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1.
강한 적을 상대로 팀원들이 보조를 맞추어 함께 공격하는 방법을 협공이라 한다.
협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공격이 성공하면 같이 협공하는 팀원에게 기회가 생겨서 좋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자신의 공격기회가 생겨서 좋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그것도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자신보다 약하다는 것을 명확히 안다면.
게다가 그 약한 한 명이 한 대씩 주고받는 타이밍에 절묘하게 끼어들어 일방적으로 맞게 만든다면.
분명, 협공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거슬리니까. 내가 한 대 더 손해를 보더라도 먼저 처리해야겠다.’라고.
다시 돌아가서 달려오는 회장을 보며 김신이 웃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예상대로야.’
김신은 협공할 때부터 이미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탓!
뛰어오는 회장의 모습은 여전히 흐릿하게 보이는 정도로 빠르지만,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이상 대처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메모라이즈. 어스 퀘이크.’
쿠구구궁!
마법의 사용과 동시에 발끝으로 땅의 떨림이 느껴졌다.
“...!”
흔들리는 땅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잠시 휘청거리던 회장은 아예 땅을 박차고 하늘로 떠올랐다.
‘바닥이 흔들리면 뛰어서라도 와야지.’
이 또한 예상범위.
김신은 당황하지 않고 계속해서 메모라이즈 된 마법을 날려 보냈다.
‘익스플로전.’
화륵!
하늘에 뜬 회장의 주위로 몰려드는 마나의 흐름.
회장은 기묘한 마나의 흐름을 검붉은 마기가 서린 손을 휘둘러 가볍게 흩어버렸지만, 김신은 신경 쓰지 않고 흩어진 마나를 터트렸다.
콰앙!
폭발하긴 했지만, 그리 크진 않았다.
잠시 뿌연 연기에 가려진 정도였을 뿐.
탁!
바닥에 깔끔하게 착지한 회장은 곧바로 앞에 서 있는 김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쐐액!
커진 눈동자, 벌려진 입 모양.
말 그대로 놀란 모습 그대로의 김신의 모습.
회장은 그 모습에 직감했다.
이번 공격은 피하지 못할 거라고.
퍼억!
빠르게 쏘아진 회장의 손이 곧 김신의 목을 꿰뚫었다.
“...?!”
손끝을 타고 느껴지는 느낌이 이상하다.
피도 흘리지 않고, 너무나도 가볍다.
그리고 그것을 떠나 너무나도 뻔한 이 수에 김신이 걸렸다는 것이 내면에서 상황을 보고 있는 회장에게는 거슬렸다.
촤악!
기분 나쁜 느낌에 회장이 김신의 목에 박혀있던 손을 뽑아낸 순간.
퍼엉!
눈앞에 김신의 모습이 사라짐과 동시에 또다시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며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인드.”
***
익스플로전이 폭발하며 먼지에 잠시 회장의 시야가 가려진 순간.
김신은 서 있던 자리에 미러 이미지를 사용함과 동시에 투명화 마법을 사용하며 옆으로 몸을 던졌다.
주변에 퍼진 마나의 흔적과 시야의 차단, 그리고 기척을 최대한 숨긴 김신의 노력은 회장이 그를 찾지 못하게 만들었다.
쐐액! 퍼억!
깔아놓은 더미에 회장의 손이 박힌 것을 확인한 김신은 입가에 참을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바인드.”
촤자자작!
지면을 뚫고 올라와 회장의 양쪽 다리를 옭아매는 마력의 줄기.
땅을 박차려고 했던 회장은 어느새 다리를 묶어버린 바인드 마법을 마기가 서린 손을 휘두르는 것으로 잘라낸 후, 다시 김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탓!
곧바로 앞에 도달했음에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는 김신.
“죽인다!”
이번에야말로 죽이겠다는 일념을 담아 회장이 김신을 향해 손을 내뻗은 순간.
서걱!
소름 끼치는 예기가 담긴 검이 날아가던 회장의 손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툭!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져서 굴러가는 회장의 손목과 옆에서 들리는 태진성의 목소리.
“정말로 이성이 없군. 방금까지 싸우던 사람을 까먹은 걸 보면 말이야.”
곧바로 태진성에게 왼손으로 반격을 날렸지만, 힘을 잃은 공격 따위는 맞고 싶어도 맞기 힘들다.
채앵!
가볍게 쳐낸 태진성이 회장의 뒤에 자리를 잡고 섰다.
오른손이란 무기도 잃은 회장.
김신은 그런 회장의 모습을 보며 지팡이를 집어넣고 다시 검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이제 진짜 끝을 볼 시간이야.”
꾸드드득!
말하는 순간에도 천천히 자라나는 오른손의 손목.
‘진짜 괴물 같은 회복력이야.’
하지만, 이젠 회복할 시간조차 없을 거다.
쐐액!
김신의 검이 움직이자, 그에 맞추어 움직이는 태진성의 검.
스윽! 스윽!
두 사람의 검이 움직이자, 회장의 몸에 붉은 실선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2.
채앵!
한 사람의 공격을 받아치면 다른 한쪽은 베인다.
검붉은 마기의 막을 뚫고 들어가 기어코 피육을 베어버리는 강기.
앞에선 김신과 뒤에선 태진성은 그저 검을 휘둘렀다.
화려한 초식도, 변초도 필요 없다.
그저 눈앞에 있는 적을 향해 검을 휘두를 뿐.
쐐액!
날아가는 김신의 검을 남아있는 왼손을 이용해 받아친 회장.
서걱!
그러자 뒤에 있는 태진성은 비어있는 회장의 오른쪽 다리의 근맥을 잘라냈다.
연속해서 심장을 향해 찔러오는 태진성의 검을 막기 위해 몸을 비틀며 왼손을 출수하는 회장.
채앵!
태진성의 검을 받아치자, 다시 한번 왼쪽 발목의 힘줄이 잘려나가는 아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질 위기에 회장은 있는 대로의 힘을 끌어다 썼다.
콰콰콰쾅!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마기의 폭풍.
자리를 이탈해 회복할 시간을 벌려 했지만, 잘려나간 힘줄 때문에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쐐액!
분명 마기를 터트렸음에도 불구하고 검을 내지르는 소리가 김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들려왔다.
“...!”
채앵!
급하게 왼손을 들어 막아낸 회장이 놀란 눈으로 보자, 갈색의 막을 두른 김신이 웃고 있었다.
“어딜 가려고.”
***
시간을 돌리기 전까지 수비하기 위해 사용했었던 보석을 이렇게 사용할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놓치면 말 그대로 재앙이야.’
솔직히 말해서 여기서 놓치면 다시 잡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회장이 뿜어내는 마기에 물러선 태진성을 대신해 아티펙트의 힘을 두른 김신은 마기의 폭풍을 뚫고 들어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채앵! 채앵!
일 대일의 싸움.
원래대로였다면 김신의 모든 검격은 회장의 손에 쉽게 막혔겠지만, 부상을 입고 마기를 폭발시키느라 힘의 대부분을 소진한 회장은 김신의 공격을 막는 것으로도 버거워했다.
연속해서 검을 날리는 김신.
그것을 힘겹게 막아내는 회장.
김신은 회장의 빈틈을 찾던 중에 날아간 왼손이 자라나는 것을 유심히 살펴봤다.
꾸드득!
괴물 같은 회복의 원동력이 마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피해가 수복되는 속도가 느려졌다.
이 말은 작은 피해 또한 이젠 충분히 먹힌다는 이야기다.
“흐읍!”
판단이 끝난 김신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팔을 뒤로 당겼다.
찌른다.
검을 쓰며 느낀 가장 중요한 감각인 의념.
생각이 움직이는 대로 몸이 따라간다.
묵빛을 내뿜는 천마신검이 앞으로 내밀어지고, 그 끝에서 그어지는 강기의 선.
-하늘을 꿰뚫어 열면.
스윽-
그 선은 김신의 검을 가로막으려는 회장의 손을 가볍게 꿰뚫고 지나갔다.
“...!”
의념에 담긴 힘을 조금은 이용하게 된 김신.
그는 그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태진성을 보지 못 한 채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좌에서 우로.
횡으로 휘두르는 김신의 검과 함께 전방위로 뻗어 나가는 강기 다발.
-열린 하늘에 우레가 쏟아지니.
촤촤촤촥!
짙었던 검붉은 마기가 김신의 무차별적인 강기 다발에 맞아 조금씩 옅어진다.
휘두른 검을 회수하며 오른발을 뒤로 끌어당긴다.
자연스럽게 바뀐 상단세의 자세로 검을 휘두르는 김신.
위에서 아래로.
종으로 휘두르는 김신의 검에 김신의 혈도를 타고 내달린 내공은 모든 것을 부술듯한 패도적인 기운으로 바뀌었다.
-땅이 거칠게 흔들린다.
콰아아앙!
마기의 막을 가볍게 찢어발기고 들어온 김신의 공격을 두 팔을 들어 막은 회장.
“쿨럭!”
회장은 엄청난 충격에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계속해서 자세를 잡는 김신.
왼발을 끌어당기며 검을 아래로 휘감아 우상단의 자세를 만들었다.
스윽-
-모든 것이 끝난 자리엔 비어버린 하늘만이 남아있을 것이니.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깨달은 사실.
‘천마신공의 오의(奧義)는 의념을 담는 것이었구나.’
-그의 주위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천마신공의 오의(奧義), 멸공(滅空).
────!
휘둘러지는 검과 함께 그의 주변이 묵빛으로 물들었다.
그 공간 속에 마주 보고 있는 김신과 회장.
티딕.
김신의 검이 회장을 지나 그의 검집으로 들어간 순간.
퍼석.
그의 가슴에 박힌 진화의 돌이 부서졌다.
3.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의 모습을 보면 두려워한다.
설령 같은 인간에게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가 있는데, 이해할 수준을 뛰어넘은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 같은 경우 말이다.
회장의 마기에 뒤로 물러섰던 태진성이 홀로 회장의 앞을 막아선 김신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본 순간, 바로 그런 감정을 느꼈다.
두려울 만큼 빠른 성장과 압도적인 재능.
‘···벌써 검에 의념(意念)을 담다니.’
얼마 전, 검을 쥔 이상 마음가짐을 다잡으라는 조언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성장 속도였다.
‘정말로 탐이 날 정도의 재능이야.’
김신이 익힌 무공의 초식을 펼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태진성.
물 흐르듯 휘두른 김신의 마지막 검격이 주변을 물들이는 것을 본 그는 허탈함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젠 도움을 줄 수도 없겠어.’
***
아득하게만 느껴지던 깨달음은 단 한 순간에 찾아왔다.
언제나 그렇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한 걸음이면 충분하다.
파스스-
묵빛의 공간 속에서 점차 먼지로 화하는 회장은 이성이 돌아왔는지, 천천히 입을 열어 김신에게 말했다.
“구원자는 내가 아니라 너였군.”
김신은 답하지 않고 조용히 회장을 바라봤다.
“잘 되길 빌어주지.”
김신은 그를 쓰러트릴 듯 강하게 찾아온 탈력감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리에 서서 사라져가는 회장을 지켜봤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비틀린 욕망으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씻지 못할 피해와 고통을 준 악인.
김신은 사라지는 회장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회장과 자신은 다르다.
지금의 김신을 믿어주는 이들이 있고, 그들로 인해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으니까.
‘이제 남은 건 등반뿐이야.’
석판의 나머지 부분을 찾아 단서를 얻고, 아티펙트를 모아 탑을 오른다.
분명 힘들 테지만,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친다면 해낼 수 있겠지.
스르륵-
어느새 완전히 사라져버린 회장의 모습과 그가 있던 자리에 있는 두 개의 아티펙트.
김신은 몸을 숙여 두 개의 아티펙트를 집어 들었고, 그 순간 묵빛의 세상도 천천히 색을 되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