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1.
달려오는 괴수들.
김신은 시선에서 괴수의 모습을 놓치지 않은 채로 자세를 잡았다.
-커헝!
한걸음 걸으며 스쳐 지나가는 괴수의 공격을 비스듬히 피함과 동시에 좌로 베자, 땅에 닿음과 동시에 두 개로 나누어지는 괴수의 몸.
김신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회장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달려드는 괴수들을 착실히 베어 넘겼다.
그의 모습에 회장은 괴수들에게 더욱 거세게 달려들 것을 명했고, 명령을 받은 괴수들은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들었다.
전방을 빼곡히 채우는 괴수들의 공격.
검강이 맺힌 검을 든 김신은 내공을 움직이며 익숙한 검로를 따라 휘둘렀다.
앞을 향해 내공을 뿌려낸다는 느낌을 담아.
심상은 내공이 만들어낼 모습을 그렸고, 내공은 김신의 심상에 따라 혈도를 타고 돌아 손끝에서 그림을 그렸다.
하늘에서 우레의 비가 내린다.
천마신공의 두 번째 초식 뇌우(雷雨).
달려들던 괴수들이 전부 검강의 세례에 한 줌의 먼지로 화하자,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쳐다보는 회장의 모습이 보였다.
‘아티펙트를 노리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한순간, 예상처럼 몸을 움직이려는 회장.
‘위험해.’
파괴의 홍옥의 위력은 모르겠지만, 그 위력은 김신이 가진 갈색의 보석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몸을 회전시키며 괴수의 공격을 피한 김신은 검강을 유지한 채 수인을 맺었다.
───!
마나에 흐름에 가볍게 떨리는 대기.
그동안 피나는 연습을 통해 검술과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된 마법은 곧 바람의 구체로 변했다.
후우우웅!
급격하게 주변의 공기를 끌어당기는 바람의 구체.
김신의 손끝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법을 김신은 곧바로 눈앞에 있는 괴수들에게 날렸다.
퍼엉!
급격히 팽창하며 돌풍을 일으키는 에어 밤의 위력에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는 괴수들.
그렇게 뚫린 틈의 사이로 김신은 달려가는 회장의 뒤를 향해 검강을 날렸다.
쐐액! 콰앙!
김신의 검강과 부딪치자, 거대한 폭음과 함께 앞으로 날아가는 회장.
김신은 달려오는 괴수들을 피해 땅을 박차고 회장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
등 뒤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충격.
회장은 몸을 울리는 찌르르한 감각이 느껴졌지만, 방어라는 기능을 확실히 충족하는 갑옷을 믿고 다시 일어섰다.
‘제길...’
승리의 조건이라 생각했던 아티펙트가 정면에서 막히자, 입맛이 쓰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혈향.
고개를 들어 바라본 장소에 있는 조직원들은 헌터들에게 하나, 둘씩 쓰러져 가는 것이 보였다.
‘대체 어떤 차이가 있기에...’
회장은 사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김신이 회의 대계를 방해하는 이유가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을.
탑의 비밀을 알고 움직이는 듯한 행동.
그로 인해 바뀐 많은 헌터들의 움직임.
점점 커가는 김신의 존재에 최후의 방법까지 동원했지만, 그는 그마저도 쉽게 해결했다.
‘위험해.’
신념이란 자신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오직 자신뿐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 신념 또한 흔들린다.
‘내가. 아니, 나만이 모두를 구원으로 이끌 사도다.’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선 회장.
그의 눈에 괴수들의 사이로 달려오는 김신의 모습이 보였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조용히 고심한 회장은 품에서 알 모양의 작은 돌을 꺼냈다.
검붉은 색의 불길한 빛이 감도는 자그마한 돌.
한계 이상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진화의 돌을 회장은 손에 쥐었다.
원래는 특성을 강화하던 용도로 사용하던 진화의 돌.
하지만, 진정한 쓰임새는 육체와 결합했을 때 나타난다.
가볍게 심호흡한 회장은 김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심장에 진화의 돌을 가져다 대었다.
두근!
진화의 돌에서 뿜어지는 빛이 닿자 거칠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
진화의 돌은 아티펙트를 뚫고 들어가 마침내 그의 심장에 빨려 들어갔다.
“크아아악!”
온몸이 불타는 듯한 감각.
몸을 타고 도는 모든 마나로드의 구석구석까지 진화의 돌의 힘이 타고 돈다.
꾸드득!
급격하게 뒤틀리는 육체.
‘아티펙트를 모아야...’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회장의 시야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2.
거대한 마나의 흐름.
김신은 검붉은 빛에 휩싸인 회장의 모습을 찌푸린 얼굴로 쳐다봤다.
‘대체 무슨 짓을...’
심장에 무언가를 박아 넣더니 기괴하게 변이되는 그의 모습에 김신은 그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는 보석을 집어 들었다.
파괴의 홍옥과 갈색의 보석 그리고 변화의 구슬까지.
세 가지를 모은 김신은 마지막 아티펙트가 있을 회장의 품을 살펴봤다.
‘제길.’
좋지 않은 일은 항상 예상에 들어맞듯 회장의 품 사이로 보이는 초록빛의 보석.
그리고 그와 함께 그를 감쌌던 검붉은 빛의 불길한 기운이 가라앉으며 드러난 그의 모습은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검붉게 변한 피부.
그 피부를 따라 심장이 뛸 때마다 흐르는 불길한 색채의 마나.
탁하게 풀린 눈을 김신이 아닌 허공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고, 드러난 그의 손과 발은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날카롭게 솟아오른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크르륵.”
숨소리마다 들려오는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
느껴지는 기운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느껴졌다.
‘위험해.’
본능이 울리는 경고.
몸이 굳을 정도의 힘을 가진 것이 느껴진다.
조용히 품속으로 모았던 보석들을 집어넣으려던 김신.
그가 아티펙트를 집어넣으려는 순간, 바뀐 회장의 고개가 김신이 있는 방향으로 틀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땅으로 꺼지듯 사라진 회장의 모습.
팟!
모습을 놓침과 동시에 뒤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감각에 김신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검을 뒤로 찔렀다.
쐐액!
“...!”
허공을 찌르는 감각.
아무것도 닿지 못한 채 내뻗어진 검격은 이어질 회장의 공격을 뜻했고, 김신은 최대한으로 기감을 끌어올리며 회장의 위치를 살폈다.
‘너무 빨라.’
극에 달한 스피드.
극한의 집중을 동원한 채로 모든 버프를 끌어다 쓰자, 변화한 회장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탓!
쏘아지듯 날아드는 회장의 모습.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이미 너무 가깝다.
“큭!”
김신은 검을 날리던 동작 그대로 손목을 비틀어 검면으로 회장의 공격을 받아냈다.
콰앙!
뼈와 금속이 맞부딪친 것이었지만, 그 소리는 마치 폭탄이 터진 것 같은 굉음.
그 엄청난 공격을 막은 김신은 5m가 넘는 거리를 날아 밀려났다.
지잉-
찌르르 울리는 검날과 손목을 타고 들어오는 욱신거리는 감각.
내공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단 일격에 이토록 먼 거리를 밀려났다.
‘괴물이네.’
몸에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검붉은 기운은 진해졌다.
“하아...”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잡는 김신.
기괴하게 변화한 회장은 가래 끓는 듯한 목소리로 조용히 무언가를 말했다.
“······.”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린 김신.
회장은 다시 한번 목표를 확고히 다지는 듯이 목적을 말했고, 김신은 그제야 그가 원하는 목적을 들을 수 있었다.
“···아티펙트를 빼앗는다.”
자리를 박차자.
팡!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다시 흐릿한 잔상만을 남긴 채 사라지는 회장.
처음과는 다르게 미리 대비하고 있던 김신은 왼쪽에서 느껴지는 예리한 살기를 느끼고, 최대한의 반사신경으로 회장의 공격을 노려봤다.
쐐액!
손톱을 세운 채로 김신의 머리를 잡아 뜯어버리겠다는 듯이 날아드는 회장의 공격.
김신은 검날을 머리 위로 치켜든 상태 그대로 회장의 손을 미끄러지듯 흘려냈다.
키기기기깅!
손톱과 검날이 맞붙었다고는 믿기 힘들 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이어지는 회장의 공격.
휘익! 휘익!
목을 가를 듯이 들어오는 그의 공격에 뒤로 멀리 물러선 김신은 다시금 짓쳐들어오는 그의 모습을 보며, 손에 쥔 검을 뒤로 끌어당겼다.
우웅!
자세를 잡기 무섭게 혈도를 타고 도는 내공의 감각.
찰나의 순간 검에 모인 내공을 김신은 앞을 향해 쏟아냈다.
하늘을 꿰뚫어 연다.
천마신공의 첫 번째 초식, 개벽(開闢).
본디 검기를 뿜어낸다는 초식인 개벽이 예리하게 정련된 검강을 통해 사용되자, 허공에 날카로운 한 줄의 선을 그렸다.
───!
공간을 가르는 김신의 검격.
변화한 회장도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했는지, 무시하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 두 팔을 들어 김신의 초식을 막아냈다.
피잇!
거대한 폭음이 아닌 아주 작은 소리.
하지만, 김신의 공격을 받아낸 회장의 모습은 멀쩡하지 않았다.
후두둑.
그가 서 있는 바닥에 떨어지는 다량의 피.
고개를 올려 본 회장은 모습은 반쯤 잘린 팔을 덜렁거리는 소름 끼치는 모습이었다.
‘엄청난 방어력이지만, 먹힌다.’
오롯이 힘을 모아 날리는 초식은 그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줬다.
‘할만해.’
한 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하면 위기에 빠질 것이 분명한 위태로운 외줄 타기지만, 이런 위험을 겪는 것은 한, 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다.
꾸드득!
순식간에 잘렸던 팔이 회복된 회장.
김신은 그 모습을 본 순간, 마지막 있었던 한 점의 의심마저 내려놨다.
저것은 이지가 없는 괴물.
평범한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본능만 남은 짐승이다.
마음을 다잡자, 한층 집중하기가 수월해졌다.
쾅!
다시 쏘아지듯 날아오는 회장의 모습.
김신은 다시 한번 부드럽게 공격을 흘려냈고, 그와 동시에 바닥에 착지하려는 회장의 발아래에 미끄러지게 하는 마법인 그리스를 사용했다.
카가가가가각!
잠시 중심을 잡지 못한 회장이 발톱을 땅에 박아넣어 간신히 중심을 잡은 순간.
탓!
만반의 준비를 끝마친 김신의 검이 회장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후웅!
흉악한 기세를 담은 김신의 검.
모든 것을 부수어버리겠다는 의지가 내공으로 담긴 패검(覇劍)이 회장의 지척까지 도달했고, 회장은 두 팔을 들어 김신의 공격을 막아냈다.
뿌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깊게 박히는 회장의 두 다리.
김신은 곧바로 상단세로 내리친 검을 회수하며 횡으로 휘둘렀다.
쐐액!
자유로운 내공의 변화.
아까와는 다르게 쾌(快)의 묘리를 담은 검은 회장의 호흡을 빼앗으며 그의 옆구리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스윽.
패검처럼 강대한 기운이 담기지 않았기에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지만, 옆구리에 긴 자상을 남긴 김신의 검.
김신은 곧바로 왼쪽으로 끌어당긴 검을 휘두르며 초식을 사용했다.
열린 하늘에서 우레의 비가 내린다.
쿠르릉!
심상은 곧 내공의 형태를 이루는 기본.
김신의 의지가 형태로 나타난 초식은 정말로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뿜으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콰콰콰쾅!
지근거리에서 뿜어지는 내공의 다발에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으며 물러나는 회장.
하지만, 놀라운 속도로 회복한 그가 김신의 공격을 막아내며 예의 그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그를 향해 말했다.
“죽인다.”
쾅!
섬뜩한 목소리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달려드는 회장.
그가 내미는 날카로운 손아귀에 김신은 급하게 고개를 숙이며 피했다.
‘순간적으로 더 빨라졌어.’
말도 안 되는 현상에 회장을 바라보는 김신.
그의 예상처럼 회장은 더욱 기괴한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꾸드득.
머리에서 자라나는 뿔.
등에서 솟아오르는 날개.
‘...악마?’
신화 속에 나오는 악마.
회장은 그것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