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1.
똘망이의 도움을 받아 김신의 지시대로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던 송인아.
마음속에 걱정을 애써 숨기고 달려가던 그녀는 함정을 팠던 곳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폭발음을 듣고 멈춰섰다.
콰아아아아앙!
“...!”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올 정도로 먼 거리.
그 먼 거리를 뛰어넘어 닿은 폭발음과 뿌옇게 퍼지며 하늘을 물들이는 먼지에 송인아는 뛰던 것을 그만두고 멈춰섰다.
“이게 대체 무슨...”
어떤 스킬을 써도 저 정도의 폭발은 일어나지 않을 텐데.
말 그대로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모습에 송인아가 멍하니 서 있던 사이.
송인아의 곁으로 돌아온 강한우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가자.”
“오빠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확인할 방법이 없어.”
그의 말이 맞다.
확인할 길이 없는 막막한 상황에 고민하던 송인아의 앞에 내려앉은 똘망이.
“똘망이?”
송인아의 앞으로 다가온 똘망이가 그녀를 바라보며 길게 울었다.
-삐익~!
마치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느낌.
송인아는 그걸 본 순간, 얼마 전 그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의념으로 의사소통을 해.
생각을 공유하면 생사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송인아는 곧바로 똘망이에게 질문했다.
“오빠가 이긴 거야?”
송인아의 말을 정확히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똘망이.
고개를 끄덕이는 똘망이의 모습에 송인아는 팀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다시 돌아가요.”
***
한편 돌아갔던 팀원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한 시간.
검을 내지른 상태 그대로 서 있는 김신은 몸을 감싸는 기묘한 감각에 휩싸였다.
‘마지막에 뭔가 찌릿한 느낌이 느껴졌는데...’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감각을 고개를 털어 날려낸 김신은 던전 앞에 있을 집행관에게 가기 위해 다시 발을 옮기려 했다.
“...!”
그 순간, 김신의 몸을 감싸는 엄청난 탈력감.
텅 비어버린 단전의 느낌을 느끼며 김신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리했나.”
불사신에 가깝다는 성태수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했던 수는 성공적으로 사용했지만, 무리한 여파로 인해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쫓아가야 하는데.’
저대로 두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를 집행관이 거슬린다.
억지로 일어서 보려 했지만, 쉽게 움직이지 않는 다리.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잠시 멍하니 있던 김신의 귓가에 송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앉아있는 김신을 향해 날 듯이 달려온 송인아.
그녀는 김신의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몸을 훑어보며 말했다.
“몸은 괜찮아?”
“응, 근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삐익!
김신의 물음에 대신 답하는 똘망이.
그런 똘망이의 답을 들은 김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알려 줬구나.”
-삐익!
자랑하면서 칭찬해달라고 머리를 들이미는 똘망이.
김신은 그런 똘망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던전 입구에 있는 한 명을 확인해야 하니까 잠깐만 부축 좀 해줘요.”
“예? 부축이요? 다치신 겁니까?”
김신의 말에 놀란 듯 눈을 껌뻑이며 되묻는 강한우.
김신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아뇨, 조금 무리한 것 같아서요.”
그의 말과 함께 그의 등 뒤를 가득 채운 먼지가 바람에 날려 사라졌다.
그리고 드러난 처참한 광경.
200m의 공간이 말 그대로 무언가에 의해 터져나간 듯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다.
직후에 고개를 내려 거대한 고랑이 파인 흔적을 본 순간, 강한우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이게 A급이 만든 모습이라고?’
수준을 벗어난 강함.
필사적으로 뒤쫓으려 해도 김신은 그 이상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한우 씨?”
김신의 부르는 소리에 황급히 달려간 강한우는 그를 부축하며 조용히 말했다.
“S급이 될 사람을 이겼으니, 이제 남은 건 승급이겠군요.”
“흠...”
잠시 고민하던 김신은 강한우에게 말했다.
“만약 기회가 오면 승급해버리죠. 한우 씨한테도 좋고, 저한테도 좋으니까.”
2.
강한우의 부축을 받아 도착한 던전의 앞.
김신은 집행관이 있었던 나무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보며 결국 우려했던 대로 그가 도주했다는 것을 알았다.
“...”
부상입은 상대를 놓쳤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성태수를 잡았다는 것만 생각하자.’
어쨌든 성태수도 집행관처럼 구원회의 간부였던 만큼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고민을 끝내자, 다음 고민거리가 머릿속을 채웠다.
‘던전은 어떡하지.’
원래대로라면 하루빨리 클리어하는 것이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는 법.
김신은 똘망이의 도움으로 하루 빠르게 도착한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던전은 하루 쉬었다가 들어가도록 하죠.”
“예.”
일사불란하게 야영준비를 하는 팀원들.
김신은 그 중심에서 마석을 이용해 명상하며 내공의 회복에 집중했다.
***
다음날.
밤사이 내공을 회복한 김신은 5팀을 이끌고 던전에 들어갔다.
밀림 속에 지어진 거대한 사원.
오랜 시간 방치된 탓인지 식물이 건물의 외벽을 뒤덮은 이곳의 보스는 퓨마와 인간이 합쳐진 반인 반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7층 보스는 반인 반수. 공격은 보통 날카로운 손톱으로 하고, 순식간에 변신해서 공격하니까 주의를 기울여야 해.”
김신은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송인아는 그가 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는 마음에 넌지시 그의 곁으로 가 몸 상태를 물었다.
“진짜 괜찮아?”
“진짜 괜찮아.”
성태수의 사건도 사건이지만, 어쨌든 모든 일을 알리고 길드레이드에 합류하기 위해서라면 빡빡하더라도 이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김신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하는 송인아.
김신은 그녀의 모습에 다시 한번 안심시켜주었다.
“정말이야. 어제 마석을 아낌없이 쓴 덕에 다 회복됐어.”
“하긴, 어제 많이 쓰긴 썼지.”
그제야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송인아.
뭔가 납득하는 포인트가 미묘하게 신경 쓰였지만, 어쨌든 걱정을 그만두게 했으니 됐다.
“그럼 들어가자.”
“응.”
강한우가 선두에 선 평소와 같은 포지션으로 들어선 사원.
5팀을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거대한 사원의 석상이었다.
“...퓨마?”
송인아의 말처럼 거대한 퓨마의 석상.
석상은 사원의 중앙을 가로지른 상태로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5팀은 그 석상의 아래로 지나가 반대편에 있는 문을 열었고, 문을 열자 등장한 또 다른 거대한 공간과 그 중간에 있는 계단.
계단을 따라 올라간 시선의 끝에 있는 것은 의자에 앉은 채 5팀을 쳐다보는 수인이었다.
“보스다.”
김신의 기감에 느껴지는 강대한 존재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보스는 계단 위에서 5팀을 향해 쏘아지듯 점프했다.
그와 함께 천천히 바뀌는 외형.
피부에서 털이 자라나고, 다리가 꺾이며 동물의 그것으로 바뀐다.
탓!
순식간에 퓨마가 되어 5팀의 앞에 선 7층의 보스는 5팀을 향해 거대한 포효를 내질렀다.
3.
그르렁거리는 울음소리.
3m는 가뿐히 넘을 거대한 덩치의 퓨마가 내는 울음소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위협 거리였다.
“정신 차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팀원들에게 주의할 것을 당부한 김신.
그의 말에 팀원들은 가볍게 고개를 털며 퓨마를 예의 주시했다.
사람의 외형과 퓨마의 외형.
두 가지를 번 갈아가며 공격하는 패턴이라고 했었다.
조용히 팀원들을 탐색하는 듯 주위를 맴돌던 보스.
이내 탐색이 끝났는지, 가장 먼저 앞에 있는 강한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커허엉!
떨리는 공기와 엄청난 위압감.
그 울음소리에 담긴 마나에 바로 앞에 있던 강한우의 몸이 잠시 뻣뻣하게 굳었고, 보스는 그런 강한우의 방패를 가볍게 뛰어넘어 바로 뒤에 서 있던 천명화에게 달려들었다.
돌발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천명화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플레임 웨이브!”
천명화의 앞으로 쏟아지는 거대한 용암의 파도.
그 뜨거운 열기에 보스는 그를 공격하는 대신 다시 뒤로 물러섰다.
다른 보스들과는 다른 공격패턴.
동물 특유의 엄청난 피지컬을 이용해 위를 뛰어넘는 공격방식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면 간격을 좁히는 것이 우선이다.
“모두 대형을 좁혀!”
빠르게 거리를 좁힌 5팀.
보스는 그런 5팀의 모습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계속해서 주변을 맴돌며 틈을 살폈다.
맹수 특유의 예리함.
공격의 방식을 보자면 필시 틈이 생기는 순간, 가장 약한 팀원을 노릴 것이 분명하다.
예상대로 천명화와 송인아의 틈이 벌어지자, 그녀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뛰어가는 보스.
송인아는 그런 보스의 행동을 예상했다는 듯이 곧바로 맞받아쳤다.
부웅!
염동력을 공격이 아닌, 거대한 면으로 만들어 뒤로 들어 넘긴 것.
-크허엉!
보스는 고양잇과 특유의 움직임으로 허공에서 몸을 틀어 땅에 착지했지만, 애석하게도 그 앞에는 김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쐐액!
군더더기 없는 발도.
그와 함께 검날에 피어난 검기.
쾌속의 공격에 보스는 필사적으로 앞발을 들어 김신의 검을 맞받아쳤다.
카아앙!
운 좋게 김신의 검을 막아낸 보스의 발톱.
쇠가 부딪친 것만 같은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간 보스는 김신을 보며 이빨을 드러냈다.
-크르르릉!
좀처럼 보이지 않는 틈.
가장 약해 보이는 송인아 조차 공격이 아닌 수비적인 방식으로 염동력을 활용한 덕에 공격의 경로가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수비적인 형태를 취하는 와중에도 홀로 틈을 내보이며 도발하는 김신.
보스는 그 도발적인 모습에 다시 한번 김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탓!
폭발적인 탄력을 이용해 쏘아지듯 날아간 보스.
그에 맞춰 검을 휘두르는 김신의 모습에 보스는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꾸드득!
모습이 순식간에 변화하며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것.
그 모습에 김신은 꽤 놀랐다.
‘동물의 육체에 사람의 지능이라 그런지 확실히 날카롭네.’
수비는 할 수 없으니, 곧바로 옆으로 굴러 보스의 공격을 회피한 김신.
보스는 그의 모습에 재차 공격하려 했지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5팀의 공격에 다시 물러서야만 했다.
“번 플레임!”
김신과 보스 사이에서 폭발하는 천명화의 불꽃과 뒤를 이어 날아드는 송인아의 염동력.
콰앙!
보스에게 두 사람의 공격은 그리 큰 충격이 아니었지만, 약간의 틈을 만들기에는 충분한 공격이었다.
그리고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맹렬한 파공성.
쐐애액!
보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방패.
“으하하합!”
강한우의 공격이었다.
***
팀원을 지키는 방패로 항상 선두에 서는 강한우.
그는 허무하게 놓쳐버린 보스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도움이 돼야 해.’
공격적인 스킬로 무장한 팀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항상 마음속에 큰 짐을 가지고 있었다.
다수와의 전투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만, 강한 하나의 상대와 싸울 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게다가 성태수와의 싸움에서 느꼈던 무력함.
강한우는 조금 더 김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쐐애액!
온몸에 힘을 실어 내리찍은 방패.
그와 함께 방패의 모서리에서 튀어나온 칼날이 보스에게 날아갔고, 불시에 기습을 당한 보스는 양팔을 들어 강한우의 공격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콰아앙!
보스가 서 있는 땅이 움푹 파일만큼 강한 공격.
“큭!”
인간의 형태로 맞은 강한 공격에 침음을 내뱉은 보스는 뒤로 물러서며 욱신거리는 팔을 매만졌다.
확실히 피해를 입은 보스의 모습에 재차 방패를 휘두르는 강한우.
쐐액! 쐐액!
자세를 잡을 틈도 없이 들어오는 공격에 보스는 인간의 모습으로 연신 공격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수비적인 자세로 물러서기만 하는 보스.
그 모습에 강한우는 더욱 맹렬하게 공격했고, 마침내 구석까지 몰아세우는 대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어지는 김신의 목소리.
“한우 씨. 고생했어요.”
그의 말에 강한우가 방패를 거두고 물러서자, 보스에게 달려가는 김신의 모습이 보였다.
묵색의 마나로 물든 김신의 검.
그의 검이 휘둘러지자, 보스는 힘없이 쓰러졌다.
서걱!
쓰러진 보스를 보지도 않고 강한우에게 다가온 김신.
“언제 그렇게 강해지신 거예요? 앞으로는 명화한테 디펜더 해달라고 해야겠네.”
김신의 말에 강한우는 그를 옥죄던 무력함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