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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71화 (53/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71화 생강시 (1)

‘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소항(下有蘇杭)’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소주(蘇州)와 항주(杭州)가 있다는 말로, 항주의 아름다움을 극찬하는 문장이었다.

오죽하면 ‘항주는 아침에도 좋고, 저녁에도 좋고, 비 오는 날도 좋다’라는 말까지 생겨 났을까.

“겨울에 보는 항주도 좋군.”

남궁천의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매서운 북풍은 항주까지 내려오진 못했다.

항주가 이름만큼 화려한 곳은 아니었다.

이름에 비해 오히려 정적인 분위기를 뿜어내는 도시였다.

그렇기에 뇌봉탑(雷峰塔)에서 바라보는 항주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눈이 살포시 뒤덮었다면 더욱 아름답겠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기에 담백한 맛이 살아 있구나.”

남궁천이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는 사이 해가 저물었다.

저 멀리 호수 변에는 이쁘기 치장된 꽃 배가 곧 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 배인가?”

“아마도 그렇겠죠.”

서호(西湖)를 쭉 훑어보니, 쪽배 몇 척이 보이긴 했다.

그러나 개방에서 말했던 ‘꽃 배’라 불릴 만한 배는 저 한 척이 유일했다.

아무리 항주가 따스하다고 한들, 겨울철에 뱃놀이를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배를 띄우는 게 아닌 듯 준비는 철저했다.

배 중앙에 놓인 커다란 화로는 한눈에 보아도 따스해 보였다.

게다가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술상 주변으로 기둥을 세운 뒤, 비단을 두르자 추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법했다.

준비를 마친 배 위엔 마실 술을 비롯해 사람들이 하나둘 올라가기 시작했다.

커다란 배였기에 스물이 넘는 인원이 올라섰음에도 배는 여전히 텅 비어 보였다.

“왔군.”

남궁천의 말과 함께 저 멀리 호숫가 반대편에는 마차 한 대가 멈춰 섰다.

마차 안에선 남녀 한 쌍이 내렸는데, 거리가 너무 멀었기에 성별 정도만 확인할 수 있었다.

다채롭게 꾸며놓은 꽃 배와 달리, 두 사람은 새하얀 도포를 입고 있었다.

곧 그들은 그와 반대되는 칙칙한 검은 무복을 입은 호위들과 함께 배 위에 올랐다.

그들이 올라서자 곧 배가 움직였다.

다채롭게 꾸며놓은 배가 움직이자, 마치 봄날 찻잔에 떠다니는 벚꽃잎을 연상케 했다.

꽃 배는 잔잔한 서호에 얕은 파문을 일으키며 움직이고 있었다.

배가 서호 중앙쯤에 다다랐을 때 짧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방향에는 꽃 배가 있었다.

“시작이군.”

남궁천이 짧게 중얼거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호 곳곳에서 조그만 쪽배가 띄워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힘껏 노를 저으며 다가가는 배도 있었지만, 대체로 배들은 느긋이 다가가고 있었다.

가장 먼저 다다른 쪽배는 꽃 배의 옆에 배를 가져다 댔고, 곧 청색 도포를 걸친 인물이 꽃 배로 올라섰다.

육안으로 얼굴을 식별하기도 힘들 거리니 만큼, 대화를 나눈다는 것만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배 위에 올라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몇 마디 주고받는 듯하더니, 이내 어깨를 늘어트리고 쪽배로 내려섰다.

그 후로도 그와 비슷한 광경이 연이어 일어났다.

한 번에 한 명씩 배에 오르고, 무엇인가를 말하더니 아래로 내려가길 반복했다.

“슬슬 내려가서 기다리지.”

남궁천의 말에 뇌봉탑에서 내려와 호숫가로 향했다.

꽃 배로 다가가는 쪽배는 많았다.

하지만, 호숫가에 대놓은 쪽배는 더 많았다.

그리고 그보다도, 호숫가에 서 있는 서생들의 숫자는 훨씬 많았다.

그들은 서로 무리를 이뤄 조심스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가운덴 가장 먼저 배 위에 올랐던 청색 도포를 입은 인물도 있었다.

남궁천은 곧바로 그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시후가 그의 팔을 붙잡은 것이다.

시후는 말도 아낀 채, 눈을 좌우로 굴리며 만류했다.

이미 무기를 매고 있는 것으로도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한데, 더 이목을 끌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대신, 그들의 근처로 가서 몰래 대화를 엿들었다.

“진형, 뭐라고 하던가?”

“몇 마디 나누지도 못했네.”

“알려 주면 안 되겠는가?”

“알려 주는 건 어렵지 않으나, 혹여라도 곽형이 답을 냈을 때 나에게 들어 답을 구했다는 오해를 산다면, 내가 어찌 고개를 들겠소이까. 곽형의 지식이라면 알고 있다고 보오.”

“아, 진형의 말을 들으니 내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들겠구려. 지금 당장 다녀오겠소이다.”

곽형이라 불린 자는 곧바로 쪽배에 올라탔다.

그가 올라탄 배는 거침없이 꽃 배로 나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힘없이 어깨를 늘어트린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진형이라는 자와 함께 자리를 떠났고, 눈치를 살피며 기다리던 서생들은 연이어 배에 올라탔다.

어차피 배를 타긴 해야 했기에, 시후는 남궁천과 함께 사공들이 모인 곳으로 다가갔다.

“추 씨 아저씨, 벌써 몇 명째요?”

“다섯.”

“염병, 오늘 술이나 한잔 사쇼.”

“껄껄, 양가 이놈아. 손님들이 네 배를 안 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 어이쿠, 또 손님 오신다.”

그들의 대화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추씨라 불린 사공은 수염을 정갈하게 길러 서생들이 쉬이 다가갈 수 있는 외모였다.

그에 반해 양가라는 인물은 허리춤에 도끼가 없는 게 허전해 보일 정도로 우락부락한 외모였다.

어지간히 사람을 안 가르는 편이 아니고서야, 그를 선택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추 씨는 웃지만, 양가는 인상을 잔뜩 쓰고 있었다.

남궁천의 걸음도 그 추 씨라 불리던 중년인에게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천 씨 세가의 배에 오르시려는 분입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곧 그리될 거 같습니다.”

남궁천의 말에 중년인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지만, 별다른 말은 없었다.

하긴, 그들이 굳이 검을 차고 있는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눌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쪽배에 올라타는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호수에 뜬 배보다 뭍에 대놓은 배가 더 많아졌다.

짧은 종소리가 세 번이나 연달아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사공들은 짧게 투덜거렸지만, 곧 뭍으로 배를 올려놓기 위해 줄을 잡아당겼다.

그건 추 씨와 양가도 마찬가지였다.

남궁천은 배에 막 줄을 걸고 있던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배로 데려다주시오.”

“어이쿠, 이미 늦었습니다. 종이 울리지 않았습니까.”

“일부러 종이 울릴 때까지 기다린 겁니다.”

남궁천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돈을 받으면 그만이었기에 거부할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은 오늘 한 명의 손님도 태우지 못한 양가의 배를 이용했다.

우락부락한 외모답게 배는 호수를 반으로 갈라 버릴 기세로 쭉쭉 나아갔다.

“돌아가시오!”

배를 지키던 호위 무사 중 한 명이 크게 소리쳤다.

덕분에 양가의 노가 잠시 멈췄지만, 남궁천과 시후는 계속 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양가는 곧바로 힘차게 노를 저었다.

어차피 돈을 주는 쪽은 이쪽이라 판단을 내린 것이다.

시시각각 꽃 배가 가까워져 갔다.

배에 올라탄 호위 무사들도 남궁천의 허리춤에 매달린 두 자루의 검과 그보다 창 한 개는 더 소지한 시후의 모습을 발견하곤 검병에 손을 얻었다.

“멈춰라! 무슨 목적이 있는지 몰라도, 그 이상 접근할 시······.”

“내 이름을 걸고 배에서 어떤 소란도 피우지 않겠노라 약조하겠소.”

남궁천의 낮은 목소리는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으나, 낯선 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순진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호위 무사들의 검이 검집에서 반쯤 빠져나왔다.

“네가 누군지 알고 그 알량한 이름을 건단 말이냐?”

“본인은 남궁세가의 셋째 남궁천이라 하오!”

남궁천의 외침에 노를 젓던 양가도, 검을 뽑던 호위무사들도 일순간 굳었다.

안휘가 아니라서 영향력은 미미하겠지만, 구주에 이름을 떨치는 남궁세가의 이름은 다들 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호위무사들은 차마 검을 뽑지 못했다.

곧 뒤편에 쳐 놓았던 비단 벽이 들춰졌고, 백의를 입은 한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그는 곧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남궁천을 쳐다봤다.

“남궁천 공자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삼 년만이던가요?”

“예, 아버지 환갑연 때가 마지막이었으니 그럴 겁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 양가는 노를 젓기 시작했다.

호위 무사들도 반쯤 뽑았던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다만, 남궁천에게 ‘알량한 이름’이라 말했던 한 명의 호위 무사는 분이라도 바른 것처럼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잔뜩 긴장했지만, 남궁천은 그의 곁을 지나며 어깨를 살짝 두들겼다.

“호위의 본분을 다한 것이니, 어깨를 당당히 펴시오.”

“예? 아, 예.”

호위를 지나친 남궁천은 그 뒤편에 있는 백의를 입은 인영과 인사를 나눴다.

“최근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에 관해 위로를 먼저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남궁천의 얼굴에 옅은 그늘이 졌다.

그 모습을 본 백의인은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보다······ 남궁천 공자를 뵈어 기쁘지만, 세가를 찾아오지 않고 왜 이리로 오셨는지요? 혹시 제게 볼일이 있으십니까?”

“예, 진승 공자께 여쭐 게 있어서 이리 찾아왔습니다.”

진승이 남궁무의 죽음을 거론한 덕분에 남궁천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남궁천은 잠시 뜸을 들이며 슬쩍 비단 벽을 바라봤다.

“아,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다만, 같이 오신 분은······.”

“괜찮습니다.”

진승이 불편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안내했다.

비단 벽 너머에는 뇌봉탑에서 보았던 여인이 앉아 있었다.

수수한 백의와 그보다 더욱 창백해 보이는 피부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천 씨 세가의 장녀 천지아라고 합니다.”

그녀의 소개에 남궁천과 시후도 간략하게 소개를 마친 뒤, 자리에 앉았다.

진승은 자리에 선 채,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천지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아, 잠시 시원한 바람이라도 쐐야겠으니 이야기들 나누어라. 손을 댄 음식은 아니니 동생과 이야기 나누며 드시지요.”

하지만, 그녀가 한 걸음도 떼기 전에 진승이 벌떡 팔을 붙잡았다.

“누님. 바람이 찹니다.”

“괜찮다. 알지 않느냐?”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따뜻한 화로의 온기조차 잊게 할 정도로 쓸쓸해 보였다.

진승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세상천지에 주인을 쫓아내는 법이 어딨습니까? 못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니니, 여기 계시지요.”

진승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시후였다.

진승은 남궁천과 시후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 시선에 남궁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진승의 얼굴에 묘한 불안감이 자리 잡았다.

“천 공자께선 제게 여쭤볼 게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기막을 칠 테니, 밖에 호위분들께서 놀라지 마시길.”

남궁천은 말과 동시에 기막을 펼쳤다.

진승의 얼굴에 초조함이 어렸다.

기막을 펼친다는 건 중요한 이야기라는 증거였으니깐.

그렇기에 그는 불안한 표정으로 그의 누이인 천지아를 바라봤다.

“장녀께서도 무관하지 않은 내용이오.”

그 말과 동시에 진승은 숨이 덜컥 멈춘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승은 숨을 수차례 고른 뒤에야 고개를 들어 올렸다.

“천 공자, 제 누이와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진승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억지로 웃음 지으려고 했으나, 굳어버린 얼굴 근육은 그의 의지를 거부했다.

남궁천은 그에게서 시선을 옮겨 천지아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다음 말은 내뱉지 못하고 시후에게 떠넘겼다.

덕분에 시후는 쓴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서야 했다.

“최근, 죽었었죠?”

- 72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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