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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3화 (186/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3화 어긋난 톱니바퀴 (2)

[돌발 임무 ‘오해’가 성공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알람 창을 바라보던 시후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곧 바닥에 떨어져 있던 주머니를 주워들었지만, 온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눈을 잔뜩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허리를 펴자 주변에서 안쓰러운 눈빛이 느껴졌다.

그들의 시선을 피해 곧바로 골목으로 들어선 다음, 왈패들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개자식······ 죽일 거야. 아니, 지워 버릴 거야.”

평생 이토록 얻어맞은 적이 있었던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봤지만, 대답은 NO였다.

하물며 자신이 만든 NPC들에게 얻어맞다니.

내가 이러려고 저것들을 만들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다.

게다가 주머니 속을 확인하니 들어있는 돈은 고작 은 열 냥이 다였다.

“하······.”

맞은 것도 억울한데 이깟 푼돈을 받았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더욱 구겨졌다.

시후는 여전히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한참을 서 있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작 프로그램에 열이 받을 줄이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저놈들에게 칼에 찔려 쫓긴 구주신협과 비교하면 훨씬 좋은 상황이······ 좋긴 뭐가 좋아, 썅.”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화가 날 수밖에 없었지만, 계속 마음에 담아 둬 봤자 앞으로의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시후는 바닥을 구르며 엉망이 되어버린 옷을 툭툭 털어낸 뒤 골목을 빠져나왔다.

먼지를 털어냈어도 여전히 몰골이 엉망이었기에 그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적지 않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시후가 찾은 곳은 잡화점이었다.

사람이 매달려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만한 굵기의 줄을 자신의 기억에 맞춰 넉넉하게 구매했다.

덕분에 자존심을 굽히며 주운 돈의 절반이 단숨에 날아갔다.

묘했다.

이 돈을 받지 않았다면 줄을 사지 못했을 것이고, 모든 게 약간 늦어졌을 것이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과정은 좋지 않았지만, 결과를 놓고 보자면 도움이 되었다.

입맛을 다시며 손에 들린 줄을 인벤토리에 쑤셔 넣었다.

“지도. 36.02.17에 103.39.23 체크.”

입사하고 가장 처음으로 만들었던 장소이자, 구주신협이 왈패들을 처리하고 그들의 뒤를 봐주는 자들에게 쫓긴 구주신협이 떨어진 절벽.

절벽 아래 동굴에는 그가 얻을 두 번째 안배이자, 세 번째 안배의 열쇠가 잠들어 있었다.

* * *

시후는 허리의 줄이 단단히 묶였는지 확인했다.

혹시나 줄이 풀려 떨어진다면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다.

죽으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꼭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뭐, 2주 내로 아무런 조치가 없다면 그때나 죽어 봐야지.”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절벽은 까마득히 높았다.

시후는 절벽 아래로 발을 몇 번이고 뻗었다 거두기를 반복했다.

내려가긴 싫었지만, 가지 않고 기연을 얻을 방법은 없었다.

줄을 붙잡은 채 눈을 부릅뜨고 절벽 아래를 응시했다.

“겁먹을 필요 없어. 줄만 잡고 천천히 내려가면 되는데 무슨 걱정이야? 클라이밍 하던 걸 생각해 보면 이 정도는 껌이지.”

물론, 그와는 전혀 다른 난이도를 자랑했지만, 시후는 자기최면을 걸어가며 발을 아래로 내디뎠다.

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었고, 좌우로 불어 재끼는 바람은 사납기 그지없었다.

처음에야 한 발 한 발 디디는 걸음이 조심스러웠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자신감이 붙었는지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손에 쥐어진 줄이 짧아질수록 시후는 연신 아래쪽을 힐끔거렸다.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예상대로 곧 시후의 눈에 위태롭게 자리 잡은 나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거다.

구주신협이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간신히 붙잡았던 나무.

바로 그 밑에 시꺼먼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이 보였다.

다시금 세차게 바람이 불었다.

도저히 움직일 상황이 아닌지라, 잠시 멈춘 채로 바람이 멎길 기다렸다.

일 분쯤 기다렸을까, 바람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그 순간, 시후는 동굴 안으로 몸을 날렸다.

“휴······.”

동굴 안에 무사히 안착한 시후는 허리를 묶었던 줄을 풀었다.

이 줄이 자신의 유일한 구명줄이기에 시후는 줄을 돌 틈새에 비집어 끼워 놨다.

몇 번을 당겨 보며 바람에 날아가진 않는지 확인한 뒤에야, 빛마저 빨아들일 듯한 동굴로 걸음을 내디뎠다.

[1인 미궁에 들어오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칠흑처럼 어둡던 동굴 내부가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원래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적의(赤衣)를 입은 한 여인이 나타났다.

눈을 똑바로 바라봤지만, 자신을 바라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내 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앞으로 걸어갔다.

여인의 옷은 사실 적의가 아니라 피로 물든 백의(白衣)였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주변 풍경도 확 바뀌었다.

짙은 어둠을 뚫고 하늘에 나타난 커다란 보름달.

그 아래 풀벌레 소리 하나 울리지 않는 녹음이 짙은 숲.

그리고 그 여인의 앞에 나타난 복면을 뒤집어쓴 자들까지.

그들의 손에 들린 번뜩이는 무기와 선혈이 낭자한 여인의 모습을 보니, 생사의 갈림길에 선 상황이란 걸 깨닫기까지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후는 입술을 살짝 깨문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그대로 펼쳐지는군.”

말과 동시에 앞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멈춰 있던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서 가거라!”

여인의 비장한 목소리가 시후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럼, 가야지.

시후는 여인과 복면인들을 그대로 지나쳤다.

복면인들은 시후를 향해 달려들려고 했지만, 여인은 필사적으로 그들을 저지했다.

목숨을 도외시한 그녀의 공격에 복면인들은 쉽사리 뒤를 따라오진 못했다.

“내가 죽기 전까지! 이 선을 넘진 못할 것이다!”

뒤를 힐끔 바라보자, 여인은 팔을 타고 내린 피를 바닥으로 뿌리며 긴 핏자국을 만들어냈다.

소름 끼치는 광경에 시후는 조금 더 빨리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쇳소리 대신, 무엇인가 땅으로 풀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구주신협에게 보여 줄 환영이기도 하고 동시에 ‘신협지로’라는 임무에서는 봐야 할 장면이었다.

지금 온몸으로 칼을 받아내는 저 여인은 어린 시절 구주신협의 어머니였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주변이 다시 어둠으로 점차 잠겨 들었다.

아직 더 남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걸어가던 시후의 앞이 다시금 밝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여인이 나타났을 때와 같이 누군가 시선에 들어왔다.

이번에 나타난 인영은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어린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다시금 한 걸음.

사방에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추, 추워.”

소녀는 몸을 오들오들 떨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추격자들을 피해 도망치는 와중에 길을 잘못 들어, 하나뿐인 동생조차 잃어야 했던 구주신협의 아픈 과거.

구주신협이 환영을 보며 복수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장치로 사용되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이 환영을 보는 사람은 구주신협이 아니었다.

“어휴, 추워. 어서 지나가야지 원.”

시후는 양손으로 팔을 비비며 빠르게 앞으로 뛰어갔다.

바닥에 쓰러진 소녀를 무시한 채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자, 재차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타났다.

그의 아버지가 그토록 믿었던 숙부의 칼에 찔리는 장면을 포함해서, 구주신협의 정신을 산산이 박살 내는 장면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끝에는.

[1인 미궁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였습니다. 보상을 획득하세요.]

어둠이 걷히자 동굴 끝에는 조그마한 단상이 보였다.

그 위에는 백골과 그 오른손에 놓인 뼈대만 남은 검은 부채 하나가 놓여 있었다.

구주신협이 얻어야 할 다음 무공이 있는 장소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물건.

해골의 앞에 선 시후는 넙죽 절을 올렸다.

그르르르릉.

바닥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약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뒤로 밀려나는 단상.

단상이 있던 바닥에선 엄지손가락만 한 청색 자기가 올라왔다.

[측천파흑선(則天破黑煽)의 재료(1)를 모았습니다.]

[숨겨진 임무 ‘전설의 자취를 쫓아서’가 발동합니다. 측천파흑선의 다음 재료를 모아서 ‘측천무후의 황릉’으로 가는 단서를 얻으십시오]

[구주신협의 환영에 예를 올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일급 영약 ‘공청석유’를 얻었습니다.]

영약은 구주신협이 아닌 ‘신협지로’ 임무를 행할 플레이어를 위한 물건이었다.

원래라면 구주신협의 환영에 절을 하면서 받아야 할 물건이었지만, 아직 죽지도 않은 구주신협이 나타날 일은 없었다.

“돌아가도 서울로만 가면 장땡이지.”

시후는 측천파흑선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뒤, 곧장 자리에 주저앉았다.

“일원신공 활성화.”

[신화 등급의 무공입니다. 최초 운기 실패 시 일주일 후 재도전이 가능합니다. 한 번 실패 시마다 재도전 대기 기간은 두 배로 늘어납니다. 본 무공의 운기 영상은 10초 후 재생됩니다.]

극악하기 짝이 없는 난이도.

등급이 등급인 만큼 패널티도 어마어마했다.

곧이어 눈앞에 홀로그램이 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떠오른 인체 모형에는 수많은 혈 자리가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눈을 부라리며 집중력을 끌어올리던 시후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운기 영상을 재생합니다.]

“두 개?”

재생된 영상에선 두 개로 나뉜 기운이 각각 독맥(督脈)과 임맥(任脈) 근처에서 내공이 뭉치더니, 각기 회음(會陰)과 은교(齦交)로 스르륵 빨려 들어갔다.

당황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회음으로 스며든 기운은 곡골(曲骨)을 지나 중극(中極)에서 잠시 멈추었고, 은교(齦交)에서 출발한 기운은 태단(兌端)과 인중(人中)을 지나 인당(印堂)까지 빠르게 치달렸다.

엇박자로 움직이는 두 기운의 움직이는 속도는 상이했고, 각각의 혈 자리마다 머무르는 시간조차 전부 달랐다.

욕이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눈 깜박할 시간조차 아까운데 입술을 달싹일 여유는 없었다.

그 사이, 두 기운은 석문(石門)과 백회(百會)를 지나고 있었다.

독맥과 임맥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두 혈을 지나자 움직이던 속도가 다시금 바뀌었다.

독맥은 백회를 지나 이문(耳門)과 대추(大椎)를 지날 때까지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지만, 임맥에서 석문을 지난 기운은 기해(氣海)에서 거의 멈추다시피 했다.

대추를 지나자마자 독맥의 기운은 다시 느려졌고, 임맥은 기해를 빠져나오자마자 속도가 빨라졌다. 마치 느려졌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는 것처럼.

운기 영상은 고작 이 분여에 불과했지만, 그사이 엄청난 집중을 해야 했던 시후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게다가 영상은 한 번만 보여 주겠다는 듯 곧바로 사라졌다.

“썅.”

긴 욕을 할 필요도 없었다.

짧은 한마디로도 모든 걸 표현할 수 있었으니깐.

두 개의 기운을 동시에 움직이는 일.

못할 것도 없었다.

다만, 단순하게 기운이 쓱 지나가는 거라면 상관이 없을지 몰라도, 움직이는 속도나 각 혈에 머무르는 시간 등 모든 것이 제각각이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게다가 실패 시 일주일이라는 페널티는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일원신공을 활성화하기 위해 최초 운기에 도전하시겠습니까?][최초 도전에 성공 시 무공 등급에 따라 추가적인 혜택이 주어집니다.]

[실패 시 재도전 기간은 일주일입니다.]

떠오른 창을 보곤, 시후는 조금 전 운기 영상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생각보단 제법 선명하게 떠올랐지만, 조금 더 시간을 끌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이를 악다문 시후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전.”

[신화 등급 무공인 일원신공의 활성화를 시작합니다.]

도전한다는 말을 내뱉자마자 자동으로 눈이 감김과 동시에, 시각을 대신하듯 몸 곳곳에 자리 잡은 혈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음과 은교 앞으로 내공이 이동하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시후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석문과 백회까지는 어렵지 않다. 그 뒤가 지랄 맞아서 그렇지.’

그전까지는 몸풀기에 불과하였다.

다만, 시후도 내공이라는 녀석에게 적응했다.

게다가 영상을 볼 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직접 몸으로 내공을 움직여 보자 두 기운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듯 밀고 당기며 속도를 조절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뭔가 깨달음을 얻으니 더는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재밌었다.

시후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 분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까.

뺨을 타고 흐르던 땀이 턱 끝에 모여 땅으로 떨어지기 직전, 시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일원신공(1성)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최초 도전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일원신공(2성)에 도전하시겠습니까?]

- 4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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