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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41화 (23/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41화 북경으로 (3)

시후는 노인을 따라 탁자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일렁이는 횃불을 든 노인의 걸음엔 거침이 없었고, 그 걸음이 멈춘 끝에는 얼핏 본 적이 있는 듯한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어디서 봤나 생각하던 시후는 알아차렸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하오문 정주 지부.”

“그래. 문 너머 진실은 하나로 이어진다고 해서, 모든 문은 이와 동일한 모양으로 제작했지.”

쓸데없는 상식이 하나 더 늘게 된 시후였다.

시후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그렇냐’라는 시늉을 해 주곤 슬쩍 문을 밀었다.

역시나 정주 지부와 마찬가지로 문을 부드럽게 열렸다.

정주 지부와 다른 점을 꼽으라면, 시후가 올 걸 미리 알고 안에 불을 밝혀 놨다는 점.

그 외에 내부는 정주 분타와 비슷했다.

아니, 다른 점은 한 가지 더 있었다.

반대편에도 문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방 안에는 사람이 없으니, 반대편 문으로 사람이 들어오겠지.’

들어온 문을 등지고 자리에 앉아서 바라보는 문이 열리길 기다렸지만, 그런 시후의 예상을 깨고 들어왔던 문이 다시 열렸다.

“진실은 하나인데 왜 헛것을 보고 있는 게냐?”

다소 부정확한 발음.

앉은 채로 뒤돌아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려고 했지만, 문만 활짝 열려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늦다.”

다시금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

시후가 본래 바라보고 있던 앞을 바라보자, 그제야 목소리의 주인공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다.

상대는 사흘 전 천비령이 길을 막았을 때처럼 죽립을 쓰고 있었다.

‘죽립이 유행인가?’

시후에게 잠깐의 의문이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죽립 아래로 노인의 입이 열렸다.

싯누런 치아가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었다.

발음이 왜 부정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주인이 오지도 않았는데 자리에 앉아 있다니, 건방진 놈이로고.”

“앉으라고 의자를 가져다 놓았을 텐데, 미련하게 서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시후의 당돌한 말에 노인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맞다. 허례허식 따위는 중요치 않지.”

노인은 말과 함께 앙상한 손을 움직여 죽립을 벗었다.

치아와 손 상태를 보고 미리 짐작은 했지만, 노인은 숨이 당장에라도 넘어갈 듯 비쩍 말라 있었다.

“하오문주를 맡고 있는 통안파파(通眼皤皤)라고 한다.”

그의 소개에 시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파’라고 함은 머리카락 등이 하얗게 세었음을 의미했으니깐.

“너도 내 나이쯤 되면 터럭 하나 없는 게 이상하진 않지 않느냐?”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찔리는 거라도 있으신가 보네요.”

통안파파의 자기변호에 시후가 신랄하게 받아쳤다.

덕분에 한 대 맞은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던 그가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숨넘어가는 웃음소리였다.

“크헐헐헐, 이놈, 혓바닥을 제법 놀리는구나. 그래, 이 일을 맡으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툭.

그는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주머니를 고스란히 탁자 위로 던졌다.

주머니는 마치 재로 잰 듯 딱 시후의 앞에 떨어졌다.

둔탁한 소리가 나는 게, 안에 든 물건이 절대 가볍지 않음을 알려 주었다.

시후가 주머니를 받아들자 통안파파가 안을 열어보라는 듯 손짓했다.

안에는 금원보 다섯 개가 들어 있었다.

“명진제 전하께서 주신 것이다.”

“강소성?”

“빌어먹을 거지와 세 아이에겐 따로 전달했으니, 그 돈은 오롯이 네 것이다.”

‘하오문이 관과 이 정도로 친했던가?’

이 부분에 관해서는 기억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시후는 눈썹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왜? 적으냐?”

“아뇨, 굳이 이 보상을 하오문에서 전해 주는 게 이상해서요.”

“껄껄, 요놈아. 우리가 개방보다는 관이랑 조금이라도 더 밀접하지 않겠느냐? 그 치들이 술을 마시면 어디에서 마실 것 같으냐?”

하기야, 고위 관료가 굳이 냄새나는 개방과 접촉할 이유가 있을까.

기루를 찾아가면 하오문에서 알아서 사람을 보낼 텐데.

시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통안파파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벽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끝은 불규칙하게 벽을 두드렸고, 이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틈이 벌어지더니 서찰이 하나 튀어나왔다.

손끝을 가볍게 움직여 튕긴 서찰은 마치 살아있는 제비처럼 시후에게 날아들었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피하려고 했지만, 탁자를 지나면서 힘을 잃은 서찰은 곧 탁자 끝자락으로 내려앉았다.

“쯧쯧, 그리 담이 작아서 큰일을 할지 모르겠구나.”

그의 비아냥에 시후는 귀가 살짝 달궈짐을 느꼈다.

‘젠장.’

시후는 속으로 짧게 욕을 내뱉곤 탁자 위로 손을 뻗었다.

[‘병부상서(兵部尙書)의 서찰’을 입수했습니다.]

서찰을 주워들자 혀를 차던 통안파파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요즘 명진제 전하께서 내린 명령 때문에 요즘 궁에서 여간 골치를 썩이는 게 아닌 듯하더구나. 오죽하면 우리에게까지 연락했겠냐만······. 한번 읽어 보고, 가능하다 싶으면 말하거라. 출입 가능한 패를 내어줄 테니.”

시후는 즉시 서찰을 펼쳐보았다.

곱게 접은 서찰이 중력에 따라 아래로 촤르륵 펼쳐졌다.

「간악한 무리가 황궁 안에 숨어든 작금의 사태에 명진제 전하를 비롯한 우리 중신들은 통탄을 금치 못하노라. 이 사특한 무리를 발본색원하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쥐새끼처럼 숨어 들은 녀석들이 도통 기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작금의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니, 우국충정 뜻을 품은 자를 모집하고자 한다.

현 상황을 간략하게······.」

펼친 서신은 시후의 허벅지까지 내려왔다.

자신이 없었다.

이걸 읽을 자신이.

“전혀 간략하지 않은데요?”

“먹물깨나 먹었다는 놈들은 쓸데없이 말을 늘리는 법이지. 요약하자면, 자금성 내부에 숨어든 놈들을 색출하는데 손 좀 보탤 놈들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처음에 조금 걸러내긴 했지만, 아직 남아 있는 녀석들이 제법 있는 모양이야.”

“얼마나 남아있나요?”

“이놈아, 그걸 알면 이미 다 잡아 처넣지 않았겠냐.”

그도 그렇다.

통안파파의 말에 시후는 펼쳤던 서찰을 고이 접었다.

손에 들린 서찰을 잠시 내려다보던 시후는 이내 서찰을 품에 갈무리했다.

그 모습을 본 통안파파는 품에서 둥그스름한 패를 꺼내 던져 주었다.

[‘옥룡(玉龍) 패’를 입수했습니다.]

[‘병부상서의 서찰’을 가지고 입궐 시, 연계 임무 ‘숨어있는 연꽃을 찾아라’가 발동합니다.]

“그 패를 가지고 자금성에 가면 병부상서에게 데려다줄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에게 직접 듣는 편이 좋겠지.”

생각대로 임무는 흑련회 무리를 찾아내는 게 목표인 듯했다.

절대 불가능한 임무는 애초에 받을 수가 없으므로, 어떻게든 해결은 가능할 것이다.

다만,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다.

시후는 서찰과 옥룡 패를 챙겨 넣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못 찾는다고 해도, 어차피 저 치들도 마찬가진데 누굴 뭐라 하겠나? 황궁을 둘러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거라.”

그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용봉지회에서 ‘증명’을 완료하기 위해 얼마나 귀찮았는가.

다행히 이번 임무는 실패해도 불이익은 없을 듯하니, 그의 말대로 가볍게 다녀오면 될 듯했다.

“다음에 또 뵙죠.”

* * *

팽가로 돌아온 시후는 곧장 제갈려를 찾았다.

“할 이야기가 있는데.”

“마침 나도 할 이야기가 있어. 넌 지금 우리가 협력 관계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거 같은데······.”

“일단 내 말부터 들어 봐.”

제갈려가 딴지를 걸려고 하자, 시후는 먼저 그녀의 말을 끊고 선수를 쳤다.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이는 그녀를 보곤 시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 북경에 오게 된 이유를 말하려면 강서성의 일부터 말하는 게 이해가 빠를 거야. 용봉지회에 참석하기 전 우리 네 사람은······.”

시후의 이야기는 제법 길었고, 제갈려는 삐딱하게 선 채로 이야기를 들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는 뚱한 표정으로 시후를 바라봤다.

“그래서? 황궁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됐어.”

“불가. 그런 쓸데없는 일에 내 천금 같은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어. 내가 할아버지에게서 6개월이란 시간을 얻기까지 어떻게 타협했는지 알아?”

제갈려는 단 한 치의 양보도 없다는 듯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제갈세가 차녀 생존기’를 진행 중인 상황인지라, 보호 대상인 제갈려가 거부한다면 황궁 임무는 받을 수 없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 분명 못 받을 것이다.

하지만 시후는 전혀 불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애초에 황궁 임무를 하려는 이유는 제갈려가 자신에게 협력하는 이유와 같았으니깐.

“지금 이 일은 너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일 텐데?”

시후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자, 제갈려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지 몰라도······ 설마?”

짜증스럽게 따지고 들던 제갈려는 뭔가 깨달은 듯 말을 멈추었다.

말을 멈춘 그녀의 앞에서 시후가 부채질하듯 손을 흔들자 제갈려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애초에 측천무후의 황릉을 털기 위한 이해 관계로 묶인 사이가 아니던가.

시후의 손짓은 그 열쇠인 측천파흑선을 의미했다.

“확실하지?”

“물론.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면 그 녀석 중 하나를 받을 수 있을 거야.”

“좋아. 그럼 잘 다녀와.”

제갈려의 허락이 떨어졌지만, 시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딜 쏙 빠지려고?’

“너도 가야지. 머리를 좀 써야 할지도 모르거든.”

환하게 웃던 제갈려가 다시금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다시 팔짱을 끼는 모양새가 명백한 거부 의사를 표출했다.

하지만, 숟가락만 얻는 걸 용인할 시후가 아니었다.

“싫으면 돕지 않아도 괜찮아. 내 능력이 부족해서 실패한다면, 뭐, 다음 생쯤에는 측천무후의 황릉에 갈 수도 있겠지.”

시후의 말에 제갈려의 몸이 흠칫 떨렸다.

실패하면 쪽박을 찰 테니, 그 밥그릇이 깨지지 않으려면 시후를 잘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좋아. 그런데 공동의 목표를 위해 돕긴 돕겠지만, 우리 호칭 정리는 조금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명백히 너보다······.”

“그럼 제갈려 씨, 황릉은 다음 생에 가는 거로 합시다.”

빠드득.

제갈려는 치아가 온전한지 염려될 정도로 이를 강하게 갈았다.

도와주는 조건으로 이후 관계에 우위를 점하려고 했지만, 시후는 제갈려한테 고개를 숙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원래 이런 싸움은 절실한 쪽이 무릎을 굽히기 마련이다.

시후는 해도 상관이 없다는 태도이었기에 항복을 선언한 건 제갈려였다.

“내가 뭘 도우면 돼?”

그녀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덕분에 시후는 웃을 수 있었다.

“일단 서로가 할 수 있는 일을 알아야겠지? 무영묘적이 아닌 제갈려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뭐가 있어?”

“진법이지.”

시후의 질문에 제갈려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하기야, 제갈마혁에게 진법을 배운 그녀의 수준은 무공으로 친다면 아득히 높은 수준일 것이다.

절정은 진작에 뛰어넘었을 정도로.

“펼칠 수 있는 진법은?”

시후의 질문에 제갈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말 하면 다 알아들어? 천옥무로(天獄無路), 산인무견(散人無見), 천외별지(天外別地)······.”

“아냐, 내가 실수한 것 같아.”

제갈려의 입에서 진법 이름이 줄줄이 이어지자, 시후는 자신의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했다.

이름만 들어서 대략적인 건 알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진법의 정확한 효과에 관해서는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시후의 모습에 제갈려가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제대로 진법을 펼치면, 뚫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천지를 뒤져도 백을 넘지 않을걸?”

이미 도와주기로 이야기됐는데 굳이 자존심을 긁을 필요야 있겠는가.

허풍 섞어 말하는 제갈려의 모습에 시후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쉬고 있어.”

“언제 갈 건지 말해 줘야지.”

제갈려의 목소리에 방을 나서던 시후의 걸음이 멈추었다.

곧 뒤돌아 손가락을 동쪽을 가리켰다.

“내일 해가 밝는 대로.”

- 42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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