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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51화 (33/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51화 정의맹 (2)

“지객당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동자승의 안내를 받으며 뒤따라가던 시후는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뒤에서 들려오던 발소리가 멈춰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보니 제갈려가 제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안 따라오고 뭐 해?”

시후의 타박에 봇짐을 내려다보며 히죽거리던 제갈려가 쪼르르 다가왔다.

꼴을 보니 며칠은 더 저 상태를 지속할 것 같았다.

품에 들고 있는 봇짐은 누가 봐도 수상했다.

대놓고 ‘나 엄청 귀한 물건이 있어요!’라고 알리는 듯한 행동을 제지하기도 했지만, 제갈려는 잘 때도 청홍검을 꼭 끌어안고 잤다.

“차라리 허리에 매고 다니는 게 덜 눈에 띄겠다.”

“그러다 도둑맞으면 어떻게 해?”

“그 꼴로 다니면 도둑을 불러들이기밖에 더하겠냐? 아니면 나한테 맡기던가.”

시후의 말에 제갈려는 봇짐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마치 시후가 뺏어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 필요할 때는 말로 한다고, 말로.”

“내 허락 없인 손댈 생각도 하지 마.”

“급할 때 준다는 약속도 잊지나 마.”

“그냥 주는 게 아니라, ‘빌려’ 준다고.”

“그래그래······.”

시후가 하오문에 패를 넘김과 동시에 발생한 복합 임무 ‘준동’은 난이도가 상당했다.

얽혀 있는 세력만 해도 한둘이 아니었으니깐.

게다가 다소 엉키게 된 스토리는 시후가 아는 방향과 조금 다르게 진행될 수도 있었다.

그에 관한 대책으로 시후는 청홍검을 떠올렸다.

자운유성창과 청홍검의 상승효과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고 대단했으니깐.

다만, 청홍검은 시후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 소유주라고 할 수 있는 제갈려가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후는 시녀가 되겠다고 했던 약속을 들먹이며, 약속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필요할 때 빌려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뭐, 빌려줄지는 미지수지만.’

“방은 이 두 곳을 쓰시면 됩니다.”

“꼬마 스님, 고마워요.”

제갈려가 웃으며 인사하자, 머리를 빡빡 민 동자승의 머리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후다닥 물러나는 동자승을 바라보던 시후는 방으로 들어서려 했지만, 문을 닫지는 못했다.

닫으려는 문을 붙잡은 제갈려는 안으로 들어왔다.

“왜 들어와?”

“이제 계획을 들려줘야지. 나만 좋아지자고 청홍검을 깨운 건 아닐 거 아냐.”

‘쓸데없이 예리하긴.’

시후는 문을 닫으며 제갈려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제갈려는 사방에 천로수변을 날리며 진법을 펼쳤다.

[단견별청진에 들어왔습니다.]

밖과 소리가 단절되자, 침대에 앉은 시후는 품에서 비영 이십삼 호의 증표를 꺼내 들었다.

“이거 뭔지 기억하지?”

“보모상궁의 방에서 나왔다는 물건이잖아.”

“이걸 하오문에 전해 줬는데, 왜 아직도 잠잠할까?”

“몰라서 묻는 거야, 아니면 날 시험하는 거야?”

“몰라서 묻는다고 생각해 둬.”

그 대답에 제갈려가 기분이 상한 듯 인상을 썼지만, 곧바로 한숨을 내쉬며 표정을 풀었다.

“간단하지. 하오문이 정파에 속해 있다곤 해도,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아. 분명 자기들이 이득을 얻을 시점을 찾고 있겠지.”

“그거야. 게다가 아직 이 패를 사용하는 녀석들을 찾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고.”

“그거랑 적룡 금 패를 보이면서까지 소림에 온 거랑 무슨 상관인데?”

“소림에서 왜 방문객을 안 받는다고 했을까?”

소림은 언제나 열려 있다.

하지만, 오늘 시후와 제갈려가 들어오기 위해선 적룡 금 패를 보여 줘야 했다.

그 점은 제갈려도 궁금했는지 몸이 앞으로 쏠렸다.

시후는 그와 반대로 침대 기둥에 몸을 기대며 몸을 뒤로 젖혔다.

“지금 동정호에서 녹림과 수로채가 회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거랑 우리 목적이랑 상관이 있겠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제갈려의 모습에 시후는 씩 웃었다.

“상관있을걸? 이 시기에 가장 관의 눈치를 봐야 할 두 세력이 동정호에 같이 모인다. 수상하지 않아?”

시후의 말에 제갈려가 순간적으로 멈칫하며 두 눈을 감았다.

대화를 나눌 상대가 사라지자 방에는 잠시 침묵이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하지만, 제갈려는 그 손님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냉혹하게 내쫓았다.

“네 생각은 그 세력이 녹림과 수로채와도 관련이 있다?”

“그럴 거라 짐작해.”

짐작이 아니라 사실이지만.

“증거는?”

시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없다.

하지만, 곧 누군가가 가지고 올 것이다.

아주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뭐야, 그럼 이야기해 봤자 입만 아픈······ 뭐야, 벌써 회의가 끝난 건가?”

문밖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제갈려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곧 바닥에 꽂힌 천로수변을 뽑아 품에 집어넣었다.

진이 해제되자마자 시후는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용봉지회에서 봤던 소림의 자랑, 견적이 서 있었다.

“견적 스님?”

“아미타불.”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시후는 견적과 마주 보며 합장했다.

“두 분, 오랜만에 뵙습니다.”

“견적 스님도 잘 지내셨습니까.”

“부처님께서 살펴주신 덕분에 저는 늘 잘 지냈습니다.”

시후는 그와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분이 있진 않았다.

뒤를 바라보니, 제갈려 또한 친하지 않다는 듯 눈을 좌우로 굴리고 있었다.

‘그럼 뭐 때문에 찾아온 거지?’

두 사람의 시선에 견적은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 크흠.”

다만, 말하기 어려운 내용인 듯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견적은 숨을 두 번이나 고른 다음에야 시후의 눈을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이곳은 소림입니다. 두 분께 죄송하지만, 소림 내에서는 삼가심이······.”

‘무슨 소리야?’

알 수 없는 견적의 말에 시후가 제갈려를 쳐다봤다.

제갈려도 영문을 몰라 어깨를 으쓱거렸다.

시후는 다시금 견적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슬슬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진법으로 소리를 막는다고 해도, 수행이 얕은 아이들은······. 아무쪼록 자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방장님이 찾으시면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견적은 후다닥 방을 빼져 나갔고, 시후는 멍한 얼굴로 제갈려를 돌아봤다.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유를 알아차렸다.

천로수변을 품에 넣느라 제갈려의 겉옷이 다소 흐트러져 있었으니깐.

‘망할.’

* * *

오해를 잠식시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이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니깐.

하지만, 그 시간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야, 떨어져서 걸어.”

“하······. 내가 할 말 대신하지 말고 너나 저 뒤에서 걸어와.”

정진의 부름에 기어코 따라온 제갈려가 시후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투덜거렸다.

그 탓에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에 오해는 더욱 증폭되는 듯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정론각으로 안내하는 견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 분께서는 조금, 목소리를 낮추시는 게 어떻습니까?”

나지막한 견적의 말에 둘은 입을 꾹 다물었다.

팔을 툭툭 친다거나, 손등을 꼬집는 등의 장난을 치긴 했지만.

그사이, 멀찍이 보이던 정론각은 어느덧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두 사람에게 눈짓으로 다시 주의를 준 견적은 문 앞에서 가벼운 인기척을 냈다.

“방장님, 모셔 왔습니다.”

“안으로 모시거라.”

견적이 문을 열어주자 제갈려가 먼저 어깨를 들이밀었다.

반 박자 늦게 들어간 시후는 안에 홀로 있는 정진과 눈이 마주쳤다.

“미력하지만 소림의 방장을 맡은 정진이라고 하네.”

“차시후라고 합니다.”

인사는 시후가 빨랐다.

덕분에 인사할 타이밍을 놓친 제갈려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 정진 대사님, 거의 십 년 만에 뵙네요.”

“노야께선 아직 정정하신가?”

“말로는 삼십 년은 까딱없을 거라고 하셨는데······.”

제갈려가 말꼬리를 흐리자, 정진 대사의 안색이 다소 어두워졌다.

고개를 푹 숙였던 제갈려가 갑자기 밝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오십 년은 까딱없어 보이셔요.”

뒤에 있던 견적은 얕은 신음을 냈고, 시후는 혀를 찼다.

정진 대사는 굳었던 표정을 풀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저 망할 것.’

싸늘해지는 분위기 속에 시후는 급히 말을 걸었다.

“대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일단 앉게.”

정진의 권유에 시후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고, 제갈려는 짧게 혀를 차더니 바로 옆에 앉았다.

다만, 뒤편에 서 있는 견적만은 요지부동으로 서 있었다.

정진과 눈이 마주치자 시후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수로맹과 녹림의 회합 이야기를 얼핏 듣게 되었습니다.”

정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벌써 세간에 퍼졌는가.”

“하오문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연이 닿아 있었는가?”

“미력하지만 전여린 선배님과 약간의······ 연이 있습니다.”

‘다소 불편한 연이지만’이라는 뒷말을 꾹 삼키는 시후였다.

대답하지 않은 채 수염만 쓰다듬는 정진의 손길에서 시후는 더 말해 보라는 재촉을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찾아뵌 이유는 미력하게나마 손을 보태고 싶어서······.”

“관의 뜻인가?”

“아닙니다.”

“그럼 이 패를 보여 준 이유는 무엇인가?”

정진 대사는 품에서 적룡 금 패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린 뒤 앞으로 밀었다.

시후는 자신의 앞에 놓인 적룡 금 패를 들고 빤히 바라봤다.

“이 패는 강호에 암약하는 무리를 잡아들일 때, 황제께서 관의 도움이 필요하면 사용하라고 내려 주신 패입니다.”

더 말해 보라는 듯한 표정.

시후는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이 시기에 움직이는 녹림과 수로채의 소식을 들으니, 뭔가를 꾸미는 듯한 마음에 이렇게 소림으로 달려오게 되었습니다. 소림에서는 이 사건을 계속 지켜보실 겁니까?”

“아직은 명분이 없네.”

“그 말은······.”

“명분이 있다면, 고통받는 민초들을 위해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군요.”

시후는 짐짓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속으론 웃고 있었다.

그 명분이 곧 만들어지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관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적극적으로 나서겠습니다.”

“허허, 말이라도 고맙네.”

“제가 방장님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오계 중에서도 최소한 ‘불망어(不妄語)’는 지킵니다.”

정현 사태가 들었다면 코웃음을 쳤을 법한 이야기를 태연하게 했다.

그 뒤로도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지만, 잡담을 나눈 것에 불과했다.

이야기가 늘어지자 정진은 뒤에 있던 견적을 불렀다.

“적아, 두 분을 모셔다드리거라.”

명백한 축객령에 두 사람은 정진에게 인사를 한 뒤, 견적을 따라 정론각을 나왔다.

견적은 다시금 지객당으로 두 사람을 안내해 줬고,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제갈려가 시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고작 이런 이야기 나누려고 찾아온 거야?”

“그럴 리가.”

“그런데 왜 잡담만 하다가 물러나?”

“배우랑 소품이 안 와서.”

알 수 없는 시후의 말에 제갈려는 인상을 썼다.

곧 눈을 부라리며 얼른 말해 달라고 채근했지만, 시후는 냉큼 견적의 옆으로 붙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이 가는 소리에 시후는 실실 웃었고, 견적은 고개를 흔들며 지객당으로 향했다.

지객당 근처까지 데려다준 견적은 짧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두 분께선 사내에 불경스러운 일이 없도록 주의해 주십시오.”

“아니, 그게 무슨······. 견적 스님! 말은 듣고 가야죠. 견적 스님! 스님!”

시후는 황당해하며 견적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견적은 듣기 싫다는 듯 나한보를 펼치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누구랑 엮는 거야, 하!”

“누가 할 소릴······. 젠장.”

발끈하며 대응하려 했지만, 이미 제갈려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뒤였다.

홀로 남은 시후는 열을 식히기 위해 경내를 산책했다.

소림사 이곳저곳에는 체력을 단련하는 무승도 있었고, 경전을 읽는 어린 동자승들도 있었다.

고즈넉한 사찰 분위기에 슬슬 마음이 진정되자, 돌고 돌아 지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응?”

지객당 앞마당에는 세 사람이 서 있었다.

특히, 지객당의 당주와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은 조금 전 정론각으로 가면서 봤던 얼굴이 아니었다.

소림에선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했으니, 저들도 구파일방이나 팔대 세가의 인물일 게 뻔했다.

‘그렇다는 건.’

시후는 씩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배우가 소품을 잘 챙겨 왔으려나?”

- 52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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