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1.
8층 보스를 무사히 토벌하고 나온 아티펙트는 7개였다.
아티펙트를 두고 그 앞에 모인 팀장과 길드장.
한유성은 팀장들을 훑어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티펙트는 기여도에 따라서 분배하는 것이 우리 길드의 원칙이므로 이번 레이드에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한 5팀장에게 첫 선택권을 주고자 한다. 이의 있나?”
보상에 후한 한유성답게 논공행상에 대한 부분은 확실하게 매듭을 지으려 했고, 그것에 있어 팀장들은 김신이 아티펙트의 첫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아니야, 자네의 정보와 활약 덕에 부상자 없이 레이드를 끝마칠 수 있어서 내가 훨씬 고맙네.”
첫 선택권을 준다는 것은 말 그대로 방금 얻은 아티펙트를 바로 가질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
김신은 한유성에게서 유니크 아티펙트를 감정할 수 있는 돋보기를 넘겨받은 후 아티펙트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의외로 세심하시네.’
사실 모든 아티펙트를 감정할 수 있지만, 골동품까지 감정한다는 것을 숨길 수 있게 해주려는 그의 모습에 소소한 고마움을 느끼며 김신은 천천히 아티펙트를 훑었다.
“흐음...”
검과 창을 비롯한 무기와 방패, 그리고 갑옷과 로브, 그리고 신발과 검술 교본까지.
그중 김신의 손을 잡아끈 것은 로브였다.
‘자아가 담긴 에고(Ego)아티펙트라?’
김신은 기억을 훑어보는 것을 가게로 돌아가서 하기로하고 우선은 가방에 집어넣었다.
“5팀장의 선택이 끝났으니, 나머지는 이후에 분배하도록 하고 우선은 돌아가서 푹 쉬자고.”
“예!”
구원회가 기다리고 있는 9층.
다가올 전투에 앞서 수호길드는 무사히 8층의 등반을 마쳤다.
***
8층의 등반을 마친 수호길드원들이 무사히 길드로 복귀한 그때.
구원회를 쫓는 길드들이 턱밑까지 다가온 것을 알고 있는 구원회의 회장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한발 앞서 움직였다.
여인의 누워있는 모습이 조각된 거대한 조각상이 중앙에 놓인 신전.
회장은 그곳에 있는 조각상의 앞에 서서 조용히 조각상을 쳐다봤다.
“저주받은 존재를 깨우리라.”
조용히 읊조린 회장은 손에 쥔 파괴의 홍옥을 꺼내 들어 석상의 앞에 가져다 대었다.
파스스스-
붉은빛이 뿜어짐과 함께 점점 흩어져가는 조각상.
거대한 조각상의 일부분이 회장에 의해 사라지자, 신전의 내부가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그와 함께 부서지던 조각상의 틈에서 나오는 검게 물든 마나.
그 불길한 마나는 주변에 있는 자연을 물들였고, 곧 그 마나에 침식을 받은 동물과 식물은 기괴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꾸드드득!
나무의 중간에 눈이 생기며 뿌리로 걸어 다니기 시작하고, 동물들은 그 크기가 비대하게 커지며 흉성이 폭발했다.
-커허어어엉!
거기에 더불어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조각상의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9층의 괴수들.
회장은 그 모습을 조용히 훑어보고는 자신을 추종하는 구원회의 조직원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살 가치가 없는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서 죽는 선택받은 인간들이라. 참 아이러니하겠어.”
말과 함께 괴수들이 있는 바로 앞에 열리기 시작하는 거대한 게이트.
위이이이잉!
회장은 게이트의 너머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를 감상하며 옅게 웃었다.
2.
탑에서 복귀한 직후, 김신은 똘망이를 데리고 가게로 돌아갔다.
딸랑-
익숙한 소리에 가방 안에서 머리를 쏙하고 내빼는 똘망이.
주변을 슬쩍 둘러보고는 김신을 보며 귀엽게 울었다.
-삐익?
“응, 집이야.”
-삐익!
등반 동안 높은 농도의 마나에 영향을 받아 부쩍 커버린 똘망이가 가방 안에서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며 뛰쳐나가는 것을 보며, 김신은 한유성에게 들은 앞으로의 계획을 곱씹었다.
-현재까지 8층의 등반을 끝낸 길드는 모두 15개일세. 추후 계획까지 통틀어 보자면 20개 정도로 많아지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기에 이틀 후 등반을 끝낸 모든 길드가 전부 구원회가 있을 9층의 던전으로 향할 걸세.
지구에 발붙이고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지은 죄가 전부 까발려진 구원회.
처음에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한 그들의 종말은 모두 그들이 지어낸 이야기였다는 것으로 무마시켰고, 또한 그들이 아티펙트를 노리고 여러 유명 헌터들을 죽이거나, 납치한 사실까지 퍼지면서 대부분의 시민은 그들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냈다.
‘이제 곧 어떻게든 끝이 나겠지.’
잡거나, 죽이거나.
아마 잡혀도 편하게 살진 못할 거다.
잠시 고민하던 때, 갑작스레 울리기 시작하는 사이렌과 대피방송.
위이이이잉!
[S급 게이트 경보 발령! 현재 방송이 들리는 지역에 계시는 분들은 가까운 대피소나 건물 내부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현재 방송이···]
“S급?!”
대피방송과 열린 게이트의 등급에 놀라기도 전에 다급하게 울리는 핸드폰.
한유성에게서 온 전화를 받자, 분주하게 준비 중인 주변의 소음과 함께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피방송은 들었으니 알겠지. 그러니 짧게 말하겠네. 아무래도 우리보다 구원회가 한 발 더 빠르게 움직인 것 같네. 서울을 포함한 다른 도시에도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어. 마치 총공격처럼 말이야. 그중 서울이 가장 심각한 상황일세.
“...!”
갑작스레 열린 게이트와 구원회를 뒤쫓는 길드들의 8층 등반.
이 정보를 접하지 못했을 리가 없는 회장과 게이트를 마음대로 여닫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아티펙트 까지.
한유성의 말처럼 구원회가 한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는 오히려 더 공교로웠다.
“일단 저도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우선은 열린 게이트를 막는 것이 급선무.
계획의 실현은 도시를 활보하는 괴수들을 전부 잡고 난 후에 할 일이다.
-알겠네, 최대한 조심해서 오게.
전화를 끊고 잠시 창문 너머 밖을 바라본 김신.
‘이 미친 새끼.’
서울의 거의 전 지역을 덮은 게이트.
빼곡하게 들어찬 보랏빛의 물결들의 틈으로 계속해서 괴수들이 떨어져 내렸다.
쿵! 쿵!
김신이 있는 가게에서 멀지 않은 아파트 단지 앞까지 떨어진 괴수.
김신은 곧바로 장비를 챙겨 들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
갑작스레 열린 게이트.
그 탓에 물밀 듯 밀려오는 괴수를 상대하는 길동의 헌터들은 시민들의 대피를 도와주던 중 위기를 맞았다.
-크르르릉!
C급의 블러드 울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가진 늑대.
어지간한 공격에는 피해를 입지 않는 괴수의 모습에 헌터들은 계속해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침을 흘리며 천천히 다가오는 늑대.
그 늑대의 모습을 보며 모여 있는 헌터들은 모두 죽음을 떠올렸다.
“시발! 죽더라도 일단 뭐라도 해보자!”
모여 있는 헌터들 중 가장 강한 B급 헌터의 말에 각자의 스킬을 사용하려던 헌터들.
우웅!
마나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한 늑대의 모습에 급하게 스킬을 욱여넣었으나 유의미한 피해를 주지 못했다.
-크허어어엉!
오히려 더 광포화 된 괴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아가리를 쩍 벌리는 괴수의 모습을 보며 마지막으로 주마등을 보던 헌터들의 앞을 가로막는 펄럭이는 로브와 그 로브에 시선이 빼앗긴 괴수의 사이로 지나가는 빛살 같은 무언가.
서걱!
예리한 절삭음의 소리와 함께 괴수의 몸이 기우는 것을 보며, 헌터들은 그 괴상한 광경을 만든 사람을 눈으로 뒤쫓았다.
허공을 떠다니는 붉은 로브를 잡아서 뒤집어쓴 의문의 헌터.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는 그의 모습에 헌터들은 안도했다.
“살, 살았어...”
곧바로 의문의 헌터의 곁으로 간 대표 격인 B급 헌터가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그들을 구해준 의문의 헌터는 감사 인사는 필요 없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덩치가 5m를 넘어가는 건 A급 수준이니까 가까이 가지 마시고, 나머지 3m 수준의 괴수들만 상대하면서 주변 시민들의 대피를 도와주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곧바로 같이 있던 헌터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떠나가는 B급 헌터.
그는 아파트단지 밖으로 나가면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어떻게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내 수준을 아는 거지?’
신기한 의문의 헌터.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가 말해준 정보를 주변의 헌터들에게 퍼트리기 시작했다.
3.
아파트 단지에 있는 위기에 빠진 헌터들을 구해주고 정보를 알려준 헌터의 정체는 바로 김신.
그는 수호길드로 가는 길에 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헌터들을 구해주며 괴수를 상대하며 알아낸 정보를 조금씩 퍼트렸다.
‘괴수들이 마치 찍어낸 것 같이 비슷해.’
5m가 넘는 괴수들은 A급.
3m가 넘고 5m가 안 되는 괴수들은 B급.
나머지는 다 C급 수준.
외형 또한 몇몇 동물들을 빼면 대부분은 곤충 혹은 나무였다.
서걱! 서걱!
달려드는 두 마리의 지네를 가볍게 베어낸 김신.
대부분 대피하느라 비어버린 길가를 뛰어다니며, 김신은 감정을 끝마친 로브를 향해 말했다.
“날 수 있어?”
마치 사람처럼 끝에 달린 후드를 까딱거리는 로브.
김신은 자아가 담긴 물건인 에고(Ego)아티펙트에 몸을 맡겼다.
“최대한 빠르게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날아가줘.”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는 로브.
로브는 곧바로 김신의 등을 감싸며 쫙 달라붙었고, 그 상태 그대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흡!”
50m 정도의 높이.
떨어져도 마법을 사용해 죽진 않겠지만, 그래도 높이에서 오는 압박이란 것이 있다.
‘최대한 자제해야겠어.’
김신은 그런 생각을 하며 수호길드가 있는 강남으로 날아갔다.
***
쾅! 쾅!
지축이 흔들리는 거대한 굉음과 진동.
닿는 모든 것을 뭉개고 지나가는 거대한 뱀.
길이만 따져도 100m는 훌쩍 넘으며 그 두께는 족히 10m는 될 법한 존재 자체로 재앙의 수준인 괴수를 바라보는 한유성은 하늘을 바라보며 이를 깨물었다.
‘최악이군.’
헌터들의 숫자를 아득히 뛰어넘는 엄청난 개체수의 괴수.
보통 단시간에 열렸다 닫히는 게이트의 특성을 무시한 채, 서울의 상공에 열린 게이트는 계속해서 괴수들을 쏟아냈다.
‘이대로 가다가는 끝이 없겠어.’
한유성은 앞에 있는 거대한 뱀을 잡으려 했지만, 밀려드는 괴수에 의해 발목이 잡혔다.
퍼억! 빠악!
끊임없이 몰려오는 온갖 곤충과 거대해진 동물들.
상대하는 것 자체는 무리가 없었지만, 어디까지나 상황을 종료시키기 위해서라면 저 위에 열린 게이트를 닫아야 한다.
‘무언가 방법을...’
바로 그때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붉은색 점 하나.
‘뭐지?’
새로운 괴수의 출현인가 싶어 눈을 돌린 한유성은 그의 시야로 식별할 만큼 다가오자,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5팀장?’
그가 뒤집어쓴 옷가지는 분명 8층의 클리어 당시 가져간 아티펙트.
‘이젠 하다 못해서 하늘까지 날아다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한유성의 앞으로 가볍게 내려앉은 김신.
그는 주변에 있는 괴수들을 향해 검기를 내뿜어 정리한 후, 그를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는 탑으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