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90화 (90/116)

《90화》

1.

피부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흉악한 살기.

악(惡), 그 자체의 기운이 형태를 이룬 것 같은 회장의 모습은 주변에 영향을 끼쳤다.

쿠드드득!

회장의 주변에 있는 대지가 그가 뿜어내는 사악한 마기에 의해 계속해서 파헤쳐지는 것.

‘기운만으로 주변에 영향을 끼친다니...’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내뿜는 회장.

그가 움직이지 않았지만, 김신은 알 수 있었다.

‘어떤 방법을 써도 먹히지 않는다.’

피할 수 없다.

아니, 지금의 모습을 보자면 퇴로 그 자체가 막혔다고 보는 것이 가장 알맞겠지.

막연한 상황에 돌파구를 찾는 김신을 감정이라는 것이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는 회장.

김신과 눈을 마주친 채로 있던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팟!

눈앞에 선 회장이 사라짐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검을 끌어올린 김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장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촤악!

오른쪽 어깨를 길게 베고 지나간 자상과 동시에 옷을 흥건하게 적시며 새어 나오는 피가 눈에 보인다.

“크윽...”

눈을 깜빡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

김신을 스쳐 지나간 회장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오른손 검지의 손톱에 묻어있는 핏방울을 털어냈다.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속도야.’

반응조차 못 한다.

이 말은 다음 공격이 급소를 노리고 들어온다 해도 방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스윽-

다시 오른쪽 다리의 방향을 틀며 움직일 준비를 하는 회장.

김신은 그런 회장의 모습에 품속을 뒤졌다.

바로 그 순간.

회장의 모습이 또다시 사라졌다.

팟!

서늘한 감각이 목덜미에 느껴진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공격의 경로.

하지만, 방금과는 다르게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회장의 손이 김신의 목을 가르지 못한 채, 튕겨 나갔다.

키잉!

그 기묘한 현상에 고개를 갸웃하는 회장.

김신은 그런 그를 보며 왼손에 든 빛을 내뿜는 갈색의 보석을 들어 올렸다.

지잉-

옅은 빛을 내뿜으며 김신의 몸을 감싼 갈색의 막.

회장의 공격을 막아낸 것은 다름 아닌 보석의 권능이었다.

***

홀로 구원회의 간부급 조직원이 포함된 스무 명의 조직원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태진성.

챙챙!

눈으로도 쫓기 힘들 정도의 전투지만, 현경이라는 경지에 오른 태진성에게는 이 정도의 공격쯤은 막아내기 힘든 것이 아니었다.

쐐액!

나름 허를 찌른다고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태진성의 왼쪽 어깻죽지를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구원회 조직원의 공격.

태진성은 가볍게 왼손에 쥔 검결지에 강기를 담아 검의 날을 부드럽게 밀쳐냈다.

스르릉-

분명 손가락과 검의 대결이었지만, 검과 검이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울리자 눈을 크게 뜨는 구원회의 조직원.

태진성은 왼손에 쥔 검결지로 열린 그의 가슴을 길게 베었고, 조직원은 그 공격에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털썩-

상대하기 힘든 수준의 강력함이다.

같은 조직원이 벌써 몇 명이나 저자의 손에 쓰러진 것인지.

쓰러진 동료를 본 구원회의 조직원들은 모두 그런 생각을 하며, 별동대 중에서도 압도적인 수준의 무력을 가진 태진성의 곁을 천천히 맴돌았다.

태진성은 그런 조직원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아까 느껴졌던 거대한 기의 파동을 곱씹었다.

‘지금 김신의 수준으로는 막기 힘들 터인데...’

느껴진 수준으로는 자신과 동급 혹은 그 이상.

기운만으로 주변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수준이니, 이제 현경의 벽에 도달한 김신으로는 막기 힘든 수준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김신을 도와주러 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지금 당장 자리를 이탈해 김신이 있는 장소로 간다면 별동대 쪽으로 천천히 기울어가는 힘의 균형이 다시 구원회로 넘어가게 된다.

챙챙!

전투 자체는 수비하며 반격을 하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지만, 무리하면서까지 여기 있는 구원회의 조직원을 순식간에 쓸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강한 힘을 가진 대상과 싸워야 하기에 승산을 높이기 위해선 무리를 해선 안 된다.

미묘한 딜레마에 걸린 태진성은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김신이 있는 방향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조금만 기다리게.’

태진성은 김신에게 최대한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검을 들고 달려드는 조직원의 공격을 일격에 받아넘겼다.

2.

카앙! 카앙!

심장 부근과 목덜미 부근에서 연달아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

김신은 거북이의 방어처럼 보석의 권능을 최대한으로 활성화한 상태로 굳건히 회장의 공격을 버텨냈다.

‘속도만 어떻게 좀 따라잡을 수 있으면 싸워볼 만할 텐데...’

화경의 끝자락에 도달한 김신이 눈으로도 쉽게 쫓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속도를 선보이는 회장의 움직임.

공격의 직전에서야 어디를 공격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회장과 김신의 격차는 꽤 컸다.

카앙! 카앙!

계속해서 수세인 김신의 신체 주변으로 튀는 갈색과 검붉은 색의 기의 파편.

김신은 천천히 깎여나가는 권능의 보호를 보며 아까 주워들었던 파괴의 홍옥까지 꺼내 들었다.

우웅!

김신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갈색의 막과 다르게 존재감이 확실한 붉은 빛을 흩뿌리며 밝게 빛나는 파괴의 홍옥.

김신은 빛을 뿜어내는 파괴의 홍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해오는 회장을 인상을 찌푸린 채 노려봤다.

번쩍!

밝게 퍼지는 빛이 닿는 공간의 일대를 모두 소멸시키는 파괴의 홍옥.

달려오던 회장 또한 붉은 빛에 휩싸였다.

‘···이걸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는다고?’

분명 김신이 아는 파괴의 홍옥은 파괴가 주된 능력이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버젓이 아는데도 불구하고 그 공격 범위 안으로 들어온 회장.

마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지만, 분명 뭔가 이상했다.

지잉!

밝았던 빛이 천천히 수그러들자, 그 너머로 검붉은 마나에 싸여 멀쩡한 회장의 모습이 보인다.

‘파괴의 홍옥의 권능을 마나로 막아냈구나!’

강기에 준하는 마나의 막으로 파괴의 홍옥에 맞선 회장의 모습.

공격의 수단까지 막혀버린 상황에 김신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파괴의 홍옥을 집어넣었다.

카가가가각!

검붉은 안개를 둘러싼 것 같이 회장이 마나를 뿜어내자 김신을 둘러싼 막이 더 빠른 속도로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무작정 방어만 할 수도 없는 상황.

방어의 구멍이 생기는 순간, 즉시 치명상을 입을 수준이다.

대책을 찾아야 한다.

지금의 회장과 김신의 격차를 메꿀 무언가.

무공만으론 할 수 없지만, 김신에게는 그 격차를 메울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아티펙트.’

한계를 초월한 힘이 담긴 물건.

김신은 아티펙트에 담긴 진정한 힘을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다.

카가가가각!

김신이 방법을 찾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갈려 나가는 보호의 권능.

티디딕!

천천히 금이 가던 김신을 감싼 막이 마침내 그 힘을 잃고 부서진 순간.

“죽인다!”

달려드는 회장의 모습을 보며 김신은 품에서 꺼내든 회중시계의 버튼을 눌렀다.

────!

흑백으로 바뀌며 모든 것이 멈춰섰다.

소리도, 눈앞에 있는 회장도.

한순간에 멈춰버린 세상 속에서 흘러들어오는 기억.

아티펙트에 담긴 기억은 시간을 연구하던 프레인 제국의 어느 마법사의 기억이었다.

***

시간을 연구하던 마법사 하이든.

그는 연구의 끝에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인간을 포함한 그 어떤 물체든 존재를 증명할 절대 요소인 시간을 피해가지 못한다.

그러니, 시간을 조금이라도 되돌린다면 자신의 존재는 그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시간을 1초라도 늦게 흐르게 한다면 같은 시간을 살던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로가 다른 세계에 살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생각을 시작으로 시간을 다루는 마법을 연구하던 대마법사 하이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시간을 다루는 마법을 알아낸 그는 마법의 발동에 필요한 조건들을 줄여나가고자 했고, 마침내 그 방법을 찾았다.

시간을 재는 시계에 마법을 새긴다는 것.

작은 톱니바퀴 하나, 시간을 가리키는 초침 하나까지에도.

마침내 자신의 시간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된 그는 시간을 돌아다니며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까지 주변을 돌아봤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엘라이어 대륙에 멸망이 온다는 것을 알아냈다.

시간을 돌아가서 무슨 짓을 해도 피할 수 없는 종말.

개인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한계가 분명했다.

재앙이 도래하지 않은 과거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그의 말을 듣고도 개소리로 치부했으니까.

아무도 믿어주지 않기에 재앙은 항상 종말이라느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방법은 하나뿐인가.’

결국, 하이든은 선택했다.

기억과 힘이 담긴 이 아티펙트.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미래에 보내기로.

3.

김신은 멈춰진 시간 속에서 하이든의 기억을 모두 훑어봤다.

그가 남긴 기억과 그의 마법의 정수가 담긴 이 회중시계.

오랜 시간을 거치며 많이 훼손되어 시간을 돌릴 수 있는 한계 시간이 10분으로 줄어들었지만, 김신은 지금 얻은 이 기회만으로도 충분했다.

멈춰있는 시간을 뒤로 돌린다.

흑백으로 물든 세상이 마치 동영상을 뒤로 감듯 천천히 거꾸로 감기기 시작했다.

부서졌던 보호막이 천천히 복구되며 치열했던 전투를 다시 재생시켰다.

하지만, 다른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김신이 모든 과정을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점.

사방으로 퍼진 검붉은 마나와 갈색의 막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순간.

────!

예의 그 소름끼치는 감각이 사라지며 세상이 천천히 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

진화의 돌을 심장에 박아 넣어 이성을 잃는 대신 막대한 힘을 얻은 회장.

사실 그는 이성을 잃은 것이 아니라 진화에 돌에 몸을 뺏긴 것이었다.

생명의 근원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와는 궤를 달리하는 힘인 마기(魔氣).

진화의 돌은 본래 아티펙트가 아니었다.

사용자의 몸에 파고들어 엄청난 힘과 능력을 주는 대신 모든 생명력을 소모 시키는 파괴적인 도구일 뿐이지.

단지 회장은 그것을 마석을 이용한 방법을 통해 특성을 강화 시킨다는 방법으로 만들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탑의 가장 최상층.

가장 최근에 멸망한 어떤 세계의 산물인 진화의 돌.

지금도 회장은 김신을 보고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느끼고 있지만, 누군가 자신의 자아를 깊은 내면에 가둬두고 마음대로 쓰는 것으로 느꼈다.

살고 싶다.

죽고 싶지 않아.

진화의 돌은 그의 욕망을 들은 것인지, 생존에 가장 필요한 방법을 김신이 죽음으로 파악하고 움직였다.

그리고 그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아니, 회장의 생명력이 다 할 때까지.

회장은 김신과의 전투를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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