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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6화 (199/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6화 신첨어 (1)

내공을 조물거리는 3단계나 그에 관한 응용과 발출을 시험해 보는 4단계는 오히려 1, 2단계보다 쉬웠다.

최소한 시후가 느끼기엔 말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문을 열기 전 깊게 심호흡을 해야 했다.

무조건 등장할 것이다.

함정이 되었던, 비무가 되었던 말이다.

이런 탑에는 무조건 몸을 움직이는 시련을 안배해 놓았으니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뒤 문을 지났다.

“증명하라.”

웬 빡빡이?

아니, 젊은 승려가 봉을 쥔 채로 달려들었다.

무엇을 증명하라는 건지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불친절하다고 투덜거릴 여유도 없이 승려가 봉을 쭉 뻗었다.

“일섬(一閃)!”

십창의 첫 번째 초식이 펼쳐졌다.

시후의 창이 아닌, 승려의 봉에 의해서.

무슨 상황인지 생각을 할 겨를 따윈 없었다.

간발의 차이로 조금 전까지 자신이 서 있던 곳을 승려의 봉이 할퀴고 지나갔다.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승려는 분명 ‘일섬’이라고 외쳤다.

“뭐지?”

십창이라는 무공이 흔하던가?

생각하는 와중에도 승려는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몸의 중심은 아래로, 발끝은 가볍게.

그와 동시에 뻗어 오는 봉.

“팔랑(八浪)!”

이로써 확실해졌다.

지금 눈앞에 승려는 봉으로 십창을 펼치고 있음을.

이번 시련은 자신의 무공을 상대하는 것이 분명했다.

창을 다소 짧게 움켜쥐었다.

굽이굽이 휘몰아치는 팔랑은 그 특성상, 어디를 노리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에 관한 방책은 몇 가지가 있었지만, 일단 가장 간단한 것부터.

“오나(五拏)!”

오나를 선택했다.

광마패도가 사용했던 착자결과 얼추 비슷한 면이 있는 오나는 상대의 무기를 붙잡기에 적절했다.

시후의 창은 승려의 봉을 허공에서 낚아챘다.

왼손을 아래로 내리며, 오른손을 당겨 들었다.

바닥을 향하는 승려의 봉.

하지만, 승려도 맞대응하듯 오나를 펼쳤다.

“어딜.”

같은 무공을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같은 초식을 펼치다니.

그러나 같은 무공과 같은 초식을 펼친다면, 시후가 이길 수밖에 없었다.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 내공을 거두고 순수한 힘으로만 상대했다.

얽혀든 봉과 창은 마치 한 쌍의 뱀처럼 서로를 탐했다.

서로의 몸에 독니를 꽂아 넣기 위해서.

창과 봉이 엉켜 고착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 상황이 달갑지는 않았다.

시후는 자신의 창을 얽매는 봉을 떨쳐 냈다.

“흡!”

시후는 봉을 위로 쳐낸 뒤, 승려의 팔이 들리면 가슴을 노릴 생각이었다.

창을 빙글 돌리며 손목에 힘을 주었다.

“응?”

다만, 튕겨 나가는 건 자신의 창이었다.

순간적으로 팔이 들려 가슴이 노출되었고, 승려의 봉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황급히 뒤로 한걸음 물러남과 동시에 창을 아래로 강하게 내리쳤다.

상대는 맞상대를 해 주지 않았다.

창은 애꿎은 바닥만 두들겼다.

그 틈에 옆구리를 파고드는 봉.

사선으로 땅을 굴렀다.

하지만, 마냥 구르기만 한 건 아니다.

일어남과 동시에 바닥을 쓸 듯 창을 휘둘렀다.

맞았다.

창날에 맞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일단 맞았다는 게 중요하다.

상대의 상태를 확인하기도 전에 머리통을 향해 봉이 날아들었다.

“에라!”

뒤구르기.

처음에야 자존심이 상했지, 한 번 구르고 나자 이보다 편리한 게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창을 고쳐 잡았지만, 이어지는 공격은 없었다.

“아하, 뼈라도 맞았냐?”

승려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와 대비되게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보기 꺼림칙했다.

창을 꽉 움켜쥐었다.

이전과 똑같이 오나를 펼쳤다.

하지만, 다리 한쪽에 힘을 실을 수 없다는 건 치명적이었다.

무릇 무공을 펼칠 때 근간이라고 할 수도 있는 건 하체였으니깐.

이번에야말로.

다시금 무기가 엉킨 상태에서 봉을 위로 쳐냈다.

짧게 버티는 듯했지만, 승려의 팔은 한순간에 위로 들렸다.

빈틈이다.

그리고 틈을 발견했으면 찔러 넣는 게 남자다.

“일섬!”

시후는 시련 초반에 승려가 썼던 일섬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물론, 그의 공격과는 차원이 달랐겠지만.

팔이 크게 들린 승려가 팔을 급히 끌어내리며 봉으로 창을 막았다.

한쪽 발로 서 있었는데, 힘이 들어갔을 리가 없다.

승려는 봉을 들어서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뒤로 튕겨 날아갔다.

뿌리가 부실하니 기둥은 속절없이 흔들렸다.

시후는 땅을 구르는 승려를 향해 재차 창을 휘둘렀다.

길게 갈 필요도 없었다.

마무리할 때가 왔다.

“구룡!”

최후는 가장 화려하게.

시후는 십창의 초식 중 가장 강력하면서도 돋보이는 구룡을 펼쳤다.

창에서 뻗어 나온 아홉 마리의 용이 상대의 몸을 난도질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 공격을 막기 위해 승려는 시후가 가장 싫어하는 초식을 펼쳐야만 했다.

“막창!”

“그거 쓰지 마!”

자신의 외침에도 승려는 꿋꿋이 막창을 사용했다.

그러나 한 마리의 용에 승려의 팔이 올라갔다.

두 번째 충돌에는 봉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봉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 시후의 창이 승려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고통스럽진 않을 것이다.

몸이 빛으로 산산이 부서져 내렸으니깐.

이리저리 춤추던 빛은 이내 문의 형상을 만들었다.

이전과 같이 흑백이 어우러진 문이 아니라 금빛으로.

[‘귀원의 탑’의 시련, 5단계를 성공적으로 통과하였습니다.]

[무골이 중급으로 상승합니다.]

* * *

부진장강곤곤래(不盡長江滾滾來).

이보다 장강을 잘 설명한 말이 또 있을까.

청해성 가가희립(可可稀立) 산맥에서 출발한 장강은 사천과 서장 등, 여러 성을 지나는 강이다. 정말, 이름에 어울리는 기나긴 강이었다.

어마어마한 길이에 걸맞게 아롱강이나 호도강 등 중간에 갈라지는 여러 강이 있었고, 그에 이어지는 많은 호수가 존재했다.

그중 ‘장강’ 하면 떠오르는 호수가 있었으니, 바로 ‘동정호’이다.

중국에서 강(江)이라는 한자는 ‘장강’을 의미한다면, 호(湖)라는 한자는 ‘동정호’를 의미하니 그 위상을 짐작하게 했다.

악양은 그런 동정호 인근의 아름다운 도시였다.

정확히 말하면, 악양이 아름다운 이유는 동정호 때문이지만.

특히, 노을 지는 동정호를 바라보고 있자면, 아무리 철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가슴 한쪽이 뭉클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붉디붉은 해를 집어삼킨 동정호도 분명 아름다웠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누구도 동정호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다들 호수를 등진 채 붉게 타오르는 듯한 악양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모습 또한 절경이라 말하기 부족함이 없었지만, 단순히 악양루의 아름다움에 심취한 것은 아니었다.

악양루를 목이 빠지게 올려다보는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의 불평이 흘러나왔다.

“제기랄, 얼굴 한번 보기 더럽게 힘드네. 고작 기녀 아닌가?”

“어허, 이 사람. 입조심 하게. 좌서장(左庶長) 어르신도 저 안에 있다는 소리가 있어.”

처음에 투덜거리던 남자의 목이 움츠러든 자라의 목처럼 쏙 들어가 버렸다.

공대부(公大夫)라도 겁을 먹을 터인데, 좌서장은 군의 대단한 실권자였다.

“흥······. 녹을 먹는 사람이 할 일도 없군. 좌서장도 기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처지라니.”

투덜대던 남자는 잔뜩 몸을 움츠린 채 주위를 살피더니, 기어코 다시 입을 열었다.

남자의 투덜거림을 끝으로, 주변은 다시금 조용하고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나갔다.

시후도 그런 군중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바로, 초설을 보기 위해서.

“곧 나올 때가 되었는데······.”

노을이 절정에 달하고, 동정호에서 반사된 노을빛이 악양루를 비출 때.

그때가 되어야, 초설은 악양루 가장 높은 곳에서 등장할 것이다.

악양루의 높은 곳에 서면 동정호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악양루는 거대했다.

하지만 실상, 악양루도 아름답게 지어지긴 했지만, 다른 삼대 누각에 비하면 그 규모 면에서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 탓에 현실 고증을 해야 한다는 여론도 존재했지만,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이야기는 많았으나 결국, 악양루는 황학루와 비슷한 크기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동정호에서 반사된 노을이 악양루 전체를 반짝이며 비추기 시작했다.

시후가 잠시 뒤돌아 동정호를 바라보는 사이,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문이 열렸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악양루 가장 위층의 문이 활짝 열리고 있었다.

이윽고, 문 앞 노대(露臺)로 수수한 백의를 입은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의는 노을빛으로 물들었고,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옷에 물든 노을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악양루가 천하제일이다’라는 말을 부정하지 않으리.

신침어(新沈魚)라고 불리는 초설의 외모는 ‘3대 명루’라는 표현을 단박에 지울 만큼 치명적이었다.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웅성거리던 악양루 주변은 숨소리조차 잦아들었다.

사방에 흐르는 적막감이 그 끝에 달했을 때.

붉은 노을을 머금은 듯한 그녀의 선홍빛 입술이 조그맣게 달싹였다.

“제게 달을 주시는 분만이 제 머리를 올릴 수 있을 겁니다.”

짧은 말 한마디를 남기고 초설은 곧장 뒤돌아섰다.

덕분에 모두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조금이라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자 다들 까치발을 치켜들었다.

아쉽게도 노대와 문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았고, 곧 뒷모습조차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들 악양루를 올려다보는 와중에 시후의 눈은 아래로 향했다.

[특수 이벤트 ‘초설의 소원’이 발동합니다.]

[그녀에게 달을 구해 주십시오.]

머리를 올린다는 것도 은유적 표현이니, 달이라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도 아니면 상식적으로 어떻게 달을 구한단 말인가.

초설이 모습을 감추자, 시후의 주변은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로 인해 시끄러워졌다.

“달이라면 운철(隕鐵)을 말하는 걸까?”

“그것도 일리가 있는 의견이지만······ 그 옛날에 월궁항아가 썼던 거울을 의미할지도 모르지.”

“거울이라······. 저 서역에 있는 나라에는 ‘말하는 거울’이 있다고 하던데?”

“예끼, 이 사람아. 거울이 어떻게 말을 한단 말인가?”

쓸데없는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시후는 악양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초설의 소원’보다 ‘흩어진 자매’가 먼저였다.

“정지.”

병사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좌서장의 이야기가 왜 나오나 했더니, 안에는 소문처럼 대단한 인물이 있는 듯했다.

다만 병사들의 얼굴을 보니, 좋아서 출입을 통제하는 건 아닌건 같았다.

왈패들도 아니고 기루 출입을 병사가 통제한다면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을 테니까.

“지금 안으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아무도 못 들어가요?”

“그건 아닙니다. 다만, 높으신 분이 계시어 신분이 불확실한 자는 안으로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신분이 불확실하다’라.

시후는 자신의 행색을 훑어보았다.

때가 제법 묻은 무복에 창 한 자루.

영락없는 낭인의 표본이었다.

할 수 없이 품을 뒤지는 척을 하며 인벤토리에서 호패를 꺼냈지만, 병사는 보지도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패만으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그럼 뭐로 판단······.”

“그럼 우리는 어떠한가?”

따지려는 찰나,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정기 운행선에서 헤어진 남궁천과 남궁미, 그리고 팽철우가 서 있었다.

맹진에서 먼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어딜 들렀다 오는 것인지 자신보다 한참을 늦게 도착했다.

“누구신지······.”

남궁천의 당당한 태도에 되물으려던 병사가 팽철우를 보곤 입을 다물었다.

워낙 거구라서 시선이 향한 것도 있지만, 입을 다물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옷 때문이었다.

가슴에 팽(彭)이라는 글자를 새기고 다니는 곳은 중원 전체에 단 한 곳밖에 없었으니깐.

“하북 팽가의 분이십니까?”

“팽철우요.”

지역에 따라, 대상에 따라 조금씩 호감도가 다르다.

소림사가 근처에 있는 낙양에서는 소림승의 호감도가 높았고, 불제자라면 그 호감도는 더욱 높을 것이다.

불리는 이름처럼, 하북에 위치한 팽가는 하북에서 호감도가 높을 것이다.

그리고 군에 진출한 인물이 워낙 많기에 자동으로 관(官)에 호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들어가십시오.”

시후를 상대로 기세등등하던 병사의 허리가 깍듯이 숙어졌다.

한 번 본 시후를 기억하는지, 남궁천은 눈인사를 슬쩍 건네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나머지 둘은 관심도 없는지 시후에게 눈길 한 번을 주지 않았다.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 병사는 다시 허리를 폈다.

“저분들처럼 보증이 확실하지 않다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그 말에 시후는 한 가지 물건을 떠올렸다.

최대 규모의 무림 방파이자, ‘협’을 숭배하는 개방의 물건.

시후의 품에서 나온 분식 패는 여전히 악취를 자랑했고, 바로 곁에 있던 병사는 코를 틀어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시후의 신분을 확인하고 뒤로 물러서는 줄 알았으나······.

“독이다!”

아니었다.

단순히 냄새가 지독했을 뿐.

병사의 외침에 시후는 조용히 분식 패와 창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빌어먹을 거지 놈들.

- 17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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