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1.
상대의 내공을 옥죄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천마군림보.
타인의 마나에 영향을 끼치는 이 기술을 주변 환경에 영향을 주려고 사용했으니, 몸에 엄청난 부하가 올 수밖에.
“으득!”
기맥에 엄청난 부담이 가는 내공 운용방식의 반동 때문에 전신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지만, 검을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수 없다.
상대는 공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공의 영역에 오염된 26층에 대해 단서를 얻을 수 있는 마족이니까.
또한, 팀원들을 노리는 적이다.
이대로 물러선다면 자신을 포함한 모든 팀원의 몰살은 정해진 수순.
─────!
내공의 압력과 마기의 충돌은 엄청난 충격파를 주변으로 퍼트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드러난 프란의 모습.
마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그의 모습은 멀쩡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비쩍 마른 몸과 핏줄이 솟아난 신체.
무너진 둑에서 흘러나오는 엄청난 양의 물처럼 새어 나오는 마기를 제어할 수 없어 보이는 프란의 상황에 김신은 눈을 빛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죽어가는 장작처럼 저런 상태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러니 조금만 더 버틴다면, 충분히 길이 열리리라.
쿠구구궁!
아찔한 고통을 버티던 도중,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생각했던 것처럼 마기의 흐름이 약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에 따라 약하게 줄어든 반동.
힘의 균형이 깨지자 움직이기가 수월해진 김신은 쥐고 있는 검을 들어 올렸다.
쿵!
한 걸음 더 내디딘 김신.
그와 함께 마기의 저항도 두 배로 강해진 천마군림보에 의해 더욱 강하게 억눌려졌다.
스릉-
몸은 만신창이지만, 검을 휘두를 정도의 힘쯤은 남아있다.
한 걸음 더 내딛자, 또다시 더욱 강해진 내공의 압박에 마기의 흐름이 한층 더 약해졌다.
‘이 정도면 충분해.’
검을 휘두른다.
목표를 벤다.
고통 속에서의 집중은 오롯이 검에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었다.
지잉-
검에서 옅게 피어오르는 강기.
그에 따라 전신의 기맥이 더 이상의 내공을 운용하면 안 된다는 듯이 울부짖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끝을 내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스윽-
좌에서 우로.
물 흐르듯 뻗어 나간 검은 프란의 마기를 가볍게 가르며 지나가 그의 반대편으로 빠져나왔다.
툭- 데구르르.
그와 동시에 힘없이 무너지며 먼지처럼 사라지는 마족의 신형.
“···끝났네.”
그 모습을 봄과 동시에 김신의 시야가 어둡게 물들었다.
***
순식간에 일어난 엄청난 일들.
그 모든 순간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송인아는 김신이 쓰러지려는 순간 곧바로 달려나가 염동력으로 그를 부축했다.
“오빠! 괜찮아?!”
의식이 없는지 축 늘어져 있는 몸과 큰 무리를 했던 탓인지, 코와 입에서 피를 쏟아낸 김신의 모습.
“치료 아티펙트!”
“어, 여, 여기.”
천명화와 강한우에게 넘겨받은 치료 아티펙트를 김신의 몸에 올려놓은 송인아는 그를 조심스럽게 눕힌 뒤, 자신이 걸고 있는 목걸이를 빼 그의 목에 걸어주었다.
“제발...”
자신의 목에 걸려있을 때는 아무런 변화가 없던 목걸이가 김신의 목에 걸리자, 은은한 연두색의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스르륵-
그에 따라 몰려드는 자연의 기운.
주변 나무와 꽃, 그리고 풀에서 흘러나오는 연두색의 마나가 목걸이를 통해 김신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어.”
11층의 토벌에서 나온 아티펙트인 [자연의 힘].
상처를 빠른 속도로 회복시켜주는 아티펙트를 팔지 않고 자신에게 준 것이 이토록 다행일 줄이야.
치료 효과가 있는 아티펙트 덕분인지 터져있던 김신의 실핏줄들이 다시 아물며 원래의 색을 되찾았고, 파리했던 김신의 얼굴빛 또한 천천히 온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오빠의 상태가 안 좋은 건 확실해요.”
검사의 마나 사용방식은 다른 각성자들과는 다른 것이 많다고 했었다.
“귀환이야 지금 바로 할 거긴 하지만, 이다음은 어떻게 해야 해?”
김신의 부상이라는 생소한 문제 때문인지, 행동의 갈피를 못 잡는 천명화.
강한우 또한 자신이 말하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검사의 상처는 검을 쓰는 검사가 가장 잘 알겠죠.”
그렇게 말한 송인아는 김신을 데리고 가야 할 장소가 어딘지 곧바로 생각해 냈다.
“태극검술길드로 가요.”
조심스럽게 김신을 업은 강한우.
주변을 정리하는 팀원들을 뒤로한 채 송인아는 바닥에 떨어진 파편 하나를 집어 들고 다시 길드로 귀환했다.
2.
피부가 익을 것만 같은 햇볕이 내리쬐는 사막.
김신은 그런 사막을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이틀째 횡단하고 있었다.
“물...”
걸음마다 느껴지는 죽을 것 같은 갈증.
타는듯한 목마름이 절정에 달했을 때, 김신의 눈앞에 보기만 해도 목마름이 가실 것 같은 시원한 강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물이다!”
기쁨에 겨워 강줄기로 달려간 김신은 곧바로 무릎을 꿇고, 강줄기에 얼굴을 박아넣었다.
얼굴에 닿는 차가운 물의 느낌.
김신은 입을 벌려 사정없이 물을 들이켰다.
꿀꺽꿀꺽.
한 모금을 마시고도 풀리지 않는 갈증에 다시 한 모금.
꿀꺽꿀꺽.
“...?”
분명 물을 마심에도 불구하고 가시지 않는 목마름에 당황한 김신은 순간적으로 눈이 번쩍 떠졌다.
“...?”
방금까지만 해도 눈에 보이던 시원한 강과 아찔한 사막 대신에 고풍스러운 목재로 지어진 처마가 눈에 들어온다.
“이게 대체...?”
“괜찮아요?”
그 순간 옆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시선을 돌려 바라본 옆자리에는 물수건을 짜는 태하윤의 모습이 보였다.
“하, 큼큼. 하윤 씨?”
뚝배기가 갈라지는 듯한 탁한 목소리에 옆에 있는 물병을 집어 물을 따라 건네는 태하윤.
“일단 물부터 마셔요.”
“큼, 고마워요.”
꿀꺽꿀꺽.
목을 타고 들어가는 물의 청량함과 가시는 갈증.
김신은 그제야 자신이 봤던 강과 사막이 모두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럼 얼굴에서 느껴졌던 시원한 감각은?
새삼스럽게 떠오른 의문에 대한 해답은 태하윤이 하는 행동을 통해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누워요. 아직 열이 안 가라앉았으니까.”
뭐라 의문을 가질 시간도 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몸을 눕힌 태하윤이 자연스럽게 물을 짜낸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럼 그 꿈이...”
“꿈이요?”
“그게···”
간단하게 꿈을 설명해 주자, 태하윤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런 꿈을 꿨군요.”
기분이 좋은지 얼굴을 닦아주는 태하윤의 손길이 조금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김신은 묘한 감각을 느끼며 태하윤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제가 왜 여기 있죠?”
“기억 안 나요?”
“마지막 기억이 탑에서 어떤 괴물 같은 놈과 싸운 것이긴 한데...”
“그 전투 때문에 입은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김신 씨 팀원이 저희 길드로 찾아왔어요.”
태하윤의 말을 듣고 내부를 확인하자, 놀랍게도 내상이 거의 다 아물어 있었다.
“...누가요?”
무인의 내상은 타이밍을 놓치면 긴 시간을 정양해야 한다.
그러니 생각할 수 있는 건 팀원 중 누군가가 자신의 상태를 확실히 알고 행동했다는 것.
“여성분이 다급하게 말씀하시던데.”
그 예상외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은 것은 같이 검을 쓰는 천명화도 아닌, 송인아였다.
“그러고 보니 인아는 어디 있죠? 아니, 팀원들은?”
“다른 두 남성분은 길드로 돌아가셨고, 여성분은 어제까지 김신 씨 병간호를 하다가 너무 피곤해 보여서 제가 잠시 옆방에서 쉬라고 말해뒀어요.”
“제가 며칠 동안 누워있었던 거죠?”
“이틀이요.”
하루를 꼬박 병간호하니, 피곤할 만도 하지...
기감을 퍼트려 옆방을 살펴보자, 확실히 송인아의 기가 느껴졌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김신은 옆자리에서 송인아의 뒤를 이어 간병 해주는 태하윤을 보며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뭐가요?”
“옆방에 있는 여자애가 욕심부리던 거 뜯어말렸을 거 아니에요.”
“그걸 어떻게?”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닌데, 저 정도는 척 봐도 알죠.”
“...”
말이 없는 태하윤의 모습에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입술을 삐죽 내민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하윤 씨?”
“...”
뭔가 잘못한 것이 있나?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빠트린 것이 생각났다.
“아, 미안해요. 고맙다는 말을 간병해준 태하윤 씨에게 먼저 했어야 했는데.”
“흥.”
“...!”
사실 태하윤은 김신의 감사 표시보다 송인아와의 관계가 생각보다 깊다는 것이 부러워 심통이 난 것이었지만, 김신은 알 수가 없다.
심통 난 자신의 표정을 보며 당황한 김신의 얼굴을 보니, 슬그머니 사그라드는 감정.
태하윤은 표정을 풀고 김신의 감사를 받았다.
“그걸 이제 알아주면 어떡해요. 나도 고생했는데.”
***
태진성의 도움을 받아 내상을 거의 완벽하게 해결을 하기를 또 하루.
그렇게 다음날이 돼서 태극검술길드의 밖으로 나온 김신은 제대로 정비하지도 못하고 피곤한 상태로 있는 송인아를 이끌고 길드의 팀 대기실로 돌아왔다.
“고마워, 진짜. 너 아니었으면 지금쯤 마나로드 다친 걸 회복하느라 또 고생했을 거야.”
“그걸 아는 사람이 그렇게 무리를 했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 팀원들이 그 무지막지한 공격에 휘말리게 생겼는데.”
“알지, 아는데...”
말꼬리를 길게 끄는 송인아의 말에 그녀의 얼굴을 보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있는 것이 보였다.
“...!”
다친 모습을 봤던 것 때문에 걱정이 많았던 건가.
김신은 다가가 가만히 송인아를 품에 안았다.
토닥토닥.
그제야 마음에 맺힌 응어리가 풀렸는지 옷의 앞섬이 따뜻하게 물들었다.
“오, 오빠한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마음에 담아왔던 것이 그런 문제였다니...
팀원들의 노력은 분명 빛을 발했다.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마족을 상대로도 분전하지 않았는가.
언제나 앞에 서서 팀원들을 보살펴야겠다고 생각한 자신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부끄럽게 느껴졌다.
“아니야, 인아 너는 그렇게 강한 그 마족을 상대로도 충분히 잘 싸웠어. 단지 그건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던 거야.”
위로의 말과 함께 가만히 등을 토닥여주자, 그녀의 발을 옭아매던 짐이 덜어졌는지 송인아는 옅게 울음소리를 흘렸다.
“흐끅...”
그렇게 10분여간 조용히 품에 송인아를 끌어안고 있던 김신은 울음을 그친 그녀를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일단 좀 쉬어, 너 하루 동안 나 간병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며.”
“괜찮아.”
“괜찮긴 무슨. 다크서클이 눈 밑까지 내려왔는데.”
“히익!”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굴을 돌리는 송인아의 모습에 김신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쉬고 있을 동안 길드장님 좀 만나고 올게.”
발걸음을 돌리는 김신을 향해 빠트린 물건이 있다는 듯이 고개를 돌린 상태로 무언가를 건네는 송인아.
“이거, 그 자리에 떨어져 있던 거야. 왠지 중요해 보여서 가져왔어.”
송인아가 건넨 것은 보랏빛의 파편.
김신은 그것을 보자마자 공이 존재가 남긴 파편이란 것을 바로 알 수 있었기에 그녀의 손에 있는 파편을 가져오며 답했다.
“고마워. 안 그래도 확인하러 가야 하나 했었는데.”
“뭘...”
이것을 감정하면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김신은 길드장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파편에 담긴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사용자의 염(念)을 엿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