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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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용봉지회를 향해 (1)
안휘성(安徽省).
지역을 표기할 때 가장 논란이 많았던 곳이었다.
천무 온라인에서 배경이 되는 시대에는 강남성이라고 해야 옳겠지만, 현 중국의 행정 구역을 참고하는 것이 옳다는 다수의 의견을 수용했다.
그런 안휘는 남궁세가의 영향력이 가장 크게 미치는 권역인지라, 남궁천과 남궁미의 검에 매달린 수실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멋모르는 아이들조차도 남궁천을 향해 존경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남궁천은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거지가 별로 없네?”
추나행과 함께 다니면서 개방의 거지들을 마주쳤던 시후에겐, 다소 신기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에 추나행이 피식거렸다.
“최근 몇 년간 홍수 피해가 없어서 안휘 거지 놈들의 씨가 말랐지 뭐냐. 안 그래도 남궁세가에서 흉년에 곡식을 하도 풀어대서 거지가 없었는데 말이다.”
“저희가 곡식을 풀어봤자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저 입에 풀칠하는 정도에 불과한데······.”
“개뿔, 저기 애들 눈을 봐라. 당장 부처가 헌신해도 저리 쳐다보지 않을 게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그저 패악질만 부리지 않는 수준입니다.”
남궁천의 말에 추나행이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남궁미는 볼을 부풀리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패악질이라뇨! 우리 집에서 매년 벌어들이는 돈의 절반 이상을 빈곤층에게 뿌리지, 흑도 패거리들이 활개 치지 못하도록 억제하지, 또······.”
“하하, 내가 너무 우리 집안을 깎아내린 모양이구나.”
남궁천은 동생의 잔소리를 피해 얼른 마차에서 내려섰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 뒤를 따라 내린 남궁미의 뿔난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이 마차도 우리 세가에서 운영하는 거잖아요. 들어가는 유지 비용을 생각한다면, 수익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들었는걸요?”
“우리 미아가 화가 단단히 났구나?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 것도 같다만.”
남궁천의 시선이 시후를 향했다.
그의 입가에 걸려 있는 미묘한 미소는 시후의 마음을 불편케 했다.
‘그런 거 아니라고.’
슬슬 이렇게 몰아가는 상황이 불편하게 여겨지기 시작한 시후였다.
이러려고 해독약을 사용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더 오해를 사기 싫었던 시후는 말을 아꼈다.
“형님, 바로 집으로 가실 겁니까?”
찾아오는 침묵을 걷어낸 건, 몸을 틀어가며 마차를 빠져나오던 철우였다.
“그래야지. 우리가 합비에 들어온 걸 아버지께서도 아실 텐데,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간 불호령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니 말이야.”
“오래간만에 석 숙수 님의 솜씨를 보겠군요.”
“쯧쯧, 또 먹을 생각밖에 없더냐?”
입맛을 다시는 팽철우를 보곤 추나행이 혀를 차며 타박했다.
“흐흐, 추 장로님도 딱 한 번만 드셔 보시면 정신을 못 차릴 겁니다.”
“주둥이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지, 맛이 무엇이 중요하랴?”
“나중에 그 혁대를 푸는지 안 푸는지 두고 보겠습니다.”
추나행과 철우가 투덕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남궁미는 어느새 시후의 곁에 다가가 있었다.
“저 집은 150년 전통의 찻집인데, 여기 합비에서 가장 오래된 찻집이라고 해요. 저도 종종 저곳에 들려서 차를 마시긴 했는데, 같은 잎으로 차를 우려내도 맛이 전혀 다른 거 있죠? 내일 같이 가서 드셔보실래요? 아, 그리고 저기는······.”
수어지교에 이른 호감도는 대단했다.
시후가 별다른 대꾸 없이 듣고만 있어도, 남궁미는 웃으면서 재잘재잘 떠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남궁천의 입가에는 미묘한 웃음이 맺혀 있었다.
“아, 요 앞 골목만 지나면 돼요.”
남궁미는 슬쩍 시후의 팔을 잡아당기며 앞으로 끌었다.
골목을 빠져나가자, 끝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긴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장원이 보였다.
대문은 웅장하기 그지없었고, 그 위에 걸려 있는 현판에는 ‘남궁세가(南宮世家)’라 적혀 있었다.
어떤 명인의 작품인지 몰라도, 현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남궁세가의 기개가 전해져 오는듯했다.
그 현판 아래에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세 명의 위사(位事)가 있었는데, 다가오는 남궁미의 모습을 보던 위사 중 한 명이 안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생각보다 일찍 돌아오셨습니다? 중양절 당일에나 돌아오실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하하, 그러다가 혹여 늦게라도 오면 아버지의 분노를 어찌 감당하겠나?”
“어이쿠, 이미 충분히 늦을 대로 늦으신 거 같습니다. 한 달이 훌쩍 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조금 전 연락을 드리러 뛰어갔으니, 곧 가주님께서 나오시겠군요.”
“그럼, 불편하지 않게 자리를 피해야겠군?”
“그럼 감사하죠. 그런데······ 팽 소협이야 알고 있습니다만, 뒤에 오신 두 분은 제가 처음 뵈는 분들 같습니다.”
남궁천과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던 위사는 남궁미의 곁에 바짝 붙어 있는 시후와 그의 뒤편에 서 있는 추나행을 언급했다.
“가장 뒤에 계신 분은 예전에 우리 집을 들르신 분이지. 한 십오 년 전?”
십오 년 전이라는 말에 위사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자리 잡았다.
그의 반응에 남궁천은 곧 장난기 어린 표정을 털어버리곤 정식으로 소개했다.
“개방의 장로이신 독안비객 추나행 선배님이고, 이쪽은 이번에 새롭게 사귄 차시후 아우일세. 딱히 별호는 없으니 감숙성에서 왔다고 기재하면 될 걸세.”
“알겠습니다. 오랜 여행 다녀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들어가시죠.”
“고생하게.”
먼저 들어간 남궁천을 따라 다들 정문을 넘었다.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전각까지 이어진 정원은 무려 이십 장에 달했다.
터무니없이 크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 정도는 당연했다.
천무 온라인의 설정상, 남궁세가는 팔대 세가 중 수위를 다투는 곳이었으니깐.
한 폭의 그림처럼 꾸며진 정원을 둘러보던 추나행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늦게 남궁천의 고개도 같은 곳으로 향했다.
“우리 딸!”
밀려오는 어둠조차 몰아낼 것만 같은 우렁찬 목소리.
현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남궁천의 아버지, 남궁선유의 등장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드넓은 남궁세가를 뒤덮다 못해, 높디높은 담장 너머까지 세어나갔을 게 분명했다.
“내가 부끄러워서 못 살아···.”
남궁미의 낮은 읊조림과 동시에 정원 끝자락에서 남궁선유가 모습을 드러냈다.
목소리가 들려온 거리를 생각한다면 못해도 오십 장은 떨어져 있었겠지만, 채 셋을 세기도 전에 나타났다.
정원의 끝자락에 있던 그가 남궁미를 와락 품에 안아 드는 건 촌각에 불과했다.
바로 곁에 있던 시후는 남궁미가 안기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정도.
초절정의 경지에서도 완숙에 이른 무인은 이토록 빠르다.
남궁미를 품에 안은 채 빙빙 돌리는 모습은 마치 십 년 만에 잃어버린 딸을 만나는 것 같았다.
물론, 그건 남궁선유의 일방적인 애정 표현이었지만.
“놔요! 놔! 숨······ 막힌다고!”
남궁미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채로, 남궁선유의 허벅지를 몇 번이고 걷어찬 다음에야 땅에 내려올 수 있었다.
전력을 다해 걷어찼을 게 분명했지만, 남궁선유는 아프다는 기색도 없이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 아비가 보고 싶지는 않더냐? 화중(華中) 지방을 둘러보는데 힘들진 않았고? 사천보다야 덜하지만, 습도가 높아서 다니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을 텐데······ 천이는 별일 없었지?”
극심한 온도 차는 무엇이란 말인가.
한참이나 남궁미를 걱정하는 것과 달리, 남궁천에게 물어보는 건 마치 잠시 생각난 김에 물어보는 듯했다.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는 지울 수 없었다.
“그때도 딸이라면 사족을 못 쓰더니, 지금은 더 심해졌군?”
“음?”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추나행이 한마디 툭 내뱉자, 남궁선유는 그를 바라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말끔하게 씻어 버린 그를 알아채긴 여간 어려운 게 아닐 터.
다소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남궁선유가 손가락을 튕기며 아는 체하였다.
“추나행 아닌가!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왜 못 알아봤나 싶더니, 꼴이 왜 그런가? 비걸개를 따라 하기라도 했나?”
“헛소리는 집어치우게. 내 똥물에 머리를 박고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놈을 따라 하는 일은 없을 테니.”
“그럼 왜 그 꼴인가?”
제대로 씻은 사람에게 그 꼴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거지 중의 거지를 표방하는 추나행에겐 깔끔한 지금 모습을 그 꼴이라 말하는 게 어색하진 않았다.
“이리 안 하면 네 딸이 같이 다닐 수 없다고 고집 피워서 어쩔 수 없이 씻었지!”
“역시 내 딸이군. 저런 거지 녀석도 씻게 만들다니 보통이 아니야.”
가만히 뒀다가는 계속 이야기를 나눌 듯싶어, 시후는 슬쩍 몸을 비틀었다.
덕분에 추나행과 대화를 나누던 그의 시선이 시후에게 향했고, 자연스럽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감숙성에서 온 차시후라고 합니다.”
“사문의 이야기가 없는 거로 봐서 낭인이렷다?”
“예.”
시후의 대답에 남궁선유가 턱을 긁적거렸다.
마치, 왜 나서서 자신에게 말을 거냐는 눈빛이었다.
그에 관한 대답을 시후가 할 필요는 없었다.
남궁천이 먼저 나섰으니깐.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남창 이야기라면 내가 하마.”
다만, 그보다도 더욱 객관적인 정보를 전하는 데는 추나행이 적합할 것이다.
그가 나서자 남궁천이 뒤로 물러났고 남궁선유는 더욱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이틀 전, 우리는 구강을 지나는 도중······.”
추나행은 구강에서 내려 관의 검문을 받았을 때부터 이야기했다.
곧 시후가 정천호에게 제안했던 이야기가 나왔고, 남궁선유의 표정은 흥미롭게 변해 갔다.
다만, 인원을 쪼개어 흉수의 뒤를 쫓았다는 말에는 남궁천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내었다.
“어허, 미아는 아직 창궁비연검(蒼穹飛燕劍)도 완성하지 못했거늘, 무슨 상각으로 그럼 위험천만한 일에 끼게 만든 것이냐!”
일에 끼어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버럭 화를 내는 모습을 보니, 독에 당했다는 말까지 꺼낸다면 남궁천이 무사할까 싶었다.
추나행도 그걸 느꼈는지 슬쩍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판단은 틀리지 않았네.”
남궁선유는 입술을 살짝 달싹였지만, 끝내 더 뭐라 하지는 않았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네. 여기 있는 시후라는 사내도, 철우도 무사히 상대를 제압했지. 다만, 미아가 독이 발린 암기에 당했었네.”
남궁선유는 어느새 남궁미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안에 남아 있는 기운은 나도 다 확인했네. 혹시라도 모르는 잔독이 있을 수 있으니, 의원이나 하나 불러오면 될 걸세.”
남궁미의 몸에 내공을 불어 넣었던 남궁선유의 눈에선 빛이 뿜어지는 듯했다.
남궁천의 어깨가 다소 움츠러들었다.
그 모습을 본 남궁미가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서 제가 마구잡이로 공격한 겁니다. 오라버니의 잘못은 없어요. 자만심의 결과였으니 전적으로 제 책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남궁미의 얼굴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남궁선유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다행히 흉은 지지 않았구나.”
“그건 여기 차 오라버니가 가지고 있던 해독약과 금창약 덕분인걸요. 그게 없었다면 저는 지금쯤 오동나무 침대에서 아빠를 봤을걸요? 어디 보자······ 이게 제가 맞았던 독침이에요.”
남궁미가 그의 손에서 빠져나와 시후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덕분에 남궁선유의 눈썹은 크게 꿈틀거렸다.
남궁미의 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행동도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는 곧 남궁미가 건네주는 독침을 받아서 혀에 가져다 댔다.
곧이어 남궁선유는 곧바로 선체로 입공(立功)에 들어간 뒤 혀로 스며든 독을 내뱉었다.
“이런 지독한 독을······.”
독침을 내려다보던 그는 말없이 시후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딸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에 관한 고마움과 아버지의 복잡미묘한 감정이 어우러져 있었다.
“자네는 나랑 따로 이야기 좀 하지.”
고개를 끄덕이던 시후는 남궁선유의 눈빛에 담긴 감정을 알아차렸다.
그건 마치 범죄자를 바라보는 형사와 같았다.
시후는 곧 남궁선유가 자신을 따로 부른데 가장 큰 원흉을 만든 남궁미를 바라보았다.
남궁미는 여전히 자신의 팔을 붙잡은 채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다만, 팔은 채 거의 매달리다시피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남궁선유의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게 느껴졌다.
시후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올려다보는 남궁미를 바라봤다.
망할 년.
- 27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