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1.
“뭐, 뭐에요. 그건?!”
한설의 놀란 목소리에 그녀와 눈을 맞추며 답하는 김신.
“새로 배운 검술이에요.”
“검술이요? 스킬이 아니고요?”
“어떻게 보면 스킬도 되겠네요.”
“그게 무슨...”
검술로 사용하는 검강은 어떻게 보면 스킬과 비슷하지만, 스킬은 아니다.
한설의 말에 마땅히 설명할 방법이 없던 김신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한설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진 채로 누워있는 두 마리의 괴수를 보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떻게 사람이 매번 볼 때마다 더 엄청난 걸 보여주는 거야······’
자신의 아버지인 한유성에게 탑에서 성태수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직접 보는 것과는 다르다.
마석의 등급으로 파악한 괴수의 추정 등급은 대략 B급에서 A급.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일격에 끝냈다는 것은 그가 그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정말 S급 헌터가 되겠구나.’
수재라고 평가받던 자신의 능력을 월등히 뛰어넘은 김신의 모습에 한설은 눈을 빛냈다.
‘꼭 쫓아갈 거야.’
김신의 곁에 나란히 서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능력 또한 그와 비슷해져야 하겠지.
‘도움만 받는 건 싫어...’
위험한 일이 있을 때마다 홀로 나섰던 김신.
인천항 소탕 당시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꾸욱-
두 주먹을 꾹 쥔 상태로 상황을 전달하는 김신을 바라보는 한설.
그녀는 빠르게 성장해서 위험한 일이 닥치면 김신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
똘망이의 존재는 예상보다 더 효율적인 등반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삐익! 삐익.
급한 것과 급하지 않은 것.
가까이 있어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괴수와 다가오며 위협이 될만한 괴수를 구분하는 똘망이.
의념으로 들려오는 말은 김신이 알아듣기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4팀이 있는 우측 끝에서 거대한 뱀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김신의 경고가 들린 후엔 어김없이 괴수가 나타났고, 전투 중 조금이라도 수세에 몰리는 것이 보이면 즉각적으로 근처에 있는 한유성이나 김신이 나타나 직접 서포트했다.
후웅!
사물의 파손과 사람들의 시선.
그를 신경 쓰게 하던 두 가지 문제에서 자유로운 한유성은 평소 길드장으로서 보여주던 모습이 아닌, 강력한 헌터의 모습을 톡톡히 보여주었다.
“흐읍!”
호흡을 짧게 들이마시며 주먹을 내뻗는 한유성.
마나가 가득 담긴 그의 주먹이 공기를 달구며, 4팀의 우측으로 다가온 거대한 뱀을 향해 내리꽂혔다.
콰아앙!
힘의 전달을 완벽하게 받은 공격에 적중함과 동시에 머리가 터져나간 뱀.
투욱-
맥없이 쓰러지는 괴수의 모습을 보며 4팀이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저기 계신 5팀장님이랑 길드장님이 지분 다 쓸어가시네.”
그런 말이 나올 만큼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두 사람.
길드원들은 두 사람의 존재를 믿고 더욱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할 수 있었다.
2.
사망자, 부상자 전무.
장장 5일간의 대장정에 마무리를 지을 던전을 앞두고 한유성은 김신이 보여준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계획을 대폭 수정하길 잘했군.’
원래 다수의 괴수와 마주치는 일이 많은 탑의 특성을 생각해 넓은 포지션을 잡으려 했으나, 탑에 오르기 전 김신과 한 대화로 계획을 수정했다.
밀집된 대형과 그 중간에서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맡을 김신.
무전기를 들고 각 방위에 선 팀들조차 5일간의 전투를 전부 합쳐도 10번이 채 안 될 만큼 안전하게 왔다.
그렇게 도착한 던전 앞에서 진입 준비를 하는 길드원들을 보며 한유성은 다시 한번 입을 열어 계획을 알렸다.
“8층의 보스에 대한 정보가 없는 만큼, 평소 하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디펜더가 앞을 막고, 전위가 그 뒤에 마지막으로 스트라이커가 가장 뒤에서 포지션을 잡도록.”
팀이 아닌 길드 단위의 레이드.
김신은 한유성의 말에서 등반할 때와는 다르게 모두의 싸움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간단한 브리핑 이후 김신에게 다가온 한유성은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덕분에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네.”
“그건 저만의 노력이 아닌, 모두가 이뤄낸 일입니다.”
“역시 자네는 공을 모두와 나누는 걸 좋아해. 그러니 더욱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잠시 김신을 지켜보던 한유성은 조금 낮게 깔린 목소리로 김신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걱정일세. 던전 앞까진 안전하게 왔지만, 던전 안은 완전 다른 공간이니 말이야.”
탑의 특징은 던전에서 나타난다.
진입한 사람과 그들 개개인의 능력이 강할수록 던전에서 등장하는 보스가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약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정보를 떠올린 김신은 한유성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챘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던전 까지 토벌했으면 좋겠다는 거구나.’
수적 우위를 가져간다 해도 그에 맞추어 강해지는 보스를 생각해보면 어려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김신 또한 한유성과 같은 마음.
곰곰이 생각하던 김신은 한유성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던전 안에 들어가면 잠시 스트라이커 포지션에서 주변을 살펴도 되겠습니까?”
“왜 그러는가?”
“제가 상대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정보가 없는데도 가능하겠나?”
“찾아내 보겠습니다.”
S급에 준하는 전위의 공백은 크다.
하지만, 그 공백은 자신이 채우면 되기도 할뿐더러 한유성은 김신이 보여준 모습을 꾸준히 봐왔던 만큼, 계속해서 믿기로 마음먹었다.
‘그라면 또 뭔가를 이뤄내겠지.’
생각과 동시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한유성.
김신은 그의 동의에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한유성이 다시 준비하러 가는 것을 바라보며 김신은 던전이 있는 어두컴컴한 숲을 바라봤다.
‘충분히 알아낼 수 있어.’
아티펙트에 담긴 기억에서 나오는 방대한 지식들.
그것들을 빠르게 뒤져서 보스의 약점을 찾아내고, 집요하게 그것을 노리면 큰 피해 없이 상대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한 김신은 자신의 역할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최대한 빠르게 약점을 알아낸다.’
김신의 고민이 끝남과 동시에 들리는 한유성의 목소리.
“모두 입장!”
김신은 앞장선 한유성을 따라가며 조용히 스스로 세운 계획을 곱씹었다.
***
어둑한 늪지대에서 가장 나무와 덩굴이 많이 자라난 자연 그 자체의 8층 던전.
그 주변을 꼼꼼히 살피며 안을 조용히 돌아다니던 수호길드의 앞으로 거대한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아아아악!
5m에 육박하는 몸체.
양 갈래로 갈라진 머리.
각 입에서 뿜는 각기 다른 속성의 브레스.
사족보행을 하며, 왼쪽 머리에서는 독을 내뿜고 오른쪽 머리에서는 불을 내뿜는 셀러맨더.
“모두 무기 들어!”
그 압도적인 위용에 놀라는 길드원들 사이에 있는 김신은 보스의 모습에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다.’
처음 보는 괴수도 아니니, 위험할 것도 없다.
상대법을 알고 있는 김신은 곧바로 입을 열어 모두에게 알렸다.
“머리 옆에 있는 작은 구멍! 거기가 약점입니다!”
시간조차 필요 없다.
미리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할 뿐.
-셀러맨더의 귀는 뇌와 곧바로 연결됐기에 취약하다.
아티펙트에 담긴 기억은 김신에게 힘을 주기도 했지만, 이렇듯 다른 세상의 정보 또한 알려줬다.
“스트라이커는 모두 괴수의 그 약점을 노리고, 디펜더는 모든 스킬을 사용해 방어하도록!”
“예!”
모든 스트라이커가 일제히 스킬 준비를 하자, 거대한 마나의 흐름에 반응한 셀러맨더가 곧바로 달려들며 가장 앞에 서 있는 디펜더와 부딪쳤다.
콰앙!
그저 단순한 돌진공격만으로도 위태롭게 흔들리는 디펜더.
전열이 무너지면 일제히 휩쓸릴 수 있는 상황에 디펜더의 바로 뒤에 있는 전위들이 앞으로 나와 셀러맨더의 주변을 감쌌다.
“어지간한 공격은 피해를 주지 못하니, 모두 각자가 가진 가장 강한 공격을 사용하도록!”
“예!”
검, 창, 너클.
각자의 스타일대로 무기를 쥔 길드원들이 스킬을 사용하기 전, 김신은 수인을 맺어 버프를 사용해줬다.
‘메모라이즈, 스트랭스, 헤이스트, 샤프니스.’
우웅!
푸른 빛이 공격하려는 전위들의 몸에 내려앉자, 한층 더 빠른 움직임으로 셀러맨더에게 공격을 가했다.
쾅! 콰앙! 펑펑!
셀러맨더의 외피에 쏟아지는 전위의 스킬들.
대부분 무기를 강화하거나 육체를 강화하는 공격이었지만 단단해진 비늘을 뚫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김신의 생각이 들어맞듯 계속해서 공격하는 전위들이 다급하게 한유성을 향해 말했다.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갈 만큼 강력한 방어력.
그나마 팀장급의 공격이 어느 정도 상처를 줬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키이이익!
상처를 입은 것 때문에 더욱 크게 발광하는 셀러맨더.
쾅! 쾅!
앞발과 꼬리로 주변을 내리치는 보스의 모습에 주변에 있던 전위가 뒤로 다급하게 물러서야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한유성은 곧바로 스트라이커를 향해 말했다.
“공격!”
대기가 마나로 인해 떨리는 느낌과 함께 셀러맨더의 머리로 날아가는 형형색색의 스킬들.
쾅! 퓩퓩!
약점인 귀 근처에 공격을 적중당하자, 셀러맨더는 앞에서 공격을 막고 있는 디펜더가 아닌 뒤에 있는 스트라이커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우웅!
입가에 가득 모이는 화염.
오른쪽 머리에서 모이는 마나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셀러맨더의 행동을 아는 김신이었다.
‘위험하다.’
강화된 셀러맨더가 쏘아내는 브레스는 마나 그 자체를 속성으로 사용하는 것이기에 마나가 전부 흩어지기 전까지 불타오른다.
특징을 떠올림과 동시에 준비하고 있던 김신은 빠르게 검을 빼 들어 셀러멘더의 턱을 향해 검기를 날려 보냈다.
쐐액! 콰앙!
브레스를 쏘아내려고 입을 열었던 셀러맨더의 입이 강제로 닫히며 좌우로 뿜어지는 불길.
화아아악!
꽤 떨어진 거리임에도 후끈함이 느껴질 정도의 공격에 스트라이커들의 표정이 굳었다.
“다시 공격 준비해!”
한유성은 스트라이커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셀러맨더에게 달려나갔다.
셀러맨더에게 다가갈수록 점차 빨갛게 달아오르는 한유성의 주먹.
그와 함께 마나가 그의 손에 가득 맺혔다.
후웅!
한유성의 전매특허 스킬인 유성권(流星拳).
집중적인 공격을 받은 셀러맨더의 오른쪽 머리에 그의 주먹이 닿은 순간.
콰아앙!
마치 폭탄이 터진 것만 같은 굉음과 함께 하늘 위로 솟아오른 오른쪽 머리가 힘없이 내려앉았다.
-키에에에엑!
그 모습을 본 왼쪽 머리가 굉음을 내지르며 브레스를 쓰려 했지만, 준비가 끝난 스트라이커의 공격이 더 빨랐다.
슈슈슝!
면보다는 점을 노리는 공격들.
그중에 한설이 쏘아낸 무수히 많은 얼음의 창 중 하나가 약점인 귓가에 꽂혔고, 치명상을 입은 셀러맨더의 머리가 그게 흔들렸다.
‘지금!’
그 모습에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간 김신.
우웅!
검에 맺힌 검기가 중첩되고 또 중첩되어 강기를 만들었고, 김신은 그렇게 강기가 맺힌 검을 들고 높이 뛰어올랐다.
-키에에에엑!
고개를 연신 흔드는 셀러맨더.
위로 솟구쳤던 머리가 땅을 향해 잠시 내려온 순간, 김신은 검을 들어 셀러맨더의 약점에 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예리하게 가르고 들어가는 감각이 손끝을 타고 들어옴과 동시에 감전된 듯이 굳어버린 셀러맨더.
김신은 그런 셀러맨더에게 박혀있던 검을 거칠게 뽑아 들었다.
-···키에에엑.
그와 동시에 셀러맨더가 거대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힘없이 쓰러졌다.
쿠웅!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약점을 알려준 김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정보가 없는 층을 등반하면 항상 따라오던 피해가 전혀 없다는 것.
믿기지 않는 그 모습에 길드원들이 멍하니 김신을 바라봤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어.”
길드의 베테랑 팀장인 1팀장의 말.
그 말에 모든 이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