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1.
길동에서 강남으로 날아가던 때.
김신은 하늘을 보며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게이트가 닫히지 않아?’
본래 게이트는 괴수를 내보낸 후 닫히는 통로.
짧은 시간 동안만 유지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알고 있다.
우웅-
하지만 지금 하늘을 가득 물들이고 있는 저 게이트들은 계속해서 열려있다.
마치, 집행관이 게이트를 열었을 때처럼.
갑작스레 열린 S급 게이트와 닫히지 않는 이유.
김신은 그 모든 것이 구원회에 빗댄 순간 한순간에 맞춰지는 것을 깨달았다.
‘탑 내부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괴수들을 끝없이 쏟아내는 게이트.
그걸 막기 위해서라면 탑으로 가 그들을 저지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게 다시 현재로 돌아와.
김신은 그러한 이유를 바탕으로 한유성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는 탑으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신의 말을 들은 한유성은 또다시 다가오는 두 마리의 괴수를 가볍게 일격에 분쇄하며 답했다.
“이유는?”
“구원회가 9층에 있는 무언가를 이용해 괴수들을 이쪽으로 내보내는 것 같습니다.”
“그게 가능한가?”
“전에 봤었던 그 게이트를 여는 아티펙트. 그걸 이용한 것 같습니다.”
김신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한유성은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인원이 너무 부족해.”
떨어지는 괴수들과 9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구원회.
모든 것이 불리하지만,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라면 탑으로 가야 한다.
“가지 않는다면 악화만 될 뿐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보게.”
귀에 낀 무선이어폰을 건드리며 어딘가로 전화하는 한유성.
김신은 방법을 찾을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그를 위해서 손에 쥔 검을 휘둘러 주변을 정리해갔다.
서걱! 서걱!
검기로도 충분한 수준의 괴수들.
닥치는 대로 베어내던 김신을 향해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왔다.
쿠쿠쿠쿠쿵!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거칠게 땅이 떨리고, 하늘의 빛을 모두 가리겠다는 듯 주변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거대한 무언가.
-캬아아아악!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를 마주한 김신은 곧바로 미소를 짙게 띄웠다.
‘알아서 와주니 고맙네.’
압도적인 마나의 파동에 끌려온 녀석은 바로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던 거대한 뱀.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리고 달려드는 모습이 꽤 위협적이었지만, 상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B22
쿠구구구구궁!
계속해서 달려드는 뱀.
김신은 녀석이 벌린 아가리를 노려보며 천천히 검기에 의지를 담았다.
‘벤다.’
집중 또한 노력의 산물.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이제는 빠르게 검강을 만들 수 있게 된 김신은 검강이 가득 맺힌 검을 들고 녀석의 아가리를 향해 검강을 쏘아냈다.
쐐애애액!
맹렬한 파공성.
묵빛의 잔상이 하늘을 가른 뒤 녀석의 연약한 입천장에 부딪히자, 살을 뭉텅이로 파내며 파고들었다.
-키이이이익!
피를 질질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녀석.
재차 공격해 마무리를 지으려는 김신의 곁으로 전화가 끝난 한유성이 먼저 달려갔다.
“길드장...님?”
얼떨떨한 김신을 스쳐 지나간 한유성은 [질량조절] 특성을 가볍게 활용하여 건물의 사이사이를 뛰어 녀석의 머리 위로 뛰어 올라갔다.
-키이이익?
고통에 몸부림치던 녀석이 이상을 느낀 것도 그 순간이었다.
급격하게 무거워지는 머리.
눈알을 굴려 머리 위에 있는 한유성과 눈을 마주친 녀석은 고개를 흔들어 떨어뜨리려 했지만, 더욱 무거워진 무게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쾅쾅!
묵직한 한유성의 공격을 맞으며 점점 더 빠르게 떨어지는 뱀의 머리.
늘어나는 한유성의 무게에 의해 가속이 붙은 녀석의 머리가 마침내 땅에 닿은 순간.
────!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울림과 함께 녀석의 머리가 한유성의 발에 밟혀 말 그대로 곤죽이 되었다.
그렇게 뱀을 처리하고 돌아온 한유성.
그의 얼굴을 본 김신은 그가 꽤 후련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김신의 생각이 맞는지 한유성은 가볍게 미소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안 그래도 거슬렸는데, 자네 덕에 쉽게 처리할 수 있었네.”
“아...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김신에게 한유성은 원래 하려 했던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아까 말했던 탑으로 간다는 것 있지 않은가?”
“예. 아무래도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모두가 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생각을 했구만.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따로 탑으로 들어갈 소수의 별동대를 구해봤네.”
“그럼 아까 그 전화가?”
“맞네, 주변 길드장들에게 도움을 구했어.”
서울에 남아 괴수들을 막아줄 헌터들을 제외한 소수의 강력한 힘을 가진 헌터들을 모은 별동대의 습격.
원래대로라면 탑을 올라 정상적인 루트로 던전까지 도달해야겠지만, 게이트가 열려있는 이상 저 게이트의 너머로 넘어가기만 하면 곧바로 구원회가 있는 장소로 갈 수 있다.
‘이미 한 번 겪어봤으니까.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야.’
게이트에서는 아직도 계속해서 괴수가 떨어지는 중이다.
그렇다는 말은 저 너머에서 도사리는 위험은 구원회뿐이 아닌, 괴수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건물 너머로 떨어지는 괴수를 바라보던 김신은 고개를 돌려 한유성에게 물었다.
“별동대는 몇 명입니까?”
“자네와 나를 포함해서 20명.”
“모두가 찬성했습니까?”
“처음에 쉽게 믿진 않았지만, 자네의 이름을 대니 수긍하더군.”
지원자로 받은 헌터들은 대부분의 S급 헌터였고, 소수의 A급 헌터가 포함되어 있었다.
진입할 사람들의 이름을 들은 김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입할 방법을 물었다.
“진입방식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탑을 통해 갈 생각이네. 그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지 않나.”
9층을 등반하려는 한유성의 계획.
김신은 한유성에게 훨씬 빠른 방법을 설명했다.
“조금 위험하겠지만, 곧바로 구원회가 있는 장소에 갈 방법이 있습니다.”
김신의 말에 놀란 목소리로 답하는 한유성.
“그런 방법이 있나?”
김신은 한유성의 물음에 하늘에 열린 게이트를 바라보며 답했다.
“방법은 바로 저 게이트입니다.”
“게이트?”
“예, 지금 탑에 있는 괴수를 인위적으로 만든 게이트를 통해 쏟아내고 있으니, 저걸 역이용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가능하겠나?”
“탑의 층과 층을 이어주는 포탈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미 한번 게이트를 넘어봤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김신.
한유성은 그의 확신에 찬 눈빛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다면 나는 저 위까지 도달할 방법을 찾아보겠네.”
***
한유성이 길드장들에게 연락을 돌리는 사이.
김신은 곰곰이 올라갈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을 띄워 올려 진입한다.
마법으로 도와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한유성은 전화를 끝냈는지 김신에게 다가와 말했다.
“바람을 다루는 S급 헌터의 도움을 받아 올라가기로 했네. 하지만, 조금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하더군.”
바람을 이용한 진입.
그 방법에 도움이 될 마법을 알고 있는 김신은 한유성에게 위험 부담을 줄일 방법을 알려줬다.
“위험한 부분은 제 도움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정말인가?”
“예.”
“그렇다면 최대한 빠르게 오라고 해야겠군.”
그 이후로 전달받은 습격 시간은 30분 후.
김신과 한유성은 수호길드의 팀장들에게 괴수를 토벌할 것을 말한 뒤에 약속된 장소를 향해 움직였다.
2.
서울 전 지역에 열린 게이트로 인해 마비된 도로.
김신과 한유성은 미리 약속된 장소에 도착해 주변을 돌아다니며 돌아다니는 괴수들을 토벌했다.
-꺄아악!
괴수에게 쫓겨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시민들.
“고개 숙여요!”
김신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러가며 위험에 빠진 시민들을 구출했고, 한유성 또한 특성을 활용해 주변을 돌아다니며 괴수를 토벌했다.
“역시 이대로는 끝이 없겠습니다.”
“맞네.”
쉴새 없이 쏟아지는 괴수들을 상대하기를 20분.
주변에 지원을 약속한 헌터들이 하나, 둘 모였다.
후우웅!
맹렬한 바람이 불며 괴수를 감싸고, 괴수를 감싼 바람이 일제히 칼날이 되어 괴수를 분쇄한다.
-키에에엑!
각자의 방식대로 주변에 있는 괴수들을 분쇄하며 도착한 헌터들.
그들이 면면을 본 김신은 엄청난 존재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모두 모였습니다.”
김신의 말에 한유성은 모두가 모인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다가와 말했다.
“태풍길드장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모두가 계획을 들어 알고 있는 이상 별다른 설명은 필요 없다.
말없이 바람을 다루는 그의 주변으로 모인 헌터들.
김신은 거세지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주변에 있는 헌터들에게 부유마법을 걸어줬다.
‘레비테이션.’
두둥실 떠오르는 헌터들.
구원회와의 전면전은 앞둔 그들을 감싼 바람은 맹렬하게 솟구치며 그들을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날려 보냈다.
날아가는 별동대의 곁으로 스쳐 지나가는 괴수들.
근처까지 다가온 괴수들은 태풍길드장이 쏘아낸 바람에 갈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손상된 모습으로 튕겨 나갔다.
50m 30m 10m.
점점 가까워지는 게이트.
마침내 보랏빛의 게이트를 넘어서는 순간, 익숙한 울렁거림과 함께 풍경이 바뀌었다.
***
짙게 낀 구름과 하늘을 가릴 것처럼 솟아오른 거대한 나무들.
두 가지의 환경이 만들어낸 분위기는 탑의 9층에 진입한 별동대를 긴장하게 하기 충분했다.
-크르르르.
진입과 동시에 별동대의 주변을 둘러싼 기괴하게 변이된 괴수들.
김신은 그 괴수들의 사이로 신전의 중앙에 놓인 거대한 조각상에 무언가를 하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우웅!
붉은빛을 내뿜는 보석을 조각상에 가져다 대는 남자.
그가 가진 보석이 조각상을 파괴하는 것을 본 김신은 그의 정체가 파괴의 홍옥을 들고 있는 구원회의 회장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저기 있습니다.”
김신의 말에 고개를 돌린 헌터들.
그들도 곧 김신이 가리킨 방향에 있는 회장이 하는 행동을 보았다.
부서지는 조각상과 그 사이로 새는 시커먼 마나.
그 마나가 흘러간 자리에 있는 동, 식물이 영향을 받아 기괴하게 변하는 것을 본 순간, 한유성의 행동을 시작으로 습격이 시작됐다.
탓!
별동대를 둘러싼 괴수를 향해 직선으로 쏘아진 한유성.
마나가 가득 맺힌 주먹을 들어 휘두른 그의 공격에 맞은 괴수가 일격에 터져나갔다.
퍼억!
그제야 고개를 돌려 이상을 감지한 구원회의 회장.
“이곳에 직접 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한 그는 고개를 돌려 김신과 눈이 마주치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안 그래도 직접 찾아가려던 목표가 제 발로 찾아와주었으니 말이야.”
불길하게 빛나는 홍옥을 손에 쥔 회장의 말에 김신은 품에 있는 갈색의 보석을 들어 올리며 답했다.
“찾아가려면 좀 힘들 거야.”
김신의 비꼬는 말에 안색을 굳힌 회장은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는 조직원들을 향해 외쳤다.
“구원을 받고 싶다면 저 헌터를 죽이고 아티펙트를 가져오도록!”
달려오는 괴수들과 구원회의 조직원들.
그들을 마주한 별동대는 필사의 전투를 시작했다.
3.
개개인의 무력으로는 김신이 있는 별동대가 압도한다.
하지만, 숫자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는 법.
그래서 가장 먼저 이곳에 오기 전 세워놓은 계획은 김신이 미끼가 되는 것이었다.
-위험하네!
-괜찮습니다.
구원회의 회장에 손에 파괴의 홍옥이 들어간 것을 알고 있음에도 직접 회장을 상대하겠다고 말한 김신.
그는 파괴의 홍옥을 상대할 방법이 있었기에 그리 두렵지 않았다.
“계속 도망치기만 할 셈이냐!”
전력으로 달아나는 김신을 쉽게 따라잡지 못하는 회장.
답답함을 느낀 그는 밝게 빛나고 있는 차원의 파편을 매만졌다.
우웅!
김신의 옆으로 열리는 보랏빛 게이트.
파괴의 홍옥을 들고 있는 회장은 너머에 있는 김신을 향해 몸을 날렸다.
기감에 잡힌 회장의 움직임에 김신은 곧바로 몸을 틀어 그가 내미는 파괴의 홍옥을 향해 갈색의 보석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키기기깅!
듣기 힘들 만큼 날카로운 소음을 만들며 주변을 모두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파괴의 홍옥에 맞서는 갈색의 보석.
구원회의 회장은 김신이 들고 있는 보석의 정체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한차례 격돌 이후 거리를 두고 멈춰선 김신.
그는 회장을 향해 보석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었다.
“이게 있어서 파괴의 홍옥이 별로 무섭지 않더라고.”
파괴의 홍옥과 맞설 힘을 지닌 보석.
창조의 기반을 다지는 갈색의 보석은 유일하게 파괴의 홍옥이 내뿜는 파괴의 기운에 맞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