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114화 (114/116)

《114화》

1.

유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태극혜검을 익힌 태진성은 엘렌과 싸우는 김신의 모습을 보며 연신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바랬던 수준의 검술을 태극혜검도 아닌, 다른 검술로 사용하다니.’

많은 검술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완성도가 높은 검술일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패검, 쾌검, 유검. 환검까지.

상황에 맞추어 상대를 무너트리고, 리듬을 깨트리며, 공격을 흘려내고, 현혹한다.

챙! 채채챙!

김신의 주변을 돌며 흐릿한 잔상만을 남긴 채 공격을 퍼붓는 엘렌.

그에 반해 김신은 엘렌이 틈을 찾기 위해 움직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검을 들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모든 공격을 큰 충격 없이 흘려내고 있었다.

강한 공격은 비우고, 빠른 공격은 묵직한 검격으로 받아내며, 강력한 공격은 흘려버리고, 현란한 공격으로 상대의 힘을 낭비하게 만든다.

‘한계를 뛰어넘는 움직임.’

극한의 집중이 낳는 초월적인 결과.

평범한 사람조차 초인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엄청난 집중을 계속해서 유지 중인 김신을 바라보며 태진성은 틈을 보았다.

지금!

아무리 잘 싸우고 있다지만, 엄연히 한계를 뛰어넘은 움직임.

이대로 간다면 김신은 곧 그 힘을 다하고 말 것이다.

‘숨을 돌릴 틈을 만들어야 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공격의 타이밍.

태진성은 엘렌의 무차별적인 공격의 틈을 노리고 검을 내뻗었다.

쐐액!

은밀하지만, 빠르고 치명적이게.

합격이라는 조건의 한계를 뛰어넘어 생긴 틈으로 날아드는 검격에 엘렌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

펄럭!

다급한 날갯짓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풍압.

자유낙하 하던 사람이 낙하산을 펴는 것 같은 수준의 급정지를 보여준 엘렌은 태진성의 검을 한 끗 차이로 걷어내며 뒤로 물러섰다.

허공에서 멈춰선 엘렌의 모습에 김신이 반대로 쏘아지듯 달려나갔다.

탓!

태진성의 옆을 지나가며 짧은 전음을 보내는 김신.

-지금 몰아쳐야 합니다.

한계를 뛰어넘은 움직임에 몸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 분명한 김신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나갔고, 태진성은 그런 그의 모습에 재빨리 뒤를 따랐다.

***

채앵!

다시 울려 퍼지는 마찰음.

손으로 무언가를 하려 했던 엘렌의 행동이 김신의 공격으로 무위가 되어버리고, 다시 전투는 처음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채채채챙!

다만 단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으니.

공격이 들어오는 곳이 양방향이 되어버린 지금 엘렌은 태진성의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채앵!

태진성의 검을 걷어내면 김신의 검이 더욱 매섭게 엘렌을 베려고 날아들었다.

“큭!”

공격을 막아낸 엘렌은 손끝에서 화끈한 느낌을 느꼈다.

또옥.

그 무엇으로도 베지 못할 자신의 손에서 피가 새어 나온다.

이것은 엘렌에게 큰 충격이 되었다.

유리하지 못하다.

전장의 상황 또한 그리 좋지만은 않다.

멀리 보이는 다른 인간들 또한 그의 수하들을 김신과 태진성처럼 합심하여 쉽사리 막아내고 있었으니까.

‘하필이면 마기까지 도와주질 않는군.’

인간들의 검에 담긴 마나와 상성이 너무나도 안 좋다.

‘어쩔 수 없군.’

마나의 부하를 견디며 주력인 마법을 쓸 수밖에.

펄럭!

엘렌이 힘찬 날갯짓과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바람을 꿰뚫는 감각과 자유로운 움직임.

쉽게 닿을 수 없는 높이에 도달한 엘렌이 오만한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마법을 사용하려던 그 순간.

“...!”

그의 등 뒤에서 생성되는 게이트.

그리고 그 게이트 너머로 달려드는 김신의 모습이 보였다.

‘공중에서의 공격이라면 내가 더 유리하다!’

반응하지 못하면 기습이지만, 자신의 이목을 피해 공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쐐액!

재빨리 뒤로 돌며 김신의 공격을 쳐내는 엘렌.

그의 손이 김신의 검과 부딪치자, 날카로운 마찰음이 아닌, 공기를 스쳐 지나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쐐액! 퍼엉!

사라지는 김신의 모습과 그 뒤에서 달려드는 또 다른 김신의 모습.

엘렌은 그 모습을 보고는 곧바로 그가 벌인 이 기괴한 일의 실체를 알아냈다.

“어떻게 마법을!”

허상 속에 자신의 모습을 숨긴다.

말 그대로 허상과 겹친 상태로 공격을 해왔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감에 잡히니, 엘렌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것.

그 가증스러운 방법을 쓴 인간은 놀란 자신의 모습에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답했다.

“그건 알 거 없고. 일단 바닥으로 내려가자.”

허공을 가른 오른손이 다시 되돌아 김신의 공격을 막기도 전에 그가 날린 검은 엘렌의 피막을 찢어버리고 반대편으로 지나갔다.

찌이이익!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추락하는 엘렌.

아주 빠른 반응속도로 수인을 맺어 허공에서 움직일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김신은 그것까지 예측한 모습을 보였다.

파앙!

기묘한 방법으로 공중에서 몸을 뒤튼 김신이 떨어지는 엘렌의 심장을 향해 검을 내뻗은 것.

‘제길!’

그 모습에 엘렌은 속으로 울분을 터트리며 김신의 검을 받아쳤다.

채앵!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등에서부터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

콰앙!

“...!”

잠시 정신이 날아갈 정도로 아찔한 충격.

재빨리 일어서 김신의 공격을 막아내려던 엘렌은 몸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변화를 눈치챘다.

쿠웅!

파편이 박힌 심장 부근에서 느껴지는 뻐근한 느낌.

그와 함께 그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검은빛이 기류.

조절할 수 없는 그 이상 현상을 본 순간 엘렌은 알 수 있었다.

잠식이 시작되었다는 걸.

2.

엘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빛의 기류.

김신은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한 건지를 알 수 있었다.

‘시작됐다.’

프란과의 일전으로 확인했던 잠식.

이성을 잃고 파편에 잠식되는 것만이 그에게 남은 결과다.

‘틈을 노려 결과를 만들긴 했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야.’

잠식의 결과가 더욱 강력한 괴물로 변하는 것일지, 아니면 프란의 경우처럼 주체할 수 없는 힘의 분출을 나을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주변을 모조리 초토화할 마기의 방출 동안은 무방비해진다는 것이다.

‘뚫을 수 있을까?’

프란의 경우처럼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에 차올랐다.

‘아니, 막아야 해.’

이 이후에 똑같은 기회가 올지 어떨지는 모른다.

그러니,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잡아야한다.

검을 쥐는 김신과 그런 김신을 바라보며 악에 가득 찬 눈빛으로 천천히 잠식에 빠져드는 엘렌.

김신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펼치는 다른 헌터들의 모습을 슬쩍 훑어보고는 태진성을 향해 말했다.

“이제부터는 정말 위험할 겁니다.”

“대충 봐도 그래 보이네.”

“그러니 물러서시겠습니까?”

태진성은 김신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아니, 자네를 두고 어떻게 혼자 살아남겠나. 그랬다가는 하윤이의 손에 죽을 거야.”

갑자기 태하윤의 이름이 나오는 것에 김신은 잠시 고개를 꺾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흘려넘기고는 다시 엘렌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그럼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뭔가?”

“마기의 폭풍이 시작되면 최대한 힘을 쏟아내 길을 뚫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야 물론 가능하네.”

태진성의 말을 들은 김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태진성이 만드는 틈이 얼마나 클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의 힘을 가진 태진성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쿠궁!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잠식의 시작.

콰가가가가각!

이 지긋지긋한 전투를 끝낼 그 마지막 순간이 지금 눈앞에 찾아왔다.

***

사방으로 퍼지는 광포한 파괴의 기운.

오직 모든 것을 파괴하겠다는 의미만이 담겨 있는 그 거친 마기의 움직임에 태진성은 김신이 부탁처럼 가장 먼저 마기의 파도에 맞섰다.

쿠콰가가가각!

닿는 모든 것을 분쇄하며 달려드는 마기.

불쾌하고 진득한 살기까지 담긴 그 기운을 향해 태진성은 가장 강한 초식으로 맞섰다.

스윽-

유려한 청색의 강기가 태진성의 검을 따라 마기의 접근을 막는다.

그 시작은 검로를 따라 허공에 수놓아지는 태극의 문양.

자연의 기운을 극성으로 끌어 검에 담는다.

태극은 팔괘와 음양의 합이니, 그것은 곧 만물을 뜻한다.

콰가가가각!

검으로 그려진 태극 앞에 멈춰선 마기의 흐름.

태진성은 엄청난 압박감에 이를 악물며 버텼다.

김신에게 시간을 버텨줘야 하는 것.

미래를 짊어질 사내의 등을 받쳐주는 것이 지금의 자신이 해야 할 일이란 것을 알기에.

카가각!

점점 밀려나는 태진성의 발걸음.

한 걸음 두 걸음 밀려나던 그가 어느새 김신이 서 있는 곳까지 밀려났고, 조용히 무언가를 가다듬고 있던 김신의 눈이 번쩍 떠졌다.

“고생하셨습니다.”

그 한마디를 끝으로 김신이 자신의 옷덜미를 잡아 뒤로 던져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자세를 잡기도 전에 느껴지는 기묘한 부유감.

태진성이 그 부유감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잘 되길 빌어 주십쇼.”

김신의 그 말과 함께 열렸던 게이트가 닫혔다.

3.

태진성을 게이트 너머로 떠나보내고 난 직후.

달려드는 마기의 파도를 바라보며 김신은 천천히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스윽-

검을 가볍게 끌어당긴 후, 앞으로 내지른다.

완벽한 자세를 바탕으로 사용된 첫 번째 초식, 개벽(開闢).

뻗어 나간 검강이 마기의 파도에 한 줄의 잔상을 남기며 가르고 들어갔지만, 곧바로 사그라들었다.

검강 마저 손쉽게 흩어버리는 마기의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금 검을 들어 한 걸음 걸어가며 베어내는 김신.

스윽!

김신의 검이 횡으로 움직임과 함께 그의 검 끝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강기다발이 마기의 파도와 부딪쳤다.

두 번째 초식인 뇌우(雷雨).

김신이 날려 보낸 검강의 비 또한 첫 번째 초식인 개벽보다 조금 더 오래 버티는 것을 끝으로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다시 한 걸음.

이제는 묵직해진 압박감을 견디며 휘두른 종베기.

쿠구구구구구!

압박을 뚫어야 하기에 몸에서 부하가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신의 검은 마기를 뚫고 들어갔다.

콰아앙!

세 번째 초식인 지변(地變).

거대한 울림을 남긴 세 번째 초식 또한 틈을 넓히는 것을 끝으로 사그라들었다.

“흡!”

몸에 느껴지는 막대한 부하.

프란을 상대했을 때와는 다르게 온전하게 검을 휘둘러 초식을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상 이상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멈출 수는 없다.’

중앙에서 이 엄청난 마기의 폭풍을 발산시키는 엘렌의 모습은 프란과 다르게 점점 변하고 있었으니까.

피부를 타고 솟아오르는 얇은 피막.

마치, 부화를 앞둔 어떤 생명체가 태동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재앙의 씨앗이 확실한 모습.

김신은 계속해서 네 번째 검을 휘둘렀다.

사선으로 그어진 검을 따라 풀려나는 강기의 폭풍.

앞선 세 번의 공격의 여파로 꽤 흩어진 마기의 막을 뚫고.

네 번째 초식인 파천(破天)이 마기의 폭풍과 부딪쳤다.

“크윽!”

힘과 힘의 맞대결.

점점 깎여나가는 마기의 폭풍과 그에 맞춰 급속도로 줄어드는 김신의 내공.

─────!

격렬한 충격을 만들어낸 두 사람의 공격은 빛을 뿜어냈다.

쿠구구구구구!

몰려드는 마기의 폭풍이 사그라든다.

그에 맞추어 앞을 바라본 김신은 엘렌의 목에 멈춰선 자신의 검을 바라봤다.

막대한 기운을 가진 완성된 악마.

핏빛으로 물든 눈동자로 엘렌은 김신을 마주 보며 말했다.

“결국, 뚫지 못했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신은 그런 엘렌의 모습에서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밝게 웃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스으으윽.

김신의 몸을 따라 피어오르는 막대한 묵빛의 기.

끝을 알 수 없는 엄청난 기운에 엘렌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빈틈을 노리는 건 지금이 마지막.’

생명의 기운. 선천진기(先天眞氣).

김신은 잠시 한계를 뛰어넘어 그다음의 경지를 보았다.

세상을 채우는 푸른 기운들.

김신은 자연스럽게 그 기운들을 끌어와 검에 담았다.

지이잉!

검신에서 피어오른 검강이 검에 물들며 검신의 색상이 묵빛으로 바뀌었다.

저벅.

마지막 한 걸음과 함께 베어지는 검을 따라, 세상에 한 줄기 묵 색의 선이 생겼다.

천마신공의 오의(奧義), 멸공(滅空).

천천히 주변을 물들이는 묵빛.

그와 함께 엘렌의 몸이 그 묵빛 공간으로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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