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88화 (88/116)

《88화》

1.

구원회의 회장은 별 볼 일 없는 특성의 각성자였다.

사물에 담긴 기억을 단편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

강력한 특성으로 무장한 그들의 틈에서 그가 살아남을 방법은 아티펙트의 숨겨진 기능을 정확하게 사용하고,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었다.

-이 아티펙트는 이렇게 해서 이렇게 사용하면···

그러한 과정을 통해 알아낸 사실은 아티펙트에 숨겨진 힘을 끌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감정을 통해서 확인해도 전부 밝혀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런 것이었을 거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의 손에 우연하게 들어온 얇은 석판 하나.

호기심에 그 석판의 단편적인 기억을 본 그는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종말이 닥쳐오리니.

그는 석판에 담긴 누군가의 잘린 기억을 본 순간,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물건에 담긴 기억을 모두 보지는 못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는 진귀한 탑의 실체가 담긴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에.

‘나는 선택 받은 사람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구원회.

그의 시작은 생각보다 소소했다.

위험에 빠진 이들을 구하고, 평범한 헌터의 활동을 하며 정보를 모으는 것.

그렇게 모은 정보를 연합의 수뇌부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는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종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길드에도 소속되지 못한 평범한 헌터로 살아가던 그의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은 것.

그는 그렇게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이들을 증오하기 시작했고, 구원회는 조금씩 그 의미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나를 믿어주는 각성이라는 선택받은 사람들만 구원으로 이끌면 돼.’

***

김신의 손에서 빛나는 보석을 본 순간 회장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과거의 기억.

그 기억과 상충 되는 김신의 행동에 회장은 이를 꽉 물었다.

‘저 아티펙트의 사용법을 아는 사람은 나뿐일 텐데...!’

아티펙트의 힘으로 탑의 9층에 등반한 후, 알아낸 조각상의 비밀.

그것은 바로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저주받은 신이 훔치려 했던 창조의 권능이 담긴 아티펙트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비밀을 알게 된 후로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방법을 찾고, 사람을 모아 어렵게 얻은 차원의 파편을 이용해 퍼니셔와 신의가 갖고 있던 아티펙트를 탈취하는 것까지 성공했는데.

“네 녀석은 끝까지 내 앞길을 방해하려 드는 거냐!”

회장이 터져 나오는 화를 삭히지 못하고 입으로 내뱉자, 김신은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앞길을 방해해? 네가 추구하는 구원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게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맹렬하게 존재감을 내뿜으며 힘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파괴의 홍옥과 갈색의 보석.

회장은 그 두 가지의 힘이 파동이 맹렬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김신을 향해 말했다.

“종말이 다가온다는 것을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나를 믿는 선택받은 사람들만을 데리고 종말을 끝낼 것이다.”

“헛소리. 아무도 믿지 않으면 네 말을 들을 수 있게 만들었어야지.”

“노력하지 않은 것 같나? 내 노력은 네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입에 발린 소리.

회장은 김신이 하는 이야기가 꿈을 뒤쫓는 사람의 헛소리라 생각했다.

2.

파지지직!

회장이 서 있는 공간의 주변은 모조리 가루가 되어 부서지고, 반대로 김신이 있는 주변은 그대로인 상태.

결국, 회장은 차원의 파편을 사용해 김신의 옆에 게이트를 열었다.

우웅!

일그러지는 공간의 너머로 튀어나오는 회장.

김신은 손에 쥔 보석을 사용하려 했지만, 회장의 손이 조금 더 빨랐다.

휘익!

김신이 들고 있는 보석을 쳐내는 건틀릿을 낀 회장의 손.

날아가는 보석을 보며 김신도 급하게 내공을 끌어올려 회장이 들고 있는 보석을 쳐냈다.

데구르르-

날아간 아티펙트와 대치한 김신과 회장.

회장은 떨어진 아티펙트를 주우러 갈 생각을 하지 않고 김신에게 달려들었다.

“널 죽이면 그 누구도 방해 못 하겠지...!”

키키키킹!

달려오는 회장의 온몸을 감싸는 아티펙트.

갑옷과, 투구, 건틀릿으로 바뀌며 변하는 회장의 외투.

김신은 달려오는 회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쐐액!

예기를 가득 품은 천마신검.

검기가 첨예하게 서린 검과 회장의 건틀릿이 공중에서 맞부딪쳤다.

카앙!

흠집조차 나지 않는 건틀릿.

그 모습에 김신은 가볍게 뒤로 물러서며 검강을 일으키려 했으나, 회장이 꺼내는 말에 순간 몸을 멈칫하고 말았다.

“나는 그 어떤 헌터도 하지 못하는 아티펙트의 기억을 읽어 진정한 힘을 끌어낼 수 있다. 그런 네 녀석이 선택받은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후웅!

주먹을 휘두르는 회장으로부터 두 걸음 더 물러선 김신.

김신의 머릿속에는 회장이 방금 한 말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기억을 읽어?’

아티펙트의 기억을 읽는 또 다른 존재.

김신은 회장의 능력에 대해 놀랐지만, 이내 고개를 털어 잡념을 날렸다.

‘나와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 힘을 악용했어.’

자신만의 정의, 자신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힘은 존재의 가치가 없다.

그의 시작은 모든 사람을 구한다는 의미였어도 지금은 그 모든 의미가 퇴색되었으니까.

그리고.

“기억을 읽는 능력은 너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야.”

김신의 천마신검에서 뿜어나오는 검강.

타오르듯이 주변을 물들이는 묵색의 검강에 회장은 멍하니 김신이 했던 말을 되물었다.

“...뭐라고?”

“네가 가진 그 기억을 읽는 능력. 나도 가지고 있다고.”

“그, 그럴 리가 없다! 그건 오직 나만의...”

“아니, 나 또한 아티펙트를 만든 사람의 일생과 그 아티펙트에 담긴 모든 능력을 끌어다 쓸 수 있어. 그 증거가 바로 이 검강이지. 그런데 넌, 왜 그들이 가진 능력을 쓰지 못하는 거냐.”

가볍게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간 김신.

검강이 가득 맺힌 검을 휘두르자, 회장 또한 건틀릿을 들어서 막아냈다.

콰앙!

김신의 검격에 의해 땅이 파일 정도로 길게 뒤로 밀린 회장.

그는 이를 악물고 김신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후웅!

신체 능력의 증폭을 도와주는 아티펙트의 성능에 의해 김신의 눈으로도 간신히 따라잡을 만큼 강력한 회장의 공격.

날아오는 주먹을 보는 김신은 공격을 각도를 보며 눈을 빛냈다.

위에서 아래로.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찍어 내리는 주먹을 유(柔)의 묘리를 살려 가볍게 흘려낸다.

스릉!

마치 스스로 그렇게 공격한 듯 왼쪽으로 흘러나가 버린 자신의 주먹에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는 회장.

김신은 연달아 주먹을 내지르는 회장을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주먹 하나하나에 담긴 힘은 엄청나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기술인 식(式)이 없다.

힘을 오롯이 전달하는 동작.

그것이 없는 이상 회장이 하는 것은 그저 무분별한 힘의 낭비일 뿐.

쾅! 쾅!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연격.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맹수의 공격과도 같았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노련한 김신은 상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채앵! 카앙!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주고받는 수십 번의 공격.

강기와 부딪힌 회장의 아티펙트가 점점 깎여나간다.

김신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회장의 건틀릿과 맞붙은 상태에서 그에게 나지막이 질문을 던졌다.

“아티펙트에 담긴 기억으로 무술은 배우지 못했나 봐? 아니, 기억 전부를 보지 못하고, 잘린 기억만 보는 건가?”

김신과 다르게 육체를 갈고 닦아 그 이상의 힘을 끌어내는 무술.

아티펙트에 담긴 기억을 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지 않은 의문에 대한 질문은 회장의 의문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는 너는 아티펙트에 담긴 기억을 모두 볼 수 있다는 거냐!”

회장의 말을 들은 순간 김신은 알 수 있었다.

그와 자신의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정말로 너는 전부 보지 못했구나. 아티펙트에 담긴 그들의 일생을.”

보지 못하기에 일부분만 알 수 있었고, 그렇기에 반쪽짜리 힘만 가질 수 있었다.

연민이 담긴 김신의 목소리에 분노를 터트리는 회장.

“널 죽이고 저 아티펙트를 전부 모으면 어차피 그 모든 힘 따위는 필요도 없을 만큼 강대한 권능을 얻을 수 있다!”

왼쪽 손목에 달린 아티펙트를 어루만지자 몰려드는 괴수들.

-크르릉!

김신은 검을 고쳐 쥐며 다가오는 괴수들을 노려봤다.

***

김신이 회장이 불러낸 괴수들의 틈에 갇혀있던 순간.

쾅! 쾅!

한유성은 주변으로 몰려드는 괴수와 구원회의 조직원들을 상대하며 김신이 달려간 방향을 쳐다봤다.

‘엄청 큰 소리가 울렸는데.’

위태로운 외줄을 타는 것처럼 압도적인 수의 차이를 간신히 실력으로 메우고 있는 헌터들.

한유성 또한 아티펙트로 중무장한 구원회의 조직원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전투를 하느라 몸의 곳곳이 상처 입은 상황에서도 김신이 간 방향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폭음이 신경 쓰였다.

-크르르릉!

한유성이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달려드는 괴수.

톱날 같은 이빨이 잔뜩 박힌 아가리를 쩍 벌리고 달려드는 늑대의 공격을 빠른 풋워크로 가볍게 피해낸 후 주먹을 내지르자 울려 퍼지는 북을 두들기는 듯한 소리.

뻐억!

-케에엥!

애처로운 소리를 내지르며 날아가는 늑대의 뒤로 구원회의 조직원이 창을 깊게 찔러 들어왔다.

“모든 것은 그분을 위해서!”

개개인의 수준이 A급을 상회 하는 구원회의 조직원들.

한유성이 몸을 사리지 않는 그들을 상대하던 중 김신이 갔던 곳을 향해 달려나가는 괴수들을 발견했다.

도와줄 수 없는 상황.

한유성은 김신이 있는 방향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3.

살을 찌르는 따가운 살기.

식욕이라는 원초적인 욕구를 채우겠다는 괴수들의 으르렁거림.

김신은 주변을 가득 채운 괴수들의 사이로 비틀린 미소를 짓고 있는 회장과 눈이 마주쳤다.

“너 또한 선택받았지만, 선택받지 않은 이들을 위해서 몸을 던지는구나. 어리석고 안쓰럽군.”

비꼬는 듯한 회장의 목소리.

김신은 달려오는 괴수의 목을 일격에 베어내며 답했다.

“너 또한 알겠지만, 아티펙트에 담긴 기억들 모두 자신이 있던 터전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너처럼 터전을 파괴하려 들지는 않았어!”

“생존은 소수의 문제. 어차피 종말에서 살아남는다면 번영은 어떻게든 이루어질 거야. 나는 그 번영을 일으킬 소수를 책임지고 살려야 해. 그렇기에 나는 선택받은 구원자다.”

정말로 미친놈이다.

힘을 가진 자가 잘못된 신념을 가지게 되면 탄생하는 괴물.

더 이상 대화할 필요 따윈 없다.

우웅!

검에 오롯이 집중함과 동시에 혈도를 타고 내달리는 내공.

묵색의 내공이 타고 돌자, 김신의 기도가 점차 바뀌었다.

패도적인 기운에 영향을 받아 전투에 임하고 있는 지금 머릿속에 남은 아주 약간의 두려움까지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그런 김신을 바라보던 회장또한 바뀐 김신의 기도를 감지하고, 주변에 있는 괴수들에게 지시했다.

“흔적조차 남기지 말도록.”

-커허헝!

저릿저릿하게 울리는 대기.

김신은 달려오는 괴수를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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