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104화 (104/116)

《104화》

1.

끈적끈적해진 신발을 끌고 도착한 던전.

오면서 만났던 괴수들은 대부분 벌이었다.

“어쩌다가 벌이 이렇게 많아진 걸까.”

지금까지 봐왔던 환경과 다르게 괴수들 간의 균형이랄 것이 없는 11층의 환경에 든 의문.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옆에 있던 송인아가 말했다.

“상대할 만한 적이 없어서?”

“그래서 다른 괴수들이 다 잡아먹힌 건가?”

“그게 맞지 않을까? 오면서 본 괴수들의 시체가 한 둘이 아니었잖아.”

외형은 벌이지만 벌에 대한 특성은 침 하나뿐이지, 식성까지 닮진 않았다.

“어쨌든 두 번 다신 오고 싶지 않아.”

“그건 인정.”

“저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송인아, 천명화, 강한우까지 모두 고개를 젓게 만드는 11층.

약점을 노렸기에 전투 자체는 쉬웠지만, 후처리 방식이 너무 힘들었다.

“어쨌든 마석을 많이 얻었으니까 그걸로 만족하자.”

“네.”

마석마저 없었다면 진짜 여기에 불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김신은 그렇게 생각하며 5팀을 이끌고 던전으로 발을 내디뎠다.

***

적막에 싸인 내부.

11층의 던전은 거대한 나무 한 그루만 중심에 달랑 있는 빈 공간이었다.

“팀장님, 아무것도 없는데요?”

보스가 없는 던전이라...

말이 안 된다.

“잠깐만 조용히 있어봐봐.”

기묘한 적막에 기감을 끌어올려 사방을 샅샅이 훑었다.

“...”

기감에 잡히는 것은 단 하나.

눈앞에 보이는 나무 한 그루.

나무의 구석구석을 살펴봤지만, 기감에만 느껴질 뿐 그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말이 안 되는데.”

고개가 절로 기울어지는 상황이지만, 긴장을 풀진 않았다.

“일단 주변 좀 훑어보자.”

김신은 팀원들을 이끌고 기감에 걸리는 나무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뭐 보이는 거 있어?”

“아뇨, 없습니다.”

나무를 중심으로 구석구석 살펴봤지만, 여전히 보이는 것은 전무.

김신은 다시 처음 있던 자리로 돌아와 팀원들을 대기 시킨 후, 홀로 나무를 살펴보기 위해 천천히 걸어갔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기에.

가까이 갈수록 점점 더 날카롭게 느껴지는 위화감.

나무에서 느껴지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설마...?!”

탓!

이상을 눈치챈 김신이 즉시 몸을 뒤로 내빼자, 그가 있던 자리에 내리꽂히는 거대한 나뭇가지.

“그럼 그렇지, 없을 리가 없지.”

기묘한 위화감과 기감에 잡히지만 보이지 않았던 괴수의 정체.

그것은 다름 아닌 나무의 모습을 한 괴수였다.

2.

쿠드드드득!

첫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즉시 땅에서 튀어나오는 나무.

뿌리가 던전의 내부 깊숙이 박혀있었던 만큼, 나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땅이 거칠게 떨리며 들썩였다.

“모두 방어스킬 쓰면서 최대한 뒤로 빠져!”

줄기 하나하나의 크기가 엄청난 만큼 스치기라도 했다가는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강한우는 거대해진 방패를 들어 올리고, 천명화는 그런 강한우의 방패를 뒤덮는 화염을 일으키고, 송인아는 강한우의 방패 뒤를 받치고.

김신은 수세를 굳힌 팀원들의 뒤로 돌아가 수인을 맺었다.

마나의 변환과 동시에 모두를 감싸는 거대한 금빛의 반구체.

‘베리어.’

우웅!

김신의 베리어가 모두를 뒤덮음과 동시에 그 위로 몸을 일으킨 나무의 뿌리가 떨어져 내렸다.

쐐애액!

채찍과도 같은 파공성.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내며 베리어 위에 떨어진 나무뿌리는 귀가 먹먹해지는 소리를 내며 베리어를 강타했다.

촤아악!

일격에 찢어진 베리어.

괴수의 공격은 베리어를 뚫고 강한우의 방패까지 도달했지만, 이미 한 차례 위력이 준 탓에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공격이 강한 만큼 막아냈을 때, 상대에게 가해지는 부담도 커지는 법.

쿠드드드득!

반동에 밀려 뒤로 기울어지는 나무의 모습에 김신은 천명화를 바라보며 외쳤다.

“명화야! 쏟아부어!”

“예!”

전설급 아티펙트 순수한 불꽃의 힘을 빌린 천명화가 스킬을 사용하자, 그를 둥글게 감싸고 있던 불길이 그 세를 무섭게 불려갔다.

화르르륵!

붉은색을 넘어 주황색으로 주황색에서 황백색으로.

나무의 최대 취약점은 다름 아닌 화염이다.

천명화를 덮은 화염이 마침내 백색이 된 순간.

“블레이저!”

주변을 뜨겁게 달구던 천명화의 화염이 거대한 창이 되어 괴수를 향해 날아들었고, 김신은 그것을 보며 수인을 맺었다.

천명화의 스킬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마법.

────!

일순간에 모이는 많은 마나양에 떨리는 공기가 느껴지고, 그와 함께 나무의 앞에 생겨나는 화염.

작지만 엄청난 마나를 품은 그 마법이 어느덧 완성됐고, 김신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익스플로전.’

콰아아아아앙!

급격하게 팽창한 마나의 폭풍에 나무가 들썩이며 뒤로 강하게 튕겼다.

콰지지직!

폭발에 여파에 직격으로 맞은 정중앙에 생긴 거대한 폭발의 흔적.

천명화의 공격은 바로 그 나무의 움푹 파인 부분으로 날아들었다.

콰가각!

초고열의 화염이 나무의 취약한 부분을 뚫고 들어가자, 몸을 비틀며 또다시 마구잡이로 주변을 내리치는 괴수.

쿵쿵쿵!

김신은 화염을 쏟아내는 천명화를 보호하기 위해 다시 수인을 맺어 베리어를 사용했다.

쐐애액!

아까보다는 약하긴 하지만, 여전히 위력적인 괴수의 공격.

콰앙!

다행히도 파괴되지 않고 무사히 막아낸 베리어를 해제한 김신은 어느새 꼬챙이에 꿰인 바비큐의 모양새가 되어 활활 타고 있는 괴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아야 너도 지원해!”

“응!”

공격이 어느정도 수그러들자, 송인아는 곧바로 양팔을 내밀며 지원사격을 했다.

슈슈슉!

염동력을 단순히 뭉쳐서 날리거나, 떨어져 있는 나무의 파편을 날카롭게 벼려서 쏘아내거나.

푹푹! 쾅!

쉴새 없이 날아가는 세 사람의 공격.

나무라는 식물의 특성 때문인지, 지금쯤이면 세 번쯤은 죽었을 피해를 입고서도 간간이 반격까지 하는 괴수.

서걱!

날아오는 기습공격은 강한우의 방패가 예리한 빛을 발하며 모조리 베거나 막아버렸다.

그렇게 10분.

타닥타닥.

커다란 나무가 거의 다 숯으로 변할 즈음에야 전투를 끝낼 수 있었다.

***

식물 특유의 엄청난 생명력.

끝을 모르고 발광하는 보스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알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포탈의 생성 때문이었다.

지잉-

불타고 있는 보스의 뒤로 생성된 포탈.

김신은 보스가 완전히 토벌됐다는 것을 깨닫고, 보스가 있던 자리를 살펴봤다.

어느새 먼지가 되어 사라진 보스와 보스가 있던 자리에 놓여있는 세 가지의 물건.

“아티펙트가 세 개나 나온 겁니까?”

가까이에 있던 천명화가 다가오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응. 많이 나왔네.”

던전에 들어온 인원수에 비례해서 아티펙트가 나오는 것을 생각해보면 세 개라는 숫자는 확실히 많다.

떨어진 아티펙트 위에 쌓여있는 먼지를 치우자, 확연히 드러나는 아티펙트의 외형.

“···어 이건.”

아티펙트의 모습을 보자마자 천명화가 바로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김신을 바라봤고, 김신도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아티펙트를 집어 들었다.

“석판이 여기에서 나올 줄이야.”

존재감을 자랑하는 주먹만 한 보석 하나와 석판, 그리고 나무가 세밀하게 조각된 목걸이까지.

석판은 시간을 두고 감정하고 싶었기에 김신은 가장 먼저 주먹만 한 보석을 집어 들었다.

“흐음...”

영롱한 보랏빛을 내뿜는 보석 하나.

거기서 느껴지는 느낌은 왠지 낯설지 않았다.

[사용자의 염(念)을 엿봅니다.]

감정을 시작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장면.

그것은 공간을 비틀며 나타나는 공의 존재였다.

3.

인간이 아니기에 인간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고, 조종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

자신의 힘이 불러올 재앙을 알지 못하는 그 존재가 날뛰는 것을 막기 위해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수많은 희생을 통해 그 존재의 신성을 흩어놓았다.

공허를 바라보는 눈과 공간을 잇는 손 마지막으로 불안정한 공의 영역에서 버틸 수 있는 육체까지.

신을 죽인 자들의 손에 의해 총 여섯 가지로 나누어졌지만, 여전히 그 존재의 파편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공간을 오가는 공의 존재가 흩어지는 순간에 휘말려 사라진 가장 강대한 힘을 가진 파편인 눈과 손.

공의 존재를 쓰러트린 자들은 변이되는 몸을 바라보며 공허로 빨려 들어간 파편을 찾기보다 오히려 그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악용의 여지는 막을 수 있다.’

모든 파편이 모이면 힘을 오롯이 되찾을 수 있는 위험까지도 막는다.

그리고 남아있는 파편으로 선택된 몇 명의 사람들의 변이를 막는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것은 현실에 대한 안주이자, 재앙에 대한 외면이었다.

그리고 공의 존재는 그러한 선택을 하는 신살자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공의 영역을 다스릴 자신의 부재가 얼마나 뼈아픈 결과를 낳을지.

결과는 재앙의 시작.

파멸을 위한 악화일로(惡化一路)였다.

***

게이트의 원흉이 되는 공의 존재.

그 존재의 기억이 담긴 또 다른 파편을 손에 넣은 김신은 재앙을 끝낸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다.

‘결국, 모든 파편을 모아 공의 존재를 되살리는 건가?’

생명체를 변이시키는 기운을 쏟아내는 게이트.

그리고 그 게이트에 먹혀버린 채로 종말이라는 결과를 맞이한 다른 세상들.

석판은 탑을 오르라 말하고 있었지만, 게이트를 만든 존재는 자신의 존재가 재앙을 막는 길이라고 알리고 있었다.

‘아직은 석판에 깃든 모든 기억을 확인한 것은 아니니까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말자.’

석판에 적힌 정보는 다른 방향을 말할 수도 있으니, 지금 당장 내릴 선택은 보류.

김신은 팀원들에게 보석의 존재를 알려주고 잠시 보관하겠다고 말했다.

“이 아티펙트는 내가 보관할 게.”

꽤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인지, 강한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위험한 아티펙트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요. 어차피 지금 당장은 사용할 일이 없으니까요.”

공허를 꿰뚫어보는 눈.

공간을 뛰어넘어 원하는 곳을 볼 수 있게 한다는 용도의 아티펙트이지만 지금 당장은 사용할 일도 없고, 사용하기도 싫다.

그야,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차원의 파편 같은 경우에는 구원회의 집행관이 사용하는 것을 봤었기에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사용했던 것이고.

품속에 보석을 갈무리한 김신은 나머지 두 개의 아티펙트를 감정하기에 앞서 다시 길드로 복귀하기로 했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자.”

“예? 12층 안 올라가십니까?”

“할 일이 있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바라보며 묻는 천명화의 모습에 김신은 석판을 보여주며 답했다.

“일단 이거 감정하는 게 우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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