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1.
뒤와 옆에는 대피하는 사람들 그리고 정면에는 그런 사람들을 뒤쫓는 드레이크 세 마리.
지원 온 헌터들이 각자의 스킬을 쏟아붓고 있지만, 드레이크의 특성상 그렇게 큰 피해를 주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드래곤의 아종(亞種)답게 막강한 외피를 두르고 있는 드레이크.
속성에 대한 공격을 대부분 무효화시켜 버리는 드레이크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줄 방법은 강력한 물리 공격뿐이다.
“모두 뒤로 물러서서 디펜더를 중심으로 방어진형을 짜고, 시민들의 대피를 도와주세요!”
나름 발언력이 센 S급 헌터라 그런지, 주변에 있던 헌터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디펜더를 중심으로 모였다.
“김신 헌터님이 오셨으니, 모두 버텨봅시다!”
누군가의 믿음을 받는 위치라는 것을 자각하게 만드는 헌터들의 목소리에 낮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여기서 괜히 분위기 깨는 대사보다는 행동으로 증명하는 게 낫겠지.
-키에에엑!
불행 중 다행으로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다른 한 마리의 드레이크.
지금 옆구리에 검을 박아준 녀석을 포함한 두 녀석의 시선을 끌었으니, 헌터들은 나머지 한 마리를 상대로 주변의 시민들을 보호하면 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김신은 대피하는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눈앞에서 괴성을 질러대는 드레이크 두 마리를 노려봤다.
날개 달린 도마뱀과 비슷한 드래곤과 다르게 날개가 없고, 앞발이 퇴화한 공룡과 비슷한 생김새의 드레이크.
쿵쿵!
거대한 동체를 끌고 이빨을 딱딱거리며 달려오는 녀석을 바라보며 김신은 검에 내공을 더욱 가득 담았다.
우웅-
아까 내지른 검에 맞아 옆구리에 피를 흘리는 녀석이 코앞까지 다가와 입을 쩍 벌린다.
기본적으로 육체에 흐르는 마나 때문에 쉽사리 상대하기 힘든 게 드레이크다.
“...”
김신은 잡아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달려드는 녀석의 입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닿기 직전에 바람처럼 사라졌다.
콰앙!
가속, 버프, 내공의 운용.
세 가지의 조화는 김신을 눈으로도 쫓기 힘들 정도의 속도를 내게 했다.
“김, 김신 헌터가!”
움직이지 않다가 그대로 공격에 당한 줄 안 다른 헌터들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지만, 그들은 이내 공격한 드레이크의 목덜미에 올라가 있는 김신의 모습을 보고는 환호했다.
웅혼한 내공을 담은 천마신검.
휘익!
김신은 드레이크의 목덜미에서 곧바로 검을 내리그었다.
서걱!
-키이이이...
완전한 형태의 검강에 마치 두부 썰리듯 드레이크의 목덜미가 잘려나갔다.
쿠웅!
맥없이 쓰러지는 한 마리의 모습의 뒤에서 달려오던 녀석이 멈춰 서서 이쪽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지잉-
녀석의 입 주변으로 모여드는 엄청난 양의 마나.
공기가 떨리듯 울리는 그 모습에 김신은 본능적으로 공격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브레스!’
드래곤의 아종이라는 말에 걸맞듯 가지고 있는 유일한 기술이자, 가장 위험한 기술.
마나를 뭉쳐서 쏘아낸다는 단순한 공격이지만, 그 파괴력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
유일한 파훼법은 쏘기 전에 방해하는 것.
쐐액!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휘둘러진 김신의 검에서 뿜어져 나간 한 줄기의 섬광이 입안 가득 마나를 모았던 드레이크의 턱주가리에 명중했다.
콰앙!
정확히 드레이크의 목 바로 아래를 강타한 김신의 검강.
-키이익!
그 충격에 드레이크의 입은 강제로 닫혔고, 쏘아지려던 브레스는 무위로 돌아갔다.
-키에에엑!
마나의 역류란 괴수에게도 치명적인지,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머리를 흔드는 녀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접근할 타이밍은 지금이 적기.
탓!
빠른 속도로 쏘아지듯 달려나간 김신은 건물의 외벽을 박차고 뛰어올라 자신을 찾고 있는 드레이크의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탓. 쿠웅!
부드럽게 착지함과 동시에 목덜미에서 피를 쏟아내며 쓰러지는 또 다른 한 마리의 드레이크.
김신은 곧바로 몸을 돌려 헌터들이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마지막 드레이크를 향해 뛰어갔다.
***
헌터에게 출동과 토벌은 일상이다.
[A급 게이트 경보 발령! 현재 방송이 들리는 지역에 계시는 분들은 가까운 대피소나 건물 내부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현재 방송이···]
게이트가 열렸다는 방송에 곧바로 달려나간 수호길드의 3팀장 한설.
강남 외곽지역에 떨어지는 거대한 괴수의 모습에 곧바로 달려나간 그녀는 먼저 와있던 한 남자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묵빛의 마나를 두르고 있는 검을 휘두르며 곧장 괴수의 사이로 들어가는 김신의 모습.
“모두 뒤로 물러서서 디펜더를 중심으로 방어진형을 짜고, 시민들의 대피를 도와주세요!”
협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가 저런 말을 했다면 필시 저 상황에 껴드는 것은 도움이 아닌 민폐가 될 것이 분명할 터.
탓!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간 한설은 전투의 현장을 우회에 김신이 막고 있는 두 마리의 드레이크가 있는 곳이 아닌, 시민을 돕는 헌터들의 곁으로 달려갔다.
“...한설?”
갑작스레 등장한 그녀의 모습에 잠시 주변의 헌터들이 웅성거렸지만, 이내 그들도 자신의 등장이 아닌 현장의 상황이 더욱 급하단 것을 깨닫고 다시 수비에 집중했다.
“대지의 가호!”
“수호자의 의지!”
“소울 가드!”
쿠드드득! 우웅!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거대한 흙의 방벽.
그 뒤를 받치는 거대해진 마나 방패를 든 헌터.
괴수의 앞을 가로막은 흙의 방벽을 감싸는 마나의 막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괴수를 가로막았고, 한설 또한 그들을 돕기 위해서 스킬을 사용했다.
“아이스 월.”
콰자자자작!
새하얗게 물들이며 흙의 방벽 앞에 세워지는 또 하나의 방벽.
닿는 모든 것들을 얼려버릴 것 같은 방벽의 등장과 동시에 괴수의 육탄공격이 시작됐다.
쿠웅!
“큭!”
엄청난 충격.
단순히 머리로 들이박은 것이 분명하건만 전달되는 충격과 땅의 흔들림은 한설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이대로는 얼마 버티지 못한다.
지금 주변을 살펴봐도 B급 이상의 헌터는 흙의 방벽을 쓴 헌터를 포함해 단 일곱 명.
일곱 명 중 네 명은 근위포지션 이었기에 사실상 지금 버틸 수 있는 건 세 명이라고 봐야 했다.
쿵! 쿵!
연속해서 방벽에 몸을 부딪쳐오는 괴수.
전달되는 충격에 이를 악물고 버텨내는 헌터들의 모습에 한설은 대피를 돕고 있는 헌터들을 향해 외쳤다.
“얼마 못 버텨요! 빨리 대피시켜요!”
“예, 예!”
꽤 높은 등급의 아티펙트의 힘을 받아도 간신히 버티는 것이 한계일 정도의 강한 괴수다.
“크윽!”
결국, 부서진 얼음 방벽과 빠르게 무너져내리는 흙의 방벽.
쿵! 쿵!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한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대피가 아닌 김신의 얼굴이었다.
언제나 위기의 상황을 극복하게 해주는 그의 존재.
한설은 그가 이 방벽 너머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는 이를 악물며 외쳤다.
“조금만 더 버텨요! 곧 김신 헌터가 올 거니까!”
위태롭게 금가는 방벽을 향해 다시 마나를 쥐어 짜내는 한설.
쿵! 쿵!
“크윽!”
“으윽!”
결국, 억지로 쥐어짜 만들어낸 방벽마저 한계에 다다라 구석구석 틈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사이로 보이는 괴수의 눈.
방벽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한 드레이크가 최후의 일격을 날렸고.
콰앙!
결국, 방벽은 무너졌다.
“근위들은 모두 마지막까지 막아야 한다!”
검을 꼬나쥐고 달려나가는 네 명의 헌터들.
그들의 실력으로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전멸할 것을 직감했지만, 한설은 벽에 등을 기댄 상태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역시, 늦지 않아.”
쐐액! 콰앙! 콰앙!
방벽이 무너지기 무섭게 괴수의 옆구리에 날아가 꽂히는 묵색의 마나.
그 모습에 자리에서 멈춘 다른 전위들의 사이로 다가오는 한 남자의 모습.
“한설 씨?!”
“안녕하세요?”
인사를 받는 대신 눈앞의 남자는 다가와 오른쪽 다리를 보며 물었다.
“다리 괜찮아요?”
다리?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떨어진 파편에 긁혔는지 살짝 붉게 물든 오른쪽 허벅지가 보였다.
인지해서 그런지 아까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던 쓰라림이 느껴진다.
“아으...”
나지막한 침음을 내뱉음과 동시에 쓰러졌던 괴수가 일어나 이쪽을 향해 포효했다.
-키에에에엑!
그 모습을 잠시 확인한 남자.
김신이 다가와 말했다.
“이 상태로는 어디 못가겠네요. 불편해도 잠깐만 참아요.”
“네, 네?! 꺄앗!”
자연스럽게 김신의 품속에 안긴 한설.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입을 틀어막는 것으로 간신히 삼켰다.
탓!
김신이 자리를 박차자 느껴지는 엄청난 부유감.
고개를 돌려 슬쩍 아래를 바라보니, 어느새 꽤 떨어진 장소에 도착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잠시만 시민들의 대피를 도와주세요.”
“네. 저기, 김신 씨-”
말과 함께 몸을 돌려 엄청난 속도로 달려나가는 김신의 모습.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
한설은 아쉬움을 애써 삼키며 그가 부탁한 시민들의 대피를 돕기 시작했다.
2.
두 마리를 잡고 마지막 녀석을 잡으러 가던 도중 보였던 얼음 방벽.
익숙한 마나의 느낌에 조금 더 서둘렀는데 예상대로 그 마나의 주인이 한설이었을 줄이야.
다리에 부상을 입은 그녀를 안전한 곳에 내려놓고 다시 돌아가니, 어느새 헌터들의 앞에 거의 다 도착한 드레이크의 모습이 보였다.
“사용 가능한 최대한의 공격 스킬을 아랫배 쪽에 날려요!”
다른 헌터들에게 드레이크의 약점을 말해줌과 동시에 드레이크의 입을 향해 검강을 날렸다.
쐐액! 콰앙!
머리를 크게 뒤로 젖혀지자 드러난 드레이크의 약점.
“소드 스파이럴!”
“강철의 일격!”
“스피어 차지!”
“헤비 스매쉬!”
각자의 마나를 가득 담은 채, 비어있는 드레이크의 배에 날아가는 검과 창의 공격.
푹푹푹!
유일하게 얇은 외피인 뱃가죽에 적중한 공격에 피를 흘리며 고통 섞인 울음소리를 내뱉는 드레이크.
-키이이이익!
어느새 자신의 배를 공격한 헌터들을 보기 위해 고개를 아래로 숙인 녀석.
김신은 그렇게 생긴 시야의 사각을 통해 뒤로 돌아갔다.
탓!
가볍게 땅을 박차자 어느새 보이는 드레이크의 목덜미.
솔직히 말해서 약점인 뱃가죽을 공격하는 것이 맞지만, 방패를 뚫는 창이 있는데 쓰지 않으면 그게 더 바보다.
우웅!
주변을 삼킬 듯한 진한 묵색의 내공을 내뿜는 김신의 검.
-키이익!
갑작스레 느껴진 마나의 흐름에 놀란 드레이크가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휘익!
짧고 간결한 검격.
검강이 가득 맺힌 검격이 드레이크의 목을 훑고 지나가자, 단단한 외피의 위로 붉은 실선이 생겼다.
탓!
땅에 착지함과 동시에 분리되는 드레이크의 머리.
쿠웅!
김신은 가볍게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내고 한설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