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58화 절반의 성공 (3)
참월창은 분명 훌륭한 무공이다
게다가 달을 베겠다는 일념에서 출발한 무공답게 공격력도 발군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적절한 무공이라 볼 수 없었다.
파양도와 정면으로 붙을 순 없다.
하물며, 폭렬기공을 사용한 지금의 그의 공격을 받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쾅!
그렇기에, 이렇게 도망치는 것에만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추나행이었다면 여유 있게 그를 농락했을지 몰라도, 시후는 손가락 한두 개 차이로 간신히 피하고 있었다.
파양도는 그런 시후에게 잔뜩 약이 올랐는지 무릎을 살짝 굽혀 자세를 낮췄다.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한 기세가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이것도 피해 봐라!”
파양도의 외침과 동시에 대도는 눈 깜박할 사이에 허공에서 수십 번 휘둘러졌다.
그 두꺼운 도에 어울리게 날아오는 도기(刀氣)도 무지막지하게 두꺼웠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피할 공간조차 날려 버리겠다는 듯 무식할 정도로 광범위한 크기였다.
시후는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창을 꽉 붙잡았다.
저 공격을 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내공이 다 하겠지.’
하지만, 막지 않곤 피할 방법도 없었다.
최소한의 내공을 제외하곤 모조리 끌어올렸다.
이전보다 확연히 줄어든 금빛이 시후의 몸을 감쌌다.
시후는 자리를 조금 비켜난 채, 앞으로 창을 내질렀다.
“파월아(破月牙)!”
어금니라기보다는 송곳니에 가까웠다.
금빛 송곳니는 처음에 닿은 파양도의 도기를 부숴 버렸다.
주먹을 불끈 쥐고 좋아해야 할 상황이지만, 파월아에서 뿜어져 나오는 송곳니는 급격히 빛을 잃었다.
전력을 모조리 쏟아부었지만, 단 두 개만을 상쇄시켰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뒤편으로 날아오는 도기는 하나가 더 있었다.
백후원보를 펼치기 위해 남겨 두었던 최후의 내공까지 모조리 창에 밀어 넣었다.
“막창!”
붉디붉은 도기와 자운유성창에 어려 있는 금빛은 서로를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최후의 승자는 시후의 일원신공이었다.
자운유성창에는 여전히 금빛이 어려 있었고, 붉은빛은 허공에서 흩어지며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금빛은 당장에라도 꺼질 듯 점멸하며 반짝이고 있었다.
“흐흐, 이젠 도망도 못 치겠구나.”
그의 말대로 시후는 움직일 힘조차 없다.
바닥까지 드러난 내공으로 인해 발이 무거웠다.
깃털처럼 가볍게 휘둘렀던 자운유성창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봤지만,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던 추나행과 준혁은 정오 대사가 안전한 곳으로 옮긴 듯했다.
만약, 그대로 자리에 있었다면 저 도기의 해일에 쓸려나갔을지도.
시후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다가오는 파양도를 천천히 올려다봤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목숨을 구걸해도 소용없다.”
그런 시후의 눈빛을 읽었는지 파양도가 선수를 쳤다.
“그럴 생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데 김칫국 제대로 마시고 있네.”
“흐흐, 그 와중에 살아보겠다고 머리 굴리는 소리가 예까지 들리는군.”
파양도의 말에 시후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럴 때는 서투른 변명을 하는 것보다 상대를 도발하는 게 나으리.
이왕 들킨 거 오히려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머리만 굴리겠냐? 눈동자 굴리는 소리는 안 들리고?”
덕분에 파양도의 입가에 맺혀 있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그의 모습은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 기대에 찬 모습과 같아 보였다.
“네놈이 어떻게 본 회에 관해서 알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리 접근한 건지까지······ 줄줄이 말하게 해 주마.”
“어떻게? 그 면상으로? 하긴, 그 면상을 조금 더 들이밀면 막 토할 정도로 아주 역겹게 생겼긴 해.”
더욱 도발을 해 봤다.
죽을 거라면 시간을 질질 시간을 끌면서 고통 속에서 죽는 것보다, 차라리 빠르고 깔끔하게 가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
하지만, 아무리 흥분한 파양도라 할지라도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은 듯했다.
그는 도를 뻗어 자신의 다리를 가리켰다.
“일단, 다리부터 날려 주지. 땅을 기어 다니는 게 어울릴 듯하군.”
“어울리기로 따지자면 네 얼굴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안 어울리지 않을까?”
연신 도발을 하며 단박에 목을 날려주길 고대했다.
하지만, 파양도의 도는 땅을 쓸 듯 바닥을 향했다.
“빌어먹을.”
두 눈을 질끈 감았지만, 파양도의 공격은 시후에게 닿지 않았다.
“누구냐!”
파양도의 외침에 시후는 슬쩍 눈을 떴다.
비대칭적으로 길쭉길쭉한 팔다리를 가진 백발 노인의 등이 보였다.
그가 파양도의 도를 발로 막은 것이다.
파양도는 그를 베어 넘기기 위해 대도를 휘두르려 했지만, 오히려 노인의 쌍장(雙掌)에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거리가 벌려지자 노인이 뒤를 돌아봤다.
나이를 짐작기 어려울 정도로 자글자글하게 주름진 얼굴.
그 얼굴을 확인한 시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가 입을 열었다.
“뭐냐, 이놈은?”
“후괴!”
갑작스러운 후괴의 등장에 시후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동시에 교차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파양도의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림에서 칠괴를 향한 평가가 좋으냐, 좋지 않으냐’로 따지면 ‘좋지 않다’라는 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정사지간(正私之間)의 성향이 짙은 그들은 자신의 아집으로 똘똘 뭉쳐 있었고, 잦은 문제를 일으켜 사건의 중심에 서는 경우가 많았으니깐.
“이놈아, 내가 네 친구냐!”
투덜대는 듯하나, 후괴의 목소리는 따스한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렇기에 파양도는 한 발짝 더 물러섰다.
쌍괴는 자신들이 관심을 가지는 일이 아니라면 사람이 옆에서 죽어 나가도 신경 쓰지 않기로 유명했으니깐.
후괴는 파양도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고, 그건 시후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마치 파양도가 곁에 없다는 듯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혜아는 어쩌고 여기 있어요?”
“내가 왜 여기에 왔을 거 같냐?”
후괴는 시후의 질문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반문했다.
혜아의 곁을 지킬 그가 여기에 있다는 건 한 가지를 의미했다.
‘완치됐구나.’
“벌써?”
“이놈아, 그때 떠나고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응?”
그의 대답에 시후는 손가락을 접으며 있었던 일들을 헤아려 봤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워낙 일을 많이 벌였어야지.’
게다가 그 기간이 얼마였는지 되짚는 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지.’
시후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는 파양도를 힐끔거렸다.
“다행이네요. 이제 혜아는 다 나은 건가요?”
“치료야 진즉에 끝났었지. 혹여나 재발할지도 몰랐기에 신의를 일주일간 붙들고 있었지만.”
후괴의 시선도 시후를 따라 파양도에게 향했다.
그의 시선에 파양도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보다······ 하오문에서 듣자 하니 정의맹에서 녹림과 수로채를 친다고 하던데, 혹시 저 녀석이?”
“녹림 총채주입니다.”
시후의 말에 후괴는 파양도와 자신의 손을 한 차례 번갈아 봤다.
이내 뭔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녹림이 구파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던가? 요 앞에 있는 중놈만 하더라도 정자 배 아이로 보였는데, 저놈은 그보다 한참 윗줄이군.”
“뭔가 이상하죠?”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저 녀석에 관해 뭔가 아는 눈치인데, 내 말이 맞는가?”
도와달라는 말은 안 했지만, 지금까지의 정황상 그가 도움을 줄 듯했다.
‘기회다.’
단박에 위기를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릴 기회.
시후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파양도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선배! 선배는 강호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다고 하지 않았소!”
“누가 네놈 선배냐? 너 같은 후배 둔 적이 없으니, 이리 오너라.”
“이건 정의맹과 녹림의 일이오!”
“녹림에 너 같은 놈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헛소리를 늘어놓을 생각이걸랑 내가 가마.”
파양도가 악을 쓰며 소리쳤지만, 후괴는 그와 말을 길게 섞지 않았다.
아니, 대화 자체를 거부하듯 말을 끊고는 성큼 발을 내디뎠다.
거리는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후괴는 권장을 휘둘렀고, 파양도는 그에 맞서 자신의 대도로 받아쳤다.
쾅! 쾅!
쇠붙이와 맨손의 격돌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소리가 그들에게서 터져 나왔다.
게다가 더 놀랍게도, 뒤로 물러난 건 파양도였다.
후괴는 길쭉길쭉한 양팔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그를 압박했다.
얼핏 보기에도 일방적으로 파양도가 뒤로 밀렸다.
가볍게 휘두르는 듯한 그의 양손에 비해, 파양도는 전심전력으로 맞받아쳐야 했으니깐.
더욱 대단한 건, 그 정도로 유리함에도 자신의 장점을 포기하지 않은 후괴의 태도였다.
“후괴! 똑바로 마주해라!”
“내가 왜?”
후괴는 절대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았다.
힘 대 힘으로 붙어도 밀리지 않을 테지만, 후괴는 자신의 신묘한 보법을 십분 활용했다.
좌측으로 파고들면서도 어느새 그의 뒤를 점하였고, 공격을 날린 위치에 그대로 서 있는 법이 없었다.
덕분에 파양도의 대도는 연신 허공을 갈랐다.
점차 그의 몸에 후괴의 주먹이 틀어박히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제압해 주세요!”
“그놈 참, 바라는 것도 많군.”
시후의 외침에 후괴는 귀찮은 심부름을 부탁하는 것처럼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는 그럴 자격이 있었으니깐.
하지만, 파양도는 그들의 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후괴! 날 우습게 보는 것이냐!”
“다리부터 날려 주겠다고 했던가? 역지사지의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줘야겠군.”
후괴는 파양도의 말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역지사지를 느끼게 해 주겠다던 그의 말처럼, 이번에는 각법을 이용해 파양도의 다리를 두들겼다.
시후는 그 광경을 잠시 지켜봤지만, 별다른 변수는 없어 보였다.
그에게 시선을 돌려 저 멀리 피해 있던 정오 대사에게 다가갔다.
추나행은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었고, 그 주위엔 개방 제자들이 매서운 눈빛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저기는 괜찮고······.”
그와 반대로 준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듯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런 준혁의 곁에는 정오 대사가 그의 진맥을 짚은 채 앉아 있었다.
시후는 서둘러 정오 대사에게 다가갔다.
“괜찮나요?”
“일단 내상이 조금 있긴 하지만, 정확한 건 운기조식이 끝나 봐야 알 수 있을 듯하오. 그나마 다행인 건, 뼈가 부러지거나 하진 않은 것 같다는 점이오. 천만다행이지.”
멀쩡하면 됐다.
오히려 상태를 보면, 깔끔하게 기절한 준혁보단 정오 대사의 상태가 더 안 좋아 보였다.
낯빛이 푸르죽죽한 게 당장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대사님, 조금이라도 운기조식을 취하시는 게······.”
“상황이 모두 정리되면 해도 충분합니다. 일단, 주변을 도와줘야겠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사방에선 여전히 고함이 들려왔다.
저 멀리 시선을 돌리자, 고착 상태에 있는 두 집단이 보였다.
녹림 무리를 에워싼 현무단과 백호단은 시후처럼 무리하게 들어가지 않았고, 그에 대응하는 녹림채도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저들이 중요한 건 아니다.
시후는 곧장 후괴와 파양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저 싸움이······ 어?”
후괴와 파양도의 싸움은 진즉에 끝나 있었다.
파양도는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뉜 채 미동이 없었고, 후괴는 난감한 듯 쭈뼛거리고 있었다.
시후는 후괴를 멍하니 바라봤고, 눈이 마주친 후괴는 어깨를 으쓱거린 뒤 다가왔다.
이십여 장의 거리는 단 세 걸음 만에 좁혀졌다.
“어떻게 된 거죠?”
시후가 캐묻듯 채근하자 후괴는 억울하다는 듯 파양도를 가리켰다.
“어쩐지 부딪히면서 약간 이상하다 싶더니, 놈은 선천진기(先天眞氣)를 모조리 끌어다 쓰고 있더구나. 상당히 무리했었는지 공격을 하다말고 픽 쓰러지지 뭐냐?”
후괴의 말에 시후의 머릿속에서, 저 아래에 잠들어 있던 기억이 물 위로 떠 올랐다.
개문(開門)이다.
- 59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