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105화 (105/116)

《105화》

1.

목표가 확실하다는 건 좋다.

문제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 껴있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뿐이지.

갑작스럽게 나온 문제인 공의 존재.

그에 대한 단서가 이 석판에 적혀있길 바라며 김신은 조용히 석판을 쓰다듬었다.

[사용자의 염(念)을 엿봅니다.]

석판에 깃든 기억의 시작은 석판의 제작자인 엘프족의 엘하임이 세계수의 앞에서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이었다.

신의 신탁을 받는 자.

미래를 예지할 수 있다는 힘은 엘프족 아니, 그 어떤 종족을 통틀어서도 굉장히 귀한 능력이었다.

“세계수이시여, 제게 미래를 보여주소서.”

미래란 수많은 시간의 가지 중 하나.

그중 엘하임이 본 것은 게이트와 거기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습격, 그리고 그 게이트를 만드는 어떤 존재에 대한 것이었다.

공간을 다룬다.

아니, 공허를 다룬다.

어떤 한 공간을 지칭하는 단어인 공간이 아닌,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비어버린 공간 공허.

그곳에 사는 존재가 침습하는 미래는 바꿀 수 있으나, 바꿀 힘이 있는 자가 없다.

그렇기에 엘하임은 보았다.

탑이라는 미지의 공간의 끝에 있는 희망.

부서진 그 존재의 힘을 취할 수 있는 정수가 그곳에 잠들어 있다는 것을.

“엘하임이 석판을 남기노라.”

탑을 오르는 누군가를 위해.

아니.

“미래를 위해.”

***

7장으로 구성된 석판 중 가장 마지막 페이지.

앞서 확인한 페이지들의 공통적인 부분이 탑에 관한 공략, 혹은 정보였다면 마지막 페이지는 이뤄야 할 목표인 재앙을 끝낼 방법이었다.

시작과 끝까지.

엘하임의 기억 속에서 본 탑의 마지막 층은 굉장히 익숙했다.

공의 존재가 등장하며 변이된 세계.

구원회 회장의 모습과 비슷한 존재들이 살아가는 곳이자, 이미 한차례 종말을 맞이했던 장소.

“···마계.”

설마 그곳이 탑의 마지막 층일 줄이야.

언제나 그렇듯 예상외의 현실은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곳.

그들은 공의 존재의 파편을 이용해 종말에서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그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인가?

한 놈이라면 팀원들의 지원을 받아서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다만, 기억 속에서 본 그들의 수는 꽤 많았다.

“...”

고민은 길었지만, 결과는 하나였다.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탁.

석판을 책상에 내려놓은 김신은 길드장실로 향했다.

2.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5팀의 탑 등반.

한유성은 5팀의 등반을 위해 그동안 여러 길드의 수장들과 회담을 가졌었다.

탑이라는 이권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

그것을 원만하게 해결할 방법으로 정보를 주고 유사시 벌어질 상황에 힘을 보탠다. 라는 방향으로 말이다.

물론 선발대의 정보를 이용해 등반하는 길드들은 솔직히 손해 볼 것이 거의 없었다.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 탑이었으니까.

모두가 한 합의는 등반하는 속도를 대폭 끌어올렸으며, 또한 흐름에 동참한 다른 길드들도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정보들을 다른 길드에 알려줬다.

숨은 목표가 재앙을 끝내기 위한 등반이란 걸 생각해보면 지금의 흐름은 정보의 노출 최소화와 동시에 최고의 효율을 이끌어낸다고 볼 수 있을 거다.

“그러고 보니 5팀장이 오늘 복귀했다고 했던가.”

등반도 팀을 나눠서 올라가야 하기에 한유성은 가장 뒷 순번인 가장 약한 팀과 등반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아놨었다.

그렇기에 별다른 일이 없는 지금 할 일은 서류작업뿐.

스스슥-

고요한 사무실에 울려 퍼지는 건 펜이 종이와 맞닿아 울리는 소리였고, 한유성은 계속해서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똑똑-

-길드장님. 5팀장님이 찾아왔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들어오라해요.”

-예, 알겠습니다.

보고 있던 서류에 마지막으로 사인을 하고 일어선 한유성은 손짓으로 차를 한잔 타올 것을 부탁한 뒤 김신을 봤다.

“···얼굴이 좋지 않구만? 혹시 좋지 않은 소식인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급합니다.”

“급하다, 급하다라...”

매사에 모든 일을 최단속도로 해치우던 사내의 입에서 급하다는 말이 나왔다.

“별로 좋지는 않아 보이지만, 듣기 싫다고 듣지 않을 수는 없지. 앉게.”

“예.”

한유성은 몸을 받쳐주는 소파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뭔가?”

조용히 바라보는 김신의 표정을 보니, 어떻게 운을 뗄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평소와 너무나도 다른 모습.

그런 그의 생소한 모습에 걱정이 되려던 찰나, 그의 입이 열렸다.

“11층의 보스에게서 석판을 구했습니다.”

“석판이라면 자네가 그토록 찾던 탑에 대한 정보 아닌가?”

“예, 그토록 찾던 정보죠. 제가 길드장님에게 부탁드렸을 만큼.”

“그런데 대체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건 무슨 얘기인가?”

“석판에 적혀있는 정보를 확인한 결과, 생각보다 탑을 빠르게 올라야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더 빠르게?”

“아뇨. 다른 길드원들이 아니라. 길드장들이 빠르게 올라야 합니다.”

길드장들이 빠르게 탑을 올라야 한다.

허나, 다른 길드장들도 자신만의 업무와 등반을 도와줄 팀원들이 있을 터인데...

“이유를 알려줄 수 있겠나?”

“그 이유는-”

천천히 어떤 존재에 대한 말을 하기 시작한 김신.

한유성은 그가 하는 말을 들을수록 믿기 힘든 상황에 얼굴이 굳어갔다.

***

신의 권능을 손에 지닌 공의 존재와 그 존재가 사라지며 남긴 흔적과 그 흔적을 이용하여 강대한 힘을 얻어 재앙에서 생존한 이들이 존재하는 탑의 마지막 층에 대한 이야기.

어차피 이제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는 재앙이라는 명분은 필요 없다.

어차피 가장 마지막 층에 있는 그 변이된 존재들은 S급 헌터가 아닌 이상 상대하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재앙과 탑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강력한 적들.

한유성은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김이 나던 차가 전부 식을 때까지 말을 하지 않고 고민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말은 해보겠지만, 엄연히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탑의 끝을 보기 위해 지금 당장 눈앞에 펼쳐진 일들을 내팽개칠 수 없다는 걸 이해해주게.”

길드장들도 당장 멸망할 것이라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탑을 올라감에 따라 더 강력한 개체가 나온다고 하여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지금 눈앞에 있는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종말은 미래의 일이고, 지금의 문제도 많으니까.

그렇기에 김신은 미리 생각했던 해답을 꺼냈다.

“다른 방법이 있지만, 이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11층에서 얻은 아티펙트인 공허를 꿰뚫어보는 눈.

그것을 이용한 도박적인 방법.

현재의 일을 하면서도 훗날 있을 위험을 미리 제거할 수 있다는 방법에 한유성은 눈빛을 빛냈고, 김신은 말을 이어갔다.

3.

길드장실에서 정보의 전달과 앞으로의 계획을 마치고 나온 김신은 설명하는 과정에서 꺼내 들었던 두 개의 아티펙트를 매만졌다.

“우선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 번 더 검증할 필요가 있어.”

공간을 뛰어넘어 원하는 곳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아티펙트인 공허를 꿰뚫어보는 눈.

김신이 말한 도박적인 방법은 이것을 이용해 탑의 최상층을 확인하고, 차원의 파편을 이용해 그쪽으로 건너간다는 계획이었다.

-자네가 말한 대로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솔직히 변이되었다는 그 존재들도 공의 영역이라는 곳에 대항하기 위해 공의 존재를 죽이고 나온 것을 이용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러니 제가 검증을 해보고 확실하다 싶으면 다시 말씀을 드릴 테니, 그때는 꼭 다른 길드장들에게서 협의를 이끌어 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그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책은 확실히 건졌다.

재앙이 눈앞에 있다고 해도 인간은 현재를 사는 동물이니까.

모든 것을 내버려 두고 앞만 보며 갈 수 없다는 건 지킬 것이 그만큼 많기 때문인 거니까.

그렇기에 처음 석판에 적힌 정보를 봤을 때, 고민했던 거다.

모두가 삶의 터전을 지키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방법.

우웅-

옅은 빛을 내뿜는 보랏빛 파편과 은은한 빛을 내뿜는 보랏빛 보석.

구원회의 회장이 탑에서 지구를 향해 여는 게이트는 이미 주변의 상황을 알고 있는 그가 열었던 것이기에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열었던 거다.

반대로 지금 자신이 하려는 이 행동은 아직 제대로 사용해보지 않았던 아티펙트로 가야 할 곳을 보고 그곳에 게이트를 열어야 한다는 것.

미지의 공간을 공허 속을 통해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기에 우선 검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허를 꿰뚫는 눈을 통해 본 장소가 정확한 장소가 맞는지를.

그리고 이동할 때, 헌터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으...골치 아프네.”

한참을 생각하던 김신의 머릿속에 지나간 좋은 방법.

“괴수를 이용하자.”

미지의 장소를 보고, 괴수를 게이트를 통해 이동시켜 확인한다.

어차피 탑은 또 올라야 하기에 검증할 방법은 충분하다.

***

또다시 이틀이 지났고, 5팀은 탑에 올랐다.

12층의 배경은 울창한 밀림.

또다시 목을 졸라오는 엄청난 습도와 온도에 김신은 이번에도 수인을 맺어 팀원들의 건강을 지켜주었다.

“이번엔 좀 등반 방식을 다르게 할 거야.”

김신의 말에 송인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다를 게 있어?”

“이번엔 토벌하면서 올라가는 게 아니야.”

“응?!”

너무나 예상외의 답변이었기 때문일까?

송인아 뿐만이 아닌 천명화와 강한우마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한 가지 실험해야 할 것이 있어서.”

어차피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문제도 아니기에 전에 얻었던 아티펙트에 관해서 말하자 팀원들은 얼굴을 굳힌 채 이야기를 모두 들었고, 이야기가 끝난 후에 천명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무나 위험 부담이 큰일 아닙니까?”

“크지. 큰데 해야 해. 우리가 탑을 오를 동안 게이트에서는 더욱 크고 강한 괴수가 나올 테고, 결과적으로 우리도 탑을 얼마나 빨리 오를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잖아.”

한정된 시간과 인력.

헌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각지에 열리는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수들 혹은 터전의 주위에 자리 잡은 괴수들과 싸우고 있다.

“그건 맞지만...”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그래. 솔직히 나도 평범하게 탑 등반을 끝내고 싶지만, 나뿐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는 지금이 가장 중요하고 값진 것이니까.”

그들도 불확실한 미래가 확실하게 바뀐다면 기꺼이 손을 뻗어서 도와주리라.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동하는 방법이 될 게이트가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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