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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24화 (6/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24화 명진제의 진노 (4)

추나행을 비롯한 시후 일행은 남창의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나루터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이건 정말 미친 짓인데······.”

그런 기다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계획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추나행은 끊임없이 투덜거렸다.

관에서 개방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최종 결정권자는 ‘관’이었다.

불만 가득한 그와 달리, 척추룡은 시후의 계획을 상당히 높이 평가했다.

“계속 이야기해 봤자 무슨 소용 있겠어요? 곧 시간이 될 테니 차분히 기다리시죠.”

그 후로도 추나행은 한참이나 구시렁거렸고, 구름이 옅어지자 그 너머에 숨어 있던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추나행의 투정도 멈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 위로 검은색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시작인가?”

남궁천의 말과 함께 다들 자신의 병장기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무기가 없던 추나행은 싸늘한 날씨 속에 굳어진 몸을 풀고 있었다.

곧 허리를 뒤로 깊이 젖혔던 그는 하늘을 응시했다.

어둡던 남창의 하늘은 어느덧 사방에서 피어오른 불길로 인해 붉은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그런 하늘을 다시 까맣게 칠하고 싶은 것인지, 피어오른 연기는 옅어진 구름을 향해 달려갔다.

“미아야, 너는 그냥 여기에 있는 게······.”

“오라버니는 제가 여자라고 무시하시는 건가요?”

“내가 네 성취를 모르는 바도 아닌데, 그럴 리 있겠느냐? 다만, 아버지가 아신다면 걱정을 하시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문제만 잘 해결하면 오히려 칭찬하시겠죠.”

가슴을 쭉 펴며 말하는 남궁미의 말에 남궁천은 골치가 아픈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남궁미는 남궁세가의 유일한 여아였다.

딸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어린 나이에 어미를 잃은 그녀였기에 아버지의 사랑은 더욱 각별했다.

덕분에 남궁미는 항상 고집이 센 편이었고, 남궁천은 그걸 받아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미를 보며, 남궁천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한 약속은 간단했다.

만약 홀로 상대하는 상황이 온다면, 상대를 제압하기보다는 버틴다는 생각으로 대할 것.

남궁 남매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남경 하늘을 조금 더 붉어졌다.

남경 전체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흉수들이 안에 있다면 이제 곧 움직일 것이다.

모두의 머릿속에 걱정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았는지, 초조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아, 군고구마 먹고 싶다.”

그런 와중에 치솟는 불길을 보며 중얼거리는 시후의 말은 산통을 깨기에 충분하리.

남궁천은 황당한 얼굴로 시후를 쳐다봤다.

“허, 차 아우의 신경은 얼마나 굵은지 모르겠군.”

“긴장되세요?”

“안된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흉수가 어떤 자들인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과연 아우가 이야기한 대로 움직일지도······.”

“흐름이란 건 말이죠.”

남궁천이 슬슬 입에 시동을 걸자, 시후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재빨리 그의 말을 끊었다.

“내 흐름에 상대를 끌어오면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내 흐름?”

“그렇죠. 방화로 인해 저들이 움직일 기회를 붙잡겠지만, 역으로 우리에게도 기회나 마찬가지죠.”

“흉수가 생각보다 강하다면? 추나행 장로님으로도 역부족이라면?”

“그랬다면 숨어 있지도 않았겠죠. 어찌 되었건······.”

삐이이이이이익!

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호각 소리.

그와 동시에 남동쪽에서 적의가 가득 담긴 붉은색 신호탄이 솟구쳤다.

그것도 무려 두 개나.

두 개를 쏘아 보냈다는 건, 개방의 일결과 이결 제자들로 막을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괜찮다. 저 방향에는 홍비(紅鼻)가 있으니깐······.”

추나행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동시에 치솟은 세 개의 신호탄.

남궁천이 추나행을 바라보기도 전에 그는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빨리 다녀오마!”

별호에 비(飛)가 들어가는 추나행이 전력을 다하자, 눈 한 번 깜짝할 사이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홍비는 남창의 지부장으로, 무려 오결 제자였다.

그런 그가 있는 방향에서 세 개의 신호탄이 쏘아졌다는 건, 흉수가 생각보다 더 강하다는 걸 의미했다.

세 번째 신호탄 때문에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추나행이 사라지고 채 열을 세기도 전에 북동과 북서, 남서쪽에서도 연이어 붉은색 신호탄이 올라갔다.

추나행이 사라진 이상, 어떻게 움직일지는 남궁천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혹시라도 신호탄이 추가로 두 개가 쏘아진다면 가장 먼저 시후, 다음으로 철우, 마지막으로 미아가 간다. 만약에 가는 도중 세 개가 쏘아진다면, 그 즉시 몸을 돌려 이곳으로 돌아온다.”

“그럼 세 개가 쏘아지는 곳은 어찌하고요?”

“내가 간다.”

마음을 굳힌 남궁천의 눈빛에선 평소 유들유들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북동쪽에서 신호탄이 두 개가 솟구쳤다.

시후는 곧장 창을 꼬나 든 채,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방향으로 내달렸다.

* * *

늦은 시각, 불길이 치솟는 남창은 화마로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그 원흉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후는 복면인의 도를 받아넘기고 있었다.

“제법!”

도를 받아낼 때마다 울려 퍼지는 맑은 쇳소리는 아무리 둔감한 사람의 잠이라도 깨우기에 충분했다.

특히, 지붕 위를 거침없이 뛰어다닐 때마다, 기와가 바닥에 떨어지며 더욱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두 손으로 시후의 창을 힘겹게 버티던 복면인이 단번에 거두었다.

그 때문에 시후의 몸은 앞으로 쏠렸고, 그 틈을 타 복면인은 바닥에 엎드리다시피 움직이며 도를 휘둘렀다.

무공의 근간은 하체.

그 중심을 흔드는 복면인의 공격은 훌륭했다.

“어딜!”

시후는 자리를 박차며 뛰어올라 공중에서 반천세(反天勢)로 몸을 뒤집었다.

간발의 차이지만 복면인의 회심의 공격은 실패했다.

그렇다는 건 상대방에게 큰 틈이 생겼다는 걸 의미했다.

허공에서 몸을 뒤집은 시후는 다소 불안정한 자세였지만, 앞으로 창을 내질렀다.

“구룡!”

반천세로 몸을 뒤집은 상태에서 펼치는 구룡은 마치 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용과 같았다.

발목을 베기 위해 엎드렸던 복면인은 시후의 창에 등이 꿰뚫리기 직전, 무기를 놓고 나려타곤(懶驢打滾)으로 지붕 위를 굴렀다.

덕분에 시후의 창은 애꿎은 기왓장만 깨트렸고, 복면인은 구르는 기세를 이용해 그대로 지붕 아래로 내려갔다.

와르르.

떨어진 복면인의 주변으로 기왓장 수십 개가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숨돌릴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시후도 즉시 지붕 아래로 내려왔다.

무기를 잃은 복면인은 품에서 단도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별것도 없는데?”

시후의 비아냥에 단도를 움켜쥔 복면인의 손이 새하얗게 질렸다.

각자의 손에 들린 병기의 길이만큼 실력의 차이는 명확했다.

게다가 도망쳐야 하는 상대와 달리, 시후는 시간을 끌면 되는지라 여유가 흘러넘쳤다.

다만, 강호를 종횡하는 자라면 누구나 목숨을 구할 초식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법.

복면인의 눈을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앞으로 치달리던 복면인은 도를 붙잡은 왼손을 놓아 앞으로 향하자 시후는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육망!”

팅, 팅팅.

그와 동시에 창끝에 뭔가 부딪히는 느낌과 동시에 바닥에 철침이 떨어졌다.

떨어진 철침을 보자, 침 끝에 얼마나 지독한 독을 발라놨는지 먹물처럼 새까맸다.

그리고 잠시 독침에 한 눈이 팔린 사이, 안쪽까지 파고든 복면인의 도가 옆구리 근처까지 다다랐다.

시후는 즉시 창을 끌어당김과 동시에 몸을 뒤로 훌쩍 날렸다.

급한 마음에 뒤로 크게 도약한 탓일까, 시후는 복면인과 거리가 크게 벌어졌다.

“어?”

연계 공격에 대비하려고 했거늘,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복면인은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정면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시후도 황급히 움직였지만, 개방 인원들이 악착같이 버텨줬던 아까와 달리 복면인의 앞을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리는 더더욱 벌어졌다.

“에라!”

투창을 배우지도 않았고, 실패하면 무기가 없는 자신에게 복면인이 달려들지도 몰랐다.

하지만, 최소한의 시도조차 하지 않고 보낼 수는 없었다.

“네 녀석 경로에 코사인값을 나누고······.”

알 수 없는 중얼거림과 함께 시후의 손에 있던 사모가 허공을 갈랐다.

정말 계산된 것인지 몰라도, 사모는 복면인의 등으로 향했다.

찢어발기는 듯한 바람 소리를 들은 복면인이 뒤돌아보며 단도로 막아내려고 했지만, 던진 창에는 시후의 내공이 절반이나 담겨 있었다.

푸욱. 퍽.

“크허억.”

조막만 한 단도는 산산이 부서졌고, 단도를 방패 삼아 몸을 숨겼던 복면인의 몸은 그대로 꿰뚫렸다.

옆구리를 관통한 창은 그대로 뒤편에 벽에 꽂혔다.

덕분에 복면인은 쓰러지지도 못한 채 창을 붙잡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와중에 품에서 뭔가를 꺼내려는 듯 손을 움찔거렸지만, 몸이 꿰뚫린 상황에서 움직인다면 그건 물고기나 가능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움직임은 단순한 꾸물거림에 지나지 않았다.

“으······ 징그러워.”

시후는 자신이 저질러 놓은 참상을 보며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복면인을 바라보던 시후는 조금 전 그와 싸우던 자리로 돌아가 뭔가를 주운 뒤, 다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까 선물로 주려고 했나 본데, 난 이런 거 안 받거든. 자, 이거 돌려줄게.”

독이 잔뜩 묻은 독침을 복면인의 몸에 찌르자, 그의 몸에서 나오는 피가 조금씩 검게 붉어지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몸을 부들부들 떨던 그의 움직임이 멈추자, 시후는 그의 몸을 관통해 바닥에 틀어박힌 창을 뽑아 들었다.

창을 휘둘러 진득하게 묻은 피를 털어냈지만, 창대 곳곳에 여전히 응혈이 적잖이 묻어 있었다.

“마른 헝겊이······.”

따로 준비한 헝겊은 없었지만, 복면인의 상의는 아직 피에 젖지 않았다.

이미 숨을 거둔 그의 옷에 대충 쓱쓱 문질러 닦자, 창은 어느 정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건 뭐, 가진 게 없어?”

시후는 술에 취한 취객의 몸을 뒤지는 좀도둑처럼, 복면인의 시체를 뒤졌다.

뭔가 ‘임무로 이어지는 물건을 발견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번 일의 핵심 인물이 아니었는지 가진 건 몸뚱이가 전부였다.

일단 이쪽이 정리되었으니, 척추룡에게 건네받은 초록색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곧 개방에서 사람이 오겠지.’

하늘 높이 솟구치는 시후의 초록색 신호탄이 사라지기도 전에, 저 멀리 서쪽에서 적색 신호탄이 치솟았다.

그 수는 무려 세 개.

남궁미와 더불어 팽철우까지 합류했지만, 도저히 막지 못하고 남궁천의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시후는 내심 불안했다.

복면인들의 무공이야 그렇게 강하진 않았지만, 조금 전 독침을 쏘던 방식에 누군가 당했다면?

“팽철우야 그리 비중이 높은 인물은 아니지만, 남궁미가 죽으면······.”

남궁세가가 발칵 뒤집힐 일이었다.

게다가 아직 이어날 일이 더 있기에 자연스레 시후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나루터에 도착한 시후는 남궁천이 보이지 않아 조금 안도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강을 건넜다.

신호탄은 이미 꺼졌지만, 그 방향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미야!”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한 음성.

내공을 실어 외치는 남궁천의 목소리가 수백 장의 거리를 건너 시후에게까지 들렸다.

시후는 등에 소름이 돋았다.

“아, 제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은 언제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법.

최악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괴성을 질렀던 남궁천은 자리에 없었다.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는 남궁미와 그녀의 곁에서 덩치에 안 맞게 부산을 떨고 있던 철우만 있었을 뿐.

“미, 미 누님이 독에······.”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왼뺨에 흐르는 검은 피는 독침을 어디에 맞았는지 대놓고 알려 주었으니깐.

“천이 형님은?”

“흉수를 잡아서 해독약을 얻어 오시겠다고······.”

헛수고다.

자신도 몸을 뒤져보지 않았는가.

철우의 표정에서도 희망이라곤 없어 보였다.

이 자리에 왔다는 건 철우도 그 위기를 넘겼다는 걸 말했으니, 분명 몸을 뒤져서 확인해 봤을 것이다.

남궁미의 방심이 화를 자초했겠지만, 이 사달을 만든 건 자신이었다.

“어쩔 수 없지.”

시후는 깊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품을 뒤적거렸다.

품에서 나온 시후의 손에는 보름달을 작게 만들어 놓은 듯한 은색 환약이 들려 있었다.

- 25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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