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96화 (96/116)

《96화》

1.

승급식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빌런조직 구원회의 수장을 잡아 서울의 시민과 공익을 보호한 김신 헌터에게 S급 헌터의 자격을 수여합니다.”

새로운 신성의 등장.

승급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김신에게 환호를 질렀다.

“먼저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꽃다발을 받아들고 단상 앞에 선 김신.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새삼스레 이 자리의 무게가 실감 됐다.

“S급 헌터가 될 수 있다는 건 대부분의 헌터들에겐 헌터로 꿈을 이뤘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토벌 중 부상을 입은 사람.

그리고 그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꿈을 포기한 사람.

김신이 경우는 후자였으나, 아티펙트의 기억을 읽을 수 있다는 이 능력으로 정말 운 좋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스타트 또한 늦고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던 시작.

그럼에도 김신을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준 것은 다름 아닌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과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S급 헌터 또한 헌터로서 도달할 수 있는 명예로운 등급일 뿐이지, 헌터로서의 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성장은 끝나지 않았다.

“탑을 등반하고 괴수를 토벌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나가겠습니다.”

고개를 숙이자, 다시 한번 환호와 박수 소리가 들렸다.

***

승급식이 끝나고 난 후.

김신은 보상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연합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호길드의 길드장실과 확연히 비교되는 실내풍경.

조금은 삭막하다고 느낄 정도로 비치된 가구의 수가 적었다.

서류가 가득 쌓인 책상과 벽면에 있는 책장과 중앙에 놓인 테이블 그리고 소파.

높은 직급의 사람이 개인이 사용하는 사무실을 받으면 으레 그렇듯 키울법한 식물이 없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왔군요.”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김신을 향해 말하는 연합장.

김신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그가 안내해준 자리로 가서 앉았다.

“우선 승급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사석에서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니 먼저 내 소개를 안 할 수 없겠군요. 반갑습니다. 김태진이라고 합니다.”

“김신입니다.”

가볍게 악수를 하고 나서 김태진은 다시 소파에 몸을 묻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수호길드장님과 이야기를 했었을 때도 느낀 거지만,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시더군요. 저도 매번 서류에 치이는 삶이라 어떻게 보면 그 체력이 참 부러워요.”

지금 보니 사무실이 삭막했던 이유가 단순히 성격적 문제가 아닌 일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화하는 지금 이시간을 놓칠 수 없다는 듯 휴식을 만끽하는 연합장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안쓰러웠다.

“헌터가 체력이 부족하면 안 되죠. 그리고 정보를 알고 있으니 움직이는 겁니다. 저희는 어찌 보면 시민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부분에서는 경찰과 비슷한 존재이니까요. 그래서 가능하면 손 닿는 곳까지는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답변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합장은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답했다.

“그런 마음가짐 덕분에 저희 막냇동생이 살 수 있었던 것이었군요.”

예전에 있었던 키클롭스 사건.

거기서 구한 김태종이 연합장의 막냇동생이었다고 했었지.

연합장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때도 태종이 그 녀석이 어찌나 김신 헌터를 입에 닳도록 칭찬하던지, 저는 솔직히 그때 태종이 녀석이 약점이라도 잡힌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원체 누군가를 칭찬하는 녀석이 아니었으니까요.”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계속해서 웃었다.

“뭐, 어쨌든 그때의 일도 있고 해서 언제고 한 번쯤은 만나 보고자 했는데 어떻게 S급 승급식이라는 큰일로 만나게 됐군요.”

일이 사람을 망쳤다.

연합장은 대화상대가 필요한 거다.

김신은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에 떨어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며 답했다.

“저도 기회가 와서 좋군요.”

다시 한번 크게 웃은 연합장은 기분 좋다는 느낌이 가득한 목소리로 본론을 꺼냈다.

“그렇다면 본론으로 돌아가서 김신 헌터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구원회를 소탕한 헌터이자 S급 헌터로 승급한 보상을 드리기 위해섭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혹시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게 있나요?”

구체적인 보상이라...

유석만에게 받았던 변화의 구슬을 9층을 여는 키로 사용해버렸기에 솔직히 아티펙트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긴 하다.

물론, 현경이라는 높은 경지에 도달했기에 기척을 흘리지 않으면 어지간한 사람은 눈치도 채지 못하겠지만 투명한 상태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이득인 것은 분명할 터.

“딱히 생각하는 건 없지만, 한 번 둘러볼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찾아보고 고르는 게 가장 베스트.

김신의 말에 연합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으로가 놓인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김신 헌터를 아티펙트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게.”

2.

전화가 끝나고 20분을 더 대화한 끝에야 간신히 대화를 끝낼 수 있었다.

“즐거웠습니다.”

“예, 저도 여러 가지 정보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 굳어있던 몸이 풀렸다.

“지친다...”

이야기하지 않고 거의 듣기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분이나 지났다.

“불과 며칠 전에 길드장님이 연합장님이랑 만났다고 했었는데.”

그럼 이 힘든 일을 길드장님도 하셨다는 건가?

새삼스럽게 존경심이 피어오른다.

그렇게 소소한 생각을 하며 연합장실에서 나오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아티펙트 관리자입니다.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옙.”

안내받아 간 장소는 천명화와 같이 갔던 전설아티펙트 보관장소가 아닌 그 외에 아티펙트가 보여 있는 장소.

예전에 갔었던 아티펙트 보관창고보다는 훨씬 깔끔한 형태의 보관장소였다.

“연합장님 말씀으로는 여기 있는 아티펙트 두 개를 고를 수 있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두 개요?”

“예.”

대화의 대가인가.

주는 것은 사양하는 스타일이 아니니 감사히 받아야지.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간 관리자를 뒤로한 채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다른 아티펙트 상점과는 다르게 고등급 아티펙트가 꽤 많이 있는 연합의 아티펙트 창고.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감정이 된 아티펙트는 해당 아티펙트의 효과와 성능이 적혀있었고, 감정되지 않았거나 감정할 수 없는 아티펙트는 따로 한 구석에 모여 있었다.

[사용자의 염(念)을 엿봅니다.]

아티펙트를 집어 익숙한 손길로 살펴봤다.

앞으로 올라가야 할 탑의 다른 층.

여러 가지 환경에 대처하기 좋은 아티펙트를 구하는 것이 목표인 만큼, 더욱 꼼꼼하게 살펴봤다.

‘내가 쓰기 애매하면 팀원들이 쓸만한 것이라도.’

팀원들의 특성까지 생각해서 아티펙트를 살펴보던 김신의 손에 잡힌 아티펙트 두 개.

신발과 반지 형태를 한 아티펙트의 모습에 김신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아티펙트를 선택한 김신은 밖으로 나와 아티펙트 취득절차를 마치고 길드로 향했다.

팀 대기실을 열고 들어가자, 불이 꺼진 대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늘 뭔 일 있나?”

적막한 팀 대기실의 분위기에 불을 켜기 위해 벽면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려는 순간 뒤에서 오싹한 느낌이 느껴졌다.

스윽-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달려드는 누군가를 확인한 김신은 맥빠진 목소리로 그사람의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인아?”

포옥!

뒤에서 깜짝 놀라게 하려던 송인아는 귀신처럼 알아챈 김신의 모습에 오히려 자신이 놀라 스텝이 꼬이며 김신의 품속으로 파고들었고, 김신은 그런 송인아를 품에 안은 채로 주저앉았다.

“괜찮아?”

“...”

품속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는 송인아의 모습에 다친 건가 싶어 얼굴을 들어봤더니 붉어진 얼굴로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송인아.

“괜찮아?”

“으...응...”

그런 그녀를 부축한 후에 일어선 김신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천명화와 강한우와 눈이 마주쳤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케이크를 들고 있는 강한우와 폭죽을 들고 있는 천명화.

두 사람은 김신의 물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축하해드리려고...”

“아, 승급?”

“예. 어제 해드리려다가 그냥 당일에 서프라이즈로 해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놈에 기감 때문에 일이 틀어졌지만, 어쨌든 고맙긴 했다.

“뭐해. 축하 안 해주고.”

3.

팀원들이 불러주는 어색한 노래와 조촐한 축하가 끝난 후, 선물을 받은 김신은 품속에서 가지고 온 아티펙트 두 개를 꺼내며 말했다.

“나도 줄 선물이 있어.”

“선물이요?”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는 천명화의 모습에 피식 웃은 김신은 신발 모양의 아티펙트를 천명화에게 주었다.

“이게 뭡니까?”

“S급 승급선물? 아니면 구원회 소탕 선물인가? 어쨌든 주려고 가져온 거니까 잘 써.”

생각해보니 그렇다.

두 개를 고르란 것이 보상할 것이 두 개이기 때문이었나?

김신이 잠깐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신발을 받아든 천명화는 김신을 향해 물었다.

“이거 그 보상으로 받은 건데 저한테 주셔도 괜찮은 겁니까?”

“내가 쓸 아티펙트를 찾아봤는데 솔직히 지금 쓰고 있는 것들이랑 비슷하거나 내 전투 스타일에 안 맞더라고. 그래서 그냥 주려고 가져온 거니까 편하게 써.”

직접 쓸만한 아티펙트가 없다면 팀원을 강하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앞으로 있을 등반에서 팀원들이 맡아야 할 부분이 커지는 만큼 더욱 성장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천명화에게 준 아티펙트는 유니크 등급에 범용성이 좋은 아티펙트였다.

허공에서 마나의 벽을 만들어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게 해주거나, 강한우에게 준 아티펙트처럼 짧은 거리를 폭발적인 스피드로 치고 나갈 수 있게 해준다거나.

설명을 들은 천명화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그때 말씀드렸던 걸 잊지 않으셨군요. 팀장님.”

“그걸 어떻게 잊냐.”

-팀장님, 비슷한 거로 꼭 구해주셔야 합니다?

강한우에게 부츠를 양보하며 눈을 마주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신발을 들고 웃고 있는 천명화를 뒤로한 채 김신은 송인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건 너 주려고 가져온 거야.”

가져온 아티펙트를 내밀자, 무심코 받아든 송인아가 화들짝 놀랐다.

“···반지?!”

“응.”

“왜, 왜 이거를...”

송인아의 동공이 흔들린다.

한창 웃고 떠들던 천명화와 강한우도 아까 서프라이즈를 하려고 했었을 때처럼 또다시 침묵한 채 이곳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왜 저러는 거야.’

미묘한 분위기에 김신은 다시 송인아를 바라보며 아티펙트를 설명했다.

“예전에 준 아티펙트가 마나를 충전해놓는 거라면 이건 마나의 충전을 빠르게 해주는 반지야.”

빠르게 흡수해서 강하게 쏜다.

아티펙트의 시너지를 이용한다면 더욱 수월한 전투를 할 수 있을 거다.

“아티펙트 였구나...”

“응?”

“아니야.”

기쁨과 실망의 느낌을 동시에 담고 있는 송인아를 뒤로한 채 김신은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조만간 다시 탑을 등반하려고 해. 그러니까 미리 준비하고 있어.”

석판이 도착하는 대로 단서를 찾고 등반을 해야 한다.

그 전에 해야 할 것은 현경에 올라 얻은 깨달음을 다시 한번 가다듬는 것.

김신은 수련을 위해 다시 태극 검술길드를 방문하기로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