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50화 정의맹 (1)
한참 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 있는 아저씨를 향해 헛기침하며 다가갔다.
“흠흠, 한 달 정도 전에 뵀었는데 기억나세요?”
“기억나지. 그때, 창 한 자루를 거의 강탈하다시피 하지 않았나.”
“그때 제가 좋은 선물 하나 가지고 온다고 했죠? 이 창을 본 것만으로도 대단한 선물이죠?”
“충분하지, 충분하고말고. 내 생에 이런 창은 본 적이 없네! 한눈에 보아도 단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완벽한 균형! 기법을 보아하니 수백 년은 된 듯한 고루한 기법이지만, 멀쩡한 창간을 볼 때 주술적 처리까지 한 게 분명하지. ‘완전무결’이라는 말은 이 창을 위해 만들어진 게 분명하네!”
잔뜩 흥분한 그는 침을 튀겨가며 웅변하듯 말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주방까지 침범했고, 곧 주인아주머니가 식칼을 들고나오게 했다.
“또 시작이네, 손님들 귀찮게 하지 말고 내버려 둬요.”
덕분에 목이 움츠러든 주인아저씨는 창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식탁으로 다가와 시후의 앞에 앉았다.
그러나 그의 눈은 여전히 자운유성창을 향해 있었다.
“여태까지 수많은 창을 만들었지만, 저 창과 비교한다면 이쑤시개와 다름이 없네. 내게 저 창의 이름을 알려 주지 않겠는가?”
“자운유성창.”
그의 장단에 맞춰주기 위해 시후도 목소리를 내리깔며 진지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음이 심란한 제갈려는 둘이 대화를 나누건 말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제기랄! 이름조차 끝내주는군. 자운유성창이라······. 상산 조자룡이 떠오르는데?”
“그의 진(眞)무기죠.”
“만져 봐도 되겠는가?”
시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운유성창으로 달려갔다.
다만, 신속하게 다가갔던 것과 달리 매만지는 그의 손길은 달팽이처럼 느릿느릿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후는 제갈려가 꼭 쥐고 있는 봇짐을 바라봤다.
“내기는 없던 거로 할 테니 보여 줘 봐.”
그 말에 제갈려는 주춤거리긴 했지만, 천천히 봇짐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아저씨, 이것 좀 보실래요?”
시후의 말에 자운유성창에 침이라도 발라볼 기세였던 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탁자로 다가왔다.
탁자 위에 놓인 봇짐을 가리키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자리에 앉아 매듭을 풀어나갔다.
“도대체 몇 겹이나 감싸 놓은 건지, 원.”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천 쪼가리에 투덜거리던 그의 얼굴은 마지막 천마저 사라지자, 잔뜩 일그러졌다.
신줏단지 모시듯 감싸 놓은 천 안에는 녹이 잔뜩 슨 검이 놓여 있었다.
손잡이는 잠깐만 쥐어도 곧 부서질 것처럼 삭아 있었기에 쉽사리 들어 올리지도 못했다.
그는 탁자에 올려진 그대로 검을 훑어보았다.
“남아 있는 흔적을 보니, 저 창과 마찬가지로 수백 년 전의 기법이군. 검신이 깨어지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어라?”
검병에서부터 검신까지 쭉 훑어보며 읊조리던 그의 입이 멈췄다.
검신에 새겨진 글자를 본 것이다.
눈을 거칠게 비빈 그는 녹에 가려져 잘못 보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지, 옷 소매로 글자가 새겨진 부분을 슬쩍 문질렀다.
녹이 후드득 떨어지며 ‘청홍검’이라는 세 글자는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자운유성창을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입은 찢어질 듯 벌어졌다.
“제법 오래 잠들어 있긴 했지만, 깨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물론이지! 부러졌다고 한들 이어붙여야 하지 않겠나. 내게 맡겨 준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 잠꾸러기 친구를 잠에서 깨워 주겠네!”
그는 콧김을 씩씩 뿜어내며 시후의 손을 붙잡았고, 시후는 억지로 손을 내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이 애원해야 할 상황이었건만, 그와 반대로 주인아저씨가 매달리자 시후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고마우이! 내 기필코 이 녀석을 깨워 주겠네.”
천 아래로 손을 집어넣은 그가 탁자 위로 청홍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다만, 무게를 잡은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막 부엌에서 나오던 주인아주머니는 식탁 위에 떨어진 녹가루를 보더니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 양반이! 식탁에서 뭐 하는 짓이야!”
마구잡이로 펼쳐진 천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검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흩뿌려진 녹가루에 비한다면 말이다.
그 녹의 원흉을 들고 있는 아저씨는 시후와 제갈려를 바라봤지만,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 * *
산중의 사찰은 언제나 고요하다.
그건 소림사도 마찬가지다.
말끔히 정돈된 경내가 아니라면, 소림의 아침은 사람이 없는 폐 사찰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달랐다.
소림사 중심에 자리한 정론각에서 빠져나온 목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졌다.
“그래서! 두고 보자는 말씀이시오?”
“명분이 없잖습니까.”
“저들이 모인 게 명분이오!”
“너무 빈약한 명분 아닙니까. 고작 이런 일에 나선다면, 산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소문에도 허겁지겁 뛰어가시겠습니다.”
“그것과는 다르지 않소!”
시작은 나지막이 대화를 주고받았으나, 서로 반대되는 의견을 피력하자 대화를 나눈다기엔 언성이 높아졌다.
소림사의 26대 방장인 정진은 과열된 내부를 둘러보더니 가볍게 손뼉을 쳤다.
가벼운 손짓과 달리 합반장(合盤掌)을 응용한 것인지, 모두의 귀에 선명하게 틀어박혔다.
덕분에 목소리를 높이던 두 사람도 말을 멈추었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럼 정진 대사님의 고견을 들려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공동파의 수석 장로 추명헌은 당장에 결론을 내려야겠다는 듯 성급한 질문을 던졌다.
다들 그 행태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 모두가 정진을 바라봤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정진은 손에 쥔 염주를 돌돌 굴렸다.
“일단, 두 분의 의견은 모두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녹림과 수로채가 한 세력으로 묶인다면, 그 여파는 민초들에게 돌아가겠지요. 이는 묵과 할 수 없는 중대한 사실입니다.”
“역시, 정진 대사의 의견도······.”
“하지만, 그들이 모이기만 했다고 해서 당장이라도 그들을 죽여야 한다는 추명헌 장로님의 의견은 과한 면이 있습니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듯한 정진의 의견에 흥분했던 추명헌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말을 멈춘 그는 잠시 고개를 돌려 뒤편을 바라봤다.
“그 이유는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북동쪽이었다.
바로 자금성이 있는 그곳.
아무리 관과 무림이 불가침이라고 한들, 지금 상황에서 통용될 수 있을까?
잠깐만 생각해 봐도 대답은 ‘아니요’로 귀결될 것이다.
지금 대규모 인원을 움직인다면, 이는 곧 관의 시선을 끄는 것이고, 제제가 들어오지 않을 수 없다.
그게 아무리 정파인 구파일방과 팔대 세가라고 한들 말이다.
대화가 끊긴 정론각은 정적이 찾아들었다.
“그보다, 모용은 도대체 무슨 일로 여태껏 아무런 소식도 없는지 아시는 바 있소?”
침묵을 깬 건 화산의 집법 장로 교초혼이었다.
모용세가는 최근 용봉지회는 물론이고, 그 훨씬 이전부터 참석하지 않고 있었다.
“식자재를 가지고 출입하는 인원을 제외하곤 세가 밖으로 도통 나오지 않으니 알 방법이 없소. 그렇다고 우리 개방에서 몰래 들어가서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정도면 거의 봉문(封門) 수준이 아니오?”
“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소.”
“대체 뭘 하는 건지 미리 언질이라도 줄 것이지······. 쯧쯧.”
오지 않은 다른 문파의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대화는 어느새 잡담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정진 대사는 그들의 이야기를 자애로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뒤편으로 돌렸다.
곧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문과 아미, 청성에서 오셨습니다.”
“오후 늦게나 도착할 줄 알았는데, 밤새 움직이셨나 보구나.”
정진은 주변에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을 맞이하러 밖으로 나가자, 정론각 앞까지 다가온 세 사람이 보였다.
아미와 청성은 항상 보던 인물이었지만, 미리 들었던 것처럼 당문은 처음 보는 인물이 와 있었다.
청성과 아미의 인물과 가볍게 인사를 마친 정진에게, 새로운 당문의 젊은 피가 합장을 취했다.
“정진 대사님, 연락드린 대로 숙부님을 대신해서 참석하게 된 당패철이라고 합니다.”
“소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미흡하나 소림 방장을 맡은 정진이라고 합니다.”
“대사님, 말을 낮추시지요.”
“허허, 그보다 이렇게 당가의 젊은 피를 보니, 이제 우리는 뒷방의 늙은이로 물러나야 하나 싶구려.”
웃으며 말했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알아차린다면 웃을 수 없으리.
당패철은 아직 이곳에 참석할 나이는 되지 않았지만, 그 말에 숨어 있는 뜻을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지 않았다.
“이번에 숙부님이 못 오시게 된 이유는 안으로 들어가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좋지 않은 이유는 아닌 듯하니 다행이구려. 날이 추우니 어서 들어갑시다.”
당패철의 목소리에는 사과하면서도 기쁨이라는 감정이 맺혀 있었기에, 정진은 서둘러 세 사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정론각에 들어서자 아미와 청성은 주변에 가볍게 인사를 한 뒤 자신들의 자리에 앉았다.
다만, 당패철은 자리에 앉기 전 주변을 둘러보며 허리를 푹 숙이며 포권을 쥐었다.
“당 숙부님을 대신하여 참석한 당패철이라고 합니다. 숙부님이 게으름을 부르신다면 모를까, 제가 정식으로 이 자리에 오기엔 아직 십 년은 더 걸리겠지요. 파릇파릇한 녀석이 이 자리에 왔다고, 부디 노여워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불쾌해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예의 바른 그의 모습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정진 대사가 자리에 앉으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당패철은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말이 끝나고 앉을 요량인 듯했다.
“일단, 당 숙부님이 오지 못한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숙부께선 최근 운남으로 떠나셨습니다.”
“운남? 독이라도 구하러 가신 건가?”
“맞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끌려가신 거지요.”
“억지로? 누가?”
말하는 당패철의 얼굴에는 웃음이 맴돌고 있었기에, 좋지 않은 일로 끌려갔다는 표현은 아닐 것이다.
좌중을 둘러본 그는 적당히 뜸이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열었다.
“큰할아버지를 따라가셨습니다.”
그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람들은 모두 몸이 굳어 버렸다.
뒤늦게 떠오른 한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의께서 살아있······ 아니, 돌아오셨나?”
신의는 모습을 감추고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죽었다’라고 착각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잊힌 상태였다.
당패철을 향해 불쾌한 시선을 보냈던 자들조차 흥분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신의’라는 이름의 무게는 그만큼 대단했으니깐.
“크흠, 사이가 영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다만, 사촌이 땅을 사도 부러운 법인지라, 축하를 빙자한 시샘을 드러내는 자들이 있었다.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 교초혼의 말에도 패철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간 감정의 골이 적잖이 깊었지만, 할아버지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시곤 웃음을 터트리시더군요. 하루아침에 그간에 깊어진 골을 모두 메울 수는 없겠지만, 차근차근 메우다 보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웃는 낯짝에 침 못 뱉는다고, 패철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하자 살살 긁어내던 교초혼은 고개를 픽 돌렸다.
“하긴, 불행은 남궁세가 하나로 족하지.”
교초혼이 갑작스레 남궁세가를 거론하자 다들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봤다.
정진 대사가 뭐라 지적하려고 했지만, 다시금 입구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방장님.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 당분간 방문을 받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게······. 이걸 좀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정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젊은 승려가 공손히 패 하나를 건네주었다.
살아 숨 쉬는듯한 용이 조각된 금 패였다.
그 패를 본 정진은 미약한 신음을 내뱉었다.
“끄응······. 관이로구나.”
“아닙니다. 관의 인물은 아닌 듯합니다.”
젊은 승려의 대답에 정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뭔가를 아는 말투가 아니던가.
“적아, 네가 그걸 어찌 아느냐?”
“이 패를 가지고 온 사람은 이번 용봉지회에서 제법 유명했던 자입니다. ‘비무광자’라 불렸지요.”
정진의 말에 차분히 대답하는 그는 역대 최연소 나한승으로 뽑힌 견적이었다.
- 51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