뒤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몰랐다.
시후 일행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벼락이 떨어지는 곳은 그다지 길지 않다는 점이로군.”
위안 삼을 요소는 단 하나 그것뿐이었다.
계속 지켜본 결과, 벼락이 떨어지는 구간은 50장에 불과했다.
전력을 다한다면 수초 내로 지날 수 있는 거리다.
“저 두 배만 되었어도 지나가기 힘들었을 테지.”
검후는 어느새 운기조식을 마치고 일어나 있었다.
그녀의 말에 다들 일말의 희망 섞인 눈빛을 보냈다.
산을 무너트리고 바다를 가를 수 있다는 팔황의 일원이 아닌가.
검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려가 다급히 물었다.
“저기를 지날 수 있으신가요?”
“혼자서는.”
검후의 대답은 곧 나머지 다섯은 짐에 불과하다는 소리였다.
모두가 바라는 대답은 아니었다.
시후는 입맛을 다시며 조금 전 하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생로는 없어?”
“생로가 있긴 한데, 워낙 빠르게 변해서 내가 한순간이라도 집중하지 못하면 끝이야. 게다가 날붙이를 가지고 갈 수도 없어. 차라리······.”
제갈려는 말끝을 흐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라고 딱히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시후는 손에 들린 자운유성창을 내려다봤다.
“쩝······. 진법도 사술이나 마공으로 분류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진법은 사술로 분류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운유성창은 2구역과 3구역에서 별다른 쓸모가 없었다.
하물며 4구역은 거론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혹여라도 지나가는 시도를 해 볼 수야 있겠지만, 대가는 목숨이 될 것이다.
시후가 투덜거리는 사이, 제갈려는 생각을 정리한 듯 눈을 반짝이며 검후를 바라봤다.
“그보다 검후께서 지나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건, 벼락을 막으실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가능은 하지만, 내 한 몸 지키는 것과 모두를 지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지. 지켜야 할 반경이 늘어나는 만큼 내공의 소모도 심해질 테니 말이다.”
검후는 혹여나 제갈려가 부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제갈려는 빙긋 웃었다.
“가능하시다는 말씀이네요?”
“가능은 하지만······ 동시에 여러 개가 떨어진다면 끽해야 두세 번이 한계다. 이동 거리는 10장도 못 미칠 테고.”
떨어지는 벼락을. 그것도 동시다발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말은 허언이 아닐 것이다.
과연 팔황의 일인이라 엄지를 추켜세울 만했다.
“그럼, 검후께서 막아 주시다가 내공이 부족하다 싶으시면 제가 진을 펼칠 테니 운기조식을 하시죠.”
그렇기에 제갈려의 발언은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운기조식은 절대적인 안전이 확보되었을 때나 할 수 있다.
아무리 제갈려의 경지가 일류에 머무른다고 하더라도, 삼류 무인도 알 만한 내용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다들 ‘혹시나’ 하는 눈빛을 보냈고, 제갈려는 특유의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시후는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젠장.’
- 77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