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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으로 먼치킨-100화 (100/116)

《100화》

1.

시간을 잠시 돌려 처음 꽃을 찾기 위해 흩어졌을 때.

송인아는 꽃을 찾아 헤매던 중 눈앞에 보였던 산의 중턱까지 올라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파른 경사와 함께 눈앞을 가득 채운 눈의 향연.

도저히 수색할 수 없는 환경에 뒤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눈길에 잠시 잠잠해진 눈보라 사이로 산의 절벽 바로 앞에 새빨간 꽃의 모습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선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있는 꽃의 모습.

송인아는 찾았다는 기쁨과 더 올라가야 한다는 막막함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결국 올라가기로 했다.

시간은 아직 충분하고, 염동력이 있기에 최악의 상황이 펼쳐진다고 해도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형태가 없기에 세세한 조종이 힘든 것이 염동력이었지만, 이미 한 차례의 특훈으로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에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우우우웅!

염동력을 거대한 판으로 만들어 눈더미 사이에 박아 넣어 일직선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든다.

푹푹푹푹!

세세한 마나 컨트롤에 머리에서 쥐가 날 것 같았지만, 이 정도도 못하면 어림도 없지.

눈 덕분에 확실한 존재감을 내뿜는 염동력의 발판을 밟으며 결국 꽃이 있는 장소에 도달한 송인아.

붉은 꽃을 눈앞에 둔 상태로 잠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기 위해 옷 소매를 가져다 댔다.

“휘유~힘들었다.”

가볍게 땀을 훔치고 나서 꽃을 꺾은 송인아.

그녀는 꽃을 꺾는 순간 손을 타고 느껴지는 강렬한 온도에 깜짝 놀랐다.

뜨겁다.

실수로 놓칠 뻔할 만큼.

어쨌든 꽉 붙잡고 있었기에 꽃을 놓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앗!”

발을 디딘 순간에서야 땅이 진창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이 뜬다.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이미 산의 절벽을 통해 송인아는 떨어지고 있었다.

“꺄아아악!”

어둠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공간.

산의 골짜기를 향해 떨어지던 송인아는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염동력을 이용해 자세를 바로잡아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사박.

사뿐히 바닥에 내려온 송인아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방이 눈으로 덮인 거대한 골짜기.

가뜩이나 칙칙한 날씨에 입구가 좁아 빛까지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풍경은 마치 이곳이 전혀 다른 공간인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었다.

“으...”

그 살풍경한 모습에 나가기로 마음먹은 송인아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나가기 편한 공간을 찾아다녔고, 곧 빛이 들어오는 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입구다!”

곡선으로 꺾인 공간의 틈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빛 한줄기.

그곳을 향해 달려가던 송인아는 틈 사이로 돌아나가려는 순간, 바로 옆에 웅크린 상태로 누워있는 무언가와 눈이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크르릉...

세로로 찢어진 동공과 길게 자란 수염 그리고 솟아있는 두 개의 귀.

백색의 거대한 몸에 나 있는 푸른빛의 줄무늬.

“거주구역에 괴수는 없다고 했었는데...”

송인아가 마주한 것은 거대한 백호였다.

***

답설무흔(踏雪無痕).

눈을 밟고 걸어도 흔적이 남지 않는 경공술.

솔직히 말해 격공섭물의 응용으로 내공으로 발을 디디는 부분의 눈을 고정시켜 움직이는 방법이다.

“디텍트.”

사물 너머에 있는 생명체를 보여주는 마법.

김신은 푸르게 빛나는 눈동자로 주변을 훑어보며 송인아가 갔던 방향을 빠르게 수색하기 시작했다.

휙휙!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움직이는 속도 때문에 순식간에 지나가고.

송인아의 흔적을 쫓아 한참을 달린 끝에 도착한 거대한 산의 입구.

“여긴가.”

특성을 사용했었는지 산 중턱의 절벽까지 이어져 있는 염동력의 흔적이 보였다.

팟!

가볍게 자리를 박차 주변의 지형지물을 밟으며 뛰어 올라간 김신은 줄기만 남은 꽃의 흔적을 찾았다.

꽃을 따고 시간이 좀 흘렀는지, 진창으로 변했었던 땅이 다시 단단하게 얼어 붙어있었다.

내려간 흔적이 없다.

이 말은 여기서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뜻.

주변을 살펴보던 김신은 절벽의 끝에 남아있는 흔적을 확인한 순간 절벽의 밑으로 몸을 날렸다.

떨어지는 도중 빠르게 수인을 맺어 사용한 5서클 부유마법 레비테이션.

마법의 사용과 동시에 추락하던 김신의 몸이 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깃털처럼 천천히 낙하했다.

뽀득.

송인아가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되는 골짜기.

가뜩이나 희미한 빛마저 닿지 않아 어두운 이 공간에서 주변을 둘러보던 김신의 눈에 송인아가 남긴 발자국이 들어왔다.

“일단 안전하게 착지하긴 했나 보네.”

주변에 피나 여타 다른 상처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에 안도를 느끼며 김신은 기감을 넓힌 채 골짜기 안으로 걸어갔다.

꽤 깊다.

좌우가 가로막힌 지형에 추가로 그 위에 덮인 눈까지.

김신이 떨어진 방향에는 원래 물이 흘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폭포가 차가운 날씨 탓에 얼어붙어 있었고, 그렇기에 갈 수 있는 곳은 오직 한 방향밖에 없었다.

“경사가 진 거로 봐서는 따라가다 보면 끝이 나올 것 같긴 한데.”

어쨌든 기감과 디텍트로 보이는 생명체는 아직 없다.

그렇게 10분.

골짜기의 끝이 보일 즈음, 김신은 그 끝에 거대한 생명체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을 디텍트로 볼 수 있었다.

“뭐야?”

괴수는 없다.

그건 확실하다.

예지라는 능력을 가진 엘하임이 보증한 것처럼 10층에는 꽃이 있었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저 끝에서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생명체는 과연 무엇일까.

김신은 기감을 끌어올린 채로 그곳에 걸어갔고, 이내 거대한 생명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백호?”

-크릉!

기분 좋은 수면을 방해받았다는 듯이 가볍게 으르렁거리는 백호.

그리고 그 백호의 품 사이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송인아와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된 거야?”

“...그, 그게...딱딱 절벽에서...딱!”

저러다 이빨 다 나가겠네.

상당히 추웠는지 한마디 할 때마다 이빨을 딱딱거리는 송인아에게 풀렸던 마법을 다시 걸어주었다.

‘템퍼러쳐.’

김신의 손끝을 타고 뿜어진 빛줄기가 몸을 감싸자 이제야 살겠다는 듯이 코를 삼키는 송인아.

“그게, 요기 얘가 날 살려줬어.”

“허...”

송인아의 사연은 스펙타클했다.

2.

“그러니까 절벽에서 떨어진 후에 한참을 헤매다가 운 좋게 출구를 발견했는데, 저 백호가 있었고, 저 백호가 이능이 풀려서 몸을 떨고 있는 너를 품어줬다고?”

“응. 그리고 얘 털 되게 보송보송해.”

해맑다.

너무 해맑아서 화가 날 정도야.

“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얼마나 걱정 한지 알아?!”

-크릉!

송인아에게 큰소리를 내자, 앞발을 턱, 하고 내밀며 가볍게 날카로운 송곳니를 자랑하는 백호.

김신은 그 모습을 본 순간, 직감했다.

‘이 녀석도 똘똘이 같은 놈이네.’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영물이 된 괴수.

‘엘하임은 이성을 가진 영물이 사람을 해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괴수가 없다고 석판에 적어놓은 건가?’

말이 통하니 다행이긴 하지만 이러면 놀란 사람들이 저 백호를 선제공격해서 전투가 벌어지고, 그 때문에 다칠 수도 있다.

‘일단 테이밍을 해봐야겠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생각을 정리한 김신에게 백호를 진정시킨 송인아가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미안해.”

“뭐, 멀쩡하면 됐지. 네가 일부로 여기에 떨어진 것도 아닐 테고.”

-크릉.

훈훈하게 끝나는 분위기에 다시 고개를 숙여 송인아를 품는 백호의 모습에 김신은 기가 찼다.

“쟤가 너 엄청 좋아하는가 본데?”

“응, 그리고 얘 되게 똑똑해!”

차원의 파편이 없었다면 테이밍을 해도 못 데리고 갔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이 백호.”

-...

불러도 고개를 돌려보지도 않는 녀석.

“흰둥아.”

-크릉...

그에 반해 송인아가 턱을 긁으며 쓰다듬어주니,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낸다.

“엄청난 차별이네.”

“아냐. 흰둥아 저기 저 사람이 너랑 이야기 하고 싶데.”

-크릉.

너와는 대화할 것이 없다는 느낌의 단호한 울음소리에 송인아는 다시 턱을 긁으며 말했고, 그제야 백호 아니, 흰둥이가 고개를 돌렸다.

-크릉.

용건만 간단히.

말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모든 걸 표현하는 모습에 가볍게 혀를 차며, 김신은 용건을 말했다.

“너, 네 품에 안겨있는 그 여자랑 같이 살고 싶어?”

-크릉.

말이 통할 리 없지만, 알아들은 것 같다.

“그럼 잠깐 실례.”

흰둥이에게 다가가 콧잔등에 손을 얹음과 동시에 조용히 읊조렸다.

“테이밍.”

시야가 일그러지며 녀석의 심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포탈을 넘어설 때처럼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졌고, 그 현기증이 전부 가라앉을 즈음, 눈을 뜨자 들어오는 삭막한 풍경.

“여긴 더 하네.”

10층의 풍경과도 같다.

아무것도 없는 그저 흰색의 배경.

흩날리는 눈보라도 바람도 없는 완벽한 적막 속에 몸을 웅크린 녀석이 눈을 뜨며 김신에게 말을 걸었다.

-용건이 뭐냐.

***

흰둥이에 코에 손을 얹고 눈을 감고 있는 김신과 그런 김신과 똑같이 눈을 감은 채로 가만히 멈춰선 흰둥이.

송인아는 절벽의 끝에서 만난 흰둥이의 무감정한 눈빛을 처음 봤을 땐 정말로 무서웠었다.

-...

슬쩍 눈을 떠 바라보고는 다시 일 없다는 듯이 눈을 감아버리는 흰둥이.

그 모습이 왠지 주인을 잃어버려 삶에 의욕을 잃어버린 반려동물 같아서 무심코 손을 내밀고 말았었고, 녀석은 마치 익숙하지 않지만 그리웠었다는 듯이 낮은 목소리로 울었었다.

‘그런 녀석을 어떻게 두고 갈 수 있었겠어.’

마침 오빠가 걸어준 이능이 끝나기도 했고.

결국, 그러한 상황이 겹쳐 흰둥이의 품에서 시간을 보냈고, 지금의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흰둥이가 오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똘똘이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흰둥이.

송인아가 눈을 감고 있는 둘을 번갈아 바라보던 도중, 둘의 눈이 동시에 떠졌다.

“...”

-...

눈을 뜨고 나서 말이 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둘.

송인아는 그런 둘을 번갈아 보다가 김신을 향해 말했다.

“그 테이밍이라는 거 잘 된 거야?”

“응...”

“응...? 왜 말꼬리를 길게 끄는 거야?”

뭔가 미묘하게 어색하다.

그런 느낌이 드는 건 비단 김신뿐만이 아닌 흰둥이에게도 느껴졌다.

그렇게 말없이 김신을 바라보고 있기를 잠시.

눈을 마주치고 있던 김신이 대충 정리가 끝났다는 듯이 눈을 마주치며 답했다.

“그게, 일단 테이밍은 성공했는데. 이게 참 미묘해서.”

“뭔데?”

“얘가 죽어도 너랑 계약하겠다고, 다시 테이밍 하라는데?”

“응?”

분명 위험하다고 했고,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했었는데?

“그거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었어?”

“위험한데, 테이밍 대상이 거부만 안 하면 되거든. 그리고 나도 얘 덕분에 알아낸 게 있어.”

“뭔데?”

“테이밍을 타인에게 하게 하는 방법.”

그렇게 말한 김신이 대뜸 손을 붙잡았다.

“뭐, 뭐야! 왜 그래?! 갑자기!”

좋지만 당황스럽다.

그런 감정을 느끼길 잠시.

김신이 자신의 손을 이끌어 흰둥이의 콧잔등 위에 올렸고.

“테이밍.”

그가 이능을 사용함과 동시에 송인아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으...”

자연스럽게 감았던 눈을 뜨자, 10층의 풍경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고, 옆에서 김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저 녀석의 심상이야.”

“심상? 마음속?”

“응.”

삭막한 풍경 속에서도 바깥과 똑같이 몸을 웅크리고 있는 흰둥이.

녀석에게 다가간 송인아는 손을 내밀었다.

-그리웠다.

“...?”

-내 모습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내게 손을 먼저 내밀어준 두 번째 인간. 너는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녀와 비슷하다. 그러니.

흰둥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송인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나의 주인이 되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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