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74화 배교 총타 (2)
비밀 통로 내부의 공기를 쾌적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중간중간 박혀 있는 야명주로 인해 시야는 나쁘지 않았다.
“내가 앞장서지.”
추나행이 나섰다.
다소 체면을 구기긴 했어도 그의 눈과 경험은 무시할 게 못 되었으니깐.
게다가 그의 곁에 있는 제갈려가 그의 부족함을 채워 줄 것이다.
수십 개의 묘를 털어먹을 정도로 기관과 진법에 통달했으니, 사실상 추나행이 그녀의 보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길다.”
“뭔가 설치해 두기 딱 좋죠.”
“좌측 상단?”
“네.”
아무리 비밀 통로라고 한들, 발각당했을 때를 대비해서 최소한의 장치는 있어야 하는 법이다.
제갈려와 추나행, 두 사람은 연신 사방을 훑으며 이곳저곳을 건드렸다.
발아래로 그르렁거리며 뭔가 돌아가는 마찰음이 들렸고, 벽 너머로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행들은 해제했다는 신호에도 신중하게 천천히 나아갔으나, 제갈려의 능력이 검증되기 시작하자 이내 나아가는 속도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바닥 색이 아주 조금 다른 곳 있죠? 밟지 말고 지나오세요.”
“우측으로 완전히 밀착해서 지나면 돼요. 밟으면 통로 전체가 뒤집히니깐 조심하시고요.”
“저기 가장 빛바랜 야명주가 잠시 밝아지면 그때 지나가요.”
아무런 일도 없었다.
제갈려의 파악 능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그렇다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기에, 다들 바짝 긴장한 채로 나아갔다.
그 와중에 시후는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분타’를 놈들의 팔다리라고 한다면, ‘총타’는 놈들의 머리라고 할 수 있다.
총타를 쓸어버린다면, 배교가 활개 치는 건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팔다리를 모두 자르진 못했다.
머리를 잃은 팔다리가 어떤 행동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배교를 지금 정리하는 건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들을 뒤로 물릴 방법은 전혀 없었다.
시후가 고민의 늪에 빠진 사이, 거침없이 전진하던 제갈려의 걸음이 멈추었다.
“어?”
제갈려는 얼빠진 소리를 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곁에 있던 추나행도 덩달아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는 제갈려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제갈려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앞으로 가는 행동을 반복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기다리다 지친 추나행이 슬며시 앞으로 나섰다.
“무슨 문제가 있더냐?”
“한 걸음씩 천천히 가 보세요.”
제갈려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움직였던 지점을 가리켰고, 추나행은 군말 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엥?”
추나행은 곧 제갈려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앞뒤로 오가는 행동을 반복했다.
곧 넋이 나간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덕분에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다들 무슨 일인지 싶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중 가장 앞에 있던 운허가 다가갔다.
제갈려는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고, 운허 또한 제갈려가 가리켰던 지점을 넘었다.
“으음······.”
그는 낮은 신음을 흘리며 앞뒤를 연신 번갈아 보더니 뒤로 물러났다.
그는 천천히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술을 뗐다.
“술법이구나.”
겉으로 보기에는 차분해 보였으나, 떨리는 동공은 그가 지금 상당히 당황했다는 걸 알려 주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숨기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막내 사제가 이와 비슷한 술법을 펼치는 것을 본 적이 있으나,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기운이 느껴지오.”
“배교 놈들의 뒤를 쫓는데 갑자기 무당의 술법이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당일 리가 없지 않소. 그러나, 정심해 보이는 술법이긴 하오.”
운허의 말에 좌중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배교를 쫓는 와중에 도교의 향기라니.
뜬금없는 소리였고, 아닌 밤중엔 홍두깨였다.
“어떤 술법이 펼쳐진 것인지는 알 수 있습니까?”
“알기보다는······ 봤지요.”
운허는 말을 흘리며 슬쩍 제갈려와 추나행을 번갈아 봤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 지점을 넘으면······.”
“새로운 길이 보일 거예요.”
추나행과 제갈려가 번갈아 말을 이었다.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엔 운허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곤 검을 빼 든 채 앞으로 걸었다.
제갈려가 가리켰던 지점을 지나 한 걸음을 더 내디뎠고, 그다음 걸음을 땅에 디딘 순간.
그는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이, 이 무슨······.”
다들 멍하니 제갈려를 바라봤다.
제갈려는 곧 바닥에 떨어진 돌 부스러기를 주워 바닥에 선을 그었다.
“이 선을 넘는 순간, 축지술이 펼쳐지니 다들 긴장하고 넘어오세요. 특히, 앞사람과 부딪히지 않게 거리를 두는 거 잊지 마시고요.”
제갈려가 짧게 설명과 함께 선을 넘었다.
단 두 걸음.
운허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모습을 감추는 데는 단 두 번으로 충분했다.
뒤이어 추나행도 선을 넘었다.
사람은 집단을 이룰 때 안정을 느끼고, 앞서 누군가가 행동한다면 따르기 마련이다.
다들 반신반의하는 마음을 가진 채로 줄지어 선을 넘었다.
이를 지켜보던 남궁천은 급격히 줄어드는 사람들을 보며 시후의 어깨를 두들겼다.
“우리도 이만 넘어가지.”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은 인원은 열이 채 되지 않았다.
가야 할 때였다.
처리하지 못한 분타들의 걱정에 마음속이 어지러웠지만, 시후는 이내 머릿속을 깔끔히 비웠다.
이윽고 남궁천도 선을 남았다.
시후는 짧게 심호흡한 뒤 왼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러자 다소 어두컴컴한 통로 내부에 짙은 안개로 뒤덮인 산의 풍경이 겹쳐 보였다.
‘저곳으로 이동하겠지.’
시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아직 넘어가지 않은 오른발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일그러지며 뒤섞였다.
시후는 구토감이 치밀어올라 눈을 질끈 감았다.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었지만, 실제로는 찰나였을 뿐이었다.
“두 번은 이용하기 싫군.”
남궁천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짙은 안개 속으로 그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숙취에 괴로워하듯 잔뜩 구겨진 표정.
필시 자기 얼굴도 저와 다르진 않을 것이다.
시후는 억지로 웃어 주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안개뿐이었다.
곧 남궁천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본대 쪽으로 합류했다.
“진법이에요.”
저 멀리 제갈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후는 속을 진정시키며 다가갔다.
그림자 여러 개가 어렴풋이 보였다.
쪼그려 앉은 사람을 중심으로 몇몇이 서 있었다.
제갈려는 천로수변을 바닥에 꽂은 채 그 가운데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눈썹과 코끝은 쉴 새 없이 꿈틀거렸다.
그다지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도 시후의 생각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산의 용맥을 끌어다가 진을 펼치다니······ 대단한 진법이네요.”
“용맥?”
“네. 용맥을 끌어와서 이 진법을 만들었네요. 안개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에요. 진법으로 인한 거죠. 아, 물론 해를 끼치는 용도는 아니고, 방향을 잃게 만드는 약한 용도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다만, 신뢰가 가지 않았다.
걱정하지 말라는 사람의 표정이 저렇게 어두워서야 누가 걱정하지 않겠는가.
제갈려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손사래를 쳤다.
“이 안개가 규모는 대단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이곳에서 움직여도 괜찮겠느냐?”
“아마도요. 하지만, 이렇게 대규모의 진법을 펼쳤다면, 안에 뭔가가 더 있어도 있지 않겠어요?”
“뭔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진법 안에는 또 다른 진법을 펼치기에 용이하죠.”
일반적으로 진법의 존재는 문외한이라며 알아채기 힘들다.
그렇기에 다들 눈치만 살폈다.
그 사이,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검후가 움직였다.
“먼저 둘러보마.”
검후는 짧은 말 한마디를 남기곤, 말릴 틈도 없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덕분에 다들 얼빠진 표정으로 제갈려를 바라봤다.
“검후 님 정도면 뭔가, 진법의 유무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겠죠.”
일리 있는 말이다.
검후 정도의 수준이라면 모를 리 없을 테니깐.
“우리도 찾아보지.”
추나행의 제안에 제갈려가 앞장섰다.
통로야 어쩔 수 없이 제갈려가 앞장섰다고 하지만, 밖은 달랐다.
운허가 가장 앞장서 걷고 그 뒤를 제갈려가 뒤따랐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처음부터 안개가 심했으나, 이제는 고작 열 걸음 앞에 걷는 사람의 형태조차 흐릿하게 보일 정도였다.
조금만 집중력을 잃으면 앞사람을 놓칠 수 있을 정도로 안개가 짙어지자, 자연스럽게 걸음이 더뎌졌다.
“세상에······.”
걸음 소리를 제외하면 모두가 입을 닫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제갈려의 목소리는 작았음에도 듣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그 음색에 담긴 감정은 절망이었다.
그녀는 더듬더듬 옷 속을 뒤적여 천로수변을 바닥에 꽂았다.
곧 눈을 감은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웅얼거림이 순간 끊겼고, 제갈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모든 움직임이 멎은 뒤로도 한참 동안 반응 없던 제갈려가 한순간 눈을 번쩍 떴다.
“정말 말도 안 나올 정도의 진법이네요.”
“그게 무슨 말인가?”
“이 진법을 말로 설명하면······ 기상천외? 네, 그런 말이 어울리겠어요. 정말, 하늘 아래 이런 진법이 있다는 게 놀랍네요.”
“혼자만 놀라지 말고 우리에게도 알려 주지 않겠나?”
“간단하게 설명해서 이 진법은 할아버지가 와도 쉽사리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음양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융화했으며, 오행의 어느 쪽이든 한 톨의 자갈조차 어긋남이 없겠죠. 이건 이 산 전체를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느낌이 날 정도예요. 아니, 그렇지 않고서는 이건 설명이 안 돼요. 이 산은 이 진법을 위해 만들어진 거예요.”
제갈려는 확신, 아니, 단언하고 있었다.
산을 인위적으로 만든다니.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제갈려의 의문에 시후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정답이었다.
배교의 총타가 있는 이 ‘금가산’은 기존의 지형을 지우고 새롭게 만든 곳이었다.
이 진법을 위해서.
“그렇다는 말은 저 앞에 진을 파훼할 순 없다는 말인가?”
“파훼는 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와도 힘드실 거예요.”
“끄응······. 그럼 배교 놈들이 스스로 나오기 전까진 아무것도 못 한다는 말이 아닌가!”
추나행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전방을 바라봤다.
바로 코앞까지 추격했는데 쫓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화가 많이 난 듯했다.
하지만, 그의 반응에 제갈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진 않아요.”
“조금 전에 파훼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더냐?”
“파훼는 말 그대로 이 진을 뜯어내는 거라서 힘들지만, 지나가는 정도는 할 수 있겠죠.”
추나행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산을 오를 때 나무를 모조리 베면서 올라가진 않잖아요. 파훼하려면 앞에 있는 나무를 죄다 베야 하지만, 지나가는 건 그 사이로 쓱쓱 지나가면 되는걸요?”
“그 말은······ 저 안을 지나갈 수 있을 거 같다는 말이더냐?”
추나행의 질문에 제갈려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우거진 숲인지에 따라 다르지만, 아무리 못해도 확률은 절반 이상이라고 봐요.”
절반.
고작 그 정도 확률에 목숨을 걸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제갈려는 다들 표정이 좋지 않자,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자기 이마를 때렸다.
“절반이라는 확률은 저 혼자 들어갔을 때의 확률이에요.”
- 7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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