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1.
주변이 온통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이곳.
12층의 환경이 주는 영향을 마법으로 깔끔하게 지워버린 김신은 하려 했던 일을 하기 위해 차원의 파편을 매만졌다.
괴수를 유도해 차원의 파편으로 이동시키고, 잠시 후 다시 게이트를 열어 돌아오게 하는 방법.
물론, 그것 말고도 탑에 있는 동물을 대상으로도 실험할 것이다.
동물과 괴수를 이용한 검증.
여러 가지로 불확실하지만, 최대한 많이 하여 결과를 확인하면 안전한지를 알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저희는 이제 등반을 안 하는 겁니까?”
“아니,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까 일단은 할 수 있는 만큼 등반을 해야겠지. 우리가 멈춰 서면 뒤따라오는 다른 헌터들도 멈춰 서야 하니까.”
“만약 15층까지 그 방법이 안전한 걸 확인하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천명화의 말은 10층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입장과 동시에 열리는 게이트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그 이유 때문에라도 이걸 확인하는 건 그 전에 마무리해야 해.”
그러니, 최대한 많은 검증을 통해서 안전성을 확보한다.
그것이 지금의 목표다.
***
밀림을 헤쳐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서걱서걱!
송인아의 염동력을 이용한 개척.
기본적으로 길이 있기는 하지만, 그 길을 가로막는 식물들이 거슬렸기에 송인아의 염동력은 엄청난 효용성을 보였다.
시야의 확보와 혹시 모를 독성식물의 독에 대한 대비.
거칠 것이 없어진 덕에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던 5팀의 앞으로 찾아다녔던 괴수가 나타났다.
-크아아아아아!
검은색 털로 덮인 고릴라.
평범한 고릴라와는 다르게 두 배가 넘게 커다란 양팔을 가진 고릴라가 가슴을 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마침 한 마리라니, 아주 좋은걸?”
다수였다면 전투를 통해 개체수를 줄여야 하지만, 한 마리라면 그저 다 왔을 때 게이트를 열면 그만이다.
-쿵!
바닥을 내리친 괴수가 이쪽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양팔로 바닥을 내리찍으며 달려오는 괴수.
바닥에 떨림이 녀석의 팔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움직이지 마.”
5팀 전부가 강한우의 방패 뒤에 몸을 숨긴 상태.
김신은 틈으로 바깥 상황을 살펴봤다.
-크아아아아!
두 다리와 두 팔을 번갈아 가며 움직이는 괴수의 속도는 상상 이상.
괴수는 잠깐 사이에 먼 거리를 달려와 강한우의 방패를 향해 양팔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강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팀장님!”
“알고 있어요.”
양팔로 방패를 내리찍는 괴수를 보며 왼손에 쥔 차원의 파편에 마나를 불어넣어 활성화했다.
우우웅!
방패와 괴수의 사이에 순식간에 생기는 공간을 뛰어넘는 게이트.
-부웅!
바람을 찢으며 떨어지던 괴수의 양팔과 상체가 먼저 게이트의 너머로 사라지고, 그 반동을 이기지 못한 하체마저 전부 빨려 들어갔다.
────!
아스라이 들리는 괴수의 괴성.
김신은 열린 게이트의 너머로 떨어진 괴수를 확인하고 게이트를 닫아버렸다.
아찔했던 상황이 지나가자, 강한우는 방패를 조심스럽게 내리며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슬아슬했습니다.”
“정확한 타이밍에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요.”
있는 힘껏 내리치는 공격을 유도했어야 했기에 일부러 아슬아슬한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강한우를 뒤로한 채, 김신은 팀원들에게 말했다.
“1시간 동안 여기서 대기하자.”
계획대로 마계에 괴수를 보냈으니, 이제 확인할 일만 남았다.
2.
하늘에 뜬 붉은 달과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폐화한 대지.
휘이이잉-
삭막한 모래바람마저 끝없이 부는 이 장소에 있는 유일한 건물인 마왕성.
한눈에 봐도 거대한 건물의 입구에는 탑에서 익히 보던 포탈과 비슷한 무언가가 공간을 일렁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포탈을 넘어서 안으로 들어가는 인형 하나.
붉은 날개를 등에 달고, 검은 뿔이 자라난 남자는 건물 안에 있는 어떤 방의 문을 큰 소리가 나도록 세게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갔다.
쾅!
방에 놓인 침대 위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던 다른 사내를 향해 꽤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는 남자.
“엘렌. 방금 게이트가 열렸었다. 너도 느끼지 않았나?”
엘렌이라 불린 남자는 남자의 말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 느꼈지. 프란.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냐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어차피 사라졌잖아.”
“그러니까, 거기서 뭐라도 흔적을 찾아야지!”
탐하면 안 되는 힘을 취한 대가로 신체는 물론, 마나까지도 인간과는 전혀 다른 종족이 되어버린 프란과 엘렌.
프란은 엘렌이 지금까지 이런 몸으로도 살아남으려 했었던 이유인 희망이 나타났다는 데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것에 화가 났다.
“우리가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런데도 넌 이대로 이 빌어먹을 공간에 갇혀서 평생을 노예처럼 살 거야?”
신이라는 존재를 탐한 대가.
아니, 그 당시 그들은 살고자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지만, 어쨌든 신의 파편이란 것을 가지고 재앙을 피하려 했었기에 어떻게 보자면 당연한 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프란이 지금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말하는 모습에 엘렌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알고 있어.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말할 필욘 없었잖아.”
“네가 움직일 생각을 안 하니까.”
공의 존재가 남긴 공허에 먹혀버린 이곳.
엘렌은 이곳에 남은 유일한 동료인 최후의 다섯 명 중 프란과 함께 아직 이성이 남아있는 유일한 마족이었다.
아주 작디작은 인간성에 기대어 살고 있는 괴수.
이미 반쯤 먹혀버린 상태인 그는 동료인 프란 외에는 사실 그 어떤 생명체를 죽여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엘렌은 침대에서 일어나 프란에게 걸어갔고, 이내 프란의 옆을 지나 밖으로 나가며 조용히 말했다.
“그래, 확인하러 가보자고.”
한계에 다다른 정신력이었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빌어먹을 존재의 파편을 손에 넣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심장에 자리 잡은 자신의 정신을 삼킬듯한 광기를 다스릴 수 있을 테니까.
***
어느덧 괴수를 마계로 보낸 지 한 시간이 지났다.
손목에서 울리는 알람을 끈 김신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팀원들을 모았다.
“시간 됐다. 다들 준비해.”
“예.”
각자의 무기를 들고 주변에 모여든 팀원들.
그중 천명화가 순수한 화염으로 만들어진 검을 만들어내며 물었다.
“팀장님, 그런데 확인해서 괴수가 멀쩡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직접 넘어가서 살펴봐야지.”
“예?! 거기 엄청 위험하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천명화의 표정을 본 김신은 피식 웃음을 내뱉으며 이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혼자 갔다 올 거니까.”
천명화의 물음에 답한 김신의 말에,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한우와 송인아가 바로 답했다.
“그건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맞아, 안돼! 그러다가 못 돌아오면!”
결사반대의 의지로 답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김신은 왼손에 들고 있는 차원의 파편을 보여주며 답했다.
“나 말고 이거 사용할 수 있는 사람 있어?”
“어...”
두 사람은 그 말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벌린 상태로 얼어버렸다.
“위험하면 곧바로 이거 써서 빠질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나 쉽게 질만큼 약하지 않거든?”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본 김신은 손에 쥔 차원의 파편을 활성화했다.
우우우웅!
옅게 떨리는 공기와 함께 열리는 차원의 틈새.
사람 한 명이 오갈 만큼의 크기로 게이트가 커진 순간, 김신은 너머에 있는 괴수의 모습을 보곤 굳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멀쩡하거나, 혹은 변이됐거나.
두 가지의 경우의 수로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
“이런 미친!”
괴수는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잔인하게 죽어있었다.
“대체...우욱!”
그 광경을 함께 본 강한우.
비위가 약했던 그가 고개를 돌렸고, 김신은 그 모습에 게이트를 닫으려 했을 때였다.
“네가 이 게이트를 열었구나!”
“...!”
칠판을 긁는 것 같은 끔찍한 목소리.
잔뜩 말라 비틀어진 탁한 쇳소리를 내뱉은 존재가 게이트를 향해 날아왔고, 김신은 즉시 게이트를 닫았다.
─────!
서서히 좁아지는 공간과 점점 가까워지는 의문의 생명체.
너무나도 빠른 그 움직임에 김신은 검을 집어 들었고,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 그 의문의 존재는 11층으로 넘어와 김신에게 칼과도 같은 날카로운 손톱을 내질렀다.
그 모습에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올리며 막아낸 김신.
날카로운 손톱과 김신의 검은 마찰과 동시에 많은 양의 불꽃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카가가각!
“...!”
엄청난 힘과 파괴력.
선 채로 공격을 받아낸 탓에 뒤로 밀려나던 김신은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한우 씨 주변으로 모두 모여!”
대략적인 수준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놓치는 순간, 팀원들이 위험할 수도 있다.
‘이게 마족의 힘인가?’
재빨리 차원의 파편을 품속에 집어넣고 난 후, 왼손으로 버프를 사용하는 김신에게 손을 맞대고 있는 마족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그것을 내놓아라. 죽기 싫으면.”
죽일 듯 공격해 놓고서는 죽기 싫으면 내놓으라니?
절로 헛웃음이 나오는 말에 김신은 입꼬리를 비틀며 답했다.
“어차피 죽이려고 달려들었으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냐.”
말과 함께 녀석의 손을 강하게 밀치며 뒤로 물러선 김신은 녀석의 목덜미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카앙! 카앙!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공방.
선 채로 십여 합을 주고받은 마족은 가볍게 손을 털며 뒤로 물러섰다.
“꽤 실력은 있다. 이건가?”
너무나도 편한 의사소통.
분명 한국어가 아님에도 녀석이 하는 말이 명확하게 들려왔다.
녀석의 정체는 분명 마족.
마족은 분명 이성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의 마족은 다르다.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마족.
김신은 이유가 궁금했기에 마족을 향해 물었다.
“말이 통하니 묻는 건데, 넌 정체가 뭐지? 어째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거냐.”
“나는 신을 죽인 자. 그리고 너와 같이 그 신이 파편을 손에 넣은 자.”
김신은 마족의 대답을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석판에서 본 기억과 공허를 뚫어보는 눈을 감정하고 본 기억.
눈앞의 적은 공의 존재를 토벌하고 난 후, 불안정해진 공의 영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의 파편을 취한 자.
김신은 그런 마족에게 물었다.
“넌 인간이었었나?”
“한때는. 지금은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어떤 존재일 뿐이다.”
“네가 이것을 가져가면 일어날 일을 아니 줄 수 없어.”
“그렇다면 죽이고 가져가는 수밖에.”
각자의 생존을 위한 대립.
김신은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검에 내공을 불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