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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25화 (7/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25화 명진제의 진노 (5)

시작 시 주어지는 아이템은 많지 않았다.

은 열 냥과 기초 금창약, 그리고 기초 해독약.

더불어 기초 무관을 통과하면 주어지는 기본 무기까지.

세 개가 주어지는 기초 금창약 중 두 개는 이미 신의의 손에 들어갔기에, 마지막 하나만이 시후의 품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단 하나만 가지고 있는 기초 해독약.

독물이 많은 운남성 지역에서 시작했다면 특전으로 해독약이 세 개가 되었겠지만, 감숙성에서는 그 어떠한 특전도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데······.”

시후는 기초 해독약을 든 채로 중얼거렸지만,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남궁미가 죽는다면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하겠는가?

상태가 더 심해지기 전에 남궁미의 곁으로 다가섰다.

“내 말 들리냐?”

어깨를 살며시 건드리자 운기조식 중이지만 미약한 반응이 느껴졌다.

익힌 심법이 뛰어나다면 운기조식으로 사망에 이르는 시간을 유예할 수 있었다.

오히려 정말 뛰어난 심법의 경우는 해독도 가능했다.

하지만, 남궁미의 뺨을 중심으로 피부의 괴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누가 보더라도 죽음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 중이었다.

“입에 넣어 주는 거 먹어.”

운기조식을 취하며 독을 억누르고 있으니, 정신이야 있을 것이다.

물론, 해독약을 먹으려면 운기조식을 풀어야 할 것이니 독이 더 퍼지겠지만.

그 때문일까.

“이거 먹으라니까?”

계속되는 시후의 강요에도 남궁미는 운기조식을 끊지 않았다.

입술에 해독약을 가져다 대도 열지 않는데 먹일 방법이 있을 리 없다.

시후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믿어, 날 믿고······.”

자신을 믿으라 말하던 시후는 순간, 남궁미가 무슨 근거로 자신을 믿겠나 싶었다.

아직 그 정도 신뢰가 쌓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강제로 운기조식을 멈추게 한 후에 먹이자니, 안 그래도 독에 취약해져 있는데 주화입마까지 겹친다면 진짜 죽이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스스로 운기조식을 풀도록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입 앞에 해독약을 가져다 대도 열지 않는데 어떻게?

“아, 강제로 입안에 욱여넣을 수도 없고······.”

그 순간, 시후의 머릿속에 ‘아이리스(Eyeless)’ 드라마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시후는 곧장 남궁미의 얼굴 앞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남궁미가 내쉬는 숨이 피부에 와닿았다.

“입을 안 벌리면 입으로 먹여 줘야겠지.”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시후의 얼굴은 앞으로 움직였고, 시후가 내쉬는 날숨을 곧 남궁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부좌를 튼 그녀의 몸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시후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결국,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무슨······.”

남궁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녀의 입으로 기초 해독약이 쏙 들어갔으니깐.

“뒈지기 싫으면 먹어.”

시후는 자신의 눈을 바라보는 남궁미를 강하게 응시했다.

그의 강렬한 눈빛 때문일까.

아니면,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남궁미의 목울대가 크게 꿀렁였다.

“다시 운기조식이나 시작해.”

시후의 말에 남궁미는 곧바로 운기조식에 들어갔고, 뺨에 난 조그마한 상처로 죽은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왔다.

낯빛이 본래의 혈색을 되찾기 시작했지만, 죽은 피부는 원래대로 돌아오기 힘들어 보였다.

“빌어먹을, 손도 많이 가네.”

시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지만, 어쩌겠는가.

이왕 손을 댔으니 모른 척하는 것보단, 온전하게 되돌려 놓아야지.

“시후 형님, 그건 또 뭡니까?”

“금창약.”

시후는 꺼낸 기초 금창약의 뚜껑을 열어, 약을 최소한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새끼손가락에만 살짝 묻혔다.

죽은 피부라도 그 아래 신경까지 손상이 되진 않은 것일까.

시후의 손가락이 닿자 남궁미의 뺨이 씰룩거렸다.

조금씩 바른다고 발랐지만, 죽은 피부의 면적이 상당했기에 기초 금창약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

이제 남은 기초 금창약은 고작 반 통이 전부였다.

“염병.”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 아닌 이상 아껴야 할 판국이다.

신의에게 아무리 기초 금창약을 주고 왔다지만, 양산까진 아무리 빨라도 반년은 걸릴 것이 분명했다.

한숨을 푹푹 내쉬는 사이, 남궁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자신의 왼뺨을 만졌고, 죽은 피부는 가을 녘의 나뭇잎처럼 떨어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게······.”

“미야! 철우야!”

남궁미의 말은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남궁천의 외침에 묻히게 되었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지붕 위를 달려오는 남궁천의 모습이 보였다.

“기왓장 다 깨지겠네.”

시후의 말대로, 남궁천은 지붕이 내려앉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달려오고 있었다.

시후와 다른 두 명이 볼 수 있다는 건, 남궁천도 이쪽을 볼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일어나 있는 남궁미를 발견한 그가 더욱 거세게 바닥을 걷어찼다.

기왓장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지붕 위를 달려온 그는 당에 내려와 남궁미의 어깨를 붙잡은 뒤,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녀를 요리조리 돌려보았다.

“미······ 야?”

“놔주세요. 어지러워요.”

“그, 그래.”

고작 침에 찔린 상처였지만, 독이 섞인 피를 내보내는 동안 남궁미가 흘린 피는 적지 않았다.

뺨에서부터 시작된 혈흔이 허리춤까지 이어져 있었으니깐.

남궁천은 머리를 강하게 흔들더니 시후를 바라보았다.

“차 아우, 자네가 했는가?”

잠시 멍하니 있긴 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 상황 파악을 끝낸 듯 자신을 바라보는 남궁천의 눈빛에는 확신이 어려 있었다.

부정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상황인지라,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한층 더 부담스럽게 변했다.

“어떻게?”

남궁천은 육하원칙 중 가장 마지막 단계이자,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빠른 핵심을 캐물었다.

그 질문에 시후는 어느 정도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고민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늦은 밤이었지만, 잠을 청하는 시간은 조금 더 뒤로 미뤄질 듯싶었다.

“그 해독약은······.”

* * *

“그들이 머물렀던 곳을 찾았는데 이런 물건이 나왔네. 별다른 특징은 없는 듯하네만, 자네라면 어떻게 쓰는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가지고 왔네.”

[일반 임무 ‘명진제의 진노’가 해결되었습니다.]

[흑련회의 비밀 지령(7)을 사전에 차단했습니다. 보상으로 ‘무음필대’가 지급됩니다.]

시후는 척추룡에게 건네받은 무음필대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품에 넣었다.

“그리고 명진제 전하께서 내리는 상은 사람을 통해서 보내도록 하겠네.”

“그거 좋죠.”

“운이 좋거든 언젠가 명진제 전하를 뵐 수도 있겠지. 정말 고맙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내 자네들을 돕도록 하겠네. 그리고 운이 좋다면, 이번 일로 그분을 뵐 수도 있지 않겠나.”

척추룡의 말에 시후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접견할 정도의 공적을 세운 게 아니라서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기뻐하는 시후와 달리, 나머지 인원들은 별로 달가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무림인이 왕족을 만나기 위한 절차는 상당히 복잡했다.

가장 일차적으로 내공을 흩어 버리는 산공독(散功毒)을 먹어야 하는데, 거기서부터 꺼림칙하기 그지없었다.

황궁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겠지만, 지금 용봉지회에 참여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럼.”

남궁천은 척추룡에게 가볍게 포권을 취한 다음, 나루터로 걸음을 옮겼다.

등왕각으로 가는 건 포기했다.

남궁미가 중독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남궁천은 집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음, 황학루와 등왕각까지 같이 둘러보기로 했으니······.”

시후가 반걸음 뒤로 물러나며 슬쩍 몸을 빼는 시늉을 했다.

마음에도 없는 행동이었고, 그런 시후의 속마음을 모르는 남궁천은 황급히 팔을 붙잡았다.

“어허, 어딜 가려고 그러나? 우리 남궁세가가 은혜도 모르는 파렴치한이라는 소문을 내려는 게 아니면, 우리 집에 같이 가세.”

당연히 가야지.

다만, 의도한다는 느낌을 주어선 곤란하다.

“은혜랄 것도 없죠. 애초에 제가 쓸데없는 관계를 걱정하느라 애꿎은 문제만 일으킨 건데······.”

시후는 말을 하며 힐끔 남궁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 역시 남궁천과 마찬가지로 시후의 소매를 붙잡았다.

“아뇨, 아니에요. 시후 오라버니께서 잘못하신 게 아니라, 제가 자만했기에 암기에 당한 거죠. 게다가 신의에게 받은 하나밖에 없는 해독약까지 제게 주시고······. 제발 같이 가요. 네?”

말도 잘 안 걸던 사이에서 순식간에 남궁미가 시후를 부르는 호칭이 ‘오라버니’로 올라갔다.

여기서 넙죽 받아먹어도 탈이 나지는 않겠지만, 한 번 더 튕기면 조금 더 나으리.

“음, 그래도 폐가 되지 않······.”

“폐는 무슨. 자, 그럼 결정되었으니 어서 가세.”

남궁천은 시후의 말을 끊으며 그대로 팔을 잡아끌었다.

시후는 끌려가면서도, 속으로는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생각한 가장 최적의 시나리오로 흘러갔다.

비록 하나밖에 없는 해독약이 소모되긴 했지만.

추후 관과 이어질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함과 동시에, 남궁세가와의 관계를 이만큼 끌어올린 건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다만, 선착장은 며칠간 붙잡혔던 배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었다.

묶여 있던 배들은 서둘러 떠나야 했고, 그간 강제로 체류하였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오늘 안에 배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무슨 걱정이냐? 잠시 기다려 보거라.”

추나행은 말과 함께 온 길을 되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추나행에겐 심교정 정백호가 붙어 있었다.

정백호가 오자, 고민하던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되었다.

“이자들이 수상쩍군. 일단 끌고 가서 조사해. 거기 너! 너도 마찬가지다. 아니다. 이 배에 올라탄 놈들 모조리 다 내려!”

억지로 이런 억지가 없었다.

임무가 끝났으니 관련된 인물들을 모두 잡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배에 올라탄 자들을 억지로 내리는 걸 보니, 시후 일행을 태우기 위함이 분명했다.

한쪽 눈을 깜박이며 신호를 보내는 것을 보라.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그의 억지에도 배에 올라탄 자들은 순순히 내려왔다.

나루터에 깔린 병사만 해도 수십이었고, 지금 남창의 분위기를 모를 리가 없었으니깐.

“좀 너무한······.”

“가만히 있거라.”

남궁천이 그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추나행이 만류했다.

병사들을 동원해 사람을 포박한 심교정은 길을 지나치며 슬쩍 옆으로 다가왔다.

“옥으로 데려가다가 잘못 본 것 같다고 놓아줄 겁니다. 그럼 이만······.”

남궁천은 황당한 표정으로 심교정과 추나행을 번갈아 보았다.

“원래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온 게 저들 아니더냐. 당연한 거다.”

“그래도 일반 양민들은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그럼 내일까지 곱게 기다리고 있겠느냐? 네놈도 중양절은 집에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더냐? 게다가······ 당장 이상이야 없지만, 제대로 된 의원에게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남궁미를 힐끔거리며 말하자, 남궁천의 입은 꾹 다물어졌다.

추나행은 웃으며 배 위로 올라탔고, 시후도 그 뒤를 따랐다.

추나행의 재치에 안휘성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은 일행들은 다소 졸린 눈을 비비며 배 난간에 기대어 섰다.

석양이 질 때의 포양호도 아름다웠지만, 이렇게 얕은 안개가 낀 포양호도 운치가 있었다.

“시후 오라버니, 이쪽에 와 보세요.”

난간에 몸을 반쯤 걸친 남궁미가 시후에게 손짓했다.

남궁미의 곁으로 다가가자, 배를 피해 발을 열심히 굴리며 도망치는 오리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귀엽죠?”

가장 뒤에서 쫓아가는 새끼 오리를 가리키며 남궁미가 방실방실 웃었다.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군.’

어제 구해 준 이후로 남궁미는 확실히 마음을 연 듯싶었다.

“그렇네.”

“저기 여뀌바늘 꽃도 이쁘고······ 어제 오라버니가 절 구해 주지 않으셨다면, 이 광경을 보지 못했겠죠?”

누군가 남궁미의 귀에 불을 붙인 것일까?

새빨갛게 변한 남궁미의 귀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철우야, 이리로 와보거라. 저쪽 경관이 더욱 보기 좋구나. 추 선배님도 이리로······.”

그런 동생을 위함인지 남궁천이 자리를 비켜 줬다.

“게다가 제 뺨에 조심스럽게 발라 주시던 금창약 덕분에, 제가 이렇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는 거겠죠?”

조심스럽게 바른 게 아니라 아까워선데.

그런데 굳이 산통을 깨트릴 필요가 있겠는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럴 때는 분위기를 맞춰 줘야지.

“그래, 고운 얼굴에 흉이라도 질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그 엄청난 금창약 덕분이죠. 보상이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제가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보상은 이미 받았는걸?”

시후의 말에 남궁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적잖이 오른 호감도를 더욱 올려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예쁜 동생이 생겼잖아?”

[남궁미의 호감도가 수어지교(水魚之交)(70)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녀는 당신의 곁을 맴돌며 언제라도 도움이 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다만, 호감도가 지나치게 상승한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망할.

- 26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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