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1.
7층 보스에게서 나온 아티펙트는 골동품은 없없지만 강한우나 천명화가 사용하기는 괜찮은 아티펙트가 나왔다.
“단시간 동안 폭발적인 속도를 끌어낼 수 있는 아티펙트네요.”
가죽 부츠의 외형을 가진 아티펙트.
강한우가 낀다면 좀 더 위력적인 쉴드차징이나 방패 공격이 가능하겠고, 천명화가 낀다면 좀 더 빠른 회피와 공격을 할 수 있겠지.
양쪽 다 착용이 가능하고, 성능 또한 꽤 쓸만했기에 두 사람은 그때부터 아티펙트의 소유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왔다.
“제가 쓸게요.”
“아니, 내가 쓸게.”
“형님은 3층에서 판금갑옷 얻었잖아요.”
“너는 팀장님 덕분에 전설 아티펙트 얻었잖아.”
양측 다 물러서지 않는 팽팽한 의견 대립.
결과가 나지 않는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싸움에 결국 김신이 나서야만 했다.
“다음에 제가 비슷한 아티펙트 구해드릴 테니, 우선은 가위바위보로 정합시다.”
“오! 그런 방법이?”
“좋네요.”
역시, 단순해서 좋다.
김신은 그렇게 생각하며 가위바위보를 외쳤고, 이 아티펙트의 소유는 강한우의 것이 되었다.
“축하드립니다.”
의외로 쿨하게 상대를 축하해주는 천명화.
김신은 그 모습에 상당히 생소한 느낌을 받았다.
‘쟤가 원래 저렇게 물욕이 없는 애였나?’
아니다.
천명화는 저렇게 물욕이 없지 않다.
소소한 고민을 하며 걸어가는 김신의 곁으로 다가온 천명화.
김신은 그의 말에 왜 그가 강한우에게 부츠를 순순히 양보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팀장님, 비슷한 거로 꼭 구해주셔야 합니다?”
“너는-”
말을 하며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천명화의 순진한 얼굴.
“그래. 구해줄게.”
김신은 동생에게 물건을 양보하면 더 좋은 걸 사주겠다는 부모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김신의 5팀이 7층의 보스를 잡고, 정리하고 있던 때.
서울의 구석구석을 보고 있는 CCTV의 화면이 벽면을 가득 채운 구원회의 본거지 내부에서는 집행관이 무릎을 꿇은 채로 회장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성, 성태수가 죽었습니다.”
집행관의 말에 회장은 별다른 말 없이 조용히 고민하고 있었다.
‘불사신에 가까운 그가 죽었다.’
머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장기가 파괴되어도 회복 가능한 게 성태수다.
애초에 S급 이하의 수준에서는 주는 피해보다 회복이 월등히 빠를 진데...
그런 그가 죽었다는 것은 아마도 일격에 끝났다는 이야기가 분명 할 것이다.
‘S급에 준하는 힘을 얻은 건가?’
그렇다면 더욱 위험하다.
아직 아티펙트를 탈취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
김신이 가진 아티펙트와 다른 여러 가지의 고민을 하던 회장은 조용히 고개를 들어 회복이 덜 끝나 초점 없는 탁한 왼쪽 눈으로 그의 모습을 쫓는 집행관을 바라봤다.
“네게 이 이상의 기회는 없을 것이라 했었다.”
공간이동 능력자.
집행관의 능력을 높이 사 그에 맞는 초월급 아티펙트를 쥐여주었던 것인데, 그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서늘한 회장의 목소리에 몸을 움츠리는 집행관.
그는 본능적으로 끝이 왔음을 직감했다.
“한, 한 번만 더. 기, 기회를...”
“기회는 이미 충분히 주었다. 너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어.”
죽음을 알리는 회장의 선언.
간부들을, 나아가 조직원들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그의 그 감정 없는 목소리에 7년이라는 세월을 고생했던 집행관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7년! 7년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고생했는데! 이렇게 버리시는 겁니까!”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냐는 것이지.”
그렇게 말한 후 조용히 생각에 잠긴 회장.
집행관은 처분에 대한 답이 나오기 전 품에서 빼 든 나이프와 차원의 파편을 들고 발동시키며 외쳤다.
“인간의 정도 없는 새끼!”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공간이 일렁거리며, 회장의 옆에서 튀어나온 집행관.
그가 휘두른 나이프가 회장의 목덜미에 닿기 전, 회장의 입이 열렸다.
“모든 건 구원을 위해 할 뿐. 감정은 없다.”
어느새 꺼낸 것인지, 회장의 오른손에 들린 파괴의 홍옥.
“...!”
붉게 빛나는 홍옥의 모습에 집행관의 오른쪽 눈동자가 거칠게 떨렸다.
죽음.
저 보석이 빛을 발하는 순간, 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진다.
‘쓰러면 아직 시간이 남았······’
그리고 그 순간.
집행관의 생각과 다르게 회장의 손에 들린 홍옥은 빛을 내뿜었다.
팟!
빛이 뿜어짐과 동시에 집행관의 모습이 그대로 먼지처럼 사라졌고.
채앵! 데구르르-
그가 있던 자리에 떨어진 것은 한 자루의 나이프와 보랏빛을 내뿜는 아티펙트 하나와 그의 옷가지.
회장은 먼지로 화한 집행관의 흔적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마지막은 초라하구나.’
7년을 썼지만 가장 중요한 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회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리듯 내뱉었다.
“모두 기대 이하로군.”
특성 강화 시술을 받은 성태수도.
초월급 아티펙트의 도움으로도 탈취에 실패한 집행관도.
회장은 집행관이 떨어트린 아티펙트를 집어 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직접 나서야겠어.”
2.
7층을 지나 8층에 도착한 5팀.
5팀은 정비와 보고를 위해 곧바로 길드로 귀환했다.
“하루는 휴식일 테니까. 모두 기다리고 있어.”
“옙!”
모두 휴식을 만끽하기 위해 분주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김신은 길드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신.
어느새 다가온 것인지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김신 씨.”
고개를 돌리자, 바로 뒤에서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한설의 모습에 김신도 마주 웃으며 답했다.
“아, 한설 씨. 안녕하세요.”
“길드장님 보러 가시는 거예요?”
“예. 방금 막 탑 등반을 끝마치고 온 터라서요.”
김신의 말에 그를 슬쩍 훑어본 한설은 생각보다 먼지가 많이 붙어있는 그의 모습에 조용히 다가와 그의 가슴께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답했다.
“고생하셨네요.”
“...!”
가깝다.
너무나도.
눈처럼 하얀 피부에 오똑한 콧날.
그 끝에 자리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입술.
한설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처음인 김신의 화들짝 놀라는 반응에 그에게 바짝 붙어 먼지를 털어주던 한설 또한 실수를 자각하고, 그에게서 떨어지며 조용히 사과했다.
“미, 미안해요. 그냥 아빠한테 간다는 말에 조, 조금이라도 먼지를 털어주려고...”
목소리를 떠는 한설의 모습에 김신은 그녀가 무안하지 않게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고마워요. 이런 일은 처음이라 조금 당황했을 뿐이에요. 오히려 좋네요. 누가 이렇게 세심한 부분을 챙겨주는 게 흔하지 않아서요.”
띵!
김신이 말하자마자, 도착한 엘리베이터.
한설은 먼저 들어간 김신을 뒤따라 엘리베이터에 탔고, 두 사람밖에 없는 엘리베이터엔 정적이 가득 찼다.
김신과 다른 층을 누른 한설.
김신은 조용히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고민했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김신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
“혹, 혹시 먼지 묻은 곳이 있나요?”
“네? 아, 여, 여기 있네요!”
말없이 김신의 등에 붙은 먼지를 털어주는 한설.
‘어째 더 어색한 것 같잖아.’
오히려 더 어색해진 상황.
두 사람은 조용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자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
근래 구원회의 일과 길드레이드 일정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한유성.
길드장실에서 서류업무를 보고 있던 그에게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5팀장님이 오셨습니다.”
반가운 손님의 방문에 한유성은 비서에게 웃으며 답했다.
“들어오라 하세요.”
“예.”
눈앞을 가득 채운 서류 더미들.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지개를 켠 한유성은 들어오는 김신을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게.”
“안녕하십니까.”
반듯한 자세와 공손한 태도.
수호길드의 위상을 높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항상 엄청난 업적을 세우는 그의 모습을 보자, 한유성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탑은 자네가 말했던 것처럼 정확히 3일이 걸렸더군?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약속을 지킨다고 무리한 것은 아니겠지?”
한치의 오차도 없는 계획에 오히려 걱정이 들 정도다.
그런 한유성의 마음에 안심하라는 듯 김신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답했다.
“아닙니다.”
“그럼 다행이구만.”
한유성의 말 이후,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 두 사람의 앞에 차를 내려놓고 나가는 비서.
한유성은 가볍게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찻잔을 부드럽게 내려놓으며 그에게 물었다.
“어째 탑을 오르면서 별일 없었나?”
“일이 있긴 했었습니다.”
별일이 있다는 말에 한유성은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
“7층에서 성태수를 만났습니다.”
“성태수?”
회복특성으로 인해 엄청난 활약을 하며, 배신한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S급으로 승급시킨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강했던 헌터.
그런 그를 만났다는 말에 놀란 한유성은 되물었고, 김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더욱 놀라운 말을 꺼냈다.
“예, 별다른 피해 없이 팀원들과 힘을 합쳐 그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뭐라고?”
“성태수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 불사신을?”
“...!”
갑작스레 높아진 한유성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김신.
한유성은 그런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매번 나를 놀라게 하는 건가?”
“예?”
“이젠 줄 것도 없다 했는데!”
“해야 하는 일을 했으니, 굳이 그렇게 신경 써주실 필요는...”
“아니, 아닐세! 자네의 고생을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누가 챙겨주겠나.”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흠...”
천진난만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실력.
매번 놀라운 일을 해내는 그의 모습에 한유성은 오히려 고민이 됐다.
‘뭘 줘야 만족을 할까.’
팀원과 같이 잡았다지만, 그의 팀원들이 가진 역량을 생각해보면 성태수를 상대하는 것은 거의 홀로 했을 것이다.
공을 나누는 겸손한 자세.
요즘 헌터들과는 다른 그런 자세에 더욱 크게 만족한 한유성은 그를 보며 생각한 보상 중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에게 말했다.
“S급으로 승급이 예정되었던 성태수를 잡았으니, 자네의 실력에 대한 증명은 충분하겠지.”
한유성의 말에 눈동자가 커지는 김신.
-S급이 될 사람을 이겼으니, 이제 남은 건 승급이겠군요.
강한우와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 실현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생각이 많아졌다.
‘진짜?’
기회가 오면 승급해버리겠다고 했지만, 솔직히 이정도로 빠른 승급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 그의 생각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한유성의 말.
“연합에 추천해서 S급 승급을 추진해보겠네.”
“감사합니다.”
S급 헌터.
기대하고 있던 제안이었기에 김신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