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99화 (99/116)

《99화》

1.

김신과의 면담이 끝나고 그가 돌아간 후, 한유성은 길드장실의 소파에 앉아 잠시 계룡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무거운 짐을 지워준 것이 아닐는지.’

한유성이 김신에게 했던 부탁은 선발대가 되어달라는 이야기였다.

먼저 가서 정보를 알아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그에 반해 그가 말한 게이트는 탑의 5층을 등반했을 때 열린 게이트처럼 강력한 괴수가 나오는 게이트일 확률이 높다.

괴수의 등급이 높아도 미리 대비한 채로 싸울 수 있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시가지에서 나온다고 하면 건물들을 엄폐물로 삼은 채 토벌하면 될 것이고, 교외의 한적한 자연에서 나온다고 하면 화력을 집중하면 된다.

이렇듯 괴수를 상대하는 것은 이미 이골이 날 정도였기에 괜찮지만, 완전 미지의 공간인 탑을 등반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환경이라는 거대한 벽은 상상 이상으로 위험한 것이기에 괜한 부탁을 했나 하고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반대로 그만큼이나 빠르고 안전하게 등반을 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를 믿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그를 돕는 게 최선이겠지.”

여론을 만들고, 헌터들을 규합하고, 정보를 전파한다.

한유성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

김신이 한유성에게 석판에 적힌 정보를 전달해주고 난 후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한유성은 연합과 다른 길드의 길드장들을 만나 정보를 말해주며 이익을 위한 등반이 아닌 재앙을 막기 위해 협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들을 설득했다.

S급 헌터의 명성과 불사길드를 넘어 길드랭킹 1위로 올라선 수호길드의 명성을 이용한 기나긴 설득.

“정보를 대가로 부탁하는 겁니다.”

결국, 한유성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해봅시다. 단, 정보의 유출에 따른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재앙에 관한 정보는 숨기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결성된 각국의 헌터들과 연합.

구원회와의 결전 이후 9층에 있던 헌터들은 연합 및 각 길드장의 지시에 모두 등반을 잠시 멈췄다.

-10층으로 진입함과 동시에 지구에 게이트가 열리니, 모두 복귀해서 벌어질 전투에 대비하길 바람.

믿기 힘들 만큼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연합과 길드장의 이야기에 헌터들은 모두 복귀했다.

-탑의 정보를 얻는 대가로 협력한다.

각 길드의 길드장들의 명령에 길드원들은 생각했다.

10층으로 진입함과 동시에 게이트가 열리고, 그렇게 열리는 게이트에 대비하기 위해서 길드원을 모으는 것이라면.

과연 누가 10층에 발을 디디는 걸까?

길드레이드는 길드의 이익이 달린 문제이기에 평소 탑 등반에 목숨을 걸었다고 말할법한 길드들도 매한가지다.

쉽게 양보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누가 어떤 방법으로 단독으로 10층을 돌파한다는 이야기를 했을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수도 있는 상황을 막을 수 있게 된 정보였기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게이트를 막는다는 것으로 합의했다.

그렇게 지구에서 게이트가 열리는 것을 막는 준비가 끝날 즈음.

“이제 출발해보자고.”

김신은 5팀을 이끌고 9층의 포탈 앞에 도착했다.

2.

“10층은 5층과 같은 거주구역이야.”

“거주구역이요? 괴수가 없다는 이야깁니까?”

천명화의 질문에 김신은 그를 바라보며 답했다.

“응.”

“정보를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재앙에 관한 이야기를 이미 5층에서 했었지만, 석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었다.

이제는 정보를 숨길 필요가 없게 된 이상, 김신은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정보를 알려주기로 했다.

“일전에 탑을 오르지 않으면 큰일이 닥친다고 했었지?”

“예, 그러셨었죠.”

“그 정보를 얻은 것도 탑의 비밀이 담긴 석판이라는 아티펙트를 통해서 알아낸 것이었어.”

“탑의 비밀이요?”

눈빛을 빛내며 다가오는 팀원들.

김신은 세 사람을 한차례 둘러본 후에 설명을 시작했다.

“석판에 적힌 내용은 탑을 오르지 않으면 재앙이 닥친다는 내용이었어. 그리고 그 재앙을 막을 방법인 탑에 관한 정보가 석판에 함께 적혀있었지.”

“재앙...?”

옆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듣던 송인아가 재앙이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그 재앙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등반하는 거야.”

천명화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저희는 그 석판이란 것도 찾아야 하는 겁니까?”

“아니. 가다가 찾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탑의 층마다 크기가 워낙에 넓잖아?”

“예.”

“그러니 우리는 앞서서 공략법을 찾고, 정보를 전달해주면 뒤따라오는 헌터들이 정보를 바탕으로 토벌하면서 석판을 찾아 줄 거야.”

협력, 혹은 거래.

재앙이라는 정보는 길드장급에서 혼란을 막기 위해 막아놨으니, 아마 거래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 더 맞겠지.

그렇게 생각한 김신은 천명화를 보며 부연설명을 해줬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이 탑을 등반하면 돼.”

설명을 끝마친 김신은 먼저 포탈로 발을 내디뎠다.

지잉-

약간의 울렁거림과 옅은 현기증이 몸을 훑고 지나간 후, 눈에 들어온 것은 새로운 풍경이었다.

휘이잉!

사방을 물들인 하얀색.

살이 앨 것 같은 칼바람.

“...엣취!”

뒤따라온 천명화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제채기를 하는 것이 들렸다.

‘템퍼러쳐(temperature)’

체온을 조절하는 마법을 즉각 팀원들에게 걸어주자, 가장 먼저 들어와 벌벌 떨던 천명화가 콧물 한줄기를 매단 상태로 바보같이 웃으며 말했다.

“헤헤. 팀장님 아니었으면 얼어 죽을 뻔했습니다.”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닭살이 돋았던 팔을 문지르는 천명화의 모습.

“이건 좀 신선하네.”

10층의 풍경은 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이었다.

***

솔직히 말해서 좀 많이 당황스럽다.

한겨울의 강원도 철원마냥 펑펑 쏟아지는 폭설 속에서 꽃을 찾으라니.

가시거리가 과장 살짝 보태서 옆에서 종알거리는 천명화의 입만 보이는데 찾을 수 있긴 할까 싶다.

“여기서 꽃을 찾으라는 이야기인 겁니까?”

“...그래.”

“허...”

앞이 캄캄한지 한숨을 내뱉는 천명화의 표정을 보니, 미션임파서블의 톰 크루즈가 상관에게 말도 안 되는 임무를 듣고 짓는 표정이다.

그런 표정 짓지마.

괜히 찔리잖아.

거기서 거기인 표정을 짓고 있는 팀원들에게서 고개를 돌린 뒤에 잠시 앞을 보며 고민했다.

거주지역은 말 그대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진 곳이어야 하는데 왜 이런 환경인가.

고민을 계속해서 해봤지만, 탑이 이런 걸 어떻게 하나.

결국, 해야 하는 것은 해야 한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새하얗게 물든 세상을 바라보는 팀원들에게 말했다.

“그래도 이능 덕분에 추위는 안 느껴지잖아?”

“뭐, 그나마 다행이긴 합니다. 이것마저 없었으면 솔직히 바로 귀환했을 거예요.”

온도유지 마법을 걸어준 덕분에 활동하긴 할만하다.

괴수가 없는 거주구역이니 눈이 오는 주변 환경에만 신경 쓰면 될 터.

만약에 만약을 생각한다면 모여 다니는 것이 좋지만, 시간이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흩어져서 찾다가 이곳에서 모이자.”

“예.”

그렇게 말한 김신은 흩어지려는 팀원들을 향해 한마디 덧붙였다.

“아마 5층의 물고기처럼 꽃도 독특할 거야.”

“알겠습니다.”

부디 찾길 비는 수밖에.

흩어지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김신도 눈보라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3.

눈, 눈, 눈.

천지사방이 온통 눈이다.

푹푹 빠지는 눈은...솔직히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 정도도 헤쳐나가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약한 사람은 5팀에서 없었으니까.

단지, 너무 안 보인다.

시야의 확보가 안 되니 효율이 너무 떨어졌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주변에 자라난 식물이 전부 겨울이라 말랐거나, 아직 피지 않았다는 것 정도?

“찾기는 편하네.”

꽃을 찾으라 했으니, 분명 눈에 띌 테고 눈에 띄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수색을 시작 한지 어느덧 한 시간.

주변을 살펴보던 김신은 멀지 않은 언덕을 수색하던 중 나무의 틈 사이로 자그마하게 핀 새빨간 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쌓여있는 눈 사이로 고고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는 새빨간 꽃.

신기하게도 그 꽃의 주변에는 눈이 하나도 없었다.

조심스럽게 꽃을 꺾자, 꽃에 담긴 기운이 손을 타고 느껴졌다.

뜨겁다. 실수로라도 꽃을 놓칠 정도로.

김신의 몸은 몸을 해치려는 꽃의 기운에 반발해서 즉각적으로 내공을 둘렀고, 김신은 묵빛으로 물든 손에 있는 꽃을 보며 고개를 비틀었다.

“극양기(極陽氣)?”

그리고 바로 그때.

꽃이 만들어낸 기사(奇事)의 이유를 깨달은 순간, 퍼진 극양의 기운이 주변을 녹이며 일순간에 진탕으로 만들었다.

철퍽!

“...!”

자연스럽게 디딘 발이 언덕이라는 지형적인 이유와 진창이라는 환경에 의해 미끄러지며 몸이 위로 붕 떴다.

우웅!

머리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육체.

순간적으로 내뿜어진 내공이 격공섭물의 묘리를 이용해 허공에 거대한 발판이 되어 넘어지던 김신의 몸을 부드럽게 받아냈다.

“...”

김신은 내공으로 만들어진 발판 위에서 사뿐히 내려와 어느새 극양의 기운이 다 날아간 꽃을 내려다보며 표정을 굳혔다.

“이거 자칫하면 위험하겠는데?”

***

아슬아슬했던 꽃 채집이 끝난 후.

김신은 또다시 눈길을 헤치고 원래 모이기로 했었던 10층의 입구로 돌아왔다.

차고 있는 시계를 보자, 약속한 때까지 대략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다.

원래 약속했던 시간은 3시간.

체온유지 마법인 템퍼러쳐가 끝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또다시 한 시간이 지났고, 눈발 사이로 화려한 존재감을 내뿜으며 다가오는 한 사람.

“야! 마나 아껴!”

용광로처럼 뻘건 불길로 몸을 휘감은 천명화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딱히 쓸 생각이 없었는데, 꽃을 꺾은 순간부터 특성이 활성화되더라고요.”

극양기의 반응인가.

꺾었던 꽃을 바닥에 내려놓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그라든 불길.

“옷은 멀쩡하네.”

“멀쩡하죠. 제가 스킬 쓸 때도 옷이나 아티펙트는 타지 않게 얼마나 컨트롤을 잘 하는지 아십니까?”

“돈이 아까워서 그런 거 아니냐? 아티펙트가 특성 쓰느라 타버리면 돈 버리는 거니까.”

“...”

대충 한번 찔러본 건데, 사실이었나보다.

그렇게 말이 없어진 천명화와 다시 약속장소에 서서 주변을 바라보기를 20분.

멀리서부터 천명화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걸어오는 또 다른 한 사람.

거대한 방패를 지고 다가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강한우였다.

“방패 아니었으면 큰일 났을 것 같습니다.”

“뭔 일 있었어요?”

“꽃을 꺾음과 동시에 퍼진 엄청난 열기에 땅이 진창으로 변하지 뭡니까.”

응? 겪은 상황이 너무나도 똑같은데?

“미끄러졌군요.”

“···그걸 어떻게?!”

“저도 그랬거든요.”

“어쨌든 그렇게 넘어짐과 동시에 등에 매단 방패가 썰매 역할을 해서 다치지 않았고, 안전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김신과 강한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천명화가 한마디 거들었다.

“저는 그냥 다 녹아버린 상태로 다녀서 그런지 괜찮던데요.”

“하긴, 네가 온 길은 수분기조차 날아가 버렸더라. 그건 조금 부럽네.”

그렇게 소소한 잡담을 하며 또다시 시간이 흘러 30분.

“시간 얼마나 남았지?”

“10분입니다.”

이제 마법의 적용 시간이 끝날 즈음이라 찾지 못했어도 왔어야 할 송인아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슬슬 와야 하는데...”

천천히 흐르는 시간.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 송인아의 모습과 함께 흐르던 시간이 어느새 3시간을 가리켰다.

“인아야. 지금 어디야.”

무전기를 사용해봐도 답이 없다.

아니, 애초에 이런 날씨에서 무전이 쉽게 된다는 게 이상하지.

“...팀장님.”

무전기를 사용하던 천명화가 약하게 목소리를 떨었다.

김신은 그 순간 송인아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모두 여기서 기다려. 내가 가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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