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1.
김신은 한때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존재로 변한 프란을 바라보며 내공이 가득 담긴 검으로 받아칠 준비를 했다.
속도와 힘 두 가지 부분에서 눈앞에 적은 전에 싸웠던 구원회의 회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살아온 시간과 이성의 유무.
냉철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다.
상대의 허를 찌르거나, 혹은 약점을 노출 시켜 방심을 유도하거나.
“...”
마기에 물들어 칙칙한 검은 빛 마나를 흩뿌리고 있는 프란.
김신과 프란은 서로를 탐색하는 듯이 바라보고 있기만 할 뿐 섣불리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겁먹었나?”
뜬금없이 걸어오는 말에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 김신.
“도발하는 모습을 보니, 꼬리를 만 강아지가 짖는 것 같네.”
“호오. 입은 살았군.”
상대의 수준을 알기에 쉬이 움직일 수 없다.
그렇게 서로를 보며 날을 예리하게 세우고 있던 그때.
팟!
대치하고 있던 프란이 먼저 시야에서 사라졌다.
쐐액!
바람을 꿰뚫는 날카로운 소리.
좌측에서 날아오는 프란의 손을 검강이 맺힌 검으로 짧게 위로 쳐올려 막아냈다.
카앙!
자세를 잡고 있던 김신과 다르게 달려오면서 날린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그 반동 때문에 크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프란.
김신은 그렇게 물러서는 프란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왼쪽으로 반보 내디디며 오른손으로 검을 깊게 찔렀다.
쐐액!
예리하게 들어가는 공격에 눈을 크게 뜨며 양손을 교차해 막아내는 프란.
콰앙!
중검의 묘리를 섞은 일검에 강한 충격을 받은 프란이 공간을 격하고 날아가 아름드리나무에 거칠게 처박혔다.
“...!”
몸속을 파고드는 강렬한 내공의 흐름.
폐부를 찌르는 고통에 프란은 얼굴을 찌푸렸다.
분명 막았지만, 막은 것 이상으로 상대의 마나가 몸속 파헤친다.
김신이 내지른 공격이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의 묘리가 담긴 일격임을 모르는 프란은 그 기묘한 공격에 경각심을 가졌다.
직접 부딪치는 공격은 오히려 손해다.
상대에 대한 평가에 따른 공격방법의 변경.
직접 맞닿지 않은 상태로 공격할 방법은 프란에게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쐐애액!
공간을 격하고 날아가는 공격방법인 마나의 사출을 이용한 공격.
김신은 맹렬하게 날아오는 공격을 보며 오히려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내가중수법이 확실히 먹힌다.’
상대가 공격하지 않고 피하려 든다면 오히려 더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 승리하는 방법.
게다가 팀원들이 있는 곳에서 멀어졌기에 지금이 더욱 떨어트려 놓기에는 좋은 타이밍이다.
탓!
김신은 물러서는 프란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달려들었다.
***
상대를 죽이겠다는 일념이 담긴 공격의 교환.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상대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서 더욱 많은 양의 마기를 담아야 하는 프란은 김신과의 전투가 길어질수록 부담을 느꼈다.
몸속에 있는 공의 존재의 파편을 조율할 마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한계를 넘어가는 순간 잠식의 속도가 빨라지고, 그로 인해 이성을 잃게 되면 남은 것은 주변을 파괴하겠다는 본능만 남은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기에.
게다가 탑의 26층과 연결되는 게이트를 열기 위해서라도 김신이 들고 있는 저 파편을 손에 넣어야 한다.
쐐애액! 쾅!
처음과는 다르게 기묘한 수를 쓰며 자신의 불리한 점을 메꾸는 김신의 모습.
거리가 멀어지면 자연의 속성이 담긴 공격들과 막아내면 오히려 피해를 입는 공격이 날아든다.
“크윽...”
지잉, 하고 울리는 손목을 두어 번 돌린 프란은 날개를 펼쳐 하늘로 솟구치며 생각했다.
‘조용히 돌아가겠다고 해볼까?’
먼저 죽이려 들었는데 순순히 돌아가겠다고 했다고 돌려 보내주면 그것도 그것대로 말이 안 된다.
결국, 정면승부를 노리거나 김신의 빈틈을 노리거나.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던 프란의 눈에 들어온 한 무리의 인간.
방패 뒤에 몸을 숨겼지만, 저 아래에서 계속해서 공격을 날리는 김신보다는 훨씬 약하다.
‘저거다.’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
프란은 5팀원들이 있는 곳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2.
강한우의 방패 뒤에 모여 있는 5팀.
전력으로 방어에 집중해도 막기 힘들 정도의 공격을 주고받던 날개 달린 악마가 하늘로 솟구친 상태 그대로 방향을 틀어 이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들었다.
펄럭! 펄럭!
날갯짓할 때마다 울리는 파공성.
공기가 찢겨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공간을 격하고 가까워지는 적의 모습에 강한우는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인아는 마나 끌어모아서 방패 위에 덧씌우고, 명화는 최대한 마나를 끌어모아서 공격을 날려줘.”
“네!”
방어에 집중할 때는 천명화의 불길보다 송인아의 염동력이 훨씬 강력하다.
지이잉!
화르르륵!
방패 위에 덧씌워지는 일렁이는 염동력과 세 사람을 둥글게 감싸며 불타오르는 천명화의 마나.
그동안 갈고닦아온 실력을 뽑아낼 시간이다.
“우리가 팀장님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어떤 수를 써서라도 막아내 보자고!”
“옙!”
김신이 걸어가는 길은 강력한 적들이 도사리고 있는 전장이다.
그리고 그런 전장에서 항상 약했던 5팀원들은 팀장님에게 짐이 되었었다.
아티펙트, 대련, 특강.
모든 것을 두루 받으며 다른 헌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단시간 내에 성장한 5팀원들이 지금처럼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팀장님의 족쇄가 되지 않도록.
“블레이저!”
솟아오른 화염이 한곳으로 뭉치며 거대한 창이 되어 쏟아진다.
슈슈슈슉!
하늘을 빼곡하게 메우는 천명화의 공격이 프란을 향해 쏟아졌다.
***
하늘을 가득 메운 천명화의 공격.
프란은 그런 천명화의 공격을 오른손에 담긴 마기를 내뿜어 흩어내려 했다.
“이딴 공격 따위!”
쐐애액!
반원형으로 쏘아지는 마기의 공격.
퍼어어엉!
경로에 있는 천명화의 공격은 마기를 이기지 못하고 흩어졌지만, 천명화의 공격은 그것을 뛰어넘을 만큼 광범위하게 날아갔다.
피피픽!
결국, 프란은 천명화의 공격을 완벽하게 피하지 못한 채 맞고 말았다.
생각보다 약한 공격.
가볍게 손으로 불길을 꺼트리려던 프란은 이상하게도 꺼지지 않는 불길에 얼굴을 찌푸렸다.
화르륵!
마치, 몸에 두른 마기를 다 태워버리겠다는 듯이 퍼져나가는 천명화의 불길.
그리고 그 생각이 맞는 듯 몸을 타고 퍼지는 불길에 따라 마기의 소모도 엄청나게 빨라졌다.
“이런 버러지들이!!”
프란은 이를 악물며 더욱 빠르게 날아갔다.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아직 반전을 노릴 시간은 충분하다.
‘여자를 노린다.’
방패를 든 남자는 틈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몸을 태울 듯이 번져나가고 있는 불길을 날려대는 저 남자 또한 껄끄럽다.
그렇다면 가장 취약한 위치에 몸을 드러내고 있는 저 여자를 노리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
쐐애액!
날개를 접어 더욱 빠른 속도로 낙하하는 프란.
그 앞에 방패가 있었지만, 이정도 충격을 받으면 필시 뒤로 날아갈 것이다.
오른팔을 뒤로 빼 마기가 가득한 손을 내지르는 프란.
그의 손과 강한우의 방패가 맞닿기 전에 먼저 그 앞을 가로막은 무언가가 있었다.
키이이이잉!
강렬한 기운과 기운의 대립.
엄청난 소음을 울리며 공중에 멈춰선 프란의 신형.
“···크윽!”
“인아야! 무리하지 마!”
“괜찮아요!”
여자의 신음과 앞에서 방패를 들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
‘이 막대한 힘이 저 여자의 몸에서 나온 거라고?!’
비록 강도가 마기에 비해 약했기에 빠른 속도로 밀려나고 있지만, 이 정도로 막아낸 것 자체만으로도 여기 있는 인간 중에선 가장 강한 것이리라.
콰앙!
결국, 여자의 방어를 뚫고 방패를 가격했지만, 이미 파괴력은 많이 줄어든 상태.
“흡!”
파칭!
방패를 든 남자가 기합을 내지르자, 몸을 꿰뚫는 날카로운 가시가 튀어나왔다.
푸욱!
마기를 태우는 천명화의 공격 탓에 강한우의 공격을 허용한 프란.
몸의 곳곳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감각에 프란은 이를 악물며 분노를 뿜어냈다.
“신의 파편을 가진 내가, 이런 버러지들에게!”
분노는 이성을 흔들었고, 흔들린 이성은 천명화의 공격 때문에 위태로웠던 마기의 제어를 놔버렸다.
그렇게 쓰러지기 시작한 도미노는 곧 프란의 이성을 잠식했다.
바로 그때.
“모두 물러서!”
뒤따라온 김신의 목소리와 함께 프란으로부터 엄청난 마기의 파동이 주변을 삼켰다.
3.
하늘을 날아가는 프란의 모습에 최대한의 속도로 되돌아온 김신.
하늘을 날아가는 프란의 움직임과 땅에서 움직이는 김신은 어쩔 수 없이 속도의 차이가 있었고, 그로 인해 김신은 하늘에서 방향을 트는 프란의 모습을 본 김신은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챘다.
공격의 여파를 피해 물러서 있는 팀원들을 향해 쇄도하는 프란.
김신이 이를 악물며 더욱 속도를 높였지만, 여전히 거리는 벌어졌다.
그러나, 예상외의 상황이 벌어졌으니.
‘특훈의 보람이 있구나!’
훨씬 강한 적의 공격을 훌륭한 합격을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막아 낸 팀원들.
그로 인해 생긴 틈을 공격하려던 김신은 순간적으로 가라앉는 프란의 마기를 느끼며 무언가 이상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모두 물러서!”
그리고 그 순간, 팀원들을 집어삼킬 듯 퍼지는 프란의 마기.
“제길!”
수인을 맺어, 할 수 있는 한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강화된 베리어를 팀원들의 앞에 사용했다.
키이이잉!
하지만, 강대한 마기의 흐름을 막기에는 베리어는 너무 약했다.
파칭!
아주 잠깐 버티고 부서진 베리어.
그 순간에 김신은 그 공간에 틈새를 노리고 들어가 송인아와 강한우를 뒤로 던져버렸다.
“팀장님!”
“오빠!”
비교적 뒤에 서 있는 천명화와 부딪쳐 날아가는 팀원들의 모습을 보며, 김신은 기맥의 한계까지 내공을 동원해 몸을 뒤덮었다.
“흡!”
강기로 몸을 감싸 보호하는 호신강기.
내공의 소모가 엄청나지만, 김신은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과 동시에 김신을 뒤덮는 마기의 파도.
쿵!
묵색의 강기로 몸을 휘감은 김신과 칠흑같은 마기가 부딪침과 동시에 주변이 초토화되어갔다.
***
콰가가가가각!
앞이 보이지 않는다.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내공과 마기의 부딪침은 주변의 그 어떤 소리도 전부 뒤덮을 만큼 엄청난 굉음을 만들었다.
몸을 베기 위해 쏟아지는 마기의 파도.
호신강기를 두른 김신이었지만, 마기의 파도는 호신강기와 비견될 만큼 강력했기에 김신의 호신강기는 빠르게 닳아갔다.
“크윽!”
전신의 기맥에서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방대한 양의 내공을 끌어다 썼음에도 불구하고 마기에 밀리는 김신.
쿠웅!
더 이상 밀리지 않기 위해 천근추의 묘리로 땅에 두 다리를 박아넣어도 밀리는 속도는 늦춰지지 않았다.
‘이대로는 팀원들이...!’
지금 몸을 빼면 뒤에 있을 팀원들이 위험하다.
‘일단 이 망할 마기라도 어떻게 할 수 있다면...!’
기를 기로 억누른다.
가능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수밖에.
스으윽-
상단세로 휘두른 세로베기.
쐐액!
강하게 내리친 검로를 따라 잠시 모습을 드러낸 공간.
김신은 그렇게 생긴 틈을 이용해 간신히 한 걸음을 내딛으며, 내공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쿠웅!
그와 함께 강하게 내려앉은 대기.
사방으로 퍼지던 마기 또한 김신의 천마군림보에 가로막혀 억눌러졌다.
후두둑.
무리에 무리를 거듭한 탓에 코를 타고 흘러내리는 핏방울.
아찔해지는 정신을 붙잡은 김신은 간신히 만들어 놓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