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75화 배교 총타 (3)
모두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띄었다.
추나행은 똥이라도 마려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그 말은 사람이 더해질수록 확률이 올라간다는 말이렷다?”
“음······. 무작정 올라가진 않겠지만, 도움이 되는 사람에 한해선 그렇겠죠.”
“도움이 된다고 함은?”
“아무래도 제가 힘을 써야 하는 부분에선 떨어지니······.”
“검후 님의 도움이 필요하군.”
제갈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문제는 하나로 좁혀졌다.
“검후는 어디 계시길래······.”
검후의 부재.
둘러보겠다며 자리를 떴으나, 얼마나 둘러보고 있는 것인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고 싶지만, 혹여라도 진 안에 들어가 버리면 곤란하니 쉽사리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잠시 찾으러······.”
말을 꺼내던 추나행이 입을 닫았다.
그의 고개는 우측으로 향해 있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다수 인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우측 저 멀리서 느껴진 파동을 못 느낄 정도로 수준 낮은 사람은 없었으니깐.
물론, 제갈려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진이······ 출렁였는데요?”
다들 병장기를 움켜쥐었다.
순간적으로 안개의 벽이 일그러질 정도로 강력한 기의 흐름.
진 안쪽에서 무엇인가 움직였다는 느낌과 동시에 안개는 녹아내리듯 흔적을 감추었다.
순간,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 달려왔다.
운허의 검이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검기로 물들었다.
“웬 놈이······.”
“나다.”
검후의 등장에 다들 머쓱하게 내공을 가라앉혔고, 운허도 헛기침과 함께 검기를 흩어야 했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왔던 방향을 가리켰다.
“보통 진이 아니다.”
“검후께서도 진을 잘 아십니까?”
“요 녀석의 할애비한테 워낙 골탕 먹어서 경험상 아는 정도지. 그보다, 내가 진 주변을 한 바퀴 쭉 둘러봤는데, 못해도 모용······ 아니, 소림사보다 백배는 넓다.”
검후는 가장 큰 장원을 보유한 모용세가를 거론하려다가, 실수를 깨닫곤 소림사로 비유를 바꿨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진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터무니없이 커다란 진이다.
덕분에 모두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분타는 아닌 거 같지?”
배교의 분타로 짐작하고 왔지만, 분타에 이 정도 규모의 진법을 설치하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검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추나행은 심각한 표정으로 수염을 잡아 뜯었다.
그가 뜨문뜨문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아마······ 이곳이······.”
“배교의 총타겠지.”
검후의 말에 다들 신음을 흘리며 전방을 주시했다.
만약 총타라면 ‘이곳에 있는 인원으로 충분할까’라는 의문이 자리 잡은 것이다.
못할 건 없지만, 무리할 이유도 없었다.
“일단 돌아가서 각 문파에서 전력을 은밀히 모아야겠습니다. 일단, 가장 가까운 종남과 화산에서······.”
추나행은 빠르게 의견을 나누려 했지만, 제갈려가 그의 말을 끊으며 앞으로 나섰다.
“혹시 검후께선 진 안에 들어왔다 나오셨나요?”
“조금 전 나올 때 강제로 문을 열고 나오긴 했지.”
제갈려의 질문에 검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제갈려는 울상을 지었다.
그녀는 곧 바닥에 천로수변을 꽂으며 주저앉았지만, 표정은 점점 어두워질 뿐이었다.
모두 무슨 일인지 눈치를 살피는 순간.
안개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생명체도 아닌데 움직인다는 표현이 우습지만, 분명 안개는 움직였다.
천천히, 하지만 선명하게.
안개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치 이 앞으로 들일 수 없다는 것처럼 가로막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댈 곳은 단 하나밖에 없다.
어느새 제갈려는 일어서 있었다.
“진이······ 진이 변하고 있어요.”
제갈려는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진이 변하고 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무슨 말이냐 물어보려 했지만, 그녀의 말은 다 끝나지 않았다.
“기존에 펼쳐져 있던 진 아래 숨겨져 있던 진짜 진이 펼쳐질 거예요. 게다가 보아하니, 진이 다 변하고 난 다음에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거예요. 견고해진다는 말로도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변할 테니 말이죠.”
“지금 들어간다면?”
“들어가려면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안에서 발생할 변수를 생각한다면 들어가기가 꺼려지네요······. 빨리 할아버지를 모셔와야 할 것 같아요. 할아버지와 두세 달 정도를 매달리면 방법이 생길지도······.”
제갈려의 목소리는 축 처져 있어, 듣던 이들에게 불안감을 주기엔 충분했다.
덕분에 분위기는 급속도로 암울해졌다.
검후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잘잘못을 따져 봤자 무엇을 하겠는가.
그렇기에 더욱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진의 변화는 더욱 뚜렷해졌다.
진은 자신의 상처를 수복하기 위함인지 몰라도, 안개는 피처럼 붉은색을 띠기 시작했다.
“곧 진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게 될 거예요.”
“저 파괴된 틈도 말인가?”
“네. 잠시 균열을 만든 것뿐이라 곧 복구될 거예요. 더욱 단단하게 말이죠.”
제갈려의 말에 의견이 나뉘었다.
물론, 들어가자는 쪽은 압도적으로 적었다.
들어가지 말자는 사람들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정보가 너무 부족하네.”
아는 것이 힘이고, 모르는 것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비밀 통로를 돌파할 때는 제갈려의 뛰어난 식견으로 극복했다지만, 지금은 확인할 시간이 없었고 정보도 부족했다.
안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모험은 지양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운허는 진입을 고집했다.
그 이유도 타당했다.
“우리가 이곳에 어떻게 왔는지 잊었는가? 기다리다간 시기를 놓칠 걸세.”
지금도 쫓기가 힘들었는데, 몇 개월 동안 붕 떠 버리는 기간이 생긴다면 치명적이다.
그래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운허는 한마디를 더 날렸다.
“평생 고독을 걱정하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흔히들 생활의 기본 요소를 의식주(衣食住)라 표현하고, 식욕과 성욕, 수면욕을 삼대 욕구라고 표현했다.
이중 공통으로 들어가는 게 있었으니, 바로 식(食)이었다.
현재는 고독에 관한 위험성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지 않던가.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들을 확인해야 하는 현 상황에 진절머리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개는 더는 기다려 주지 않겠다는 듯 빈 곳을 메우기 시작했다.
“내 잘못은 내가 바로잡으마.”
검후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짧은 말 한마디를 남기곤, 급격히 아물어 가는 진 속으로 몸을 날렸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누구 하나 만류할 틈도 없었다.
“이 무슨······.”
추나행이 검후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사이, 뒤이어 진으로 몸을 던지는 자가 있었다.
“차 아우!”
놀란 남궁천의 외침과 동시에 시후는 모습을 감췄다.
그 뒤를 이어 제갈려 또한 들어가자 벌어진 틈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안개는 견고한 벽을 세우기 직전이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앞다투어 진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뒤늦게 안개의 벽 너머로 들어간 인원은 운허를 제외하곤 고작 한 명이 전부였다.
* * *
“왜······.”
검후는 뒤따라온 시후에게 왜 따라 들어왔냐 묻기도 전에 연이어 들어온 남궁천과 제갈려를 보곤 입을 닫았다.
그리고 닫히기 직전, 운허와 독고준혁까지 진 안으로 들어왔다.
나가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불길할 정도로 붉은 안개 벽은 이미 견고하게 자리 잡았으니깐.
[불입불출진(不入不出陣)이 해제되었습니다.]
[대마라혈진(大魔羅血陣)에 입장하였습니다.]
[모든 능력이 반으로 감소합니다.]
[일원신공으로 감소 효과가 1할로 줄어듭니다.]
제갈려의 말대로 기존의 진은 사라지고, 숨겨져 있던 진짜 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은 이름부터 흉물스러웠고, 효과는 더욱 흉측했다.
게다가 시후에겐 효과가 미미할지 몰라도, 모든 능력이 반으로 감소한다는 건 엄청난 제약일 게 분명했다.
『숨을 멈춰!』
귓가에 검후의 전음이 들려왔다.
진법 때문에 생긴 현상을 독으로 착각한 듯했다.
쓸데없는 행동이라 생각했지만 혼자 눈에 띌 수는 없었기에, 시후도 그들과 같이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어차피, 조금 지나고 나면 제갈려가 진에 의한 것이란 걸 알아챌 것이다.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뭔가 금제를 당한 듯한 느낌이 들죠? 진의 효과니 당황하지 마세요.”
제갈려의 말에 다들 반신반의하면서도 손을 내리지 않았다.
그중 가장 먼저 손을 내린 건 검후였다.
“그러고 보니 마혁의 진법 중에도 이런 게 있었던 것 같구나.”
“네. 그와 비슷한 종류의 진인 거 같네요.”
“그렇다면 이 진법도 단순히 억제만 하는 게냐?”
검후의 질문에 제갈려는 도리질을 쳤다.
덕분에 운허와 독고준혁의 얼굴엔 그늘이 졌다.
제갈려는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함인 듯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도 확인해 보니 이 주변에는 딱히 특출난 게 없네요. 아마도 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뭔가 더 드러나는 종류의 진일 거예요.”
“우리가 들어온 것을 알아차렸겠느냐?”
“십중팔구는요.”
“그렇다면 시간을 허비할 순 없지.”
검후가 곧장 앞장서려 했지만, 운허가 그녀를 제지했다.
이미 전적이 있는 데다가 진법 안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먼저 앞장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깐.
“려가 앞장서고, 검후께서 보조를 맞춰 주시지요.”
“그게 좋을 것 같아요. 행여 잘못 건드리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들어섰다간 시간을 더욱 허비할 테니 말이죠.”
운허의 의도를 제갈려가 잘 받아주었다.
둘의 만류에 검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가장 앞에는 제갈려, 그 바로 뒤에 검후를 필두로 행렬이 꾸려졌다.
제갈려는 좌측으로 꺾으려다가 뒤를 슬쩍 돌아봤다.
곧 검후의 옆에 바짝 붙었다.
“저기 가장 큰 나무 보이시죠? 밑에서 두 번째 가지를 잘라 주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뭇가지는 잘려나갔다.
곧 앞쪽 바닥에서 마찰음이 들리더니 멎었다.
이곳도 비밀 통로와 마찬가지로 여러 함정이 펼쳐져 있었다.
다만, 비밀 통로에는 설치할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 있었으나, 사방이 확 트인 이곳에선 나무나 바위 하나까지 조심해야 했다.
그때보다 속도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렇기에 우회할 수 있음에도 우회하지 않았다.
최대한 빠르게 나아가야 했으니깐.
“역시, 초입은 간을 보는 수준이네요. 곧 경계선에 들어갈 거니깐 긴장하세요.”
제갈려의 말이 있고 난 뒤, 몇 걸음을 더 걷자 주변 분위기가 일변했다.
[‘대마라혈진 1구역’으로 입장하셨습니다.]
기문진식(奇門陳式)이 설치되었던 구간은 구역에도 포함되지 않는 초입에 불과했다.
진짜는 지금부터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제갈려는 곧바로 바닥에 천로수변을 꽂으며 진을 분석했다.
그녀의 표정이 굳어지는가 싶더니 곧 울상으로 변했다.
“으, 사령배임(死靈輩林)이라니······. 운허 도사님, 혹시 퇴마 관련 술법은 펼칠 줄 아시나요?”
“부끄럽지만, 무당에서도 술법을 펼칠 수 있는 도인은 몇 안 되는지라······.”
운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제갈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들 설명을 기다렸으나 제갈려는 말없이 끙끙대기만 했다.
“려야, 설명을 해 주려무나.”
남궁천은 복잡한 제갈려의 마음을 살살 어루만지듯 물었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면 앞을 가리켰다.
“사령배임은······ 말 그대로 원혼들을 모아 두는 진법 겸 술법이에요. 저 앞에 있는 모든 사물에는 귀신이 있다고 보면 돼요. 나무나 바위, 모든 것에서 말이죠.”
제갈려의 말 덕분에 우거진 나무들로 인해 생긴 그늘은 더욱이 음습해 보였다.
불어오는 바람에 사자의 향기가 물씬 풍겨 왔다.
- 7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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