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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35화 (17/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35화 무영묘적 (1)

달빛이 살며시 처마 끝에 살며시 걸리기 시작한 밤.

시후는 떠오른 알람을 읽고 있었다.

[사용자 지정해 둔 알람 창입니다.]

[경과 시간 3주일.]

[계획은 신중하게, 행동은 신속하게. 꼬이기 시작하면 풀기 힘드니 계획을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

저번 주에 시후가 자신에게 보냈던 알람이다.

이제는 슬슬 밖에서 도움이 없을 거라 확신했다.

착잡한 기분을 가라앉히곤, 창을 손에 쥔 채 조용히 방을 나섰다.

잠을 청하기 이른 시간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생각할 게 많은 밤이었던 걸까.

대청에는 남궁천이 앉아 명상하고 있었다.

“또 비무라도 하러 나가는 거라면, 점창파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오늘은 그만 자중하는 게 어떤가?”

그의 말대로, 쉬지 않고 비무를 한다면 점창의 얼굴에 똥을 던지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숭심은 아주 박살이 났으니깐.

그것도 ‘개박살’이라는 말이 필요할 정도로.

목검이 부러진 건 물론이거니와 한쪽 팔까지 부러졌으니, 점창파에서 시후를 좋게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취하연과 목일자가 유운삼절기를 완성한다면 관계가 달라지겠지만.

“하하, 이 늦은 시간에 비무를 요청하는 것도 실례죠. 그냥 달이 좋아서 산책이나 하려고요. 게다가 참관인도 없는걸요.”

“손에 들린 창은?”

“무인이 무기를 놓고 다닐 수 있나요.”

시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하자, 남궁천은 미덥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믿네.”

“같이 가요!”

다만,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것인지, 남궁미가 방에서 뛰쳐나왔다.

남궁천이라는 벽을 뛰어넘으니, 남궁미라는 지뢰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후와 같이 나가고 싶어 하기보다는 뭔가에 도망치듯 초조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시후와 남궁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미야. 이번에 처음 오는 아이들인데, 그렇게 거리를 두면 서운하지 않겠느냐?”

“거리를 두다뇨. 오해예요.”

“그럼 그 아이들에게도 같이 산책을 권하는 게 좋겠군. 차 아우의 생각은 어떤가?”

남궁천의 말에 볼을 부풀리던 남궁미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쾅!

문이 부서지도록 닫으면서.

그 모습을 본 남궁천은 고개를 내저었다.

“당가 아이들이 장난을 친 것도 아닌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는 남궁미의 방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방 두 곳을 바라봤다.

당가에서 도착했다.

쌍둥이였는데, 인솔자를 제외하곤 둘 다 용봉지회에 처음 참석해서 그런지 몰라도 종일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렇게 된 데는 남궁미가 기겁한 탓도 크지만.

“하긴 미아가 벌레를 유독 싫어하긴 하지. 차 아우, 같이 산책이라도 하면서 오늘 있었던 비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미아를 달래는 게 우선일 듯하네.”

“물론이죠.”

시후는 지뢰를 알아서 제거해 준 남궁천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남궁미가 당가를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주머니를 꽁꽁 감쌌다고 한들 그 안에서 독충이 빠져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깐.

시후는 당가의 쌍둥이 남매가 머무르는 방을 한번 힐끔거린 뒤 숙소를 나섰다.

며칠 동안 머무르며 익숙해진 제갈세가를 거닐다 보니, 시후와 같이 세가 내를 배회하는 자들이 제법 보였다.

그들 가운데는 시후를 알아보는 자들도 있었고, 비무를 신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이 늦은 시간에 비무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기에, 내일 날이 밝으면 하자고 정중히 미뤘다.

“시간이······.”

한참 동안 제갈세가 이곳저곳을 배회하던 시후는 시간을 확인한 뒤, 슬슬 제갈세가 조금 더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직계가 머무르는 내당(內堂)의 담벼락을 거닐다가, 달빛을 피해 숨어들 수 있는 곳으로 몸을 옮겼다.

시월의 끝자락을 향해 내달리는 시기에도, 아직 교미하지 못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애달프게 울려 퍼졌다.

산책이라는 명분으로 나온 시후의 걸음이 멈춘 지 한 식경 정도가 흘렀을까.

부엉이 울음소리와 함께 달빛이 구름 뒤로 숨어들기 시작했다.

사그락사그락.

그와 동시에 담장 너머 내당에서 들려오는 옷자락 스치는 소리.

시후는 팔짱을 낀 채로 담에 기대어 섰다.

비무를 위해 제갈세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긴 했지만, 비무만을 위해 돌아다닌 건 아니었다.

누가 어디에 머무르는지 파악하기 위함도 있었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실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담벼락에 등을 붙인 시후의 눈앞에, 흑의로 자신을 감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착.

내당의 담장은 일장이 훌쩍 넘었지만, 바닥에 내려서는 소리는 바로 앞이 아니었다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

흑의를 입은 인영이 좌우를 살피며 무릎을 피려는 찰나.

시후가 인기척을 내었다.

화들짝 놀란 그가 몸을 돌리자, 시후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무영묘적.”

시후의 말에 무영묘적의 몸이 단박에 멈추었다.

곧 시후는 품에서 적행 패를 꺼내어 던져 주었다.

가볍게 낚아챈 적행 패를 빤히 내려다보던 무영묘적은 이내 고개를 들어 시후를 바라봤다.

“이야기를 나누기엔 썩 좋은 곳이 아닐 텐데, 자리를 옮기는 게 좋지 않겠어?”

시후가 알아 놓은 바에 의하면 곧 순찰당에서 사람이 올 시간이었다.

물론, 그 사실은 시후보다 무영묘적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무영묘적은 곧 몸을 돌렸다.

“따라와라.”

의도적으로 바꾼 짓눌린 목소리.

곧 따라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고, 시후는 그 뒤를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갔다.

무영묘적의 몸놀림은 은밀했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다만, 시후는 그러지 못하였다.

앞에서 걸어가던 무영묘적이 휙 소리 나게 고개를 돌리더니 낮게 윽박질렀다.

“소리를 죽여라.”

“이게 내 최선인데?”

복면 아래 입을 달싹거리는 듯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말은 들리지 않는 거로 봐선, 소리 없이 욕을 내뱉는 듯했다.

들키면 자신도 곤란하기도 했으니 백후원보를 활성화했다.

이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세가 내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니던 두 사람은 세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외곽의 담벼락에 다다랐다.

마침 순찰은 보이지 않았다.

무영묘적은 날다람쥐처럼 담벼락을 몇 번 박차고 올라갔지만, 시후가 저걸 그대로 따라 하려면 백후원보가 6성은 올라야 할 것이다.

무영묘적이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했지만, 시후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공, 소리 남.”

시후의 낮은 속삭임에 담장 위에서 빠드득 이 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영묘적은 곧 허리춤에 매어둔 혁대를 길게 풀었다.

일반적인 혁대가 아니라 특정 용도로 사용하기 위함인지, 혁대의 길이는 2장을 훌쩍 넘었다.

담장 위에서 혁대를 붙잡은 무영묘적이 빨리 올라오라는 신호를 보냈고, 시후는 창을 등에 동여맨 채 혁대를 잡아 올랐다.

물론, 담 너머로 내려서는 것까지 무영묘적의 도움을 받았다.

소리가 안 날 자신이 없었으니깐.

뒤늦게 땅에 내려온 무영묘적의 눈빛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어쩌라고.’

“여기서 이야기하자는 건 아니지?”

한숨을 길게 토해낸 무영묘적이 다시 앞장서 걸었다.

조심스럽게 움직였던 제갈세가와 달리, 밖으로 나오자 무영묘적의 움직임은 거침없었다.

좁은 골목길을 하염없이 누비던 그는 어느 허름한 창고 앞에 멈춰 섰다.

사용한 지 오래된 듯한 창고의 내부에는 퀴퀴한 냄새가 맴돌았다.

“후! 후!”

무영묘적은 품에서 화섭자를 꺼내어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어 불씨를 살렸다.

화섭자에 생긴 불씨는 촛대로, 촛대는 구석에 놓인 연등으로 쏙 들어갔다.

연등 불빛은 어둠을 몰아내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바닥에는 호미와 쇠스랑 등이 보기 흉하게 널려 있었다.

무영묘적은 허리를 숙여 호미를 벽에 걸고, 쓰러진 쇠스랑을 바로 세우기 시작했다.

곧 한쪽 벽 너머에서 철컥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쇠스랑을 놓았던 벽이 살짝 들어갔고, 무영묘적은 두 손으로 벽을 밀었다.

끼이이익!

어찌나 녹이 슬었는지, 벽으로 위장되어 있던 문에선 닭살이 돋을 정도로 듣기 싫은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앞서 걸어가는 무영묘적을 보던 시후의 발이 멈추었다.

통로는 좁기도 좁은 데다가 매우 구불구불했다.

창을 들고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제남은 무영묘적의 안방이므로, 이런 비밀스러운 곳이 여러 군데 더 있을 것이었다.

분명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게 분명했다.

곧바로 창을 옆에 기대어 놓았다.

캉.

창날이 땅에 닿으면서 맑은 쇳소리를 내었다.

마치 ‘봐라, 난 여기 무기를 두고 널 뒤따라 간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위협을 할 생각이 없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 덕분일까.

앞에서 걸어가는 무영묘적의 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처럼 보였다.

구불구불한 통로의 끝에는 낡은 나무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끼익하며 귀에 미약한 고통을 선사해 준 문을 지나자, 의자라고 부르기엔 다소 민망한 통나무와 탁자의 형태를 띠고 있는 물건이 있었다.

무영묘적은 통나무에 엉덩이를 걸치며 반대편을 가리켰다.

“따뜻한 차라도 없어?”

“그런 걸 바라거든 다관으로 가자고 하는 편이 좋지 않았겠나?”

“손님 대접이 영 엉망이네.”

시후가 툴툴거렸지만, 물 한잔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시후를 바라보던 무영묘적은 조금 전 시후에게 받은 적행 패를 꺼내어 탁자에 올려놓았다.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왜 내 뒤를 밟았지? 게다가 이건 어디서 구했지?”

“일문일답 어때?”

무영묘적이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은 넘기도록 하겠다. 일단, 내 질문부터 대답하도록.”

“뭐, 좋아. 왜 뒤를 밟았냐······. 이거면 대답이 될까?”

시후는 적행 패 옆에 측천파흑선의 재료를 꺼내 놓았다.

일반적으로 부채는 부챗살과 그 위를 덮어 주는 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부챗살을 고정하는 사북과 그 끝을 꾸며주는 선초가 없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시후가 꺼내놓은 측천파흑선의 재료는 그중 가장 중요한 부챗살이었다.

무영묘적이 이 물건을 알아보지 못할 확률을 있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동요하는 모습을 보니 그 생각이 싹 달아났다.

“뭔지 알겠지?”

“당나라 시대의 기법으로 만들어졌으며, 엄청난 수준의 술법과 기예가 들어간 물건. 당대 최고의 기술자가 모두 이 물건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법한 물건이라니. 이 표면에 새겨진 주술은 음을 북돋아 주기 위해 양을 더해서······.”

‘그렇게 설명하면 너무 어렵잖아.’

시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측천무후의 황릉. 그곳으로 가는 열쇠야. 내가 널 찾아온 건 이걸 보여 주기 위해서지. 어때? 구미가 당겨?”

도굴을 일삼는 무영묘적에게 측천무후의 황릉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독주인 줄 알면서도 먹을 수밖에 없는 아주 치명적인 단어일 것이다.

침을 꼴딱꼴딱 삼키던 무영묘적이 고개를 들어 시후를 바라보았다.

“이걸······ 어디서?”

무영묘적이 질문했지만, 시후는 검지를 세워 좌우로 흔들었다.

“쯧쯧, 일문일답이라고 했잖아. 이젠 내가 물을 차례지.”

복면으로 가려진 얼굴이 어떻게 변했을지는 불 보듯 뻔했다.

이글거리는 눈빛을 바라보며 시후는 웃음 지었다.

“아마도 측천무후의 황릉으로 간다면, 그곳에는 진귀한 고대의 물건들이 바닥에 깔려 있겠지.”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급한 건 자신이 아니다.

시후는 내려놓은 부챗살을 들여 바닥에 주르륵 펼쳐 놓았다.

“하지만, 이걸 완성하지 않고서야 측천무후의 황릉으로 도달할 수는 없단 말이야.”

침을 꼴딱꼴딱 삼키는 소리가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황릉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면 당장에라도 달려갈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그래선 안 된다.

열쇠 없이 황릉에 억지로 접근했다간 ‘천벌’이라는 심판이 내릴 것이니깐.

“나머지 재료를 모아서 이 측천파흑선을 완성해야지.”

“측천파흑선······. 이름도 멋지군.”

무영묘적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몸을 적당히 덥혀놨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나와 함께 이 측천파흑선의 재료를 모으고 황릉으로 같이 가겠나?”

“물론!”

무영묘적이 잔뜩 흥분한 채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사실, 이 제안은 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이 제안하지 않아도, 상대가 제발 데려가 달라고 빌었을 테니깐.

다만,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가 중요했을 뿐.

이글이글 타오르는 무영묘적의 눈을 바라보며, 시후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좋아, 그럼 자세한 건 천천히 이야기를 나눌까? 제갈려?”

무영묘적. 아니, 제갈려의 몸이 단박에 굳어졌다.

- 36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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