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1.
성태수를 잡은 보상에 대한 문제가 끝난 후 한유성은 8층 등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8층 등반은 별다른 일이 없다면 내일부터 이뤄질 것이네.”
“이제는 정말 미지(未知)와의 싸움이군요.”
“그렇지.”
탑의 진정한 위험.
알지 못하는 괴수와 환경을 상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동안은 사전에 얻은 정보로 해결해 나갔다면 이제는 본능적인 감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새로운 층을 오르는 길드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들어가지만, 한계가 있다.
거대한 광학장비를 들고 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정찰용 드론의 경우에도 환경에 대한 제한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우를 생각한 김신은 8층 등반에 앞서 드론보다 더 능동적이고, 현명한 대처가 가능하며 안전한 등반을 도와줄 수 있는 존재인 똘망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유성에게 하기로 했다.
“길드장님. 알지 못하는 위험을 미리 알아낼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길드원들의 목숨과 재산을 위해 무조건 채용해야지. 그런데 그건 왜 묻나?”
“제가 그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인가? 어떤 방법이지?”
주저하지 않고 길드원의 목숨을 먼저 챙기는 그의 모습에 김신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꺼냈다.
“방법은 괴수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괴수를 이용해 위험을 미리 알아낸다고?”
이해하기 힘든 종류의 답 때문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한유성.
10년간 괴수를 토벌의 대상으로만 생각해온 만큼, 그의 머릿속에 괴수란 존재는 오직 죽여야만 하는 존재였다.
인식을 바꾸는 것.
김신은 자신을 믿어주는 그였기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예. 그리핀과 같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괴수를 길들여 주변을 살피게 하면 환경의 제약도 사실상 무의미하지 않겠습니까?”
앞서 말한 것처럼 드론을 들고 가도 쓰기 힘든 이유가 환경에 있는 만큼, 김신의 말을 들은 한유성은 깊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사막, 밀림 등의 가혹한 환경.
배터리의 충전조차 필요 없고, 그 자체로도 다른 괴수보다 강한 만큼 충분한 제약이 걸려있다면 확실히 그 어떤 정찰특성을 가진 헌터나 도구보다 훨씬 좋은 것은 분명하다.
고민을 끝마친 한유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신에게 말했다.
“자네가 그 말을 했다는 것은 자네가 괴수를 길들일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겠지?”
김신은 생각보다 빠른 한유성의 태도 변화에 놀랐지만, 애써 티 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예. 제가 얻은 아티펙트 중에 괴수를 길들일 수 있는 아티펙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길들였습니다.”
“뭐? 괴수를 길들이는 아티펙트? 게다가 이미 길들였다고?”
생각지도 못한 김신의 말에 놀란 한유성의 모습에 김신은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직접 보시겠습니까?”
***
독수리의 머리와 앞다리, 사자의 몸과 뒷발 그리고 하늘을 날 수 있는 튼튼한 날개.
게다가 똘망똘망한 눈까지.
-삐익?
적의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허벅지만 한 크기의 새끼 그리핀의 모습에 한유성은 말조차 못 하고 멍하니 김신을 바라봤다.
‘대체...’
마치 양파처럼 까고 또 까도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김신.
한유성은 포악하리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온순한 똘망이의 모습에 머릿속을 지배하던 편견이 조금씩 깨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습니까?”
길드 대기실에서 팀원들과 놀며 기다리고 있는 똘망이를 다시 담아서 데리고 온 김신은 한유성의 멍한 반응에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놀랍구만.”
휴, 한시름 놨다.
가장 위험한 부정의 단계를 무사히 지났다는 것에 안도하며 김신은 한유성의 앞에서 그를 관찰하는 똘망이를 만져볼 것을 권했다.
“한번 쓰다듬어 보시겠습니까?”
“어, 어? 그래도 되나?”
“예, 물론 가능합니다. 잠시만요. 똘망아.”
-삐익?
똘망이를 부른 김신은 눈을 마주친 상태로 의념을 내보냈다.
‘다른 사람이 만져도 돼?’
-삐익.
‘고마워.’
눈을 깜빡이며 괜찮다는 말에 김신은 다시 한유성에게 말했다.
“괜찮답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대화가 가능하나?”
“아, 제가 그 이야기를 빠트렸군요. 예, 가능합니다.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든 저와 저 아이는 의념으로 소통이 가능합니다.”
“그럼 정찰할 때도...”
김신의 말에 앞으로의 레이드 방식에 대해 잠시 생각하는 한유성.
미리 위험을 알아내어 파악하고 대처한다.
괴수의 특징만 알아내도 공격방식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기에 부상자와 사상자를 확실하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고민을 끝낸 한유성은 말하던 중 생각에 빠진 자신을 바라보는 김신을 향해 사과와 함께 말을 이었다.
“아, 미안하네. 자네의 말을 듣고, 등반의 방법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네.”
“괜찮습니다. 오히려 다행입니다.”
“뭐가 말인가?”
“쉽게 믿기 힘든 이야기를 믿어주셨잖습니까.”
“그건. 직접 본 것도 크지만, 자네였기에 믿어준 걸세. 자네는 항상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잖나.”
-팀장님이 항상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니까요. 그러니까 그냥 믿을래요.
5층에서 똘똘이를 길들인 모습을 보여줬을 때의 천명화의 반응과 비슷한 한유성의 모습.
김신은 그의 답에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진 것인지 다시 한번 느꼈다.
2.
-똘망이에 대한 문제는 등반에 참여하는 팀의 팀원들이 놀라지 않을 만한 방향으로 해결할 테니, 자네는 이제 좀 쉬게.
똘망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 김신은 한유성의 쉬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대기실에서 샤워만 한 후 밖으로 나와 차를 타고 태극검술길드로 향했다.
‘컨디션은 좋으니까, 지금은 그때의 감각을 되살려야 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그때의 감각.
왠지 모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아득해져만 가는 그 감각을 김신은 다시 살려내고 싶었다.
‘잡아만 낸다면 호신강기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검사로서의 욕망.
더 높은 성취를 바라는 그의 향상심은 언제고 찾아오라 했던 태진성의 말을 쫓아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태극(太極)검술길드]
넓고 웅장한 대문.
한옥의 고풍스러움과 현대의 건축미가 합쳐진 그 대문 옆에 달린 인터폰을 누른 김신.
삐-
잠깐의 시간 후, 인터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동안 바쁘다고 얼굴 볼 시간도 없던 사람이 웬일이래요.
약간 날 서 있는 목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아련함이 묻어나는 여성의 목소리에 김신은 고개를 갸웃하며 예상되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태하윤 씨?”
-흠, 그래도 목소리는 잊지 않은 것 같네.
목소리를 듣고 바로 정체를 알아채서일까?
태하윤은 처음과 다르게 꽤 수그러든 목소리로 김신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와요.
덜컹!
익숙한 대문을 지나 태극검술길드의 자랑인 연무장이 보이고, 그 연무장을 둘러쌓은 ㄱ자 형태의 한옥의 끝에서 김신에게 문을 열어주었던 태하윤이 그의 마중을 나왔다.
“반갑네요. 아니, 너무 오랫동안 못 봤으니까 그리웠다고 해야 하나?”
“예?!”
놀라는 김신의 모습에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린 태하윤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농담.”
“아, 농담...”
듣기에 따라서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농담이 지나간 후, 태하윤은 김신을 보며 미소 지은 채 방문의 목적을 물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찾아온 건가요?”
목적은 한유성과의 대련이지만, 김신은 우선 태하윤에게 당한 농담이 생각나 짓궂게 답했다.
“태하윤 씨가 보고 싶어서요.”
“...!”
김신의 말이 끝나자, 웃으면서도 항상 도도함을 잃지 않던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눈동자가 커졌다.
“어...”
그 모습에 오히려 놀란 것은 김신.
‘뭔가 이상한데?’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곧바로 농담이었다는 말을 하려 했지만, 뒤돌아선 그녀는 언제 간 것인지 벌써 한옥의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농담인데······”
***
사라진 태하윤의 뒤를 따라 한옥의 안으로 들어간 김신.
그녀의 기척을 따라가던 길목에 그가 찾던 태진성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느끼고는 자리에서 멈춰섰다.
‘다짜고짜 대련을 요청해도 되려나?’
방문은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그의 답변을 들었지만, 급한 상황 탓에 제대로 연락조차 못 했다.
그렇게 태진성이 있는 장소의 앞에서 망설이던 김신의 귓가에 들려오는 전음.
-뭐하나. 들어오지 않고.
찾던 이의 목소리에 김신은 그제야 망설임을 떨치고 태진성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드르륵-
부드럽게 열리는 미닫이문.
넓은 방 안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 그의 모습에 김신은 공손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김신의 인사에 읽던 책을 덮고, 그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짓는 태진성.
“오랜만이구만.”
“근래에 탑 등반을 비롯해 구원회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느라 못 찾아뵈었습니다.”
구원회에 관련된 일을 김신이 대부분 했다는 것을 이미 길드장들의 회의로 알고 있었던 태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고 있네. 자네가 빠르게 알아냈기에 피해가 적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네. 항상 고생이 많아.”
길드장들의 사이에서 어떤 평판인지 몰랐었는데, 이렇게 태진성의 말을 들어보니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공손한 자세의 김신을 조용히 바라보던 태진성은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그의 모습에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조카 녀석 때문에 찾아왔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군.”
“...!”
바뀐 기도만으로 단숨에 목적을 알아챈 태진성의 모습에 놀란 김신.
태진성은 그런 그의 모습에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뭐하나, 일어나지 않고.”
“받아주시는 겁니까?”
“새로운 검술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경험일세. 그러니 오히려 내가 권해야겠지.”
“과찬이십니다.”
“하하.”
가볍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태진성의 모습에 따라 일어난 김신.
개인 연무장을 향해 걸어가는 태진성을 조용히 뒤따라가는 김신의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내가 도와줄 차례로군.”
3.
김신이 4서클의 단초를 잡았던 예의 그 연무장.
마석이 촘촘히 박혀 대부분의 피해를 자체적으로 수복하고, 수련하는 효과를 증폭시켜주는 그 연무장의 위에서 김신은 조용히 태진성을 바라봤다.
마찬가지로 김신의 반대편에 선 태진성.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김신을 향해 진검을 빼 들며 말했다.
“지금의 경지에서는 수련 자체는 경지를 상승시키는 것에 그리 도움 되지 못하네.”
“예?”
수련이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니?
항상 검을 놓지 말아야 하는 검사의 자세를 정면에서 비판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은 김신.
태진성은 말의 뜻이 와전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설명했다.
“식(式)에 대한 것과 검로를 교정하는 것은 물론 충분히 수련되지만, 경지 자체를 높이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지.”
“왜 그렇습니까?”
“화경의 경지 자체가 검로의 대부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뿐더러, 그에 대한 묘리 또한 대부분 깨우쳐야 올라설 수 있는 경지라 그렇게 말한 것일세.”
“아...”
거의 모든 검로에 대한 체득.
요컨대 깨달음이라는 부분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거의 다 얻었을 때 올라설 수 있는 경지가 화경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다음 경지인 현경(玄境)은?
김신이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태진성은 그것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화경에 도달한 사람은 어떻게 다음 경지에 도달하는가?’ 이것이 자네가 지금 생각하는 문제겠지.”
“예. 맞습니다.”
“그에 대한 해답은.”
말을 하다 말고 끊은 태진성.
김신이 그의 모습에 고개를 돌리며 의문을 표하려는 순간.
“...!”
분명 방금까지 선명하게 느껴졌던 태진성의 기운이 사라지며, 그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분명 눈앞에 있다.
하지만,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현경의 경지에 올라선 것인가?’
그런 의문을 담아 놀란 표정을 짓는 김신을 향해 태진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직접 검을 들어 부딪혀 알아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