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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46화 (28/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46화 자금성 (3)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병부상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시후를 향해 외쳤지만, 명진제의 싸늘한 시선에 입을 꾹 닫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출입 기간을 일주일로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심전에 출입했던 인원은 상상을 초월했다.

나인과 환관들의 숫자만 하더라도 기백을 훌쩍 넘었고, 교대로 드나든 금의위를 더하니 그 수가 상상을 초월했다.

덕분에 태화문 광장에 사람들을 모아야 했다.

이정도의 규모로 일을 벌였다면 필시 황제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커질 대로 커진 판을 둘러보는 와중, 팽충정이 다가왔다.

“저기 앉아 있는 자들만 해도 총 육백 팔십 명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군요.”

“저 또한 저곳에 들어가야 하니 이제 육백 팔십 한 명이 되겠지요.”

그의 말에 시후는 어서 앉으라는 듯 턱짓을 했다.

시후는 황족을 제외하곤 누구도 구분하여 두지 않았다.

병부상서를 필두로 어검대 소속이든 금의위든 모두 예외는 없다고 공표했다.

반발이 거셌지만, 뒤에서 지켜보는 명진제의 이름을 꺼내자 반발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마지막 팽충정까지 자리에 앉자, 모든 배우의 준비가 끝나게 되었다.

이젠 공연만이 남은 것이다.

시후는 태화문에서 내려다보는 단 하나의 관객이자, 가장 중요한 증인인 명진제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시작하라.”

명진제의 말에 시후는 허리를 펴고 뒤돌아섰다.

수백 쌍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목소리가 멀리 퍼질 수 있도록 내공을 끌어올렸다.

“명진제 전하의 명을 받들어, 황실에 숨어든 사특한 무리를 찾아내기 위해 이 자리에 선 차시후라고 한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모두 명진제 전하의 말씀과 다르지 않으니, 모두 귀를 기울여 집중해서 듣거라.”

시후는 한 차례 말을 끊고, 앉아 있는 자들을 쓱 훑어보았다.

병부상서를 포함해서 고관대작에 오른 자들이 즐비했지만, 따로 존대를 사용하진 않았다.

명진제를 대행하는 자리에서 말을 높인다는 건, 명진제를 모욕하는 행동과 다름이 없었다.

“사특한 무리를 찾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니, 집중한다면 누구나 쉽게 혐의를 벗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자신이 앉아 있는 자리에 지필묵이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없는 자 있는가? 있다면 손을 들어라.”

시후가 전방을 둘러보며 말했으나, 누구 하나 손을 들어 올리는 사람이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시후가 사방에 흩어진 금의위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오와 열을 맞춰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두꺼운 천이 올라갔다.

중간에 겹치는 부분은 자른 뒤, 엉성하게 바느질했기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의 시야를 차단해 주었다.

일순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시후는 내공을 실어 발을 굴렀다.

“주의점을 말해 줄 테니, 듣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만에 하나 실수를 범하면······ 어찌 될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겠지.”

대답은 없었지만, 이어진 침묵은 대답한 것과 진배없었다.

시후는 손을 들어 올린 뒤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첫째,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라. 둘째, 천을 들치거나 건드리지 마라. 셋째, 지필묵을 사전에 건드리는 일이 없도록 해라. 이 말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명진제 전하의 명으로 즉시 옥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을 것이니,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거라.”

길었던 시후의 말이 끝났지만, 누구 하나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오히려 다리도 쭉 펴기 힘들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도, 다들 천에 닿지 않기 위해 몸을 더욱 구길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시후는 들어 올렸던 손을 흔들었다.

곧 오문(午門) 양쪽에 있는 희화문과 협화문이 열리며, 무수히 많은 무리가 들어왔다.

금의위의 감시를 받는 그들의 손에는 다양한 악기가 들려 있었다.

들어온 일련의 무리는 내금수교(內金水橋)의 가운데 어로교를 제외하고, 양쪽 다리에 네 무리로 나뉘어 자리를 잡았다.

“지금 뒤편에서 어떠한 연주가 들려올 것이다. 모두 그 소리를 잘 들어야 할 것이다. 이 소리가 그대들의 혐의를 벗는 구명줄이 될 것이다.”

어느새 시후는 그들에게 섞여 있었다.

갑자기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다소 웅성거리긴 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곧 연주가 시작되었다.

불과 십여 초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은 연주.

너무나도 금방 끝나 버렸기에 다들 탄식을 터트렸다.

“똑같이 두 번 더 들려줄 테니, 집중해서 들어라!”

천이 훌쩍 넘는 인원이 모인 태화문 광장이었지만, 다들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했다.

두 번째 연주가 끝나자, 이전과 달리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연주를 듣고 나면 바로 문제를 낼 것이다.”

세 번째 짧은 연주가 끝났다.

질식할 것만 같은 무거운 공기가 좌중을 뒤덮었다.

모두 조금 전 들었던 연주를 되뇌는 듯했다.

“이제부터 감탄도 탄식도 집어넣고, 오로지 듣기만 해라. 총 다섯 번의 연주를 할 것인데, 그중 조금 전 연주와 가장 흡사한 연주를 했던 번호를 적어 내면 된다. 번호는 다섯 번째 연주가 끝나고 적어야 할 것이고, 그 전에 적는 자가 있다면 그 즉시 옥으로 끌고 갈 것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첫 번째 연주가 시작되었다.

다들 귀를 쫑긋거리며 집중했다.

첫 번째 연주가 끝나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공통적인 생각은 하나였다.

‘비슷하지만, 분명 달라.’

하지만,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고,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조금씩 시간을 두고 연주가 이어졌고, 다섯 번째 연주까지 모두 끝났다.

붓을 움직이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이 대다수였다.

지금 적는 이 숫자가 자신의 유서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깐.

하지만, 시후는 길게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딱 열을 세겠다! 시간을 더 주는 건 없다! 열, 아홉, 여덟······.”

내공을 실어 발을 구름과 동시에 숫자를 세어나갔다.

숫자를 세는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지만, 불만을 토로할 시간조차 없었다.

다들 황급히 붓을 움직였다.

쓱쓱 붓 움직이는 소리만이 광장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

“하나! 모두 종이를 머리 위로 들어라! 들지 않는 자는 역모죄를 뒤집어쓸 것이다!”

시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간중간 욕설이 흘러나오긴 했지만, 모두 숫자를 적은 종이를 들어 올렸다.

수백의 손이 동시에 들어 올려지자, 태화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명진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한참을 지켜보던 그가 앞으로 한 발짝 더 내디뎠다.

전방을 훑어보던 명진제의 시선이 한곳에 멈추었다.

그리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두어 걸음 앞으로 더 내디뎠다.

어림짐작으로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을 바라보자, 시후가 의도한 숫자가 보였다.

다른 곳을 대충 훑어봤지만, 그와 같은 숫자를 적은 인물은 없었다.

‘성공이다.’

“명진제 전하! 저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시후의 말에 명진제의 고개가 미약하게나마 위아래로 움직였다.

곧 그는 뒤편에서 서 있던 어검대를 돌아봤다.

“어검대는 들어라.”

“충! 명을 받습니다!”

“당장 불온한 저자를 포박하라.”

누구라고 콕 짚어 말할 필요가 없었다.

명진제의 손끝이 가리키는 자는 그들도 똑똑히 보였으니깐.

아니, 손끝을 보지 않아도 그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수백의 사람 중 사(四)를 쓴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했으니깐.

“가장 바깥쪽부터 천을 거둬라.”

가장 외각을 막고 있던 천이 치워지자, 앉아있던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옆으로 비켜섰다.

허리춤에 칼을 찬 어검대가 곁을 지나가자, 지나친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토했고, 아직 지나지 않은 자들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어서 천을 치워라.”

한 줄씩 사람들이 사라지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슬쩍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어검대 중 한 명이 칼을 뽑아 들었다.

“자리에 앉으시오!”

서슬 퍼런 어검대의 호통에 일어났던 자들이 황급히 자리에 앉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바로, 보모상궁이었다.

“아하하하하하.”

“순순히 넘어오시오.”

파안대소하는 그 모습에 어검대는 즉시 칼을 뽑아 들었다.

다들 몸을 바닥으로 납작 엎드렸지만, 보모상궁은 전혀 그럴 기색이 없었다.

한참을 웃던 그녀는 뒤편에 있는 시후를 노려봤다.

“처음 볼 때부터 꼴 보기 싫더니, 네 번째에 넣은 음은 무음필대로 네가 넣은 것이렷다?”

“물론.”

“그딴 얕은수에 넘어가다니, 내가 멍청했구나. 이 넉 사(四)가 죽을 사(死)가 되었구나······.”

무음필대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모를까, 들을 수 있다면 걸릴 수밖에 없는 함정이었다.

시후가 말없이 웃는 사이, 자리에 앉아있던 팽충정이 어느새 그녀의 근처까지 다다랐다.

“모든 걸 순순히 실토한다면, 명진제 전하께서 그간 함께했던 정을 생각하여······.”

“깔깔깔, 아서라. 내가 너보다 수십 배의 시간을 함께했거늘 그를 모를까. 분명 뼈를 갉아내고 살을 저미는 고통을 안겨 주겠지.”

보모상궁은 팽충정의 말을 끊으며 태화문 위에 서 있는 명진제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는 명진제의 시선에는 감정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인형과 같았다.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던 보모상궁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습니······ 쿠흡!”

그녀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검은색 죽은 피를 토했다.

팽충정과 어검대는 급히 다가서려고 했으나, 죽은 피는 메케한 악취를 내뿜었다.

“키힉, 힉.”

보통 사람은 입과 코로 숨을 쉬지만, 지금 보모상궁의 목에는 또 다른 숨구멍이 생겼다.

새로 생긴 숨구멍으로 숨을 쉬는 게 익숙지 않은 것인진 몰라도,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뱉던 그녀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얼마나 지독한 독인지, 사람의 형태를 잃은 그녀는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내궁 안에 숨어 있던 그림자를 처리하였습니다. 1/1]

[연계 임무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가 해결되었습니다.]

[차후 명진제를 통하여 다음 연계 임무와 보상을 받으십시오.]

완전히 녹아버린 보모상궁을 바라보던 시후는 뒤를 돌아 명진제를 올려다봤다.

‘마무리는 네가 해야지.’

무표정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던 명진제는 앞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어검대와 병부상서 최태원은 들어라!”

명진제의 말에 주위를 둘러싼 어검대는 무릎을 꿇었다.

충격적인 광경에 정신이 팔렸던 병부상서 또한 뒤늦게 무릎을 꿇었다.

“어검대는 동창과 협력하여 보모상궁과 평소 가까이 지냈던 환관과 상궁, 그리고 나인들을 모조리 구금하여,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으면 모든 걸 실토케 하라. 그리고 병부상서는 보모상궁의 방을 헐어도 좋으니, 병사들을 동원하여 수상쩍은 물건이 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확인하라. 또한, 그간 보모상궁이 궁 밖으로 내보냈던 서찰이나 물품이 있다면, 낱낱이 확인하여 그 배후를 파악하도록 하는데 전력을 다하여라!”

“충!”

“꼬리를 자르려 할지도 모르니, 당장 움직이거라.”

명진제의 명에 어검대는 일사불란하게 인원을 나누어 흩어졌다.

급한 건 병부상서도 마찬가지인지라, 시후에게 대충 눈인사만 건넨 뒤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이제 내 차롄가.’

시후는 당당히 고개를 들어 올려 명진제를 바라봤지만, 명진제는 어느새 태화문을 넘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후의 곁으로 제갈려가 다가와 고개를 내저었다.

“하긴, 낳아 준 부모는 아니지만, 부모와 마찬가지였던 보모상궁이 눈앞에서 자결했는데 얼마나 상심이 클까.”

“그럼 내 보상은 언제 주려나.”

시후의 중얼거림에 제갈려가 뒤를 돌아봤다.

“응? 뭐라고?”

“못 들었으면 됐어.”

“음······. 아, 그보다 이거 다 준비하는데 들어간 돈은······. 자 여기.”

제갈려가 건네준 종이를 받아든 시후는 입을 쩍 벌렸다.

그대로 냈다간 자신이 가진 돈을 탈탈 털어도 부족할 정도였다.

시후는 명진제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보상을 돈으로 받아야 하나?”

- 47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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